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홍익인간 7만년 역사 124]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77

조선(朝鮮) 제11대 도해(道奚)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 기사입력 2013/03/13 [11:45]
[절구(臼)와 띠풀지붕]


서기전1879년 임인년(壬寅年)에 일토산(一土山) 사람인 왕조명(王朝明)이 박(泊) 땅의 민장(民長)이 되어 다스린 공적이 뛰어 났는데, 곡식을 찧는 그릇인 절구(臼)를 제작하고 백성들에게 띠풀(茅)을 뽑아 지붕을 이는 방법을 가르쳤으며 이 방법이 편리하여 백성들에게 오래오래 전해졌다.

여기서 특히 절구(臼)는 곡식을 찧는 도구로서 단군조선의 화폐가 되는 소위 명도전(明刀錢)에도 절구를 가리키는 문자가 새겨져 있기도 한데, 절구라는 발음이 곧 절구모양을 본따 만든 글자를 읽는 소리로서, 글자의 소리로는 가림토 글자이며 모양으로 보면 상형문자로서 전체적으로 상형식가림토라 할 수 있다.

소위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의 형태로 보면, 상형문자, 상형-표음문자, 표음-상형문자, 표음(가림토)문자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절구라는 글자는 상형-표음문자 또는 표음-상형문자가 된다. 상형-표음문자는 원래는 상형문자인데 이를 가림토로 읽히는 글자이고, 표음-상형문자는 원래는 가림토 글자인데 상형식으로 표기된 글자이다.

일토산(一土山)은 왕산(王山)의 파자(破字)가 되는데, 왕씨(王氏)의 본거지가 되는 셈이다. 후대인 서기전1122년경에 은나라 왕족 기자(箕子)가 단군조선으로 망명하여 제후가 되어 기후국(箕侯國)을 다스릴 때, 일토산 사람 왕수긍(王受兢)이 기자의 사사(士師)가 되어 단군조선에서 읽혀지던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박달나무판(檀木板)에 새겨 기자에게 주어 읽게 하였다고 기록되고 있기도 하다.

왕씨는 황제헌원(黃帝軒轅)의 후손으로도 전하는데, 황제헌원은 배달나라 제후국의 천자 중 천자로서 오방(五方) 중 중부(中部)의 황제(黃帝)였으며, 그 후손들은 모두 배달겨레로서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단군조선의 백성으로서 살고 있었던 것이 된다. 즉, 고대중국의 실질적인 시조가 되는 황제헌원의 후손들은 물론 배달겨레로서 황제헌원을 이은 나라인 웅국(熊國)에서 사느냐 아니면 웅국을 제외한 그 외의 배달나라 땅에서 사느냐, 요순 하은주의 땅에서 사느냐 아니면 단군조선 땅에서 사느냐의 차이일 뿐 혈연족보(血緣族譜)상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이다.

후대에 왕조명의 손자인 왕해월(王海月)도 민장이 되어 배를 만들어 곡식을 운반하는 등 바다무역이 트이게 하였으며, 왕해월의 증손자인 왕명지(王明知)도 민장이 되어 농사를 권장하고 독려하여 농사짓는 때를 어기지 않도록 하였다.


[방물(方物) 진설소(陳設所) - 박람회(博覽會)]


서기전1864년 정사년(丁巳年)에 장소를 마련하여 사방의 물건들을 모아 진귀한 것들을 전시하니 천하의 백성들이 다투어 헌납하여 진열한 것이 산과 같았다.

이때 소위 만국박람회(萬國博覽會)를 열었다는 것이 된다. 즉, 단군조선 시대에 지방 제후국(諸侯國)들과 우방국(友邦國)들의 특산물을 전시하는 박람회장을 설치하였던 것이다. 물론 배달나라의 수도가 되는 신시(神市)라는 말이 신(神)들의 도시라는 말도 되며 저자(市) 즉 시장이 있어 교역이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의미가 되는데, 단군조선 시대에도 10년에 한번씩 신시(神市)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볼 때, 박람회와 같은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렸던 것이 되며, 교역이 이루어지는 경제적인 행사 뿐만이 아니라 제천행사를 벌이는 종교적, 공물을 바치는 등의 정치적 행사였을 것임이 분명하다고 본다.

오늘날의 세계박람회는, 인류공영의 목적으로 벌이는 행사인 점에서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개최된 박람회가 그 원류가 되며, 전세계적인 홍익인간 세상을 위하여 신시(神市)라는 경제교류 제도를 계승발전시킨 것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만 할 것이다.


[선사(選士) 20명의 국훈(國訓) 전파(傳播) - 스승(師)의 나라 조선(朝鮮)]


서기전1854년 정묘년(丁卯年)에 백성들 가운데서 장정(壯丁)을 징집하여 모두 병사로 삼고, 선사(選士) 20명을 하(夏)나라 서울로 보내어 나라의 가르침(國訓)을 처음으로 전함으로써 위세를 보였다.

이 기록은, 단군조선의 마지막 47대 고열가(古列加) 천왕 시절이 되는 서기전268년에 위(魏)나라 사람 공빈(孔斌)이 동이사절(東夷使節)이 위(魏)나라를 방문하였는데 그 위세가 등등하였다는 등으로 기록하는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서기전268년 당시의 동이사절이 단군조선 진한(眞韓)의 사절인지, 번한(番韓)의 사절인지 불명한데 번한과 접한 연(燕)나라가 아닌 위(魏)나라이므로 일단 진한의 사절로 추정되기는 한다. 공빈(孔斌)은 공자(孔子)의 7세손으로 전한다.

선사(選士) 20명을 하(夏)나라 수도로 보냈다는 것에서 당시 단군조선과 하나라의 관계는 불편한 관계는 아니었으나, 가서 단군조선의 국훈(國訓)을 가르쳐 위세(威勢)를 보였다는 것에서 하나라가 단군조선의 가르침을 받는 입장으로서, 단군조선이 하나라의 군사부(君師父)의 나라가 되는 셈이다.

당시 국훈(國訓)은, 주나라 춘추시대의 공자(孔子)가 말하였듯이 하은주(夏殷周) 삼대(三代)에 있었던 것을 기록하였을 뿐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하은주의 윤리도덕의 기반이 되었던 가르침으로서 곧 단군조선에서 전파된 것이 된다. 그리하여 삼강오륜(三綱五倫) 등 소위 유교적인 기본 원리는 이미 단군조선에서 하은주의 고대중국에 전수(傳授)되었던 단군조선의 윤리도덕을 응용한 것이 되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써 서기전2240년경 단군조선의 초기 중신(重臣)이던 대련(大連)과 소련(少連)의 효(孝)를 공자(孔子)는 예기(禮記)에 인용하면서, 대련과 소련을 동이(東夷)의 아들이라 하며 효(孝)의 본보기로 극찬하고 있다.

단군조선 이전의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가정과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에 관한 인간윤리가 정립되어 있었다. 즉, 삼륜구덕(三倫九德) 또는 삼륜구서(三倫九誓)라는 윤리도덕적 가르침이 배달나라 시대에서 정립되어 단군조선으로 전해진 것이며, 이러한 가르침들이 하은주(夏殷周)로 전파(傳播)된 것이 되고, 이러한 고대중국의 윤리도덕이 공자(孔子)로 이어져 중국 유교(儒敎)의 가르침을 정립한 것이 된다.

선비(儒)라는 말은 조의선인(皁衣仙人)이라는 말과 연관되어 있는데, 원래 선비라는 말은 배달조선의 선인(仙人)의 무리를 가리키고, 단군조선과 고구려 시대에 소도제천(蘇塗祭天)하고 경당(扃堂)에서 독서(讀書, 글읽기), 습사(習射, 활쏘기 익히기), 치마(馳馬, 말달리기), 예절(禮節), 가악(歌樂), 권박일술(拳撲釰術) 등 육예(六藝)를 닦던 심신수련(心身수련) 단체의 구성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천산태백
sppopsj@yahoo.co.kr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족보(族譜) 및 한중일(韓中日) 역사 연구가.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