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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지 《씨네 21》은 한국 대형교회의 폐단을 비판한 다큐멘터리 영화 <쿼바디스>의 김재환 감독을 인터뷰한 기사에 ‘목사 믿는 환자인가, 예수 믿는 신자인가’라는 촌철살인의 제목을 달았다.
영화 <쿼바디스>가 묘사하듯이 수천 억 원을 들여 지은 초호화 교회에서 수많은 신자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대형교회 목사가 있는가 하면, 시골의 작은 교회에 봉직하면서 개신교 차원의 ‘작은 교회 살리기 운동’에 오래 헌신해 오다 자기 교회 신자들에 의해 파리 목숨처럼 쉽게 쫓겨나는 목사도 있다.
신자가 200명도 채 안 되는 경기도 안성시 ㅈ교회에서 5년 남짓 시무(視務)해 온 ㅅ목사(55)는 최근 신자들에게 불신임을 받아 교회를 떠나게 생겼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인 이 지방교회는 1984년 P목사가 개척 한 뒤로 2004년 부임한 G목사 역시 2009년 12월17일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5년 남짓 만에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어 2009년12월17일 부임한 현임 ㅅ목사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목사직을 내놓아야 할 형편이다. ㅈ교회를 관할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경기남(南) 노회(老會)가 이 교회 신자 118명이 제출한 ‘목사해약(解約) 청원서’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교회는 교회법에 따라 운영된다. 목사의 채용과 해고(교회용어로 ‘위임’과 ‘해약’)도 교회법에 따른다. 교회법에 의하면 노회로부터 지(支)교회 담임목사로 위임받은 목사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그가 담임한 교회에서 70세까지 시무한다. 그러나 본인이 원해서 노회에 사면원을 제출하면 자유사면(즉 ‘의원면직’)이 된다. 이와 반대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그만두는 경우는 권고사면(즉 ‘권고사직’)이 된다. 교회법은 “지교회가 목사를 환영하지 아니하여 해약하고자 할 때에는 노회가 목사와 교회 대표자의 설명을 들은 후 처리한다”고 권고사면의 사유와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자, 그렇다면 ㅅ목사는 어떤 결격사유가 있기에 신자들에게 불신임을 받게 된 것일까. 언뜻 떠오르는 목회자 제척(除斥: 배제하여 물리침) 사유는 교회 돈을 빼돌렸거나 신자들에게 성 희롱을 하는 것 등이다. 이럴 경우 신자들의 신망을 잃어 목사직을 타의로 그만둘 수 있다. 그런데 ㅈ교회의 경우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사유를 들어 목사를 내보내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종(從)으로 ‘작은 교회 발전’을 위해 10년 넘게 헌신하며 안성시의 우리 작은 교회 키우기에 온 힘을 바쳐온 ㅅ목사님을 말도 안 되는 허물을 씌워 쫓아낸다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목사가 어디 있겠어요?”
ㅅ목사를 내치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ㅈ교회의 깨어 있는 성도 들이라며, 서울에서 내려간 종교 담당 기자들에게 “우리 교회 이야기 좀 들어 보세요”라며 답답하다고 가슴을 치며 내뱉는 하소연이다.
‘ㅅ목사 내쫓기’를 주동한 사람, 즉 ‘목사 해약 청원인‘ 대표는 장로 4명, 권사 1명, 안수집사 1명, 이렇게 6명이다. 이들을 포함해 모두 118명이 청원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청원인 대표로 이름이 올라 있는 장로 4명 가운데 ㅅ장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이름이 도용됐다’며 평택지방검찰청에 청원인 대표 5명을 형사 고소했다. 혐의는 ‘사문서 등의 위조·변조, 위조 사문서 등의 행사(行使)’다. 이 부분은 앞으로 수사에서 진상이 밝혀질 것이므로 수사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그렇다면 S장로가 참다못해 청원인 대표들을 고소한 것은 단지 S장로 자신의 명의가 ‘목사 해약 청원서’에 도용되어서만이었을까?
고소장을 읽어보면 정작 S장로를 분노케 더 큰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S장로가 고소장에 피고소인들의 ‘구체적 범행’이라며 적시한 다음 대목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피 고소인들은 ㅅ목사가 ㉮~㉵ 사유에 대하여 아무런 작성 권한 없이 고소인(=S장로)의 이름을 위 청원서(=목사 해약 청원서)에 기재하여 마치 고소인(=S장로)이 목사에 대한 해임에 동조하는 것처럼 위조하고, 청원서에 ‘000 안수집사 외 78명’이란 식으로 기재하여 고소인이 위 청원에 동의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꾸며 다른 교인들에게 서명을 받은 것입니다.”
이 대목에 주목한 필자가 ‘목사 해약 청원서’에 서명이 들어 있는 ㅈ교회 신자들의 진의(眞意)가 궁금해 ‘이 분들이 도대체 무슨 뜻으로 이 엄청난 목사 추방 연명부에 선뜻 서명했나’ 싶어서 교회를 직접 찾아가 사건 경위를 들어보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익명 전제로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A집사는 “교회 인명부를 작성한다고 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름과 주소, 그리고 전화번호를 적고 서명해 주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B집사는 “목사님을 쫓아내는 연명부라고 했으면 당연히 서명하지 않았겠죠. ‘목사 해약 청원서’를 보여 주면서 ‘이 서류에 찬동한다는 뜻으로 당신이 서명하는 것이다’라고 확실하게 서명의 의미를 알려 주었더라면 제가 서명했을 리가 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그런가 하면 C집사는 “D집사가 서명하기에 제가 ‘이게 무슨 용도로 서명하는 거냐?’라고 물었더니 ‘그냥 교회 구성원 인적사항을 파악하는 거야’라고 하기에 저도 ‘그렇다면 ’당연히 서명해야지‘라는 생각에서 얼른 서명했죠”라고 답했다.
F집사는 기자에게 목사해약청원서는 보지도 못했고 서명한 사실도 없다고 한다
이런 증언들을 종합해 보면 한 마디로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서명 수집 집단이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혼동을 신자들 사이에 발생시켰음을 너끈히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이 교회 모 장로는 기자에게 “‘ㅅ목사 축출은 법적으로 걸리일이 없다. ㅅ목사는 틀림없이 떠난다노회에서 이미 가는 것으로 됬다는 등” 풍문이 교회 안팎에 파다하다”고 기자에게 증언하고 있어 ㅅ목사 해임이 사전 각본에 따른 것임을 시사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작 의아한 것은 ㅅ목사가 어떤 사유로 ㅈ교회 신자들에게 미움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신자들에게서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소리를 듣게 되었느냐 말이다.
‘목사 해약 청원서’에는 ㉮에서 ㉵까지 모두 8가지 청원 사유가 적시되어 있다. △전체 성도(즉 ‘신자’)를 공평하게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목회를 독단적으로 운영하며 △당회가 문제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회의를 기피하고 △예산을 너무 아끼는 바람에 교회가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우며 △구역예배를 등한히 하고 △설교가 믿음이 되고 약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겁주기로 일관하며 △목사만 알고 있으라며 신도가 털어놓은 비밀을 설교 중에 누설하고 △본인 사례비는 철저하게 챙기면서 다른 교역자 사례비 책정에는 인색하다는 것이 8가지 청원 사유다.
“우리 마음에 들지 않으니 결별할 수밖에”라며 교회 간부들이 청빙목사(請聘牧師: 교회를 처음부터 개척한 목사가 아니라 이미 설립되어 있는 교회에 교인들의 청원에 따라 부임하는 월급쟁이 목사)를 ’괘씸죄‘를 적용해 내치는 것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부합하는가.
‘디모데후서’ ‘디도서’와 더불어 바울의 목회서신에 속하는 ‘디모데전서(前書)’는 에베소 교회의 나이 어린 목회자 디모데에게 바른 목회 지침을 알려주기 위해 바울이 옥중에서 기록한 서신이다.
디모데전서 가운데 신자들이 지켜야 할 자세에 관해 당부한 6장 3~5절은 이렇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작은 시골교회에서 목사가 전횡(專橫)을 하면 얼마나 할 것이며, 목사를 포함한 교회 전체 구성원들이 서로를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잘 아는 좁은 지역사회에서 목사의 전횡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목사가 미운 것이 아니라 목사를 제치고 간부들이 힘을 뻗으려는 것은 아닐까.
안성시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양성면의 미리내성지(聖地)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와 여러 성인들이 모셔진 곳이며, 일죽면의 일죽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기독교 신자들이 순교한 유서 깊은 기독교 성지다.
인근 대덕면의 작은 교회에서 신자들이 파당(派黨)을 지어 하나님의 충실한 종으로 일관해 온 당회장 목사를 내치려는 것을 두 기독교 성지에 모셔진 성인들은 과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