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어린 딸 때문에 죽을 수 없었다. 눈을 감지 못했다. 어린 소녀 역시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 심청이가 다시 환생한 효심은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었다. 현대 의학으로 도저히 살릴 수 없는 자궁암과 직장암의 말기 고통은 방바닥을 뒹굴게 했다. 끼니를 걱정하는 가난 때문에 자궁암이 전위되어서 직장암으로 번지는 사이에도 어쩔 수 없었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엄마의 고통으로 어린 소녀는 주사기를 들었다.
주사바늘을 무서워하는 간호사
소녀가장인 최정은 어린이는 부산 금정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정은이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는 어머니와 헤어졌다. 부산 금정구 산성으로 올라가는 솔 나무 숲속에는 천막으로 지은 집이 있었다. 조그만 움막은 비닐 장판과 천막으로 얼기설기 잡아매어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 곳에서는 어머니와 어린 딸이 살았다. 숲속 솔향기와 산새의 소리는 쓰려져 내릴 듯 한 움막을 감싸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정은이는 해맑고 구김 없었다. 해골처럼 변해버린 엄마와 함께 움막에서 산다고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만큼 학교에서도 밝게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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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엄마는 쓰러져 있었다. 울음소리를 더욱 높아졌다. 정은이는 황급히 방구석에 놓여 있는 상자를 열고 주사기를 꺼냈다. 약솜으로 엄마의 엉덩이를 닦으면서 멍울지지 않는 살갗을 찾았다. 작은 주먹으로 딱딱 두 번 때린 후 주사바늘을 꽂았다. 주사바늘로 빨갛게 된 엉덩이 주변을 문질렀다. 그리고 팔 다리를 주물렀다. 초등학생이라고는 느껴질 수 없는 손놀림에는 수년간 다진 노련함이 배어있었다. 잠시 후 잠에서 깨어 난 듯 딸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엄마는 축 늘어진 송장처럼 보였다. 정은이의 손은 쉴 틈이 없었다. 뜨거운 물을 끓여서 수건으로 엄마의 엉덩이에 뜸질을 해주었다. 엉덩이의 멍울이 풀려야만 다음 번 주사를 놓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은이는 엄마가 죽지 않았다는 기쁨에 더욱 더 울음이 북받쳤다. 어린 소녀가 가짜 간호사의 역할을 한 세월은 4년이나 훌쩍 흘렀다. 초등학교를 들어가지 전부터 주사바늘을 잡았다. 온통 딱딱해진 멍울들이 엄마의 엉덩이를 뒤덮여 있었다. 그러니 정은이 엄마 혼자서는 도저히 주사기를 꽂지 못할 정도였다. 하는 수 없이 어린 딸의 손에 주사기를 들려야 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무서워서 눈을 감고 주사바늘을 찔렀다. 벌써 4년이나 지났으나 정은이는 여전히 주사바늘을 무서워했다. 무서운 마음이 들더라도 엄마를 생각하면 못 할게 없었다. 무서운 주사바늘은 언제나 정은이의 손을 떠나지 않았다. 중환자를 보살피는 어린 간호사는 솔 나무 숲속의 천사였다.
어떨 때는 진통제 주사 한방으로 끝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엄마는 정은이에게 매달렸다. “주사 한 대만 더 놓아줘”라는 부탁은 정은이의 마음을 더욱 더 아프게 했다. ‘엄마가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 어린 딸은 엄마의 고통이 심해질수록 더욱 아파했다.
정은이는 삼중스님을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다. 학교에서 달려 와서 얼굴이 발그레진 정은이는 눈이 커다란 스님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삼중스님은 부산에 있는 대학교수로부터 “스님! 불쌍한 꼬마가 있습니다. 엄마는 말기 암으로 병원에서도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데, 어린 꼬마가 엄마에게 진통제를 놔준답니다.” 정은이의 기막힌 사연을 듣자마자 삼중스님은 산성 골짜기에 박혀있는 움막을 헤매면서 찾았다. 주소가 등재되지 않는 무허가 움막이니 발품을 팔 수 밖에 없었다. 병원에서도 이미 포기한 말기 암 환자를 돌보는 실상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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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너무나 해맑은 표정은 하늘에서 내려 온 천사처럼 보였다. 엄마가 안전하다는 기쁨에 인사를 건네는 정은이는 환생한 심청이 같았다. 축 늘어져 있던 엄마의 모습이 서서히 달라졌다. 움막의 공기는 환하게 변화되었다. 엄마의 얼굴은 어느 새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어린 정은이의 효심은 삼중스님에게는 신성한 충격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아버지
정은이 아버지는 움막 바로 아래 산성 마을에 살고 있었다. 정은이가 학교를 오르내리는 길목이니 한 30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살았다. 정은이가 태어나자 부부는 헤어졌다. 같은 동네에 살기 때문에 종종 부닥치게 되는 아버지이지만 언제 한번 정은이의 손을 잡아 준적도 없었다. 엄마는 어떠냐고, 학교는 잘 다니고 있냐고 물어봐 준 적이 없었다. 정은이는 아버지를 일부러 피했다. 저리도 아픈 엄마를 한 번도 챙기지 않는 아버지가 미워서였다.
어느 날 정은이는 학교를 가는 길에 아버지를 보았다. 오토바이에 아이를 태우고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 그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그날따라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는지, 정말 별 것도 아닌데도 눈물은 계속 흘렀다. 아버지를 본 순간 움막의 찬 방바닥에 누워있을 엄마를 생각하니 북받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랫동네 할머니는 항상 씩씩했던 정은이의 우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무슨 큰일이 생겼는지 궁금해서 할머니는 움막을 찾았다. 엄마에게 학교 가는 길에 울고 있는 정은이를 보았다면서 걱정을 했다. 그러니 엄마는 학교에서 달려 온 정은이를 채근했다. 하는 수 없이 정은이는 자신의 마음을 들켜버렸다. 그날 밤 엄마는 주사까지 맞고서도 데골데골 방바닥을 굴렀다. 슬픈 현실에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뒹구는 엄마 옆에서 정은이는 함께 울면서 밤을 새웠다.
삼중스님은 초여름인데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정은이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한기가 뼈 속까지 오는지 이불속에서도 벌벌 떨고 있었다. 삼중스님의 방문에 정은이 엄마는 불자로서 합장했다. 오랜만에 찾아 온 손님이라 무척 어색해 하면서도 반겼다.
“스님! 저는 몹쓸 병이 두 가지나 걸려서 온 몸이 이리 썩어갑니다. 왜 이리 비참해져야만 하는지 내가 무슨 죄를 많이 저질렀기에 이런 천벌을 받는지요?”
젊은 나이였다. 35세쯤 들어 보였다. 엄마와 딸은 붕어빵처럼 닮아 보였다. 그러니 엄마의 처녀시절은 정은이처럼 복스럽고 예쁜 모습이었으리라. 그러나 병마는 해골 그 자체를 드러나게 했다.
“스님! 저 죽는 것은 무섭지 않습니다. 저 어린애가 이 험한 세상에 혼자서 사는 것을 생각하면 죽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내 눈에 보입니다. 양식도 없는 판에 날마다 진통제로 견디는 이 세상을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듭니다.”
삼중스님은 돈 몇 푼 주려는 마음으로 달려왔지만 움막 안은 아예 지옥이었다. 사람 썩는 냄새로 뒤덮인 생지옥에서 어린 소녀는 엄마를 돌보고 있었다. 참 설명하기 힘든 현실이 삼중스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돈 몇 푼 가지고는 될 일이 아니었다. 돈 봉투를 정은이 엄마에게 건네면서 참담한 마음에서 설법을 했다.
“부처님 말씀에 전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죄 지은 것이 없이 착하게 살았더라도, 전생에 살 때 지은 죄업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전생의 빚을 다 갚는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저 세상에 가서라도 죄를 면하면서 좋은 세상에 살 것입니다.”
빚 갚는다는 마음으로 당하라는 식으로 풀이밖에 더 할 말이 없었다. 너무나 처참한 현실에서는 손 쓸 법문이 없었다. 무슨 빚을 갚으라는지 삼중스님은 자신의 법문에서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스님! 저는 애 때문에 못 죽겠어요. 몇 번 약을 사서 같이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애를 어찌 죽일 수가 있습니까? 혼자서 자살하면 애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지도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바로 지옥이 아니면 다른 지옥이 또 있겠습니까?”
삼중스님은 정은이 엄마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보다는 모성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형수 아들을 가진 어머니의 통곡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사형수야 자신의 죄업에 통곡하는 마음이지만, 정은이의 어머니는 어린 딸을 두고 죽지 못하는 모성이니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은이 어머님, 제가 정은이를 맡겠습니다. 제 절로 데려가서 공부도 시키고 키우겠습니다. 주변분 들에게 부탁해 놓으셔서 마지막 순간에는 제게 꼭 전화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삼중스님은 정은이 엄마와 약속했다. 정은이 엄마의 모습에서는 며칠을 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니 정은이를 돌볼 자신의 집, 절로 데려가서 키우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니 정은이 엄마도 편안하게 가라는 암시를 건넸다. 현실에서 가장 도움을 줄 일이라고는 그 길뿐이었다. 정은이 엄마는 삼중스님을 부여잡고 울었다. 울다 지쳐서 늘어진 엄마의 팔과 다리를 정은이는 주무르고 있었다.
시한부 삶이 20년 연장된 기적
예상했던 며칠이 지나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삼중스님은 전화소리만을 기다렸다. 한 보름쯤 지나니 정은이 엄마가 직접 전화를 했다.
“스님, 한 번 뵈올 수 있겠습니까?”
삼중스님은 정은이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 수명이 길구나! 한 며칠 살 정도였는데.’하는 생각이 스쳤다. 반가운 마음에 쫒아갔다. 정은이 엄마의 병세는 더욱 심해진 듯 보였으나 정신은 잃지 않고 있었다.
“스님! 내 딸을 절에서 키워주시겠다는 말씀은 진심으로 하신 거죠? 그냥 기분으로 한 소리가 아니시죠?”
정은이 엄마는 삼중스님이 한 약속에 대한 다짐을 받고 싶어 했다.
“진심입니다. 내 성의껏 잘 키울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는 크게 걸지 마십시오. 정은이가 공부를 잘하면 하는데 까지는, 그리고 내가 버티는 동안, 힘닿는 데까지 잘 키우겠습니다. 믿으십시오!”
정은이 엄마는 울었다. 친 아버지가 옆에 살면서도 쳐다보지 않는 딸아이를 처음으로 찾아 온 스님의 약속에 흐느낌은 통곡으로 변했다.
“스님! 제 마지막 유언입니다. 삼중스님을 믿고 저는 편안히 가겠습니다. 제 딸을 잘 키워주십시오.”
삼중스님은 정은이네의 긴박한 상황을 신도들에게 이야기했다. 돈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자주 움막을 들락거렸다. 삼중스님은 여기저기 이야기보따리를 퍼뜨렸다. 감옥에 있는 사형수를 살리는 것보다 더 절실하게 뛰어다녔다. 그러는 사이 정은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부터 학교에 있는 시간은 길어졌다. 점심시간에 움막으로 달려와서 엄마에게 주사를 놓고 다시 학교로 뛰어갔다. 정은이네는 삼중스님의 주변에서 부풀린 정들로 풍성해졌다.
정은이네 움막이 한국일보에
정은이 엄마는 일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했다. 후원금을 모아서 병원검사를 받았다. 암 덩어리가 더 이상 번지지 않는다는 검사 결과는 뜻밖이었다. 1년 동안 진통제 주사만으로 연명을 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현대 의약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비약해서 소설을 쓰자면 어린이의 효심이 천심을 움직였다는 표현이 적당했다. 그래서 삼중스님은 한국일보의 박 사회부장에게 부탁해서 부산지사에 있는 두 명의 기자와 움막을 찾았다.
1993년 3월 19일, 한국일보에 ‘시한부 삶, 엄마를 살려주세요.’ 라는 기사는 실렸다. 그래서 후원금이 물밑으로 몰려왔다. 엄마의 얼굴은 고마운 눈물과 함께 웃음꽃이 피웠다. 한 번도 싸주지 못한 정은이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들떠있었다. 한국일보의 기사는 정은이 주변사람들에게 실상을 알게 했다. 그제야 정은이 반의 담임선생과 아이들도 알게 되었다. 담임선생도 움막을 찾았다. 담임으로 어려운 처지를 몰랐던 미안함을 내비치었다. 정은이는 삼중스님을 마치 친할아버지처럼 좋아했다. 그래서 솔향기 숲속에 앉아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스님이 도와주셔서 엄마가 살아 있어요. 꿈만 같아요. 스님! 한국일보에서 많은 돈을 주어요. 그래서 엄마 약값 걱정을 하지 않아서 춤이라도 추고 싶어요. 어제 밤에 엄마랑 이야기했는데요. 한국일보에 감사편지를 보냈으면 하는데 엄마가 스님에게 여쭈어보라고 했어요.”
1993년 4월 3일, 정은이의 감사편지가 한국일보에 실렸다. 편지에는 도와주신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훌륭한 간호사가 되어, 엄마처럼 병든 사람을 열심히 돕겠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에 서울 문화방송 ‘인간시대’ tv에서 정은이의 움막을 찍었다. tv에 방영된 모녀의 슬픈 현실은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자극했다. 그러니 정은이네 움막은 유명해졌다. 후원자가 줄을 이었다. 출판사에서는 정은이의 책을 출판해 주었다. 어느 사이 정은이는 금정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효심의 ‘사필귀정(事必歸正)’
정은이는 삼중스님에게 자주 전화를 했다. 어느 날 정은이의 소원을 알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고 싶다는 소원에 삼중스님은 또 나섰다. 엄마에게는 딸과의 마지막 여행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 거들었다. 제주 나들이를 제주방송에서 떠들었다. 삼중스님과 잘 아는 제주도에 있는 스님 한 분은 새 돈 백만 원을 모녀에게 전달했다. 그리 주변에서 반겼다. 소암 현중화 선생, 80세가 넘은 현 선생도 정은이에게 글을 선물했다. 올림픽의 최초의 성화자로서 서예가로는 1인자였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글은 ‘착한 마음을 가지니 좋은 일이 생긴다.’로 효심을 칭찬했다. 3박 4일의 제주도 여행을 한 모녀는 행복한 마음에 더욱 안정되었다.
역시나 효심의 끝은 아름다웠다. 정은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엄마는 살아서 옆에 있어 주었다. 어느 후원자는 매달 20만원을 보내어 모녀의 생활은 점차 안정되었다. 어느 기업에서는 정은이의 대학 등록금과 학비를 대주었다. 기적을 일군 모든 선물은 삼중스님의 덕분이라고 정은이는 굳게 믿었다. 삼중스님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은 다만 길을 연결시켰을 뿐 정은이의 효심이 모든 기적을 일궜다고 믿었다. 대학을 졸업한 딸을 보면서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수원 착한 이모 집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정은이의 예쁜 모습에 삼중스님은 흐뭇해했다. sungae.kim@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