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나나,
우리는 좋아한다.
아름다운 인생길
누구나 원한다.
길은 인간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생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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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인생의 여정과 결과론에 대해 중요시 하는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꿈 많고 근심걱정 없던 중학교 학창시절 어느 스승님과의 인연으로 지금의 향산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때는 작품을 만듦에 있어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려하지 않는 채 만들었을 것이다. 아주 단순무구하게 말이다. 앞으로의 계산된 인생의 진로를 가르쳐 주기라도 하듯. 상상력을 발휘하여 완성된 작품들이 가끔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새 심오하게 자신을 감동시키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인할 수 없을 때도 있었겠지만 자신에게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작업은 장인으로서의 길을 가는 역할이었으리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욕구가 생기고 조심스럽고도 매우 강하게 현재의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공예가에게 있어서는 미래의 예술과 전통문화의 역사가 중요시되어야 하며, 이에 못지않게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이 경제적인 문제이다. 이는 세계사 흐름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미래정책에는 불안감이 드리워져 가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 전 세계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기후 변화가 복잡해져 가는가 하면, 위기의 사회구조로 미래의 불확실성이 증폭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위험에 대해 국가는 종합적인 정책으로 대비하겠지만, 그래도 개인에게 있어서는 기본적인 불안과 의문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이러한 가운데 필요한 것은 정신적 치유가 대세이다. 이에 종교적인 명상수련이나 산책, 각종 취미생활, 예를 들면 스포츠나 영화, 음악 감상을 이용하는 방편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내가 그곳을 찾은 것도 이의 일환이다.
그림이나 도자기, 옹기, 차 등의 예술과 자연생활을 통해서 마음의 정화를 얻고자 하여 봇짐을 챙긴 내가, 2012년 11월 23일 어느 오전에 찾아간 곳은 문경시 유곡동 3번지 마을 입구에서 목다구를 만드는 향산 김승수 작가의 공방이었다. 향산이라는 호는 몇 년 전에 입적하신 정오스님이 지어줬는데, 향산(香山)이라는 호는 당나라시대 백낙천의 별호(別號)이기도 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조현진 스승으로부터 목공예를 사사 받았다. 어제는 문경에 늦게 도착하여 두 번째 뵙던 ‘모’ 사진작가 분의 숙소에서 잠을 청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몰고 찾은 곳은 시골의 전형적이고도 아담한 현대와 고전이 어우러진 작업장이 눈에 들어왔다. 향산 공방을 들어가기 전 먼저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랜 세월 속에 내버려진 오래된 나무들이었다. 그것들은 장인의 천재적인 노력에 의해서 새로운 명품 목다구로 태어나기 위한 대기상태였다. 공방 안을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완성되어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고 차인이라면 누구나 소장하고 싶은 다관과 다반, 차시와 차호 가구 등이 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벽 쪽에는 향산 공방이라는 글씨가 보이고 우소 안홍준 화가의 그림이 소담스럽게 걸려 있었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자니 결국은 그림이 주는 의미는 이러한 뜻으로 해석되는 듯 했다. 마침내 마음을 찾고 얻는 순서와 얻는 뒤에 회향할 것을 말하는 것으로, 흔히 소(牛)라고 하면 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십우도 하면 선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을 뜻하는 그림일 것이다. 또한 불교에서는 우리의 마음의 진면목을 소에 비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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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尋牛)는 소를 찾아 나선다는 뜻이며
견적(見迹)은 소의 자취를 보았고
견우(見牛)는 소를 보았음을 나타내고
득우(得牛)는 소를 얻었으며
목우(牧牛)는 소를 기름이요
기우귀가(騎牛歸家)는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옴을 뜻한다.
소목장 향산 장인과의 두 번째 만나던 날 초의선사의 시가 회상되었다. 1980년 초반부터 차를 가까이 하면서 차 도구개발에 오랜 시간을 작품에 몰두하고 있다.
새로 터전 잡아 사는 땅은
더없이 아름답고 즐거운 곳
개울 속 구름 헤치고 건너면
소나무 가지에 걸린 달을 창(窓)이 머금는 곳
물가에 앉아서 물고기 바라보고
나무 그늘에서 새소리 듣는 곳
스스로 두려워 웃는 것은
기천궐 따위를 걱정한 탓이다.
향산은 현대인들에게 자칫 도외시 될 수 있는 정신문화와 현재와 미래에 살아있을 거룩한 인생들로 하여금 즐겁고 행복하게 풍류를 즐길 수 있게 하는 도구를 만든다. 공방 입구에는 다음 작품을 위한 미생들로 준비하여 수북이 쌓아 놓았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오늘날 21세기가 다원화되는 세계에서 하루하루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공예기술이 점차적으로 글로벌하게 광속으로 급변하고 있는 정보화 시대에 걸 맞는 장인답게 작품들은 아름답고 간결하며 비례가 뛰어나다. 그는 자연의 풍경을 본 경험이나 자신이 느끼는 감정 등을 새로운 목공예에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기물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간의 실패와 경험의 노하우로 창조적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기다림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정교한 조각이나 화려한 칠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성장한 향산은, 흔히 남들이 좇아 헤매는 ‘스펙 쌓기’보다는 소박하면서 간결하게 사색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완성하는 것을 지향한다. 구체적이고도 개관적으로 말하자면, 회화와 조각처럼 감상 위주로 제작된다거나 정형화된 작품으로 태어나기보다는, 자연스럽고도 소박하면서 차를 좋아하는 차인들의 심미적 안목을 높여 주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는 오롯이 자연에 기대어 창조되어진 작품 하나하나를 마치 자식인양 사랑하면서도, 또한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실용품이기에 차인들 요구에도 순응하고 있다. 자연의 작가로서 나무가 좋아서 수십 년간 조각을 해 왔기에 개성을 고집할 필요도 없이 자연에 순응하면서 생명력을 지닌 작품으로 거듭났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목다구 공예작가로 차인들에게는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론이 박물학자였던 찰스 다윈과 러셀 월리스에 의해서 1850년에 제시된 것처럼, 인간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에 의해서 언어가 발달하고 과학과 기술이 진보하였음은 이미 알고 있다. 원래 차에 대한 연구와 전래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인도가 있다. 중국의 최초 국가출현 전설에는 삼황오제설이 있다. 그 삼황(三皇)은 중국 민족의 공동 조상이며 신농씨, 수인씨, 복희씨라는 황제가 있었다. 복희씨는 사냥 기술을 창안했고, 수인씨는 불을 발명했다고 한다. 세 황제 중 신농씨에 의해 농경의 발달로 차를 알게 되고 차를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신라시대에 당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대렴(大廉)이 찻씨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어서 성행되었다. 인도차는 수로왕비인 허씨가 가져와 김해의 백월산에 심어 성행되었다. 일본은 중국의 소엽종을 개량한 차로 일제강점기에 1920년대 전남나주를 시작으로 보성까지 재배되었다는 설도 있다. 일본은 일본만의 특유한 재배법을 개발하였다. 일본은 그 어떤 것도 바로 정착시켜서 자기문화로 만들어 버리는 나라다. 먼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사람들은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합리적인 관점에서, 각자에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생활터전과 생활에 필요한 법과 사상을 만들었고 도구를 개발하여 사용해 왔다.
또한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나타나는 제자백가의 출현으로 공자의 유가사상의 인(仁), 맹자의 공자사상을 계승하였다. 민본정치를 역설한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내세워 인간성을 바로 잡기 위한 예의법도 규제의 필요성을 위해 묵가의 겸애설과 교상리를 주장하였다. 도가는 무지무욕으로 초나라 사람 노자에 의해 창시되어, 송나라 장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법가사상은 한비자에 의해 완성되었고 구 귀족에 대한 제거와 강력한 집권국가를 확립하였다. 유교경전 중 사서삼경에 주역이 자연과 인간의 세상이치를 설명해 주는 책이었던 만큼 8개의 이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하늘과 땅과 물과 불을 기반으로 하는 지구와 8괘 안에서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세상과 미래를 들여다보고 위대한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남보다 뛰어난 실력을 쌓아야만 한다.
명성의 길에서는 수많은 고난과 힘든 일들을 경험해야만 한다. 작가에게 있어 다인들이 인정하는 명품 목다구를 만드는 행위는 단지 다인들의 마음에 드는 작품을 제작하는데 그치지 않고, 수도자와 같은 치열한 수신(修身)의 자세로 영혼을 정화하는 고행의 과정에 지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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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목공예의 출발은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출발하였으나 특히 고려시대에 가장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목칠공예는 제작기법에 따라서 4가지인 칠공예와 목공예, 화각공예와 죽공예로 나누어진다. 칠공예에서 옻을 흔히 칠(漆)이라고 한다. 옻나무의 크기는 20미터 정도로 음력 5-6월에 살아 있는 나무에 상체기를 내어 액을 뽑아 칠로서 작품을 만드는 경우를 말한다. 보통 3번 정도의 액을 뽑아내고 나무는 제거한다. 또한 칠을 내는 순서는 초복 무렵인 6월말에 채취하는 칠로 물기가 많고 무르기는 단점은 있지만 반면에 질이 좋은 초칠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칠 중에 가장 우수한 칠로서 초복에서 처서 사이에 채취한 성칠이 있으며, 가지에서 채취하는 말칠이라고도 하는 지칠과 칠중에서 우수성이 가장 떨어지고 불을 이용하여 칠액을 채취하는 화칠이 있으며, 혼합한 하여 만든 칠인데 우수한 칠과 질이 떨어지는 칠을 섞어 만든 칠이다. 이렇게 짠 칠은 부드러운 솜을 이용한 재래식 방법으로 찌꺼기를 제거하고 수분만을 빼내는 정제방법이다. 정제칠을 만들 때는 열을 40도까지 가해서 수분을 증발시키고 여과시켜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에 산화철을 넣어 만든 검은 칠과 수은 성분이 들어 있는 붉은 주분을 섞은 만든 붉은 칠로 구분한다. 칠의 성분은 옻산으로 고무질과 함질소물질이라는 성분이 있어 기물의 부패를 막아 오래토록 보존하는 힘이 있다. 옻의 생산은 동아시아 아열대 지방과 유렵과 이집트문화에도 사용된 역사 기록이 있다고 한다.
칠은 재료와 기물의 제작과정에 따라 섬세한 수공예품으로 손질이 많이 가는 자개를 시문한 나전칠기로 나전은 전복 껍질을 말한다. 자개는 주로 남해안에서 생산되는 전복으로 질이 우수한 청패와 민물저수지에서 생산되는 홍패가 있다. 순수한 목재로 제작하여 칠을 입힌 목심칠기와 색이 든 채칠 무늬를 그린 채화칠기, 목재나 진흙으로 형태를 만들어 그 위에 베 헝겊을 바른 후 떼어낸 기물에 칠 작업 하는 건칠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실용문화의 발전은 나라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풍토성과 역사성이 깊은 영향이 있다고 본다.
향산의 초기 입문은 중학교 미술시간에 인연이 된 목공예 선생님의 영향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각을 할 수 있었다. 그는 금속이나 돌보다는 목 조각에 보다 더 관심을 가지게 되어 서울에 상경하여 종로에 있는 한양목공예에 1980년부터 입문하여 나무 다루는 법과 칼 쓰기를 배웠다. 서울에서의 결혼과 함께 제주로 이동하여 6개월간의 도외 생활 중에 부친의 작고로 고향인 문경으로 다시 돌아와 지금까지 30년이라는 세월을 목공예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나무가 좋아서 뿐만 아니라 정겹고 가까이 하다 보니 나무에서 묻어나오는 질감이며, 때깔과 향기를 그대로 갖게 하면서도 빼어난 실력으로 사용자들을 감동시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불교에 귀의하여 스님과의 인연으로 향산이라는 호를 갖게 되었고 불교미술과 차를 만나게 되면서 목불과 삼존불의 작업에도 이르게 된다. 독특하면서 대중적인 연 다관과 차시를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하고 구상하여 디자인을 한 다음 완벽하게 완성된 느티나무 소재에 옻칠한 연화다반 작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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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인간의 본질이며 종교가 이룩하지 못한 부분을 예술가가 과학을 빌려 창조한 세계라고 볼 수 있다. 다구 제작은 그에게 있어서는 수행이면서도 장인으로서 는 인간의 본질을 다구로 재현해 낸 실존주의 창작가다. 사회는 유기체다. 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인간들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자기 생활에 필요한 기물들을 만들어왔다. 신분의 차등이 없이 기본적인 생활 용품인 목칠공예의 역사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따져 보아도 그 시기의 측정은 불분명하나 대략 인류시작이 신석기시대로부터 청동기 시대로 소급하여 짐작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추측에 불과하며 최소한 삼국시대 이전의 유물이 없기에 서울 석촌동 고분에서의 백제유물과 경주의 적석고부군에서의 신라 유물, 고분벽화 등을 통해서 고구려시대임을 알 수 있다. 재료의 수급과 가공이 다른 재료에 비해서 수월하나 재질상의 단점으로 보존이 어려운 데다가 구시대로 올라갈수록 자료가 불충분하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후로 통일신라시대와 불교이념을 기반으로 하여 가장 꽃피웠던 고려시대를 거쳐서, 인공적인 장식성과 인위적인 조형을 배경으로 발달한 조선시대, 그리고 오늘날 근 현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solkwahak@hanmail.net
*필자/김재광. 솔과학 발행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