우리나라에서 ‘피압박 계층민’과 일맥 상통하는 낱말로 사용되는 ‘민중’이란 낱말이 크게 유행하게 된 것은 개발독재정권의 강압적 통치에 저항하던 기독교 성직자들 및 신학자들의 영향에 힘입은 바 컸다고 필자는 짐작한다. 특히 서기 1972년 10월 17일 이래의 이른바 유신정권하에서 긴급조치라고 하는 철권통치가 자행되던 시절에 거기에 맞서 싸우던 서남동 및 안병무를 포함한 일부 신학자들의 호소력은 실로 컸으며 이들은 이른바 ‘민중’신학자로 불리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신흥종교 연구에 이 ‘민중’이란 낱말이 등장한 것은 아마도 황선명의 단행본 ?민중종교운동사?가 1980년 9월에 출판되면서부터였다고 생각된다. 이 책의 제목은 1980년대 한국 대학가의 운동권 학생들의 취향에 맞는 것이었고, 그래서 저자는 상당히 주목받는 입장에 올라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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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명의 이러한 저작활동은 여타의 연구자들에게 자극을 주어 1985년에는 유병덕 편저 ?한국민중종교사상론?이 출판되었던 바, 편저자 유병덕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 “요즘 한국사회의 사상적 기류(氣流)에는 민중이란 말이 드높게 외쳐지고 있다. 이 소리는 과연 민중들 스스로가 자각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민중을 대변하려는 식자(識者)들의 소리인지, 아니면 잠자는 민중을 이용하려는 선동의 소리인지, 매우 분간하기 어려운 가운데 소란하기만 하다.........민중 속에서 자각의 소리를 부르짖으며 자생적으로 일어난 한국인의 종교, 이 종교야말로 ‘한국의 민중종교’이다”라고 하면서 ‘한국에서 민중종교운동은 1860년에 동학이 일어난 때부터’라고 못 박고 있다.
과연 동학이 민중종교였던가의 문제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루기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신흥종교는 곧 민중종교”라는 등식이 한국에서 대두된 데에는 동학혁명이 주어온 인상도 한 몫을 했을 것으로 느껴진다. 즉, 한반도에서 발생한 근현대 신흥종교들의 효시로 꼽히고 있는 동학이 1894년 당시에 피수탈계층이던 농민들을 이끌고 봉기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농민들의 호응을 받았던 사실, 그리고 그 동학의 정통적 후신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천도교의 지도부가 1919년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서 삼일만세운동의 촉발을 향도했고 그 운동의 영향이 역시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던 사실 등은 “신흥종교가 곧 피압자의 종교”라고 하는 확신을 혹자들에게 심는 데에 만만찮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신흥종교가 곧 피압자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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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연구대상이 특정지역에 몰려 있었던 점에 대한 성찰이 있기도 전에 각국에서는 “신흥종교가 곧 피압자의 종교”라는 식의 책들이 속속 출판되기 시작하였으니; 1958년에 일본에서 출판된 村上重良의 ?近代民衆宗敎史の硏究?, 1960년에 이탈리아에서 1960년에 출판되었던 비또리오 란떠나리의 movimenti religiosi di libert e di salvezza dei popoli oppressi, 1961년에 독일에서 w. e. 뮈일만 등이 편집출판한 chiliasmus und nativismus, 1978년에 일본에서 출판된 井門富二夫 편 ?講座宗敎學3: 秩序への挑戰?, 1982년에 역시 일본에서 출판된 鈴木中正 편 ?千年王國的民衆運動の硏究? 등은 그것들 중의 단지 일부 몇 개의 예에 불과하다.
이들 중 특히 란떠나리의 저서는 곧 불어와 영어로 번역되었고, 1965년에는 인류학 학술지 current anthropology의 10월호에서 이른바 ‘멀티플 리뷰’(다수의 세계적 학자가 각각 비평문을 싣고 그 비평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을 동시에 싣는 기획으로서, 국제적으로 주목할만 한 저서에 대해 current anthropology가 수시로 채택해온 논평방법임)의 대상이 되었다.
외국에서 출판된 이러한 서적들에서 ‘피압자들의 종교’ 또는 ‘기존질서에 도전하는 종교’로 불린 현상들은 거의 예외없이 ‘신흥’종교들이었던 관계로; 신흥종교가 곧 피압박 계층의 염원, 고난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투쟁, 인민의 봉기 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인상을 일부 식자층에서도 이렇다 할 검토과정도 없이 갖게 된 것이다.
민중 염원에 부응하는 행보?
‘민중’이란 낱말의 뜻에 대해서 뚜렷한 설명을 제시하고 학계의 검토를 받은 학자의 예는 아직 필자에게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이긴 하지만,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 큰 사전?에서는 ‘민중’을 “다수의 백성”이라고 풀이하고 있고,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민중’을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국민. 피지배 계급으로서의 일반 대중을 이른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서기 1992년에 출판된 조동일의 ?민중영웅 이야기?에서는 상층영웅과 민중영웅을 대조하고 있다. 상층영웅과 대조되는 영웅이 민중영웅이라면, 민중영웅은 하층영웅일 것이고 민중은 하층민일 터이다. 사실 이런 ‘민중’개념에는 1940년대 후반의 해방정국에서 좌익계 정당들의 명칭 속에 오르내리기도 했던 ‘인민’이란 낱말과도 상통하는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억눌린 자들, 수탈 당한 자들, 사회의 중심부로부터 소외된 자들, 빈민과 하층민과 서민과 양민 등의 이미지가 이 개념 속에는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사회 속에 이런 이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면 이들 다수의 목소리(또는 염원)를 대변하는 종교는 실로 필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흥종교가 곧 그러한 종교라고 단정짓는 데에는 만만찮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우선, 지난 140년 동안에 한반도에서 출현한 신흥종교들 중에서 민중종교라는 이름에 값하는 면모를 보여준 경우는 너무나 드물어서 앞에서 잠시 언급된 동학혁명 및 삼일독립운동 등의 극히 한정된 사건들뿐이었다.
1930년대에는 수십 개에 달했고, 육이오 뒤에는 수백 개에 달하고 있다는 한국 신흥종교단체들이 ‘민중’의 염원에 부응하는 행보를 택해왔던가? 어쩌면, ‘신흥종교가 곧 민중종교‘라고 하는 등식은 신흥종교가 민중종교로서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어떤 이들의 기대심리의 표현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이 ‘신흥종교가 곧 민중종교‘라고 하는 등식에는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다. 이를 좀 더 상론하기 위해서는 신흥종교발생의 사회적 상황을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므로 아래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새로 부흥 종교가 신흥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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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어떤 역사적 점에서 새 종교가 생겨나거나 기존의 주변적 종교가 부흥의 계기를 맞이하여 사회중심부로 옮겨가거나 하는 데에는 평상시의 여건과는 다른 어떤 요인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도대체 어떤 요인이 신흥종교의 대두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하는가? 사회학자들은 그 요인을 ‘사회변동’에 연관시켜 왔고, 인류학자들은 그것을 ‘문화변동’에 연관시켜 왔다. 지난 100여년 동안 언급되어온 박탈감(절대적인 것이든 상대적인 것이든)도 대부분이 사회적 또는 문화적 변동에 연관하여 주장되어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의 문제점은 사회적 또는 문화적 변동이 보편적 현상임에 반해 신흥종교발생은 보편적 현상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즉, 모든 사회적 또는 문화적 변동이 다 신흥종교발생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데에서 “사회변동 곧 신흥종교발생의 상황”이란 등식에는 허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사회적 또는 문화적 변동의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런 변화에 성공적으로 잘 ‘적응’하고 기존의 우주관을 계속 보유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새로운 우주관이나 신흥종교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이렇듯, 사회적 또는 문화적 변동 일반이 신흥종교발생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흥종교가 대두되는 상황은 정작 어떤 상황인가? 이 점에 대해, 정치학자 마이클 바아컨은 사회(또는 문화)변동의 강도(强度)에 주목하였다. 사회변동의 촉발원인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간에, 그 변동이 가져오는 심리적 스트레스의 단위가 어떤 특정치를 초과하는 경우에 사람들은 기존의 우주관 속에서 그런 스트레스를 해소치 못하게 되고 결국 우주관 부재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수상황을 사회변동 일반과 구별하여 그는 “재난”(disaster)이라 불렀고, 그것을 “평상적 사회구조에 격렬하고 비교적 급속하며 흔히 예기치 못한 붕괴현상(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이 발생하여 해당 공동체가 제어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규정하는 기드온 쇼버어그에게 동의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평상시에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징후군(徵候群)--소위 ‘재난 신드롬’--이 피해자들에게서 관찰된다는 a. f. c. 월러스의 견해에도 공감한다. 바아컨은 이어서 이런 상황에 처한 개인들이 심리적 박탈감과 과잉자극의 엄습을 동시에 경험하기 때문에 그들의 피암시성향(suggestibility)이 현격히 높아지고, 그래서 새로운 신념 또는 신앙을 급속히 받아들이는 경향을 띤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이들의 공동체가 통과하는 과정을 “① 재난구호 제도에 호소하는 단계 ② 재난발생의 원인에 관한 해답을 전통종교에서 구하는 단계
③ 대안적(代案的) 우주관을 받아들이는 단계”로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대안적”이라는 낱말을 “신흥종교의”라는 구절로 바꾸어 우리의 논의를 진행시켜봄 직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세속적 해결책도 실패로 끝나고 전통적 주류종교도 무력한 상황에서는 남는 것이 신흥종교뿐이라는 데에 연구자들 사이에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신흥종교 대두의 배경에는 재난의 강타가 있다. 그런데 재난은 흔히 지방 또는 중앙 정부조차도 무력하게 될 정도로 그 파괴력이 크다. 그렇다가 보니 그 피해자들이 어떤 사회계층에 국한될 리가 없다. 즉, 대개의 경우 사회계층들 중 특정계층만을 선별적으로 강타하는 재난은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재난은 사회전반을 붕괴시킴으로써 기존의 계층간의 차이를 일거에 제거하는 경향이 있다.
원자탄의 투하로 폐허가 되던 일본 나가사키 및 히로시마의 당시 상황, 중세 유럽에서 페스트가 창궐하여 인구 몇 분의 일이 죽어가던 상황, 일본 고오베에서 도시 전체가 지진으로 붕괴되던 상황, 뱅글라데시에서 해일로 말미암아 30만 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경우 등을 생각해 본다면; 기존의 계층 간의 차이를 일시에 제거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재난의 면모를 우리는 실감할 수 있다.
특정계층 목소리대변 드물어
이렇듯, 재난은 사회계층들 중의 어느 계층[들]만을 선별적으로 강타하는 것이 아니다. 재난의 규모가 클수록 전체인구에 대한 재난피해자들의 대표성은 더 강화된다. 신흥종교운동 대두의 배경에는 사회변동 중에서도 특수한 경우인 ‘재난’이 있기 마련이라는 바아컨의 지적을 우리가 수긍한다면, 그리고 신흥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재난내습에 대한 의문을 세속적 수단으로도 기성종교로도 해소치 못했었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격렬하고 급속하며 예측 불가능한 재난 자체의 성격 때문에 신흥종교 입신자(入信者)들은 재난피해지역의 기존 사회계층들의 분포를 비교적 고르게 반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신흥종교의 발생은 계층의식에 그 바탕을 두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보았듯이 재난이 강타하는 것은 계층단위가 아니라 지역단위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로 재난이 강타한 지역에는 상류층도 중산층도 빈민층도 다같이 ‘재난 신드롬’을 통과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재난 신드롬’은 계층의식과는 거리가 멀고, 그런 만큼이나 신흥종교운동은 계층운동과는 다른 양상을 띤다. 이렇듯, 신흥종교인들의 입신동기가 재난 신드롬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계층의식의 문제는 항상 부차적 잇슈에 불과하고, 그래서 신흥종교 단체들의 행보는 대개 계층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이를테면 전경련, 노동조합 등)들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이런 언급에 반하여 천년왕국운동들의 대부분이 농민을 그 주된 구성원으로 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천년왕국운동들이 신흥종교인 한, 농민이 계층민으로서 이런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기보다 재난피해에 취약한 지역의 피해주민으로서 새로운 우주관을 찾아나섰다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럴 때에 농민은 농민들의 이익만을 집중적으로 추구하기보다는 새로운 우주관 속에서 모든 현실을 재조명하는 것이다.
지난 백 수십 년 동안에 우리나라의 신흥종교들 가운데에 특정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집단행동으로 나아간 경우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너무나 드물었다. 이것은 그들의 세력이 영세하여 지배층에 대항키 어려웠던 점에도 그 원인이 있었으나, 그보다 더 큰 원인은 바로 그들의 입신동기가 계층의식에 있지 않고 그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대안적 우주관의 발견에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보천교, 원불교, 천부교, 통일교 등 한국 신흥종교 단체들의 행보가 하나같이 피압박계층의 생존투쟁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음도 결코 우연은 아니었던 것이다.
피압자 종교 등식 성립안돼
앞에서 예로 든 일본 서적의 제목에 보이는 “질서에의 도전”은 결코 신흥종교인들의 이슈가 아니다. 정녕, 신흥종교 입신자들의 눈에는 도전대상으로서의 기존질서가 온존해 있지 않다. 친숙했던 인적 및 물적 환경은 파괴되고, 감당키 어려운 심리적 박탈감 및 새로운 과잉자극의 폭격으로 그들은 재난 신드롬을 앓는다. 세속적 재난구호대책은 실패하고 기성종교의 메시지로도 위안을 받지 못하는 그들에게 구질서 및 기성 우주관은 더 이상 유효치 못하고, 그들은 우주관 부재의 상황을 맞이한다. 이런 그들에게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원의 소식이 있다. 그들을 강타한 재난의 원인을 설명해줄 새 우주관, 새 진리, 새 ‘말씀’이 있다는 소식이다. 이것이 신흥종교의 소식인 것이다.
이때의 신흥종교는 전혀 새로이 출현한 것일 수도 있고; 재난발생 전에도 존재했었으나 주류종교의 세력에 밀려 위험한 것, 저급한 것, 또는 틀린 것으로 지목받아 문화의 저류에서 코우터리(coterie)의 상태로 명맥만을 간신히 유지해 오던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이러한 신흥종교는 재난피해지역 전체를 무대로 하여 대형 종교로 급속히 성장할 도약대에 서는 것이다.
진정, 신흥종교의 이상(理想)은 민중운동의 그것보다는 더 포괄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신흥종교가 곧 피압자의 종교’라고 하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기 마련인 것이다. jhchoe1128@hanmail.net
*필자/박사. 종교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