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에 몰린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나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하지만 시작부터 위태로워 보인다. 가까스로 갈등을 봉합하는 양상이지만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활화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리더십을 따를 인사는 없었다. 하지만 10·26 재보선을 전후한 안철수 교수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됐다. 더 이상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의 리더십만을 바라보지 않게 된 것이다.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 패배, 한나라당 내분과 중앙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 홍준표 대표 중도하차 등 악재가 연일 계속되면서 집권여당 한나라당은 만신창이가 됐다. 결국 박 전 대표가 구당(求黨)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한나라당을 구하고 여권의 유일한 대선주자로서 자신의 입지도 강화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행보임이 분명하다. 과연 위협받고, 도전받는 박근혜 전 대표의 리더십은 이번 한나라당 갈등 봉합 과정에서 새롭게 조명받을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위태로운 리더십을 이어갈지 주목된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박근혜 전 대표가 전격적으로 움직이면서 한나라당 내홍 사태가 봉합국면을 맞았다. 쇄신파 의원들이 탈당계를 제출하는 등 당 안팎이 시끄러웠던 지난 12월14일. 박 전 대표는 쇄신파와 회동을 갖고 재창당을 뛰어넘는 당의 쇄신과 개혁을 위해 노력하기로 전격 합의하면서 최근 불거졌던 한나라당 내 갈등을 봉합하는 데 성공했다.
쇄신파 설득 성공 일단 갈등봉합
박 전 대표는 이날 남경필 의원 등 쇄신파 의원 7명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나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박 전 대표가 쇄신파의 재창당 요구를 내용면에서 수용하면서도 당 해체 후 신당 창당 의미의 재창당과는 선을 긋는 일종의 절충안을 받아들였다는 후문.
결국 정태근·김성식 의원의 탈당까지 불러온 한나라당 ‘재창당 논란’ 사태는 일단 수습 국면에 접어들게 됐고 박 전 대표는 내주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등판해 내년 4월 총선 대비를 진두지휘하게 됐다.
박 전 대표가 당내 반발을 무마하고 쇄신파의 요구를 잠재운 카드는 ‘재창당을 뛰어넘는 당의 변화’로 요약할 수 있다. 황영철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과 개혁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면서 “양측의 의견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고, 오늘 자리가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인의 장막에 가려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박 전 대표가 당 위기 상황에서 직접 전면에 나서서 쇄신파 의원들과 전격적인 회동을 갖고, 결과적으로 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함에 따라 일단 박 전 대표의 지도력은 어느 정도 검증받았다는 평가가 많다.
현 단계에서 일종의 미봉책에 불과하겠지만 어쨌든 박 전 대표의 전면 등장이 가시화하고, 그 결과 박 전 대표가 움직였으며 일정부분 당내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실질적 효과를 거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쇄신파를 다독이는데 성공했다고 하지만 이는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다. 쇄신파는 여전히 재창당 요구를 하고 있지만 박 전 대표는 재창당에 반대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불협화음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박 전 대표는 “민생을 챙기고 일자리를 만드는 일을 비대위에서 이뤄내는 것이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며 “국민 신뢰를 얻어내면 당명을 바꾸는 것 또한 국민이 이해할 것이라고 보고, 그런 상황에 가면 당명을 바꾸는 것도 논의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창당 용어에 집착할 경우 한나라당 해체에 따른 논란이 일면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변화 노력이 잘 수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 대목으로 해석된다. 박 전 대표는 그런 과정 속에서 민생을 위한 노력에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셈이다.
일단 쇄신파 역시 박 전 대표를 지켜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재창당을 전제로 한 비대위 구성이라는 기존 주장에서 한발짝 물러서 비대위 구성 과정에서 ‘재창당’이란 점을 명시하지 않기로 했다.
박근혜, “모범답안 만들겠다”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당의 전면에 나설 박근혜 전 대표는 우선 19대 총선 체제로 당을 변모시키면서 고강도 인적 쇄신을 예고하고 있다. 인적 쇄신부터 당의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것. 이를 통해 박 전 대표의 리더십이 1차적으로 검증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박 전 대표는 개인이나 특정인의 의사를 배제한 시스템 공천을 강조해왔다. 경쟁력 있는 외부인사를 적극적으로 영입해서 공천 시스템과 문화, 인적자원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하겠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어떤 사람이나 몇몇 사람이 공천권을 갖는 것은 구시대적 방식”이라면서 지론인 시스템 공천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또 “인재들이 모여들게 하는 것에는 우리들의 희생도 있지만, 이렇게 변화해야만 한나라당을 믿어줄 것”이라면서 공천 과정에서의 현역 의원들의 희생이 불가피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표는 측근세력인 친박계의 희생을 감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친박계의 아성인 대구와 경북·경남의 고령 및 다선 의원들이 자연스럽게 자발적 용퇴에 나서서 박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겠느냐는 것.
영남권의 한 친박 의원은 “희생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친박 내에서 실제 그런 (자발적 용퇴) 분위기가 있다고 본다”고 귀띔했고, 또 다른 친박계 의원 역시 “우리부터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면서 “비대위 출범 전후를 한번 보자”고 말했다.
친박계 핵심인사인 최경환 의원과 윤상현 의원은 “친박계가 전원 2선 후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최 의원은 “친박은 모두 물러나고 나도 당직 근처에 얼쩡거리지 않겠다”면서 “지금은 경쟁보다는 통합과 화합을 하고 힘을 모을 때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대권을 향하고 있는데 무슨 계파, 무슨 계파 등 이런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박심은 어떤 인적 쇄신을 구상하고 있을까. 이는 비상대책위원회의 구성에서 언뜻감을 잡을 수 있을 듯하다. 비대위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한나라당 쇄신ㆍ개혁의 방향성, 나아가 총선 공천의 향방까지 엿볼 수 있기 때문. 물론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함구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가 탄핵 후폭풍 직후였던 지난 2004년 17대 총선공천심사위와 고강도 당개혁을 추진했던 2005년 당 혁신위원회 구성 당시의 룰을 따르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전국단위 지방선거의 경우 16개 시·도당에 공심위를 구성해 100% 권한을 이양하고, 재보선은 그때그때 공심위를 구성하고 박 전 대표가 임명한 사무총장을 포함시키지 않는 것을 통해 중립성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간에 거중 조정하지 않고 전적으로 위원회에 맡기는 것 등을 통해 박 전 대표가 19대 공천관리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를 위해서 박 전 대표는 비대위 구성에 있어 친박계 인사 영입을 최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 자신부터 친박계를 멀리함으로써 인적쇄신의 기치를 드높이겠다는 것. 경우에 따라서는 친박계가 전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는 박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친이계 인사들의 중용 가능성도 배제하는 수순을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 전 대표가 15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 신뢰라는 최고 가치를 위해 친이·친박 없이 당이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반대로 친이계 잠룡인 정몽준 전 대표나 김문수 경기지사 그리고 한때 친이계 좌장 역할을 한 이재오 의원 등도 비대위 후보군에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통합과 소통의 진정성 차원에서 김무성 전 원내대표의 비대위 참여 가능성도 나온다. 아울러 민생정치를 중요시한 박 전 대표의 최근 행보로 미뤄볼 때 비정치권 외부인사의 중용 가능성도 예상해 볼 수 있는 대목. 전체적으로 한나라당의 인적쇄신은 당내 계파인사를 한데 모으고 아울러 국민이 원하는 외부인사 수혈을 통해 자연스러운 세대교체 내지는 인적쇄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현재로선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린다.
박 전 대표는 비대위 활동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강조해 오던 취업활동수당 신설, 대학등록금 및 저소득층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 등을 최대한 반영하고, 인적쇄신을 위해서도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구상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그 기준은 개인적 친소 관계가 아니라 현 시대상황에 가장 부합하는 인재가 누구냐에 ‘인재영입’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분석이다. 내 사람을 심거나 데려오지 않고 국민이 원하는 사람을 찾겠다는 강한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건하다는 이야기다.
2년7개월 만에 의원총회 참석
박 전 대표는 지난 12월15일 의원총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 전 대표의 의총 참석은 2009년 5월 말 원내대표 경선 당시 이래 2년7개월 만이다. 박 전 대표가 전격적으로 의총에 참여한 것은 갈등봉합과 소통을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쇄신파의 극적 합의를 이뤄낸 박 전 대표는 서둘러 의총을 소집, 한나라당의 단결을 강조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재창당 논란 과정에서 ‘불통’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받은 박근혜 전 대표는 전날 쇄신파와 약속한 대로 의총에 참석했다. 카키색 정장 차림의 박 전 대표는 전날 쇄신파와의 회동 및 의총 전망 등에 대한 질문에 “어제 다 얘기했다”, “우선 참석해 보겠다”는 짤막한 답변만 남긴 채 의총장으로 들어섰다.
의총장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박 전 대표는 인사말을 한 황 원내대표가 ‘쇄신파’를 ‘소신파’로 잘못 말하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어제까지 먹구름과 폭풍이 몰아쳤지만, 큰 희망, 우리는 하나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뭔가 모를 실체를 느끼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탈당까지 불러오는 극한 충돌 속에서 열린 지난 12월12, 13일 의총 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박 전 대표의 리더십이 어느 정도 통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 수사만 바뀌었단 비판론도
표면상 박 전 대표가 전격적으로 나서면서 한나라당 내분 사태는 급속히 약화되면서 갈등 봉합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외양상으로 갈등은 봉합되고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속내를 들여다보면 갈등이 활화산처럼 잠복해 있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쇄신파인 원희룡 의원은 “재창당을 포함하는 쇄신이나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이나 수식어 빼고 내용상 뭐가 달라졌느냐”면서 “어제(12월14일) 회동에 지나친 의미가 부여되고 박 전 대표가 만나준 데 대해 감읍하는 분위기로 가서는 안 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이 대표적이다.
원 의원은 나아가 “당의 가치관·국정기조·운영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을 재창당이라는 세 글자로 표현한 것인데 당명 개정을 재창당이라고 하는 것은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라며 “당 안팎의 거당적 논의를 거쳐 쇄신을 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두언 의원 역시 개인 성명을 내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정 의원은 “김성식·정태근 두 동료의원의 탈당으로 달라진 것은 박 전 대표의 의원총회 출석과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이라는 정치적 수사뿐”이라면서 “신뢰를 중시하는 박 전 대표가 국민에게 약속한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과 개혁을 말 그대로 실천할 것으로 믿고 싶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또 “국민의 신뢰를 잃은 당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재창당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당연한 것”이라면서 “따라서 앞으로 그 실천 여부를 지켜보며 백의종군하겠다”고 강조하고, 한나라당의 소중한 자산인 김성식·정태근 두 의원이 재창당을 통해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 출격준비 ‘착착’
일단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는 것을 계기로 당의 면모를 쇄신하고 19대 총선과 나아가 대선에 대비할 모양새를 조속히 갖춰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표의 리더십은 일정부분 도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박 전 대표가 어떤 정치적 묘수로 이를 피해갈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지난 12월15일 상임전국위원회를 열고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표최고위원의 지위와 권한을 가진다’는 내용의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다. 비대위가 설치되면 최고위는 즉시 해산되며 비대위가 최고위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아울러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은 ‘대통령후보 경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자는 상임고문을 제외한 모든 선출직 당직으로부터 대통령선거일 1년6개월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당헌 규정에도 적용을 받지 않도록 했다. 이번에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되는 박 전 대표가 실질적으로 당 대표의 지위와 권한을 누리면서도 대선 후보로 출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장은 한나라당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박 전 대표에게 과도한 권한을 몰아준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조해진 의원은 “대표최고위원 등 지도부를 당원이 뽑는 정당이 비대위 설치를 명문화한 것은 쿠데타를 합법화한 것”이라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있는데 비상상황에선 혁명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고 헌법에 규정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만큼 한나라당이나 박 전 대표 모두 현재 상황은 다급하다. 더운밥 찬밥을 가릴 처지가 못 된다는 말이다. 박 전 대표의 리더십은 비대위가 출범한 이후 본격적인 검증대에 오를 것으로 보여 박 전 대표의 지도력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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