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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마당에서는 흥겨운 가락이 필수이고, 초반부터 그 흥은 관중석 속에서 나온다. 극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끝나자 객석 뒤편부터 꽹가리에 피리 등으로 한바탕 놀이판이 행렬을 잇고 나오는데 오늘 배경음악을 들려줄 김주홍과 노름마치의 시작이다.
관중석을 돌아 무대에 오른 뒤에 팀들은 흥겨운 가락을 연주하면서 오늘의 공연이 성공하기를 비는 축원비나리 춤판을 벌인다. 다섯 명의 노름마치 팀이 팀웍을 이루어 빚어내는 율동과 화음은 본격적인 공연이 있기 전에 관중들에게 떠들썩한 춤사위판을 만들어준다. ‘축원 비나리’는 액은 물리치고 살은 풀어내어 우리네 삶이 길하고 경사스런 일들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의식이지만 무대를 여는 입장에서는 공연의 성공 기원이 아닐까.
비나리춤판이 끝나자 이날 행사의 사회 진행을 맡은 대구 출신 시조시인 조명선 시인(대구광역시교육청 재직)이 능숙한 솜씨로 공연 전반에 대해 안내 멘트가 있었다. 이어 어둠 속에서 주인공이 부채를 들고 서서히 무대 쪽으로 걸어 나온다. 부채를 펼쳐들고 전방을 응시하다가 몇 걸음을 걷더니 다시 부채를 든 손을 올려서 허공을 보고서 사뿐히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서는 천천히 한 바퀴 돌더니 오른손에 부채를 든 손을 올렸다 내린 후에 이번에는 오른발을 높이 치켜세웠다가 다시 천천히 앞을 향해 걷는다. 양팔과 손의 놀림이 유연하고 걸음걸이나 자세에서도 절도가 배어 있다. 때로는 펄쩍펄쩍 뛰다가 제 자리에 멈추어 서서 몸짓으로 표현을 하는데 자유자재로 몸짓이 펼쳐진다. 양반춤의 한 장면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극도의 절제가 사이사이로 보이는 춤사위에 객석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온다. 양반춤은 말 그대로 양반들이 추던 춤으로 밀양지방 특유의 덧뵈기 춤사위가 하나의 춤의 형태로 이룬다. 사람들이 신명과 흥을 마음 안으로 삭이고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자제하여 더 많은 흥과 멋으로 표현한 남성 춤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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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부의 듣는 춤, 보는 소리 영무는 이렇게 하여 첫 춤이 막을 내렸지만 관중들의 호응은 뜨겁다. 인간문화재 하용부는 현재 우리나라 ‘밀양 양반춤’의 대가이다. 일찍이 다섯 살 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운 춤은 증조부 성옥 옹, 조부 보경 옹 이래 가문의 자랑이기도 하다.
특별출연한 윤미라 교수(경희대 무용학과)의 달구벌 입춤은 관중의 대부분인 대구시민들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일명 수건춤, 덧배기춤이라고 하는 입춤은 옛 대구의 멋스런 정서가 녹아있는 교방놀이 춤으로 여성의 은근한 정감이 깃든 춤이다. 수건으로 허리를 질러매고 추는 춤 동작이 고요해지다가 소북을 이용한 춤사위에서는 다소 신나는 모습도 보였다. 달성 권번의 박지홍에서 최희선으로 이어지는 이춤에서 화려한 춤이라 연상했으나 필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 춤이 조심스럽게 흩날리는 수건과 활기찬 소고놀이의 허튼춤이 조화를 이루어 홀춤이지만 지방의 전해오는 춤을 유지하고 잇는 것이 새롭게 보였다.
다시 이어지는 하용부의 밀양북춤은 관객들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밀양북춤은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인 ‘밀양백중놀이’ 중에서도 가장 신명나는 춤이다. 백중놀이는 음력 7월 보름에 머슴들이 농사일이 한가한 시기를 틈타서 흐벅지게 펼쳐지는 놀음판으로 오곡이 잘되고 농사꾼들이 오복을 누릴 수 잇도록 기원하는 춤이다.
무대 중앙에서 주인공이 북을 쥔 왼손을 곧게 올려 어깨 선과 일자선으로 팽팽히 세운 가운데 배경 가락으로 ‘아∼아∼’라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왼손을 높이 올렸다가 내리는 사이에 북장단이 맞춰지고 무대중앙을 돌며 신명나게 북춤 한판을 벌인다. 북치는 동작과 몸짓의 형태가 자유자재다. 하기야 조부로부터 배워 50년 동안 활동했으니 신의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닌가. 관객들도 절로 신이 나는지 박수로 북장단에 가락을 맞춘다.
무대 앞 편 중앙에서 조명 불빛을 받으며 추던 북춤을 멈추고 천천히 앉으며 마지막 피날레로 두 손을 합장하여 비는 것으로 이 춤은 끝난다. 관객들의 박수가 요란하다. 하용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대구에서 한번 공연을 하자는 ‘손경찬’이란 물건이 있어, 대구에서 장사익 형과 일을 벌렸다. 대구에서 하다보니 형님과 친구들이 걱정했는데 이렇게 많이 찾아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객석에 있는 나를 부르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물건으로 칭한 것은 그만큼 친하다는 것을 나타냈다고 한다. 주인공이 무대에 서서 그런 말을 하니 미안한 감이 들었다. 사실 하용부와 필자는 이번 공연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우정을 보이며 깊은 인간관계를 보이니 사실 이번 공연은 필자가 친구를 꼬여 수성아트피아 무대에 올린 것인데 친구가 걱정을 하는 것도 당연했고, 이 또한 깊은 인간관계의 신뢰였다.
잠시 쉰 뒤에 바로 김주홍과 노름마치의 ‘소낙비’가 공연됐다. 장고의 합주곡인 소낙비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빗소리와 닮았다 하여 부쳐진 이름인데, 처음에는 조금씩 내리다가 차츰 빗줄기가 굵어지는 소리를 내더니 마침내는 공연장이 떠나갈 듯한 우레와 같은 소리 연주가 펼쳐지는데 새로웠다. 마치 경제난, 취업난 등 여러 가지가 어려운 지금의 상황에서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용부와 콜라보레이션 량 Ⅲ(쓰리)은 전통춤에 현대무용을 가미한 새로운 시도였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양면성을 표현한 것인데, 때로는 모순되는 명제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을 연기했다. 세 사람이 말없이 춤 동작을 보이면서 모였다 흩어지고 다시 모여 춤추는 동작 속에서 몸부림치고, 맘부림치는 갈등이 잘 표현되고 있다. 마치 절규로 갈구하고 희구하는 것 같은 무언의 몸짓이 인상 깊다.
특별출연 장사익 선생의 무대도 있었다. 장사익 선생님의 모습은 언제보아도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장 선생님은 1993년 전주대사습놀이 공주농악 장원을 비롯하여 1995년 KBS 국악대상 대통령상에 이어 1996년에는 국악대상 금상을 수상하신 국악계의 대가로 일반 대중가요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언제 들어도 그분의 노래는 삶에 희망을 보태는 우리시대의 영원한 소리꾼으로서 돋보인다.
서정주 시인의 시 ‘황혼길’이 첫 노래다 “새우마냥 허리 오그리고 누엿 누엿 저무는 황혼을 / 언덕 넘어 딸네집에 가듯이 나도 인제는 잠이나 들까 머언 산 그리매…” 노래가사에서도 고요함과 애절함이 배어나는 가운데 국악인으로서 득음을 한 장사익 선생의 혼신을 다하는 열창에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두 번째 노래 ‘봄날은 간다’ 연주곡이 나오자 관객들의 환호성이 계속 터져 나오다가 노래하는 순간 그의 몸짓 속으로 녹아든다.
그 노래를 부르고 난 뒤에 장 선생님은 하용부에 대한 평을 잠시 했다. “의형제로 지내는 사이인데, 10년 전에 독일의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 초청으로 하용부가 독일에 갔을 때 그의 춤을 보고 세계적인 무용가가 극찬을 했다”는 말을 했다. 이어서 장 선생님은 “20년 전부터 알고 지내면서 서울,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공연이 있을 때마다 후원 등으로 열성을 보인 친동생같은 손경찬에게도 이 기회를 빌어 감사한다”며 필자를 언급하면서 좋은 말을 해주는지라 객석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용부의 마지막 춤으로 하이라이트 영무가 올려진다. 영혼 영(靈)자, 춤무(舞)자를 쓰는 영무(靈舞)는 춤이라기보다는 음악의 흐름에 몸짓을 맡기는 신령 들린 하용부만의 몸짓 예술이다. 예술혼이 가득 담긴 영무는 현재의 몸이 자신의 몸이기에 앞서 몸을 나게 한 조상님께 감사함이 담긴 하용부의 독창적인 춤이기도 한데, 이날 행사의 마무리로서 인간문화재인 하용부의 진면목을 다 보여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용부의 듣는 춤, 보는 소리 영무는 국내를 벗어나 프랑스 파리 <쌍쌍축제>와 독일 춤 축제에 초대받아 공연한 바 있고, 세계무대에서 극찬을 받은 한국의 빼어난 춤이기도 하다. 증조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하여 5대째 춤의 명문을 이어오고 있으니 그만하면 두말이 필요 없다. 인간문화재 하용부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춤이 된다”는 전설의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그의 할아버지의 춤과 밀양북춤 1인자로서의 빼어난 기질이 녹아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가 신령스러움으로 나타나는 신비한 춤사위에서 그를 영원한 ‘몸짓의 시인’으로 불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찬사이기도 하다. yejuson@hanmail.net
*필자/손경찬. 칼럼니스트ㆍ수필가ㆍ예술소비운동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