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고전주의와 사실주의를 시작으로,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시대를 거쳐 추상표현주의,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서양미술사를 이끈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100년간의 ‘서양미술의 흐름’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성탄과 연말을 뮤지엄에서 보낸다면 문화생활을 겸한 데이트로 아름다운 한 해를 마무리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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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아를르의 강변에 앉아 있지/욱신거리는 오른쪽 귀에서 강물소리가 들려오네/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저 맑음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두 남녀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다네/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네./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별빛이었을까?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올 한 해, 해도 지고, 별들도 진다. 고흐를 감동시켰던 별들이 스러져간다. 이 연말 숭고한 별빛을 찬양했던 그 고흐를 만날 수 있다, 뮤지엄에 가면.
앵그르<목욕하는 여인>, 마네<스페인발레>, 피카소<투우> ,모네<베퇴이유로 가는 길>, 반 고흐<오베르의 집>, 세잔<자화상>, 드가<무용수들>, 칸딘스키의<가을Ⅱ>, 잭슨 폴록<구성>등 서양미술사 거장 68인의 국내 미공개 유화작품 85점이 전시되어 있다. 고전주의부터 추상 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근ㆍ현대 서양 미술사를 이끈 거장들의 작품을 총망라함으로써 그들이 어떻게 동시대의 미술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하고 또 자신의 것으로 확립 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단순 명료한 주제들을 설정해 질문을 던지고 풀어나간다. 스토리텔링에 근거한 작품분류와 세련된 공간연출로 전시장 분위기도 차분하고 세련되게 섹션을 나누었다. 다양한 프로그램의 활용을 통해 감상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도록 관람자 중심의 전시로 기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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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하여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 외젠 들라크루아, 오노레 도미에,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 폴 세잔,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르 보나르, 라울 뒤피,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조지아 오키프,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아돌프 고틀리브, 김환기 등 서양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거장들이다.
그들이 어떻게 동시대의 미술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하고 확립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풀어간다. 그들의 작품세계를 심도 있게 조명하고 있다. 시대정신과 작가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들로 서양 근·현대회화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에 대한 깨달음과 감동을 전해줄 것이다.
지난 11월 25일부터 한가람미술관에서 장장 108일간의 전시가 시작되었다. 내용은 앵그르부터 칸딘스키까지. 전시는 2015년 3월 12일(목)까지 열린다.
지난 7월 대전시립미술관 개관사상 최단시간, 최다관객을 동원한 <피카소와 천재화가들>展에서 보다 업그레이드 된 전시로 작품 평가액만 1조 2천억 원으로 미국의 필립스컬렉션이 소장하고 있는 서양미술의 걸작들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다.
전시시간 : 오전 11시 ~ 오후 7시(3월 한 달 간 오후8시까지 운영) *매주 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 (매표 및 입장 마감시간 : 전시종료 1 시간 전까지)
필립스컬렉션은 1921년 미국의 기업가 던컨 필립스(Duncan Phillips)가 미국의 워싱턴 DC에 설립한 미술관으로 미국에서 최초로 근대 회화 전시를 시작한 곳이다. “예술에 대한 사랑이 물질적인 사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던컨 필립스의 믿음을 바탕으로 유럽과 미국의 명화들을 수집, 전시해 온 필립스컬렉션은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심미안을 바탕으로 수집한 3,000점이 넘는 최고의 걸작들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작품들에는 화가들의 삶과 이상, 역사와 사회, 자연에의 동경, 추상과 현실 등과 같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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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대로 편안한 자세를 취한 모습으로 그려라, 또한 얼굴에서도 그런 편안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만약 모델의 특징이 웃음이라면 웃고 있는 모습을 그려라, 물론 화가가 예의상 그대로 담아낼 수 없는 느낌이 있기 마련이다. 왜냐면 초상화는 화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초상화는 무척이나 미묘한 차이를 담아내는 그림이어야 한다. -1860년 드가의 작업노트에서.
무희를 치열하게 그려나갔던 드가도 있다. 젊은 시절의 드가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앵그르도 거기에 있다. 결국 드가는 완벽주의자가 되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작품을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말년까지 완벽을 추구하면 치열한 작업을 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네. 다만 내 무덤 앞에 이렇게 말해주게, ‘드가, 그 사람은 데생을 진정으로 사랑했다고!’”-드가가 생을 마감하기 전 친구에게 남긴 말이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은 말한다, 예술에 우연이란 없다고. 그 치열하게 작업했던 천재화가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여왔다. 그들의 어떤 작품들 속에서도 그들의 삶이 녹아나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피카소는 말한다, “예술가에게 끝이란 없다. 예술가 치고, 이번엔 작품이 멋지게 됐으니, 내일은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술가가 작업을 마쳤다는 것은 다만 이제 또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예술가에게 ‘끝’이란 말은 결코 있을 수 없다.<피카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피카소조차도 이렇게 치열한 작업을 했다. 그렇게 유명한 피카소도 우리 곁에 와 있다. 물론 108일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미술전문 기자가 추천하는 감상포인트 Tip 7가지.
1. 앵그르의 <목욕하는 여인> The Small Bather 1826
앵그르는 숲 속 시냇가 옆 잔디가 깔린 바위에 앉은 여성의 누드를 뒤편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바로 오른편 뒤에는 붉은 옷이 주름 잡혀 놓여져 있고 손목에 프릴 장식이 달린 소매가 바위 위로 늘어져 있는 모습이다. 어둡게 표현된 배경에 위치한 다른 편 시냇가 기슭에는 나체의 여인들이 비스듬히 누워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시냇가에는 옷을 반쯤 걸친 여성이 어린 소녀를 목욕시키고 있고 오른쪽에는 잠자는 여성의 상반신이 보인다.
그녀는 팔꿈치를 바닥에 댄 채 손바닥으로 얼굴을 받치고 있다. 이 작품 속의 차갑고 정적(靜的)이며 세밀하게 그려진 인물은 18년 전에 그려진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the Bather of Valpinçn, 발팽송은 그림을 구입한 수집가의 이름으로 작품은 현재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이다. 인물의 포즈는 그의 이전 작품들과 동일하다. 터번은 붉은색과 흰색의 줄무늬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감싸진 형태나 팔꿈치 주변에 늘어진 천 등은 유사하다. 빨간 샌들마저 같은 지점인 발치에 놓여있지만 배경은 사뭇 다르다. 이전 작품에서는 장소를 구별할 수 없는 검은 대리석과 회색, 갈색, 흰색의 장막으로 표현된 배경에 흰색 시트가 덮인 침대가 있는 반면 필립스컬렉션이 소장하고 있는 훨씬 작은 크기의 이 작품에서는 천을 대신해 잔디가 넓게 펼쳐져 있고 전 작품에서 베개가 있던 곳은 잠든 여인의 얼굴이 대신 자리하고 있다.
앵그르는 확실히 모델의 신체에 매료되었던 듯 보이며 이 작업 이후 두 작품에서 이 주인공을 중심 소재로 삼았다.
2.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Francisco Joséde Goya
<회개하는 성베드로>1820-24
신(神)과의 강렬한 교감을 담은 이 그림에서 고야는 베드로의 반신(半身) 만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그의 얼굴은 하늘을 향해 있고 입술은 마치 이야기를 하듯 살짝 벌어져 있으며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다.
그는 예수가 열 두 제자에게 준 이름을 상징하는 바위 옆에 무릎을 꿇고 있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준 두 개의 열쇠는 천국의 문지기로서의 사명을 나타내는 표시로 바위 위에 놓여져 있다. 엘 그레코가 그랬던 것처럼 고야는 이 성인(聖人)을 푸른 튜닉에 노란빛 외투를 걸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두 화가의 작품에서 베드로는 전통에 따라 흰 머리와 턱수염을 가진 것으로 그려졌다.
엘 그레코는 실질적이고 종교적인 환경에서 회개하는 모습을 그려낸 반면 고야의 단순한 삼각 구도는 어두운 화면에서의 힘차고 존재감 있는 형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물의 형상을 축소시킴으로써 작품을 아래쪽에서 올려다 보아 주기를 원했던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예수를 부정한 후 베드로의 참회를 표현한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마태복음 26장 69-75절) 예수가 대(大)제사장의 재판소에서 심문 당한 후 베드로가 예수를 따르는 무리임을 부정 했다고 한다.
세 번째 부인(不認) 이후, 닭의 울음 소리가 세 번 나고 나서야 베드로는 예수의 예언이 적중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달려나가 비통하게 울부짖는 것이다.
3.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반란>1848
이 작품은 1848년의 혁명과 더불어 폭력으로 얼룩진19세기 프랑스 정치사 중에서 루이 필립의 7월 왕정에 반대하는 혁명에 영감을 받아 길거리의 시위 모습을 그린 것인 듯 하다. 이 그림의 초점은 바로 몸동작에 있는데 반항적으로 높이 들어올린 오른쪽 주먹이 작품의 가장자리를 뚫고 나올 것처럼 보인다. 도미에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자유의 여신이 시민들을 이끄는 장면을 린1830년도의 유명한 작품을 알고 있었다.
들라크루아의 작품 속에서는 자유의 여신이 같은 자세로 오른팔을 치켜들고, 한쪽 손에는 프랑스의 삼색 국기를 다른 한 손에는 장총을 들고 있다. 그러나 자유의 여신과는 달리 도미에 그림 속 시위자는 이상적, 상징적 모습이 아닌 한 인간일 뿐이다. 도미에는 시위자들을 빠른속도로 그려내었는데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림 속에는 천으로 만든 모자를 쓴 노동자, 모자를 쓴 부르주아 계급의 남자, 두 명의 노동 계층 여자와 어린이가 있다.
이 시위 장면의 활력은 흰색 셔츠를 입고 빛으로 감싸진 남자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는 군중으로부터 두드러지게 앞으로 나와 있으며 이것이 예술적 창의성을 가장 우선시하며 “내가 해야 할 특별한 역할은 독립 작가를 찾아내고 후원하는 것이다” 라고 했던 필립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형식적 측면을 살펴볼 때, 어떤 학자들은 도미에가 이 작품을 1850년대 중반에 그렸다고 믿는다. 평론가들은 일반적으로 그가 나중에 그림의 일부분을 수정했으며 스케치 단계에 이를 남겨 놓았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이 작품은 필립스가 도미에의 작품 중 가장 아끼는 것이었으며 나중에 덧붙여진 그림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도미에 작품의 본질을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컬렉션의 가장 훌륭한 작품” 이라고 때때로 말했다. 그는 이것을 “끝나지 않은 걸작” 이라 부르며 “훌륭한 예술가가 몸과 마음을 다해 온 정성을 기울여 감정의 표현을 그려냈다면 그 작품을 과소평가해서도 그냥 지나쳐서도 안 된다.” 라고 말했다.
4. 세잔-<빅투아르 산의 풍경> Mont Sainte-Victoire 1886-87
세잔은 프로방스에 위치한 그의 집 근처에 있는 생 빅투아르 산의 풍경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 이 작품은 계곡을 가로질러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잔이 사랑하였을 생 빅투아르 산에 대한 감정은 구스타브 쿠르베의 지역 풍경에 대한 뿌리 깊은 애착과는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세잔에게 있어 이 산과의 비밀스러운 조우는 그의 풍경화에 대한 오랜 기간 동안의 분투를 나타냄과 동시에 클로드 로랭과 니콜라스 푸생의 목가적 이상향을 그린 작품과 대등한 풍경화를 창조해 내고자 하는 야망이 담겨 있다.
세잔은 이 그림을 느린 속도로 신중하게 작업하였는데 순간적인 시각의 자극이 아닌 지속되는 풍경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고자 각지고 꺾인 붓 자국을 사용하는 기법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이 작품에서 세잔은 그의 시선 안에 있는 각각의 개체들을 전체 풍경 속에서 하나로 녹여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세잔은 많은 자화상을 남겼는데 대부분이 이것과 꼭 같은 포즈를 취한 채 비슷한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져 있다. 그의 자화상 연작들은 그의 외양과 아상(自我像)은 물론 화가로서의 발전을 담고 있는데 강렬한 인상의 이 자화상은 그가 자아 성찰을 시작한 약 40세가 되었을 무렵 완성되었다.
세잔은 대담하고 객관적으로 그의 굴곡진 얼굴 모습과 소외되고 세련되지 못한 텁수룩한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으며 헐렁하고 간략하게 표현된 그의 외투는 마치 캔버스와 같은 재질인 것처럼 보인다.
인물의 머리카락은 옷깃에까지 닿아있고 목은 그의 옷과 정돈되지 않은 수염에 가려져 있다. 입의 모습은 살짝 비추기만 할 뿐 대부분은 수염에 가려져 보이지 않으며 피부는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세잔은 불그스름하고 얼룩덜룩하며 머리카락을 잃어가는 그의 얼굴을 짧고 분명한 붓질로 표현하여 그림에 두터운 질감을 더해주었다. 이러한 구성은 그의 날카로운 눈이 응시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방어 기제를 나타내고 있는데 화가의 방어적 심리 (세잔은 자신의 추한 외모를 매우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를 나타내는 그 눈이야말로 바로 이 자화상을 강력한 것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어둡고 한정된 색상으로 힘차고 자유롭게 그려진 이 그림은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이전 세대의 대가들을 연상시킨다
5.피카소 <투우>Bullfight 1934
피카소의 이 추상적인 투우 장면은 야만적인 황소와 백마(白馬) 의 충돌을 야생적 에너지를 지닌 화려한 색감을 사용하여 그려내고 있다. 투우사에게 찔린 황소는 뒷부분에 짙은 피를 흘리고 있고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는 말은 괴성을 지르고 있다. 투우사와 공중에 뜬 그의 망토는 투우장에서 벌어지는 의례적인 살육을 보호하듯 감싸고 있다. 구성의 중심은 완전히 극적인 장면에 몰입되어 있는데 관객들은 얼룩덜룩한 형태로 축소 되어 있고 배경은 개략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은 생의 양극성을 그 자체가 고전적이고 상징적인 활동인 투우의 형태로 바꾸어 보여주는데 선과 악, 빛과 어둠, 남성과 여성, 삶과 죽음이 그것이다. 이러한 극단성은 아마도 전통을 파괴하고 새로운 바탕을 창조해낸 창조적 예술가인 동시에 순결한 말을 공격하는 활력이 넘치고 강한 남성성을 표출하는 황소와 동일시 되는 피카소 자신에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6.라울뒤피-<예술가의 작업실> The Artist’s Studio 1935
왼쪽 벽의 꽃무늬 벽지는 Paul Poiret 가 소유한 Bianchini-Ferier 라는 고급실크 제조 회사를 위해 디자인했던 것과 비슷하다. 벽 너머에는 그의 수집품인 배(船)모형 들이 있고(그는 바닷가 근처에서 자랐고 범선은 그가 바다를 주제로 한 작품에 여러 번 나타난다.) 그 아래 왼쪽 편에는 그의 작품Great Bather 가 있다. 오른쪽 벽에 있는 그림은 끌로드 로랭(Claude Lorrain) 에게 바치는 존경의 표시로서의 작품이 있고 그 아래에는 마르느 강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 있다. 뒤피는 1909년부터 예술가의 작업실을 주제로 한 다양한 그림을 남겼다. 작가가 어디서 그림을 그렸고 생활했는지를 말해주는 동시에 자화상과도 같은 역할을 하며 그의 작업을 집약(集約)하여 보여준다.
작업실 주변과 (이곳은 실제로 밝은 청색으로 칠해진 곳이었다). 왼쪽으로 딸려있는 방에 놓인 그림 몇몇은 실제 더피의 작품이다. 이젤 위에 놓인 비스듬히 누운 누드화는 바다의 여신 임피트리테와 목욕하는 이들을 그린 그의 다른 작품들과 그에게 영향을 준 로코코 화풍을 떠올리게 한다. 바닥에 놓인 팔레트와 이젤은 비어있다. 이 작품 The Artist’s Studio 가 바로 거기에서 사라진 작품이며 그곳에는 더피가 가장 좋아하는 색상인 청색, 분홍빛이 섞인 오렌지색, 초록과 붉은색이 빛나는 흰색과 어울려 있고 작품에 항상 등장하는 검은색 선 만이 그 위에 남아 있다. 창틀은 또 하나의 이젤이다. 투명하게 보이는 벽을 통해서 실내와 바깥 풍경이 어우러진다. 여기서 그는 창밖 건물과 작업실과의 일체(一體)를 보여주고 실제 사물의 세계를 캔버스 속으로 녹아들게 한다. 평범한 푸른색 공간과 무늬가 있는 분홍색 공간은 각각 간략하게 묘사함으로써 작품의 투명한 색감과 끊임없이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선(線)의 사용을 극대화시켰다.
7.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가을Ⅱ>1912
나는 색상이 얼마나 내 영혼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기 위해 내 존재를 깊이 들여다보아야만 한다…나는 그림의 주제에 대해 확고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내다보고 있다.
만약 이 프로젝트를 끝낸다면 나는 아름답고 끝없는 성장의 가능성을 지닌 새로운 작업 방식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과장 없이 말할 수 있다. 나는 몇몇 거장들만이 꿈꾸었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으며 언젠가 사람들이 이를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okjun7878@naver.com
*글/전옥령. 문화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