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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 역사 142]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5

조선(朝鮮) 제21대 소태(蘇台)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 기사입력 2013/05/07 [08:21]
[홍익인간 7만년 역사 142]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95

-조선(朝鮮) 제21대 소태(蘇台) 천왕(天王)의 역사 -


[은(殷)나라의 조공]

서기전1337년 갑진년(甲辰年)에 은나라 왕 소을(小乙)이 사신을 보내어 조공(朝貢)을 하였다.

소을(小乙)은 은나라 제21대 왕으로 서기전1353년부터 서기전1325년까지 재위하였는데, 상국(上國)인 단군조선의 천왕이 즉위하니 지방 천하의 제후인 왕(王) 즉 천자(天子)로서 조공을 바쳐 예(禮)를 갖춘 것이 된다.


[우사(雨師) 소정(小丁)이 번한(番韓)에 봉해지다]

서기전1333년 무신년(戊申年)에 우사(雨師) 소정(小丁)을 번한에 보(補)하였다.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高登)이 우사(雨師)의 직을 수행하던 소정(小丁)을 번한(番韓)에 봉하도록 소태 천왕께 임명하도록 권한 데에 따른 것이 된다.

즉, 서기전1333년에 번한(番韓) 해모라(奚牟羅)가 죽자 그 아들을 세습하게 하지 않고, 지모(智謀)가 뛰어났던 고등(高登)이 단군조선 조정(朝廷)의 우사(雨師)이던 소정(小丁)을 번한(番韓)에 봉하도록 소태 천왕께 청을 올려 이룬 것이 된다.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귀방(鬼方) 등 단군조선 땅을 침범하다]

서기전1291년 경인년(庚寅年)에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귀방(鬼方)을 쳐 이기더니 또 대군을 이끌고 색도(索度), 영지(永支) 등의 나라를 침공하였으나, 우리에게 대패하여 화해를 청하고 조공(朝貢)을 바쳤다.

무정(武丁)은 은나라 제22대 왕으로서 서기전1325년부터 서기전1266년까지 재위하였으며, 무정은 무(武)라는 이름 글자에서 보듯이 전쟁을 일삼은 왕이 된다.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단군조선이 은나라 무정 8년에 해당하는 서기전1286년경에 아사달(阿斯達)을 수도로 한 단군조선이 망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나, 이때는 단군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라 서기전1285년에 색불루(索弗婁) 천왕이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서 즉위하여 후기 단군조선을 시작한 것이 된다.

제왕운기에서 말하는 은나라 무정 8년은 연대기적으로 맞지 아니하며 오히려 3년상을 치른 것을 고려하면 무정 38년이 된다. 즉 서기전1325년에 은나라 왕 소을(小乙)이 죽고 무정이 3년상을 치르고 서기전1323년에 정식 즉위하여 38년째인 해가 서기전1286년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왕운기에서 은나라 왕족 기자(箕子)가 주(周)나라 무왕(武王)에 의하여 조선(朝鮮)에 봉해진 해가 되는 서기전1122년은 단군조선 1212년이 된다.

또 삼국유사에서 단군의 나이가 1908세라 적은 것은 서기전2333년부터 서기전426년까지로서 아사달시대와 백악산아사달 시대를 합한 기간이 되며, 서기전425년부터 시작된 장당경(藏唐京) 시대 이전이 되는 것이다.

귀방(鬼方)은 서남방(西南方)이나 북방(北方)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단군조선의 방향으로 보면 서남방이 되고, 은(殷)나라의 방향으로 보면 북방이 된다. 즉 여기서 귀방은 단군조선 진한(眞韓)의 서남방이 되는 태원(太原) 북쪽 지역이 된다.

귀방 부근에 색도와 영지가 위치하는 것이 되는데, 태원의 북쪽에 색도(索度)가 위치하고 태원의 동쪽 넘어 즉 태항산(太行山) 동쪽이자 고죽국의 수도인 고죽성(孤竹城)의 서북쪽에 영지(永支)가 위치하는 것이 된다. 특히 영지(永支)는 단군조선 번한(番韓)의 요중(遼中) 12성(城)의 하나이기도 하며, 춘추시대에 이지(離支)라고도 기록되는 곳이다. 고죽국의 수도였던 고죽성은 춘추시대에 무체성(無棣城)이라고도 기록되고 있다.


[개사원 욕살 고등(高登)의 은나라 정벌 등 군사적 행동]

서기전1291년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병사를 일으켜 귀방(鬼方)을 정복하고 대군을 이끌고 색도(索度), 영지(永支) 등의 나라를 침범하니, 서기전1289년 임진년(壬辰年)에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高登)이 상장(上將) 서여(西余)와 함께 몰래 군사를 이끌고 가서 귀방(鬼方)을 습격하여 멸망시겼으며, 은나라 무정의 군사를 격파하고 추격하여 색도(索度)에 이르러 병사를 보내어 불지르고 약탈한 뒤 돌아왔다.

이때 고등이 많은 군대를 손에 넣고 서북(西北)의 땅을 공격하여 차지하게 되니 그 세력이 매우 강해졌다. 이에 여러차례 소태 천왕께 사람을 보내어 우현왕(右賢王)으로 봉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소태 천왕이 이를 위태롭다 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여기서 서북의 땅은 귀방, 색도, 영지 등의 서북의 땅을 가리키며, 태원(太原)의 북쪽에 위치한 구려(句麗)의 서부지역과 몽고리(蒙古里)와 선비(鮮卑) 등의 땅이 된다.


[상장(上將) 서여(西余)가 은나라의 북박(北亳)을 습격하다]

서기전1289년경 상장(上將) 서여(西余)가 고등(高登)과 함께 은(殷)나라가 정벌하였던 색도(索度)를 역공하여 정벌한 뒤, 이어서 몸소 은나라의 북박(北亳)을 습격하여 격파하였다.

여기의 북박(北亳)은 박(亳)의 북쪽에 있는 곳으로 은나라 제12대 왕인 하단갑(河亶甲)이 수도를 정하였던 상(相)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은나라의 수도는 서기전1402년경 후기 은나라를 시작한 반경(盤庚)이 수도로 삼은 박(亳)이며 지금의 안양(安陽) 서쪽에 위치한 은(殷)이라는 땅으로서 소위 은허(殷墟)라고 불리는 곳으로 중박(中亳)에 해당하는 것이 된다.


[일군국(一群國)과 양운국(養雲國)의 조공]

서기전1289년 일군국(一群國)과 양운국(養雲國) 두나라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하였다.

일군국(一群國)은 숙신(肅愼)의 땅 수밀이국(須密爾國)에서 서쪽 또는 서북으로 5만리나 떨어진 나라인데, 직선 거리로 따지면 일군국은 지금의 북유럽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된다.

양운국(養雲國)은 바이칼호의 서쪽이자 알타이산 북쪽에 위치한 나라가 된다.

일군국과 양운국은 서기전3897년 이전의 한국(桓國) 시대의 12한국에 속하는 나라로서 자치세습국이 되어 대를 이어 배달나라와 단군조선을 섬긴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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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대표. 현 법무사.
▲     ©천산태백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0년 역사를 정립하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유인씨 시대에 9한족(桓族)이 이미 형성되었고,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으며, 9족(族)의 근거지를 명백히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한역(桓易: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한웅 천왕의 아들로서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고, 단군왕검께서 배달나라 제18대 거불단(居弗檀) 한웅(桓雄)과 염제신농국(炎帝神農國)의 후신으로서 치우천왕(제14대 慈烏支 한웅)께서 봉하신 단웅국(檀熊國:웅씨국의 하나) 제5대 홍제(洪帝)의 딸 사이에서 탄생하신 사실과, 단군조선의 군후국(君侯國)의 위치와 시기에 따른 요동(遼東), 요서(遼西), 요수(遼水)의 위치를 상세히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하은주(夏殷周)의 연대기를 상세히 밝히고, 요순우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로서 그 위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으며, 가림토는 원래 배달나라의 상형(象形)문자이자 표음(表音)문자인 상음(象音)문자에서 정선한 글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천산태백
sppopsj@yahoo.co.kr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족보(族譜) 및 한중일(韓中日) 역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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