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간 9월8일(국내 시간 9월9일 새벽 3시)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에 구겨신은 구두,고동색 개량한복 차림의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리도섬 Salon de grande에서 열린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감동스런 장면을 연출했다.영화 '아리랑'으로 작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대상을 탈때도 김감독은 아리랑을 부른바 있다.김감독의 아리랑 열창은 자신이 감독 제작한 18번째 영화 '피에타'(조민수,이정진 주연)가 가장 역사가 깊은 베니스 국제영화제 최고의 상인 황금사자상에 선정된후 열린 시상식에서 김감독 설명처럼"가장 한국적인 것을 수상 소감으로 전하고 싶었다"는 다짐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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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이 한국인의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이 오롯이 깃들여 있는 아리랑을 뜨거운 가슴으로 토해낸 이번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한국인 김기덕감독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김감독은 대한민국 영화사상 최초로 칸,베를린영화제를 포함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한데다 최고의 영예인 황금사자상과 함께 비공식상인 ‘젊은 비평가상(PREMIO AGISCUOLA LEONCINO D'ORO')’에 이어 ‘골든 마우스상(MOUSE D’ORO)’과 ‘나자레노 타데이상(Premio P. Nazareno Taddei)’을 휩쓸어 베니스영화제 4관왕의 오르는 전대미문의 쾌거를 이루어 낸 것이다.
한국영화 발전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인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김기덕 감독은 이제 백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한 불세출의 국보급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한국 영화예술계의 살아있는 전설적 영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한국의 예술적 국격을 세계만방에 떨치고 한국을 넘어 세계 영화계의 거장으로 우뚝 선 김기덕 감독의 문화예술적 쾌거는 그 어떤 수식어로도 감동과 영광을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
물론 김기덕 감독 말고도 한국 영화 예술의 품격을 드높이고 존재감을 알려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영화계의 거목들이 없는건 아니다.1961년 강대진 감독이 ’마부’로 베를린영화제 특별은곰상을 받아 처음으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한국 영화의 부흥기가 도래한 것을 계기로 배출된 뛰어난 예술적 능력을 겸비한 감독들이 수준높은 작품성을 갖춘 영화들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실은 1980년대 부터 국제영화제 수상으로 나타났다.1987년 강수연이 임권택감독의 ’씨받이’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데 이어 장선우 감독이 ’화엄경’으로 1994년 베를린영화제에서 특별상 격인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받으면서 세계 영화계의 관심과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와서도 한국적 정서를 대변하는 작품을 꾸준이 연출한 임권택 감독과 함께 이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 그리고 이창동, 홍상수, 박찬욱 감독 등이 각자 고유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품으로 해외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2002년 임권택 감독이 판소리를 주제로 한’취화선’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이창동 감독이’오아시스’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과 문소리가 신인배우상을 거머 쥔것은 한국영화의 중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2년후인 2004년에는 이번 베니스 영화제 주인공이 된 김기덕 감독이 ’사마리아’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빈집'으로 또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연거푸 수상하고 박찬욱 감독이’올드보이’로 칸 영화제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을 타는등 세계 3대 영화제의 주요상을 휩쓸었다.
또 3년이 지난 2007년에는 박찬욱 감독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베를린영화제 알프레드바우어상을 탄데 이어 이창동 감독의’밀양’에 출연했던 전도연이 칸 영화제에서 강수연에 이어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두 번째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009년에는 박찬욱 감독이 ’박쥐’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이듬해인 2010년에는 이창동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시’로 각본상을, 홍상수 감독이 ’하하하’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수상하였다.
지난해인 2011년에는 3대 영화제에서 비록 본상을 타지는 못했지만 칸 영화제에서 2010년 홍상수 감독에 이어 김기덕 감독이 '아리랑'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연이어 수상했고 박찬욱 감독이 동생 박찬경 감독과 함께 만든 단편 ’파란만장’으로 베를린 영화제 단편부문 금곰상을 받았다.
이처럼 세계 3대 영화제에서 토종 감독들이 뛰어난 실력 발휘로 우리나라 영화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 올렸음에도 박찬욱 감독이 2004년 ’올드보이’로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이 최고 기록일 정도로 최고의 영예인 대상 수상에 목 말라 있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는 한 작품도 진출하지 못했고 칸 영화제에는 신수원 감독의 단편 ’서클라인’이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의 카날플뤼스상을 받았을 뿐 홍상수 감독의’다른 나라에서’와 임상수 감독의’돈의 맛’이 진출했지만 수상에 실패하여 영화계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던 상황하에서 마침내 김기덕 감독이 멋지게 베니스 황금사자상 한방으로 갈증과 아쉬움을 함께 날려 버린 것이다.
열등감을 성공으로 승화시킨 김기덕의 인간승리
국민들이 김기덕 감독이 언젠가는 반드시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세계만방에 과시할 것이란 기대를 가진것은 앞서 언급한 화려한 수상경력과 무관 하지 않다.김기덕 감독은 1996년 영화 '악어'로 데뷔한 이래 8년만인 2004년 '빈집'으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같은 해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받는 등 한해에 세계 3대영화제 2곳 감독상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또 이번에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베니스 영화제에는 2000년 '섬'으로 베니스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 진출한 이후 2001년 '수취인 불명', 2004년 '빈집'으로 은사자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에서는 유일무이하게 4회 베니스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 진출과 은사자상, 황금사자상을 모두 수상한 전무후무한 금자탑을 세웠다.
김기덕 감독의 오늘날 쾌거가 특히 뜻깊고 모든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충무로의 이단아,한국 영화계의 주변인을 뜻하는 비주류,아웃사이더로 변방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처지를 실력으로 통쾌하게 떨쳐 버린 입지전적인 인간승리의 표상이란 점 때문이다.
잘 알려진바와 같이 1960년 경상북도 봉화 시골에서 태어난 김기덕(52) 감독은 가난한 가정 환경때문에 중학교를 겨우 마치고 학력이 인정되지 않은 농업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최종학력은 중졸이다.애당초 성직자가 되는게 꿈이었다는 점도 있었지만 이러한 어려운 환경때문에 당연히 정규과정을 거친 영화공부는 있을 수 없었다.
학교 졸업 뒤 취업을 하려했지만 마음같이 되지 않는 등 뜻대로 되지 않자 ’피에타’의 무대가 된 청계천에서 15살때부터 공장 생활을 시작으로 구로공단에서도 노동자의 삶을 살며 변압기,항공장비 제작 등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며 잡초같은 인생을 살아 왔다고 한다.김감독은 고단했던 젊은시절의 삶의 무대였던 구로공단과 청계천에서 타고난 미술적인 재능을 바탕삼아 독학으로 예술에 대한 꿈을 키운것으로 알려졌다.
김감독은 얼마전 방송에 출연하여 당시 자신의 처절한 삶의 환경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렸으며 이러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중졸로 방위판정을 받았음에도 친구의 고교 졸업장을 빌려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여 5년간 부사관으로 복무하다 제대후 대학로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을 하다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위해 미술의 본 고장인 프랑스로 건너갔다고 말했다.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해병대 입대,프랑스행이 김감독에게는 영화인생으로 발을 들여 놓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프랑스로 건너간 김감독은 프랑스 남부의 한 해변에서 초상화 그리기로 생계를 유지하며 본격적으로 유화에 도전하는 등 미술가로서의 재능을 발전시키던 32세때 처음 봤다는 ’양들의 침묵’과 ’퐁뇌프의 연인들’ 영화 2편이 미술가에서 영화인으로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귀국한 김감독은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여 1995년 ’무단횡단’이라는 시나리오로 영화진흥위원회의 공모에 당선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6년 태어나 영화를 처음본지 불과 4년만에 첫 영화 ’악어’를 연출,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첫 작품부터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작품은 일관되게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강렬한 이미지와 메시지가 특징이다.어려웠던 성장환경,젊은시절 잡초같은 밑바닥 삶때문에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란 자신의 인생을 관통하는 인간 군상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소름이 오싹끼치는 처절하고 잔혹한 폭력과 성폭행, 상상을 초월한 엽기적아고 일탈적인 행위, 변태적인 인간심리를 가감없이 보여줘 관객들을 충격과 긴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이처럼 상상을 초월한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김감독 특유의 연출기법은 기존 영화계와 평단으로 부터 무시와 비난 등 논쟁을 부르면서 이단아,비주류로 고립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김감독의 고집스런 자기만의 강렬한 예술적 색깔을 탑재한 작품들은 점차 세계 영화계의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김감독이 세번째 연출한 ’파란 대문’이 199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파노라마 부문 개막작으로 상영된데 이어 네번째 작품인 ’섬’이 2000년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였는가 하면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는 월드시네마상을 받기도 하였다.또 같은 해 대학로를 배경으로 불과 3시간 만에 찍었다는 ’실제상황’도 모스크바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김감독은 예술적 천재성을 가진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어 2001년에는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수취인불명’이 진출하였고 ’나쁜 남자’가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으며 이로인해 ’나쁜 남자’는 국내에서 70만 관객을 동원하는등 처음으로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나쁜남자’의 성공 이듬해 그는 톱스타 장동건과 손잡고 ’해안선’을 작업하기도 했던 김감독은 2003년 연출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국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연거푸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마침내 국내에서도 예술성을 인정받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자리잡았다.주변부 비주류 감독의 설움을 실력으로 씻은 것이다.
이후 김감독은 성공가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2관왕을 휩쓸면서 세계적인 거장 감독으로 위상을 굳히면서 2005년에는 ’활’로 칸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고 2007년에는 ’숨’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였으며 마침내 2012년 올해 청계천을 배경으로 1억5천만원의 제작비를 드려 완성한 '피에타'로 3대 국제영화제의 하나인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함으로서 영화감독으로 최고의 영예를 누리게 된 것이다.
세계 최고의 영화 예술로 우뚝 세운 김기덕감독의 예술적 창조성과 끊임없는 도전정신
김기덕 감독의 베니스 영화제 최고상 수상은 김감독 개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높은 문화 예술성을 세계만방에 떨쳐 국격을 높였다는 점에서 국가적 자랑이 아닐 수 없다.이 번 김감독의 국보급 세계적 영화계 거장이라는 정상 정복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모두 어려운 환경을 혼과 열정,피와 땀으로 극복하고 세계 최고가 되어 한국인의 우수성과 코리아를 빛낸 비닐하우스의 런던 올림픽 영웅 양학선,최초로 수영 금메달을 따낸 박태환,불모지였던 피겨를 세계 정상에 올려 놓은 피겨여왕 김연아,세계 골프계를 석권한 최경주,박세리 등 무수한 축구 영웅이들이 거둔 인간승리를 영화예술계를 대표하여 김기덕 감독이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한 배움의 한이 못배운 탓에 사회 밑바닥을 전전하면서 열등감으로 변해 인생의 짐이 되었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열등감을 예술적 성공의 도구로 승화시킨끝에 한국 영화계로서는 전인미답인 세계 최고의 영화 거장으로 우뚝 선 김감독의 쾌거는 인간승리의 표상으로 모든이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자기만의 예술적 색깔을 담은 돈 안되는 비상업 예술영화를 고수하는 바람에 '활'이 국내 영화관 개봉에 어려움을 겪자 당시 개봉관을 싹쓸이하며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에 올라섰던 ’괴물’에 대해 “’괴물’은 한국영화 수준과 한국관객의 수준이 만난 영화”라는 독설을 퍼부어 논란을 부르고 2008년 본인이 쓴 시나리오를'영화는 영화다'를 제자인 장훈 감독에게 연출을 맡겨 자신의 최고 흥행기록인 130만 관객을 동원하였지만 장 감독이 대형 투자배급사와 손잡으며 자신을 떠난데 이어 촬영중이던 ’비몽’에 출연한 주연 배우 이나영이 연기 도중 죽을 위험을 넘기는 일을 겪는 등 불운이 겹치자 김 감독은 농촌의 오두막에서 3년동안 은둔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김감독은 은둔생활기간 이와같이 순탄치 않은 자신의 영화인생과 영화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 결과를 '아리랑'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 지난해 칸영화제에 출품해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받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데 이어 직접 시나리오를 써 제자 전재홍 감독에게 연출을 맡긴 '풍산개'가 국내에서 71만 관객을 동원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이를 바탕으로 마음을 다 잡은 끝에 장편 극영화로는 3년 만의 작품인 자본주의의 극단적 폐해와 그 안에서의 인간성 상실을 냉혹한 시선으로 그리면서도 인간임을 포기한 자들에 대한 구원을 묻는 김기덕 감독 불후의 명작으로 남을 문제의'피에타'를 만들어 낸 것이다.
김감독은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황금사자상 수상은 " 이것은 나에게 새로운 출발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김기덕 감독다운 소감이다.생명력 강한 들판의 야생초처럼 최악의 성장환경과 만고강산인 중심부 영화인생을 마다하고 이단아로 취급받던 자신만의 강렬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담은 예술적 소신을 세계 최고의 영화 예술로 우뚝 세운 예술적 창조성과 끊어 오르는 열정,끝장을 보는 집념,불굴의 도전정신으로 김감독 자신과 한국을 빛내는 쾌거를 거침없이 지속적으로 보여주었으면 한다.
아울러 '풍산개'연출로 실력을 보여준 전재홍 제자감독 같은 자신을 뛰어넘을 제2 제3의 김기덕 감독 탄생을 위한 후진양성에도 늘 관심이 함께 하길 성원한다.아울러 거듭 김기덕 감독의 예술적 쾌거를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축하하고 이러한 성공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김감독의 건강을 빌어마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