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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황족 의친왕의 파란만장한 생애(11)

박관우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12/20 [15:42]
필자가 국내언론사로는 최초로 지난 10월 14일에 1회를 시작으로 의친왕의 일대기를 연재하고 있는데 어느 덧 10회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10회에서 1920년대 의친왕 독립운동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는 대한민족 대표단 연명부 청원사건을 다룬 바 있다.
 
▲ 의친왕     ©브레이크뉴스
1920년대 중반, 독립운동가들이 내몽골 지역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는 문제를 추진하였는데 최근에 의친왕이 여기에 관련되어 있는 정보를 입수하였으나 이러한 정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본 칼럼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제 그 다음 소개할 사건은 국내 독립운동 3대 사건중의 하나로 포함된 광주학생독립운동 사건에 의친왕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러한 정보의 출처는 의친왕의 사위가 조카에게 증언한 내용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둔다.
 
그동안 필자의 추적을 통하여 의친왕의 항일운동이 실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이 심증은 가는데 이를 확실히 밑받침할 수 있는 물증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광주학생독립운동 사건도 확실한 물증이 발견되기 전까지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와는 다르게 의친왕의 행적이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진 흔히 경주최 부자 가문의 마지막 부자로 알려 졌던 최준과 의친왕의 관련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흔히 알려진 경주 최 부자 가문의 역사는 최준의 11대조인 최진립으로 부터 시작되는데 그는 임진왜란때 의병활동을 하면서 왜적을 무찔렀으며, 더불어 병자호란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다가 장렬하게 순국한 인물이다.

그런데 최진립을 시작으로 하여 이어진 300년동안 10대에 걸쳐서 이 가문에서 만석지기의 전통을 유지하였는데 최준은 그러한 만석지기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갑신정변이 발생한 1884년에 경주에서 출생하여 1970년 향년 87세에 타계하였으니 참으로 장수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행적과 관련하여 특히 주목되는 점은 그의 대부분의 재산을 당시 군자금을 지원하는데 투자하였다는 점인데, 그 놀라운 결단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거점으로 상해임정에 군자금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던 백산상회(白山商會)에 끊임없이 군자금을 제공하였다는 것이며, 이 돈이 바로 상해임정으로 흘러 들어 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백산상회(白山商會)는 처음에 안희제가 사재를 팔아서 설립하며, 나중에는 주식회사로 확대 개편되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최준은 사장으로 활동하였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가 의친왕의 일대기를 연재하고 있는 2013년이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설립한 안희제가 순국한지 7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이 자리를 빌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기울이다가 장렬하게 순국한 안희제를 애절한 마음으로 추모한다.
 
이제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의친왕과 최준의 인연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 보기로 하자.
 
의친왕이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으나 당시 최준의 집에 1주일 머문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으니 최준이 18884년생이니 의친왕보다 정확히 7살 연하인데, 의친왕의 그에게 문파(汶坡)라는 호를 지어 주었으며, 그 이후 최준은 문파(汶坡)로 알려 졌던 것이다.
 
의친왕과 최준이 이러한 인연을 맺은 이후 최준 가문에 결정적인 위기가 닥쳐 오는데 당시의 상황을 “경주 최 부잣집 300년 富의 비밀”에 근거하여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 백산상회의 사장으로서 전재산의 대부분을 군자금 지원하는데 사용하였던 최준이 100만원이 넘는 엄청난 빛을 짊어지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의친왕이 당시 조선식산은행 총재였던 아리가를 직접 만나서 빛의 탕감을 요청하였는데 이러한 의친왕의 부탁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실제 최준의 빚이 50% 탕감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필자가 오랜 세월 의친왕의 행적을 연구하였지만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는데 최근에 이러한 귀중한 정보를 입수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필자는 의친왕이 상해임정에 막대한 군자금을 지원한 최준의 빚을 탕감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pgu77@hanmail.net

*필자/박관우. 저술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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