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급속한 부상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던 기존 국제질서에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양상이다. 국제질서의 변화는 ‘외교의 홍수시대’를 열고 있다. 수성(守城)하려는 자와 공성(攻城)하려는 자의 세력다툼이 직접적 충돌이 아닌 외교의 형식을 빌어 간접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외교의 홍수시대에 두드러진 특징은 외교적 레토릭의 다양화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한 ‘전략적 관계’의 남발이다. 양자외교든 다자외교든 정상회담에서 ‘전략적(strategic)’이란 용어가 일상적 외교수사로 등장하고 있다. 용어 자체에서 뭔가 중후 장대한 이미지가 풍기지만, 공허한 뉘앙스도 묻어난다.
외교관계에서 ‘전략적’이란 용어가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미국 국제정치학계의 거두 헨리 키신저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상호관계를 규정하기 어려울 때 ‘전략적’이란 용어를 쓴다”고 가볍게 표현한 적이 있다. 전략적이란 용어 속에는 관계의 구체성이 결여돼 있다는 의미다.
삼성경제연구소 최명해 연구원(국제정치•북-중관계)은 ‘전략적 관계’는 국제정치학계 내부에서도 정확한 개념정의가 내려지지 않은 비교적 모호한 용어라고 말했다. 다음은 최 연구원의 설명.
<삼성경제연구소 최명해 연구원>
전략적 관계는 시간적인 측면과 공간적인 측면을 복합적으로 담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중•장기적으로 어떤 문제에 대해 양국이 관심을 공유할 때 이 용어를 쓴다. 공간적으로는 양자관계를 넘어서는 지역적, 또는 세계적 문제에 대해 이해관계를 공유할 때 사용한다. 따라서 전략적 관계는 양국이 중•장기적인 지역적, 세계적 문제에 대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관계를 규정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국가관계는 크게 일반관계, 동맹관계, 제휴관계로 나눌 수 있다. 일반관계는 말 그대로 양국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평범한 상태를 말한다.
동맹관계는 공동의 적(위협)과 이에 대한 공동목표를 전제한다. 아울러 이런 전제에 양국이 합의하고 이를 구속력이 있는 조약으로 체결했을 때 비로소 동맹관계라 규정한다. 조약에는 양국이 공동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이행해야 하는 보장(commitment)이 포함된다. 동맹관계의 예는 한-미 관계나 북-중 관계, 중-소 관계를 들 수 있다.
제휴관계는 동맹관계에서 요구하는 전제를 갖고 있지만, 이것이 구속력 있는 조약으로 체결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중국은 지금까지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파키스탄과 제휴관계를 맺었거나 유지하고 있다.
이와 달리 ‘전략적 관계’에서는 ‘공동의 위협’과 공동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보장’이 전제조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도 포괄적이 아닌 이슈 베이스로 성립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략적 관계는 일반적으로 (혼자 힘으로 실현하기 어려운)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특정 이슈에 대해 양국이 협력하는 관계를 지칭할 때 사용한다.
현재 중국이 외교관계에서 ‘전략적’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20여 개국에 이른다. 한국과는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에 합의했다.
그러면 ‘전략적’이란 단어의 앞이나 뒤에 별도의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전면적’이나 ‘포괄적’이란 말이 앞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 뒤에는 ‘협력(合作)’이나 ‘협작(協作•중-러 관계에서)’이란 수식어가 동반자관계 앞에 붙기도 한다. 이렇게 수반되는 별도의 형용사는 협력의 대상이나 이슈가 다양하기 때문에 나타났다고 보면 된다. 이 자체가 특별한 친소관계를 담고 있지는 않다.
미-중 관계는 지금까지 양국관계의 변화에 따라 관계를 규정하는 명칭도 변화를 거듭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초기(1기) 미국은 미-중 관계를 규정하지 못하고 한동안 표류한 뒤 ‘건설적 동반자관계’란 용어를 내걸었다. 클린턴 행정부 2기에는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업그레이드 됐다.
조지 부시 행정부 1기에서 미국은 미-중 관계를 대립적 의미가 강한 ‘전략적 경쟁관계’로 규정했다. 그러나 2기에 와서는 ‘이익 상관자 관계’란 매우 친밀한 관계로 재규정했다. 여기에는 미국의 또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 중국의 실력과 ‘지역적 역할’를 인정하되, 여기에 합당한 국제적 책임을 요구하자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정권에 들어서서 미-중 관계는 아직 명확히 규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체적인 방향은 중국의 ‘세계적 역할’을 인정하면서 여기에 상응하는 국제적 책임을 요구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
미-중 관계의 전반적인 전개 양상을 볼 때 ‘이익 상관자 관계’는 개념이 비교적 분명한데 비해 ‘전략적 관계’ 개념은 모호한 성격을 띠고 있다.
www.worldbreaknews.com / 배연해 기자 mrbaey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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