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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7만년 역사 176]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29

조선(朝鮮) 제47대 고열가(古列加) 천왕(天王)의 역사

천산태백 | 기사입력 2013/07/30 [08:06]

[홍익인간 7만년 역사 176] 단군조선(檀君朝鮮) 연대기 129


-조선(朝鮮) 제47대 고열가(古列加) 천왕(天王)의 역사 -


[위(魏)나라 사절의 입조]


서기전280년 신사년(辛巳年)에 위(魏)나라 사절(使節)이 입조(入朝)하였다.


위(魏)나라는 서기전225년에 진(秦)나라에 망하였는데, 55년전인 서기전280년에 단군조선에 사절을 파견하였고, 단군조선(檀君朝鮮)은 이로부터 12년후인 서기전268년에 위(魏)나라에 사절을 파견하여 위세(威勢)를 보여 주었던 사실이 있다.


서기전268년에 위(魏)나라를 방문한 단군조선(檀君朝鮮, 東夷)의 사절단(使節團)이 위세(威勢)를 보여주었다고 기록한 글로는, 위(魏)나라 사람이던 공빈(孔斌)이 쓴 홍사(鴻史) 서문(序文)이 있다. 이 홍사 서문에서는 단군조선과 배달나라를 동이(東夷)라 기록하고 있다.


서기전280년경의 위(魏)나라 왕은 안리왕 바로 전의 왕인 애왕(哀王)이 되는데, 위나라가 왕을 칭한 것은 서기전319년 애왕 때가 되며, 애왕 이전의 혜왕(惠王)은 일명 양혜왕(梁惠王) 또는 위혜왕(魏惠王)으로서 추존(追尊)된 경우가 된다.


[연나라가 번조선에 조공하다]


서기전276년 을유년(乙酉년)에 연(燕)나라가 번조선(番朝鮮)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朝貢)을 바쳤다.


이해에 풍년이 들고 동해(東海)에서 많은 고기가 잡혔다.


연(燕)나라가 번조선에 조공을 하였다는 것은 당시에 연나라는 번조선을 상국(上國)으로 모셨던 것이 되며, 이때는 연나라 소왕(召王)의 아들인 혜왕(惠王) 3년이 된다.


여기서 동해(東海)는 지금의 동해(東海)이기도 하다. 서기739년에 대진국(大震國)의 제3대 문황제(文皇帝)가 지은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에 서기전2333년 당시 단군왕검께서 강연하던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동해(東海)에서 고시(高矢)가 캐어온 청석(靑石)에 신지(神誌)가 새겼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의 동해가 곧 단군조선의 동해(東海)로서 역사상 변함없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동해(東海)인 것이다.


[위(魏)나라에 사절단을 보내다]


서기전268년 계사년(癸巳年)에 위(魏)나라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위세(威勢)를 보였다.


위(魏)나라가 서기전280년에 단군조선에 사절단을 보낸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되는데, 이때 위(魏)나라가 번조선(番朝鮮)이 아닌 진조선(眞朝鮮)에 사절단을 보낸 것이 분명한 바, 서기전268년에 위(魏)나라에 파견한 단군조선의 사절단은 진조선(眞朝鮮)의 사절단이 될 것이다.


서기전268년에 위(魏)나라 사람 공빈(孔斌)은 단군조선(東夷)는 비록 대국(大國)이나 함부로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나라라고 그가 지은 홍사(鴻史)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신원함(伸寃函) 설치]


서기전265년 병신년(丙申年)에 각처에 신원함(伸寃函)을 설치하여 억울한 일을 당한 자들이 투서(投書)하도록 하였다.


단군조선 전기인 서기전1946년에 이미 신원목(伸寃木)을 설치하여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준 역사가 있기도 하다. 신원목은 신문고(申聞鼓)와 유사한 장치가 된다.


[암행어사(暗行御史) 파견]


서기전256년 어사(御使)를 시켜 백성들의 사회를 몰래 다니며 부정한 사건을 비밀리에 탐지하여 바로 잡았다.


소위 암행어사(暗行御史)를 파견하여 사회부정 사건을 비밀리에 탐지하여 바로 잡도록 하였던 것이 되는데, 단군조선의 천왕들께서 미복(微服)차림으로 백성들의 삶을 살펴서 제도를 고치거나, 하(夏)나라와 주(周)나라의 정세를 시찰하기도 하였다.


[연나라가 새해 인사를 올리다]


서기전252년 기유년(己酉年)에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새해 인사를 올려 왔다.


이때 연나라가 상국(上國)인 진조선(眞朝鮮)에 사신을 보내어 고열가(古列加) 천왕께 새해 인사를 올린 것이다. 연나라는 번조선(番朝鮮)도 상국(上國)으로 모시며 수시로 조공을 바치고 예(禮)를 올렸다.


연나라는 서기전323년에 이왕(易王)이 주나라 천자(天子, 王)를 무시하고 함부로 왕(王)을 칭하였는데, 진조선(眞朝鮮)은 번조선(番朝鮮)의 상국(上國)이며 번조선은 연나라에 대비하여 연나라가 왕을 칭한 같은해인 서기전323년에 왕(王)을 칭하였던 것인 바, 연나라가 번조선을 상국(上國)으로 받드는 데서 진조선을 상국(上國)으로 받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연(燕)나라 대부(大夫)의 망명]


서기전251년 경술년(庚戌年)에 연(燕)나라 대부(大夫) 형운(荊雲)이 망명하여 입국하였다.


서기전255년에 진(秦)나라가 주(周)나라를 멸망시켰으며, 이때부터 진(秦)나라가 서서히 세력을 팽창하기 시작하게 되는데, 연나라 대부 형윤이 단군조선에 망명한 것은 시대를 읽은 것이 아닌가 한다.


서기전227년에 연나라에 형가라는 유명한 자객이 있었는데, 형운과 같은 씨족인(氏族人)이 되는 셈이다.


고대중국의 땅에 변란이 있을 때 동쪽으로 피난하여 우리나라에 망명귀화한 사례가 역사속에 수없이 나타난다.


[일식]


서기전248년 계축년(癸丑年) 겨울 10월 초하루에 일식(日蝕)이 있었다.


[북막(北漠)이 요청한 연나라 정벌을 거절하다]


서기전248년 겨울에 북막(北漠)의 추장 아리당부(阿里當夫)가 군사를 내어 연(燕)나라를 정벌할 것을 청했으나, 천왕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니, 이때부터 원망하여 공물을 바치지 않았다.


이후 북막(北漠)은 단군조선의 영향하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활동한 것이 되는데, 서기전229년에는 북부여의 서쪽 변두리를 습격하여 크게 약탈을 하기도 하였다.


[보을(普乙) 천왕의 묘를 세우다]


서기전248년에 선단제묘(先檀帝廟) 즉 보을(普乙) 천왕의 묘(廟)를 성(城)의 남쪽에 세웠다.


고열가 천왕이 바로 앞 천왕인 제46대 보을 천왕의 신주(神主)를 모신 사당(祠堂)을 장당경(藏唐京)의 성(城)의 남쪽에 세운 것이다. 고열가 천왕이 보을 천왕의 아들은 아니지만 고열가 천왕이 선대 천왕의 묘를 세움으로써 스스로 그 정통성을 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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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조홍근(曺洪根, 52세). 천산역사연구원 대표. 한문화연구단(桓文化硏究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대표. 현 법무사.


30여년 동안 족보(族譜)와 한중일(韓中日) 역사를 연구해 오면서, 부도지(符都誌), 한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귀중한 역사자료를 통하여, 우리역사 1만년을 넘어 마고(麻姑) 시대를 포함한 7만2천391년 역사를 정립하고 있음.

1. 홍익인간(弘益人間) 천부(天符)의 역사는 마고성(麻姑城:파미르고원)의 마고(麻姑)시대인 서기전70378년 계해년(癸亥年)부터 시작되었음을 최초로 밝혔음.

2. 역법(曆法)이 시작된 해는 마고성(麻姑城)의 황궁씨(黃穹氏) 시대인 서기전25858년 계해년(癸亥年)임을 밝혔으며, 서기전70378년 계해년이 마고(麻姑) 기원(紀元:천부 天符)임을 밝혔음.

3. 황궁씨를 이은 나반(那般:那般尊者:獨聖者)이 한국(桓國)시대 한인씨(桓因氏) 이전의 임금이던 유인씨(有因氏)이며, 유인씨 시대에 9한족(桓族)이 이미 형성되었고, 한인씨 7대(代)가 약1,000년을 다스렸다는 것임을 밝혔으며, 9족(族)의 근거지를 명백히 밝혔음.

4. 윷놀이판의 모습이 천부경(天符經)의 무한조화순환역(無限造化循環易), 음양오행(陰陽五行), 태양태음성력(太陽太陰星曆), 단군조선의 정치행정 구조를 나타낸 것임을 밝혔으며, 하도(河圖)와 낙서(洛書)가 배달나라 시대의 음양오행수리역(陰陽五行數理易)이며, 태호복희 8괘역과 한역(桓易:윷놀이판의 역)이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을 기반으로 한 과학적인 역(易)임을 밝혔음.

5. 천제(天帝), 천황(天皇:天王), 천군(天君), 천공(天公), 천후(天侯), 천백(天伯), 천자(天子), 천남(天男)의 위계질서를 최초로 밝히고, 천제자(天帝子)와 천자(天子)의 차이점을 최초로 밝혔으며,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가 일반 천자(天子)가 아니라 한웅 천왕의 아들로서 천지인(天地人) 삼신(三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인 천군(天君)임을 밝혔음.

6. 아리랑(阿里嶺) 민요의 원천이 되는 최초의 역사적 사실이 서기전2333년 10월 3일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에 있었던 당요(唐堯)의 전란(戰亂)으로 인하여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동북의 아사달로 이동한 과정임을 밝혔고, 단군왕검께서 배달나라 제18대 거불단(居弗檀) 한웅(桓雄)과 염제신농국(炎帝神農國)의 후신으로서 치우천왕(제14대 慈烏支 한웅)께서 봉하신 단웅국(檀熊國:웅씨국의 하나) 제5대 홍제(洪帝)의 딸 사이에서 탄생하신 사실과, 단군조선의 군후국(君侯國)의 위치와 시기에 따른 요동(遼東), 요서(遼西), 요수(遼水)의 위치를 상세히 밝혔음.

7. 고대중국의 천자로 불리는 요순우(堯舜禹)와 하은주(夏殷周)의 연대기를 상세히 밝히고, 요순우와 고대일본의 신무왕(神武王)이 단군조선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한 반역자(反逆者)이면서 제후인 천자(天子)임을 밝혔음.

8. 우비(禹碑:우 치수기념 부루공덕 비)의 비문을 국내 최초로 역사적 해석을 하였으며, 우비는 서기전2267년 이후 우(禹)가 치수에 성공한 후 치수법(治水法)을 전수해 준 단군조선 태자부루의 공덕을 새겨 남악(南嶽) 형산(衡山)에 세운 것임을 밝혔음.

9. 일본 국조신(國祖神)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사당인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된 원시한글 축문을 국내 최초로 완벽 해독하고, 요하유로 기록된 천조대신이 단군조선 두지주(豆只州) 예읍(濊邑)의 추장(酋長)의 후손임을 밝혔음.

10. 명도전(明刀錢) 등에 새겨진 문자를 단군조선 문자로서 최초로 해독한 학자 허대동 선생<저서 고조선문자>의 가림토(加臨土)의 연구에 검증차 참여하여 첨수도(尖首刀), 명도전이 단군조선의 화폐로서 그 위에 새겨진 문자가 단군조선의 상형 및 표음 문자임을 밝혔으며, 가림토는 원래 배달나라의 상형(象形)문자이자 표음(表音)문자인 상음(象音)문자에서 정선한 글자임을 밝혔음. 그 외 다수.

천산태백
sppopsj@yahoo.co.kr
한문화재단(桓文化財團) 사무총장. 트위트-페이스북 역사당 부총재. 족보(族譜) 및 한중일(韓中日) 역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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