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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회장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베트남을 생각해냈다. 전쟁의 상처로 버려진 땅, 전세계의 자본주의국가들, 전쟁과 관련된 국가의 기업인들은 베트남에서 사업이나 교류를 두려워하고 있을 때 박연차는 두려움을 박차고 베트남에서 둥지를 틀 생각을 하고 목숨을 걸고 세찬 비바람 속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은 박연차의 도전에 의견이 분분했다. 실패할 것이라는 게 대세였다. 그러나 박연차 회장의 걸어온길을 보면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비범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할 수 없다’를 ‘할 수 있다’로 만들어 내는 용기와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용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한국의 세계적 기업들이 있지만 맨손으로 아무런 인맥도 자본도 부족한 상태에서 해외에서 극적인 사업성공을 이룩한 기업인이 있다면 현대의 창업자 정주영과 박연차 두 사람 뿐일 것이다. 정주영 회장이 현대 중공업을 창업하고 자본과 해외수주를 박차를 가하던 1970년대에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며 대한민국은 이처럼 선박 건조가 뛰어난 국가라고 설득했다. 기상천외한 생각 하나로 선주들을 설득하고 허허벌판 조선소에 수주를 성공시킨 정주영 회장의 탁월한 순발력과 용기는 가난과 절망의 대한민국에 희망과 용기를 심어준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인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박연차 회장의 살아온 과거의 길을 보면 정주영 회장과 여러 가지로 닮은꼴이 많은 사람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놀라운 순발력,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위기를 성공으로 변화시키는 능력, 할 수 없다를 할수 있다로 만들어 내는 기상천외한 생각들은 대한민국의 기업인들이 연구하고 공부해 보아야 하는 숙제들이 아닐까 싶다.
정주영과 박연차는 재물만 좇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용감한 사람들 이였다는 공통점도 있다. 기업인에게는 하루 하루가 불안한 날이다. 박연차 역시 베트남이나 중국 인도네시아 공장들이 언제나 순조롭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위기를 극복해내는 능력이 없다면 기업은 망하게 되는 것이다.
직원들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대표자의 판단과 국제적 감각이 떨어진다면 도산하게 된다. 10만명에 가까운 직원들을 거느린 박연차의 정확한 판단력은 지금 현재 회장이 부재중이지만 세계 무대에서 활발하게 확고한 자리를 잡고 더 큰세계로 도약하고 있는 것은 박연차의 뛰어난 경영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베트남은 경제건설에 몸부림치고 있는곳 중의 하나다. 박연차 회장이 비행기에서 첫발을 내디딘 20년 전의 베트남은 지옥의 한자리였다. 있다면 절망만 있는 곳이였다. 전세계가 외면해 버린 땅에서 대한국인 박연차는 피와 땀을 쏟은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가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일년 내내 더운 곳이다. 사람들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느리다. 중국의 천년 동안의 지배의 영향으로 만만디라는 생활습관이 몸에 베여있다. 수작업으로 해도 될 수 있는 작업장을 컨베어 벨트를 설치하고 직원들의 행동을 빨리 빨리로 변화 시킨 것이다.
직원들에게는 학교를 세워 문맹에서 벗어나도록 혜택을 주었다. 학교를 졸업한 직원들에게는 과감히 간부 사원으로 중용을 하고 조혼 풍습으로 어린나이 아기 엄마가 된 직원들에게는 유치원을 세워 자녀를 맡기고 일을 할 수 있는 복지시설을 베트남 최초로 실시했다. 집 없는 직원들에게는 회사가 집을 지워주는 어느 기업도 상상할 수 없는 복지사업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베트남 박연차의 태광비나 공장과 캄보디아 국경지대에 있는 박연차의 공장주변 수십 만명의 베트남 사람들은 지난 20년 동안 박연차 회장의 회사 때문에 먹는 문제와 도시발전을 이룩했다고 해도 의심하지 않는다.
경제가 발전해가는 베트남에도 서서히 노조운동이 활성화 되고 있다. 회사설립과 동시에 조직된 태광 비나의 노조운동은 회사노조가 상생의 길에서 서로 도우며 노조활동을 하고 있는 모범적인 회사이다. 금년 베트남 정부는 외국기업들의 실태조사에서 한국의 500여 개의 기업들이 세금과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하고 야반도주했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를 했다. 공식집계만 500개 기업이지만 더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자신들의 경제가 아주 어려울 때는 한국기업들에게 우호적 이였지만 자국의 경제가 좋아지면서 외국기업들에게 엄격한 법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다. 지금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들은 미얀마 인도네시아 라오스 등지로 빠져나가고 있다. 박연차 회장이 베트남에서 본인이 활발하게 활동 할 때는 베트남 정부나 기업인들 그리고 국민들까지도 친한적이였고 우호적 이였다. 세상말로 베트남에서 박연차 회장이 나서면 엄마 뱃속의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로 바뀌어서 태어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 4년간 박연차 회장이 부재중인 베트남 정부나 국민들의 한국인을 대하는 시선과 마음이 식어 버렸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베트남 곳곳에 진출해서 사업을 하고 있지만 베트남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우리를 도와주려고 왔다기 보다는 우리들의 싼 임금만 보고 '돈 벌러온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박연차 회장만큼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다같이 잘살자는 그런 정신을 베트남 사람들이 느끼지 못한 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대가족 제도가 살아있고 지방에는 같은 성씨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고 경조사 때는 천리 길도 마다 않고 찾아가는 인정이 살아있는 미풍양속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전통이 무너졌지만 베트남은 살아있는 곳이다. 이것이 그들에게 조금만 잘해주면 은혜를 알고 꼭 갚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이 나고 사람들이 조각배를 타고 난민이 되어 바다에서 표류할 때 한국의 고기잡이 원양어선의 선장이 그들을 구조하고 한국까지 데리고 온 사건을 지금도 기억할 것이다. 미국으로 떠나간 그들은 그때 자신들을 구조해준 한국인 선장을 찾아서 눈물을 흘리고 감사해하는 모습은 베트남 사람들의 가슴속에 뜨겁게 자리잡고 있다.
지금 한국의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베트남에 공장을 짓고 투자를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마음을 박연차 회장만큼 감동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더더욱 이곳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의 반석이 되여 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이나 한국 교민들은 지난 4년간 베트남에 부재중인 박연차 회장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소한 문제를 견디지 못하고 야반도주를 할 수밖에 없는 한국인들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대한민국 명예총영사인 박연차 회장의 지난날의 역량이 새삼 그리워지는 이유중의 하나다.
지금 베트남은 전세계기업들의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각축장이 되었다. 특히 일본과 중국의 진출은 무서울 정도로 베트남 곳곳을 피고 들고 있다. 대만의 포모사 그룹은 하띤성에 포항제철보다 더 큰 철강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베트남에 엄청난 물량공세를 퍼붓고 있다.
미래에 벌어질 베트남의 고속철 지하철 원자력 화력 발전소등 제2의 베트남 경제건설을 겨냥하고 친선과 우호를 내세워서 공격적 경영을 하고 있다. 국력을 앞세운 중국의 공세와 집요한 일본기업을 견제하며 베트남 건설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할 한국은 베트남을 정복할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다.
대우의 김우중회장의 시대는 지나가 버렸고 베트남 정부와 인간적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킬만한 불세출의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4년 전까지는 박연차 회장이 지휘봉을 잡고 영웅적 일들을 해냈지만 지금은 박연차 회장의 큰 빈 자리를 채울만한 지도자가 없다.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사람들처럼 관계를 중요시 여긴다. 지난 20년간 박연차 회장이 기업인으로서 그리고 대한민국 명예총영사로서 베트남 곳곳에 심어놓은 인간관계가 단절 되므로 서서히 한국기업들이나 한국의 교민들이 베트남에서 조금은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나타나고 있다.
교민사회는 박연차 회장의 석방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이명박 정부는 정치적 판단만 앞세워 요구를 묵살하고 말았다. 한국은 지금 재벌과 총수들이 수난시대를 살고 있다. 감옥에 있는 타 그룹의 총수들과는 죄질이 박연차 회장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박연차 회장의 잘잘못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밝혀지겠지만 정치적 판단으로 벌어진 일이 분명하다. 박연차 회장을 정치적 희생물로 삼아 정권유지를 하려고 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두고두고 지탄을 받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없는 죄도 만들면 죄가 된다는 국가라는 비아냥을 들어서는 이제는 안 된다. 선진국답게 국가의 행정이 이뤄지는 것이 사람사는 세상이 아닐까 한다.
서남아시아 모든 국가는 우리에게는 소중한 국가들이다. 경제불황이니 경기가 불경기이니 하는 좌절의 소리보다는 국민에게 희망과 살 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은 정치 지도자들이나 지도층들이 아닐까 한다. 정권 교체기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으로 가야 하는 죄 없는 죄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부가 되어주면 좋겠다.
대한민국에는 학력이 부족해도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있다. 한 사람의 훌륭한 장군이 수십만 명의 장병들의 목숨을 보호하고 국가를 방위하는 역사적 인물들이 있다. 베트남에도 두 명의 영웅이 있었다. 프랑스 중국 미국의 3대 전쟁을 진두 지휘한 호치민 주석과 지압장군이 있다. 얼마 전 지압장군이 103세의 나이에 서거를 했다. 베트남은 온통 눈물로 그분의 가는 길을 애도했다. 신발 한 켤레와 지팡이 옷 한벌을 남기고 서거한 호치민 주석도 국민들은 존경하고 따랐다. 애국 애민 했던 두 분의 영웅의 반열에 필자는 과감히 대한국인 박연차 회장이 베트남 사람들을 사랑하고 잘 살수 있도록 노력한 공로를 분명하게 인정해주고 싶다. 그래서 베트남 교민사회에서는 박연차 회장의 업적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진리를 교육하고 있다. 창녀를 데리고 예수 앞에 등장한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간음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 예수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이렇게 소리쳤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저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고 손에 들었던 돌멩이를 슬며시 땅에 내려놓고 자리를 떠난 유태인들 예수님은 여인의 앞에가 이렇게 속삭였다. 너는 죄인이 아니다. 지난날 들었던 돌멩이를 내려놓고 떠나간 유태인들이 얼마나 훌륭한가 자신의 판단과 양심에 승복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 사회는 동물의 왕국의 오리 집단과 같다. 대장오리가 인도하는 데로 일렬로 줄 서서 따라가는 오리집단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따라가는 집단성을 가진 우리들의 정신세계에도 돌멩이를 내려놓고 떠나가는 유태인으로 돌아가자.
조선일보는 박연차 회장 사건이 터졌을 때 노무현과 박연차의 관계를 신문보도로 도배질을 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TV 조선에서는 한베 수교 20주년 기념작품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와 관계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전세계에 방송을 했다. 내용의 전부를 박연차 회장의 이야기였다.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역사는 박연차 회장을 빼놓고 말 할 수 없는 역사 였다. 박연차 회장의 베트남에서의 역사는 지울 수 없는 대한국인의 역사였다.
‘보이지 않는 손’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설파한 명언 중 명언이다. 1776년 지금부터 237년전 아담스미스는 국부론이라는 저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적절한 재화의 양과 종류를 생산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파했다.
시장 측면에서 시장경제야 말로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모두에게 만족스런 결과를 낳으며 사회의 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할 수 있다라는 주장이다. 오늘날 경제계의 화두는 시장경제 경제의 민주화 등의 화두를 놓고 학자와 기업인들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연구 하는 과제이다. 국부론의 내용은 어렵고 복잡한 것 같지만 실물을 다루는 기업인들에게는 아주 적절한 경제실무이다. 과연 얼마만큼의 기업인들이 아담스미스의 이론에 기업을 경영 하는냐 이다.
기업성공의 법칙은 분명 이것에 답이 있다. 사람들은 학벌을 자랑하고 내세운다. 학벌이 부족한 사람의 주장을 무시해버리기 일수이다. 정주영회장이나 박연차 회장의 학별은 어려운 유년시절의 생활 때문에 별로 내세울 것은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시장 경제와 경제 민주화를 누구 보다 먼저 깨달은 기업인이었다.
특히 박연차 회장은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을 뛰어넘는 경영의 귀재다. 현시대는 돈이 돈을 벌어주는 시대가 아니라 사람이 돈을 벌어주는 시대이다. 박연차는 시장의 생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기업을 경제 민주방식으로 끌어간 경영인이었다. 베트남, 아니 아시아는 박연차의 투자를 기다리고 있다. 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박연차의 손길을 기다리는 국가들의 기다림이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