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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의 전통 스포츠, 씨름과 스모

인니뽄매거진 심층분석-한국VS일본 제 4탄

브레이크뉴스 | 기사입력 2009/09/07 [10:52]
한국의 씨름과 일본의 스모는 닮아있는 점이 많다. 일단 두명의 건장한 남자가 모래판 위에서 특정한 기술을 겨룬다는 점에서 그렇고, 착용하는 의복(샅바와 마와시)도 엇비슷해 보인다. 거기다가 토너먼트 경기를 통해 최종 우승을 가리는 것도 그렇다. 

특히 상대를 넘어뜨리는 각각의 '싸움의 기술'은 상당히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점들만 보자면 꼭 어느 한쪽이 어느 한쪽의 유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흡사해 보이기도 한다. 

씨름과 스모는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를까. 스모를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한국의 씨름과 비교해볼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비교 포인트'를 통해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해보고자 한다. 
 
레슬링의 한 종류인 스모(相撲)는 일본 국가스포츠로서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고대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마와시’(し-샅바)와 ‘오이초(은행잎 머리모양)’라고 불리는 헤어 스타일을 하고 밀집으로 만든 경기장인 ‘도효’에서 서로 상대방과 싸움을 벌인다.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나 기타 다양한 제도 등도 모두 전통적인 관습을 따르고 있고 종교적인 의식과도 결합되어 있는 것도 특이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스모’라는 뜻은 무엇일까. 바로 중국어로 ‘서로를 해치다’라는 뜻이다. 약간은 살벌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스모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에도시대(江戶時代 1600-1868년)에 와서 전문 스포츠가 되었다. 

비교 포인트  ▶ 우리의 씨름 역시 약 4세기경으로 짐작되는 고구려 고분 각저총 주실의 벽화에 씨름하는 장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성행했으며, 1천5백년 이상의 역사 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삼국시대 이전의 기록으로는 중국의 [후한서]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각 각 '각저희' 와 '씰흠'을 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상고 시대에도 이미 씨름이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스모는 아마추어 협회뿐 아니라,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부서 활동으로 독점적인 남자스포츠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과 해외에서 스모는 관전 스포츠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마라톤이나 축구와 같이 자신이 직접 해볼 수 있는 생활 스포츠라기 보다는 보는 것에서 더 의미와 재미를 찾는다는 것이다. 

사실 스모의 경기 방식 자체는 매우 단순하다. 상대방을 도효 밖으로 밀어내고 몸의 일부를 바닥에 닿게 하면 승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승부의 기술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스모에는 무려 70여 가지의 다양한 기술이 있다. 
 
스모의 기술로는 허리띠의 손잡이를 사용하여 링 밖으로 밀거나 들어올리기, 공격하는 동안 가장자리로 재빨리 뛰기, 상대방이 균형을 잃도록 손바닥으로 치기, 상대방을 링 밖으로 던지기 위해 넘어지기 전에 가장자리로 파고들기 등 현란한 기술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비교 포인트  ▶ 씨름은 신체부위 중 무릎 이상이 지면에 먼저 닿는 것으로 승패를 결정한다. 기술로서는 손기술, 발기술, 허리 기술 등으로 나눠지며 총 60여개가 넘는 기술이 있다.

또한 스모는 꽤 엄격한 의식과 룰을 가지고 있다. 일단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각 선수들은 두 팔을 벌리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쪼그리고 앉고, 상대방을 날카롭게 노려보는 의식을 치룬다. 이는 공격성을 나타내고 마치 짐승이 먹이를 먹기 직전에 준비를 하는 것과도 비슷해 보인다.

또한 경기장을 정화한다는 의미에서 한 움큼의 소금이 허공에 뿌려지기도 한다.


특히 스모는 경기 내내 엄격함과 위엄을 유지한다. 심판의 판정에 대해 항의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매너 없는 스포츠 정신은 절대로 용납을 받지 않는다. 상체를 손바닥으로 치는 것은 허용되지만 주먹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는 것, 그리고 머리를 잡아 당기는 것 역시 금지되고 있다.

또한 설사 경기에서 지거나 이기더라도 감정을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 약간의 미소나 찡그림 이상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비교 포인트  ▶ 반면 한국 씨름은 감정 표현이 비교적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경기에 승리하면 두 팔을 쭉 뻗어 자신의 승리를 환호하는 등 그 즐거움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는 재미가 있다.

그럼 스모의 순위를 알아보자.



여기에서 요코즈나는 일종의 영구적인 순위라고 할 수 있다. 몇번의 게임에서 이기거나 진다고 해서 순위가 내려가지 않는다. ‘한번 요코즈나는 영원한 요코즈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들의 지위에 걸맞지 않는 경기 결과가 나오면 아예 은퇴를 해버려야 한다. 그것이 요코즈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이다.

수세기의 스모 역사에서 요코즈나는 고작 65명에 불과했다. 그만큼 등극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럼 가장 유명한 요코즈나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스모의 경우는 체급이 없다는 것이 특이하다. 따라서 거대한 몸집의 선수가 작은 선수와 시합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몸집이 큰 선수가 경기에 유리할 것 같지만 때로는 빠르기와 타이밍, 균형감각 등이 경기의 결과를 좌우하여, 작고 빠른 선수가 큰 덩치 큰 상대를 물리치고 우승을 하는 이변을 낳아 관객들을 즐겁게 하기도 한다.

비교 포인트  ▶
일본 스모에 체급이 없는 것에 비해 씨름은 엄격한 체급 구분을 가지고 있다. <
금강, 한라, 백두 ,천하>장사로 구분되어 왔다. 하지만 2007년부터 씨름계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청룡, 백호, 거상(코끼리), 백마>도 함께 쓰이고 있다.

스모 경기는 언제 개최되는 것일까. 1년에 6회, 그러니까 2개월에 한번씩 15일간 계속된다.


비교 포인트  ▶ 한국씨름연맹은 년간 8~9회 정도의 정규대회를 개최한다. <설날장사씨름대회>와 <추석장사씨름대회>를 비롯해서 <정규지역장사대회 > 5회, <천하장사대회> 1회를 치르고, 비정기적으로 해외대회와 번외 지역장사대회 등을 갖는다. 경기는 단판제로 하지만 준결승전, 결승전은 3판 다승제로 한다.

요코즈나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그랜드 스모 대회에서 최소 2~3번의 우승을 해야하며, 최종적으로 스모협회의 이사회 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무조건 이기기만 한다고 해서 요코즈나가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다음은 스모 선수들의 월급과 연봉이다. 최소 월급이 한국 돈으로 1300만원, 많으면 2800만원이다. 1년 연봉은 당연히 억대가 넘어가고 많은 경우 4억 3천만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 스모 선수들이 이 같이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세키토리(프로선수)의 봉급을 받기까지는 5년 이상이 걸리며 선수촌에 있는 900명의 선수들 중 66명만이 세키토리로 활동 중이라는 사실은 스모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 스모가 개최되는 국기관(스모전용 경기장 ] 



                             [ 국기관 내부 ]  
현재 일본의 요코즈나는 <아샤쇼류>와 <하쿠오>이며 두 명 다 몽골출신의 레키시 (스모선수)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약간의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왜 일본인 요코즈나는 없냐는 것이다.

일본의 레키시는 돈과 명예를 누릴 수 있으며 일본 사회의 존경을 받을 수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야구나 축구에 비하면 지망생이 적다고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이치로나 마쯔이와 같은 야구선수, 지금은 은퇴했지만 한때 유럽리그에서 활동했던 축구선수 나카다 등의 인기가 엄청나기 때문에 체격이 좋고 운동 능력이 좋은 학생들은 스모보다 야구, 축구를 선택한다. 

반면 외국인들의 경우 부와 명예를 위해서 어린 나이부터 일본에서 생활하는 레시키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이러한 현상이 최근 일본 요코즈나의 부재 사태를 빚은 본질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스모는 일본의 전통과 권위를 나타내주는 스포츠이기는 하지만 역시 문제점도 적지 않다. 요코즈나인 아사쇼류의 언행과 거짓말을 비롯해서 스모베야(스모 선수촌)의 시스템, 제자 육성 문제, 스모계의 폐쇄성 등이 바로 그러한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토키츠카제 감독의 선수촌에서 발생한 스모선수의 구타사망 사건은 일본열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사건은 이렇다. 보통 스모선수들 사이에는 선후배의 기강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암암리에 구타 등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토키츠카제라는 감독이 선배들에게 어린 선수를 ‘손 좀 봐 줘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선배들이 후배를 맥주 병 등으로 구타해 사망시킨 사건이다. 처음에는 구타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고 했으나 죽은 선수의 부모가 다시 탄원서를 제출해 발각이 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 이외에도 최근에 터진 키나노우미(전 스모협회 이사장)의 선수촌에서 발생한 외국인 선수들의 대마초 문제도 한 이슈가 되곤 했다.

비록 스모계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인들은 스모계에 대한  많은 관심을  늘 표해왔다. 스모를 걱정하는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늘 스모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또한 일반 대중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스모는 앞으로도 일본의 전통 스포츠로서 지속적인 인기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교 포인트  ▶ 천하장사대회가 처음 개최된 것은 1983년 4월 14일 서울의 장충 체육관이었다. 그 후 씨름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 분위기에 힘입어 민속씨름팀 수가 8팀으로 늘어났으나, 1990년대부터 하나씩 해체 하기 시작해서 1997년 imf의 직격탄을 맞아 대다수 팀이 해체됐다.  

90년대 후반이후 팬들의 씨름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진 점과 한국씨름연맹과 대한씨름협회의 갈등으로 인해서 씨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더욱더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2004년 12월 lg투자증권 씨름단의 해체로 단 2개의 씨름단이 남아 있을 뿐이어서 아예 민속씨름을 운영할 수 없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또한 2005년 kbs스포츠중계팀은 적자예산을 이유로 민속씨름대회 독점중계권료를 전액삭감해 줄 것을 요구했고 결국 모든 대회에 대한 중계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 사태를 거듭하면서, 씨름은 시청자들의 관심 속에서 더욱 멀어지고 말았다. 

일본정보게이트(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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