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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계의 두 거목인 육영수와 김명원

동체대비의 보살행을 실천한 큰 지도자

윤소암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2/08/13 [09:50]
근대 한국 사회에 여성들의 역할과 활동은 눈부신바 있다. 그중 박정희 대통령부인인 대덕화 육영수와 쌍용그룹 김성곤회장의 부인, 불국행, 명원 김미희는 해방후 큰 발자취를 남긴 여성  도자로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사회적 헌신을 바친 보살, 성자와 같은 분이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시절 정치적 탄압을 받았거나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당시에 여성으로써 큰 영향력을 끼친 두 분을 폄하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두 분의 여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그분들의 업적은 여전히 변함없이 빛난다.

한분은 무려 18년간 장기집권한 철권정치의 대명사 박대통령의 영부인이요 또 한분은 대기업회장이자 최고 권력의 중심에 있던 분의 부인으로써 우뚝했던 분이다.

60년대 가난하고 암울한 시기에 두 분은 돈과 권력을 가진 최고 위치에 있었지만 부귀영화보다도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면서 병든 세상을 구제하고 만민을 사랑하는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를 실천했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한국의 대표여성이고 이 땅의 후덕한 어머니로서 교육 문화 사회 복지활동에 큰 업적을 남겼다.

당시 고위공직자 부인들로 구성된 “양지회‘는 육영수 김명원 두 분이 창립 주도했고 고달프고 소외된 계층들을 위해 헌신한 것으로 나이든 세대들은 기억한다.

그런데 그분들이 세상을 하직한 뒤에도 청와대를 비롯한 고위공직자 부인들이 계승해서 사회봉사를 했더라면 우리정치나 사회가 한결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70년대 전후로 오산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의 모임과 조계사에서 김명원 보살을 뵈었으나 따로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불국사와 석굴암에서 두 번 박대통령가족과 육  사를 안내해 가깝게 만날 수 있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육  사는 도선사 청담스님으로부터 대덕화라는 불명을 받고 평생 스승으로 모신 대보살이었다. 대통령부인이라는 신분임에도 절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를 며칠씩 드리던 분이었고 김명원보살은 전국사찰을 다니면서 큰스님들을 친견하고 불교중흥의 대작불사를 성취한 분이었다.

종교의 차이를 뛰어넘어 두 분은 어느 누구든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고학생에게 학업을 도와주었으며 일선장병들에게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베풀었다. 육 여사를 국모로 불렀던 국민들이었다.

많은 국민들에게 고통을 함께 나누고 덕행을 베풀었으며 대통령에게 바른 말을 해서 청와대의 야당이라는 별명을 듣던 육 여사가 70년대 중반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대통령을 대신해 흉탄에 쓰러지자 국민들은 모두 오열 속에 잠겼음을 회상한다.

그로부터 5.6년 뒤 김명원보살도 60세를 겨우 넘기고 고통이 없는 무여 열반에 들었다.

예부터 천재와 미인은 박명하다고 했던가. 육 여사가 50세에 김명원보살이 61세에 타계했으니 두 분 다 오래 살았더라면 우리사회의 등불이 더한층 빛났을 것이다.

꽃으로 치면 육 여사가 눈 속 매화나 난초 같았다면 김명원보살은 차 꽃이나 제주도 수선화 같은 고결한 인품으로 또 진흙탕에서 자랐지만 오염되지 않는 연꽃 같은 큰 덕의 향기를 지닌 분들이다.

특히 김명원보살은 타고난 겨레사랑과 복지사업에서의 사회활동을 크게 증진시킨 한국여성계의 대모이다. 차 문화 같은 전통문화와 불교중흥에 평생을 바친 애국자이고 걸출한 여장부였다.

훌륭한 여성 지도자가 많지만 나는 한국사회의 여성운동 전통문화계승과 불교현대화에 육영수 김명원 두 분의 공적은 허물어지지 않는 칠보탑이라 생각한다.

한국 차 문화와 여성계의 대모 관음보살의 화신 신사임당과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의 후신 이 땅의 자연과 문화를 사랑하고 세계에 그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홍보대사 계층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인재를 키워낸 선각자등 찬탄사가 뒤따른다. 김명원보살의 생전 명언을 들어본다. “사람에게 재물은 한정이 없습니다. 나 역시 하늘에서 주는 것을 잠시 맡았을 뿐입니다. 모든 인간은 무소유입니다. 무소유란 단순히 재물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재물과 마음을 중생에게 나누고 보시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불교신자라 해서 내가 믿는 종교만을 유일사상으로 삼고 싶지 않습니다. 기독교나 유교도 심오하지요. 공자님의 “가는 자는 물과 같다.”는 말은 참으로 실감이 나는 혜안입니다.  물이 흘러가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하듯 인생이 한번가면 다시는 되살아날 수 없지요.”

김명원보살은 어릴 때 잠시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녔으나 일찍 결혼하면서 불교집안과 평생인연을 맺고 불교신앙에 눈뜨게 된다. 워낙 타고난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지혜로 불교책 몇 권을 겨우 읽고 크게 발심하였고 나중에는 전국사찰의 고승들을 찾아다니면서 불교의 심오한 가르침을 터득했다.

그리고 50년대 일본과 유럽을 다니면서 다도가 전통문화의 근본임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스승들과 책을 통해 다도와 전통문화에 몰두했다.
 
경제수준이 열악해 먹고 살기도 힘든 때에 김명원보살은 문화가 곧 미래 산업이고 국가의 대표적 이미지라는 것을 그때 깨달은 문화운동의선구자였다.

김명원보살은 50년대에서 타계한 80년대 초까지 30년 동안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몸을 바쳤다.

독실한 불심에 기초한 국태민안과 호국사상의 원력으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과 신앙 문화와 이웃 사랑에 대한 열정은 모든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보통사람은 개인이나 가족 특정단체를 위해서 인생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김명원보살은 몸과 마음의 모든 소유물을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중생들에게 공양했고 회향했다. 여성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그는 근대 한국이 낳은 위대한 어머니요 여성지도자로 1세기에 한번 나오는 인물이라 칭송한다. 불교인이었지만 기독교여성단체와 한국여성단체에도 많은 후원을 하고 여성문화의 상징 같은 분이라 말한다.

그리고 전통다도문화와 불교의 현대화에 심혈을 기울인 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다도와 불교의 공통정신은 초범탈속(超凡脫俗)이라 할 때 이것은 곧 국민정신의 고양을 뜻하며 문화와 윤리 정치와 경제의 발전내지는 안정을 가져다주며 다도와 불교의 가치는 인간정신의 최고경지를 지향한다.

장애인과 어려운 사람들을 늘 보살피고 후원해준 그는 일찍부터 복지사회를 주창하고 실천한 분이었다.

“삼일수심천재보 백년탐물일조진” 이 말은 불교 입문자들이나 승려 초보반들이 배우는 문구이다. 삼일종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 년 동안 재물은 쌓아놓아도 하루아침의 티끌이다. 부자들을 위한 경구이고 인간들의 물질욕을 경계한 가르침이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매우 어렵다.

김명원보살은 대기업부인의 큰 부자로서 참으로 하기 어려운 공부와 실천적인 일을 남김없이 한 재가선지식이요 한국여성들의 스승이었고 성모였다. 만일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이런 분이 모델이고 귀감이라 생각한다. 덕성과 지성이 뛰어나고 감성이 풍부하지만 매사에 공과사가 분명해서 일처리가 엄격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무한한 사랑과 포용력을 지닌 분, 아마 이런 분이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국민을 이끌어갈 최고지도자로 손색이 없다고 본다.
길지 않는 짧은 생애를 개인 가족이 아닌 모든 국민들에게 차별 없이 베풀고 대자대비의 큰사랑을 실천한 육영수여사와 김명원보살 두 분께서는 도솔천에서 굽어보신다고 믿으며 늘 푸른 송백으로 우리 곁을 지키시리라 믿는다.
soam2005@hanmail.net

*필자/윤소암. 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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