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병한 자연사상칼럼니스트 © 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
[노병한의 자연사상 코칭] 만유가 양(陽)의 기(氣)와 음(陰)의 질(質)로 만들어진 음양의 조화이듯이 물(水)도 음과 양으로써 발생한다. 그리고 하늘에서 기(氣)는 무형의 원기(元氣)로서 수소가 산소를 얻어 연소하는 과정에서 우주에 생기(生氣)를 불어 넣는 태양의 빛(光)과 열기(熱氣)에 의해서 움직인다.
반면에 대기(大氣)의 수소가 산소를 얻음으로써 땅에서 중생을 먹이고 살찌우는 대지(大地)의 생기(生氣)인 물(水)을 생산하는 것이다. 수소는 음(陰)이고 산소는 양(陽)이기에 이들이 만나면 발정(發情)을 하게 되고 이슬이 맺히듯 사랑의 이슬인 감로수(甘露水)로 변함이 자연이 담고 있는 섭리이자 이치의 출발점이다.
수소의 기(氣)를 물체로 변화시키는 조화(造化)는 태양의 빛과 열기인 화(火)에 있다. 변화의 원동력인 화(火)가 하늘에서는 태양으로서 작용을 하지만 화(火)가 땅에서는 산소로서 작용을 한다. 즉 대지와 만물은 하늘의 음수(陰水)와 양화(陽火)에 의해서 싹트고 자라며 결실을 맺는 것이다.
수소가 하늘에서 뭉치면 별(星)과 같은 은하수(銀河水)를 이루지만, 수소가 대기(大氣)속에서 어울려 집단을 이루면 구름(雲)이 형성되는데 이러한 구름이 비(雨)라는 물(水)을 만드는 자궁과 산모이고 또 원기인 것이다. 이런 비(雨)구름인 천수(天水)가 계수(癸水)라는 형태로 하늘에서 걸어 나와 땅에 이른다.
그래서 기(氣)를 수지모(水之母)라고 했음인 것이다. 이러한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골짜기에서 강으로 바다인 대양(大洋)으로 스스로 흘러가 모여서 뭉치고 천하의 모든 것들을 통일하여 독점하려는 함이니 이러한 점이 바로 물(水)의 본능이자 천성이라고 할 것이다.
북방은 해가 뜨지 않는 어두운 밤을 먹고사는 것으로 밤의 동물은 서생원(鼠生員)인 쥐(子)가 대표적인 상징 동물이다. 쥐는 밤눈이 밝아 밤이 되면 도둑질하는 것이 능사인데 밤이면 생기가 넘치고 무엇이나 닥치는 대로 훔치는 성정을 갖는다.
어둡고 가물거리는 북방수(北方水)를 현(玄)이라 하고 무기(武器)를 가지고 휴대한 호반을 무(武)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서생원과 도적은 그 가물거리는 현(玄)을 먹고산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현(玄)을 이용해서 사냥을 하고 도적질을 일삼는 자를 현무(玄武)라고 명명했음인 것이다.
그래서 남의 재물을 몰래 숨어서 도적질하는 서생원과 도둑 그리고 현무는 아주 흡사하다. 그래서 밤도적을 현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현무는 북방수의 대명사인데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엎드려서 살금살금 소리 없이 기어 다니는 것이 장기이다. 그래서 물은 언제나 땅에 엎드려서 기듯이 슬금슬금 흐른다.
이러한 북방의 현무는 어두운 밤이면 염탐꾼을 몰래 보내서 적진을 살피고 숨어서 기습을 하는 것을 유일한 병법(兵法)으로 삼는다. 즉 정정당당히 싸우는 게 아니고 적을 속이고 유인하며 위장하고 숨어서 등 뒤에서 뒤통수를 치며 무찌르는 비겁한 싸움을 최고의 전술로 삼는다. 이같이 밤이 아니면 상대의 허점을 치고 찌르는데서 비롯되는 현무술수의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손자병법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대체로 북에서 남으로 흐르듯이, 현무는 언제나 서북에서 동남으로 쳐들어오기 때문에 현무와 이웃하는 국가들은 모두가 서북방에 만리장성을 쌓듯이 성(城)을 쌓고 전쟁을 위한 진지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도적떼가 득실거리는 현무의 북방에는 대문(大門)과 같은 출입문을 내지 않는 이치가 바로 그러함에 있는 것이다. 이는 도읍의 성곽(城郭)이나 궁택(宮宅)이나 일반의 주택(住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북문(北門)을 설치해 두면 흉가(凶家)라고 해서 외면을 하는 이치가 거기에 있음인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현무의 본산이고 통로인 서북방을 봉쇄하는 성(城)을 가장 높고 길게 쌓은 것이 중국의 만리장성이다. 이렇게 진시황은 북방의 현무를 봉쇄하는 만리장성만 쌓으면 현무는 더 이상 침범할 수가 없고 진나라는 자자손손 튼튼하게 지켜질 줄 알고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현무는 성(城)밖이 아닌 성(城)안에서 진나라를 사냥했던 역사적인 경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물(水)은 흐르는 것이 천성이자 본능이므로 자유롭게 달아나듯 분류(奔流)하며 달려 나감을 추구한다. 그런데 추운 겨울은 물(水)을 꽁꽁 언 동사체(凍死體)의 얼음덩이(氷)로 만들어서 생수(生水)가 아닌 사수(死水)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물(水)이 추운 겨울(冬)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생수(生水)는 만물을 발생하고 먹이며 기르는 천하의 생기(生氣)로서 중생들이 반기고 즐기지만, 사수(死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로써 생기(生氣)를 살기(殺氣)로 만들고 얼어 죽게 하는 살생을 즐기므로 만물의 저주와 증오를 받는 대상이다.
이렇게 하루의 종말인 밤이나 1년의 종말인 겨울을 상징하는 북방수는 사람의 일생에 비유하면 인생의 노년기를 의미한다. 노년기에는 육신과 정신이 허약해진 상태이기에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본능적인 행동보다는 지능적이고 계략적인 작전이 더욱 필요한 시기라 할 것이다.
그래서 북방수는 대낮에 정면으로 대결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두 캄캄한 밤을 이용해서 이면과 옆구리 그리고 뒤통수를 기습(奇襲)하는 것이다. 이는 떳떳하지 못한 매우 비열(卑劣)하고 음흉(陰凶)한 권모술수이지만 늙고 병든 노년의 인생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음이다.
그러므로 북방수가 생존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길은 계속해서 지능, 지모, 술수로서 일을 처리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노년의 북방수를 지능, 지모, 권모, 술수, 작전, 참모로 상징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이다.
예컨대 인생의 삶 전체인 일생을 12단계로 분류한 12운성(運星) 중에서 병사묘(病死墓)에서 보여 지는 것처럼 노년의 북방수는 질병(病)과 무덤(墓)의 사이에 있는 죽음(死)의 상태에 있는 별(星)이다. 즉 죽음의 별인 사성(死星)은 육신을 쓰지 못하고 오로지 정신만으로 살아가는 정신적인 인생인 것이므로, 학술, 예술, 의술, 점술, 지식, 기술 등 순수한 머리로서만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늙고 병든 인생의 정신이 왕성할 수가 없기에 죽음(死)의 인생은 창의적인 능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단지 전통적이고 전수된 능력을 발휘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같이 죽음에 임박한 사(死)의 인생은 물욕과 집념에 담백하고 담담하여 철학과 종교를 더욱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북방수는 결코 그렇지가 못하여 물질적인 욕심이 많고 집념도 강열하며 아집이 강한 고집불통이 그 특성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늙고 병든 인생에서는 고도의 지능과 정신이 발휘될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북방수를 정신적인 지능과 술수를 창조와 개발하는 원동력으로 상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天)의 양기(陽氣)는 무형이지만, 땅(地)의 음질(陰質)인 물질은 유형으로서 모두가 형체를 가지고 있는데 그 형체는 하늘(天)의 기(氣)와 땅(地)의 만물(水)이 결합해서 이루어진 기(氣)와 만물(水)의 합동작품이기 때문인 것이다.
물(水)은 체(體)를 먹이고 살찌워서 형성하고, 기(氣)는 정신을 먹이고 살찌워서 형성한다. 정신은 체(體)를 기능으로 삼고, 체(體)는 정신을 작용으로 삼는다. 그래서 육체에 이상이 있으면 기능이 마비되고 기능이 마비되면 작용이 불가능하게 됨이다. 반면에 작용을 주관하는 정신에 이상이 있으면 기능을 조절하고 운전할 수가 없음이기에 기능이 대혼란을 일으켜서 치명적이고 커다란 이변이 초래되는 것이다.
천기(天氣)는 무한대이고 지물(地物)은 유한하여 부족하기 때문에 기(氣)를 먹고사는 정신은 늘 여유가 있지만 지물(地物)인 물(水)을 먹고사는 육신은 항상 부족한 상태라 할 것이다. 즉 여유가 있는 정신에는 이상이 있을 수가 없고 문제는 늘 부족상태인 육신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육신의 이상은 바로 물(水)의 공급부족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표면상으로는 정신은 기(氣)에서 발생하고 육신은 물(水)에서 발생하는 이원적인 차원과 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신과 육신 모두가 물(水)의 생산과 연소로서 삶(生)을 유지하고 있는 물(水)의 화신(化身)이고 작용인 것이다. 그러므로 물(水)가 정신과 육체의 원동력인 것이다.
그리고 기(氣)가 정신을 형성하고 물(水)은 체(體)를 형성하며, 정신작용은 피(血)의 질량에 정비례하기 때문에 피(血)가 정신을 발생하고 작용시키는 정신의 모체이고 원동력인 것이다. 그래서 물(水)이 왕성한 자는 정신력이 왕성하고 물(水)이 빈약한 자는 정신력이 빈약한 것이다.
태양의 빛과 열기인 화(火)를 먹고 사는 정신은 태양과 더불어 눈을 뜨고 작용하며 눈을 감고 휴식을 한다. 해가 뜨면 정신의 창문인 눈(眼)도 함께 뜬다. 태양의 빛과 열기가 정신의 음식이고 원기인 것이다. 봄가을(春秋)은 태양의 빛과 열이 적당하고 서늘하기에 정신이 과식하지도 굶주리지도 않음으로 정신이 가장 안정되고 활기가 있으며 즐거운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태양의 빛과 열기가 너무 왕성한 무더운 여름(夏)에는 정신이 지나친 섭취로 인하여 늘 과식과 포식상태가 되어 위장기능의 상실이나 무기력상태에 빠지는 등 기진맥진의 녹초가 되기 십상인 것이다. 한편 태양의 빛과 열이 빈약하고 부족한 추운 겨울(冬)에는 정신이 필요로 하는 원기가 부족하여 굶주린지라 기진맥진하여 의욕이 없게 되고 꼼짝하기를 싫어하는 양상이 나타나게 된다.
물(水)은 북방과 겨울(冬)에는 왕성하지만 남방과 여름(夏)에는 허약함이 그 특징이다. 물(水)은 모든 물이 하나로 뭉치는 바다(海)가 이르고자하는 소망이고 지상목표이기 때문에 수왕자(水旺者)는 천하를 통일하고 독점해서 다스리려하는 함이 유일한 소망이고 평생의 뜻이다.
그래서 타고난 사주에 물(水)이 왕성한 사람은 정신력이 왕성해지기 때문에 욕심과 뜻이 태산처럼 커지고고 높아지게 된다. 이는 물(水)의 물리적인 작용과 함께 물(水)에서 태동되는 정신력의 왕성함에서 발동되는 통일과 독점의식의 지능(知能)작용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타고난 사주에 물(水)이 빈약한 자는 아무리 천재라고 하여도 큰 뜻과 욕심을 갖지도 못하고 이룩하지도 못함이 일반적이다. 무엇보다도 대업을 이루려면 지구력이 왕성해야 하는데 지구력이란 불꽃을 오래 오래 연소시킬 수 있는 물(水) 즉 기름(油)의 능력이기 때문인 것이다. 모든 경쟁과 투쟁은 지구력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지구력이 강하면 끝까지 싸워서 이기지만 지구력이 약하면 얼마 가지 못하고 지쳐서 쓰러지고 포기하여 패배하는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水)이 왕성하면 천리만리 길게 흘러가서 대강수(大江水)나 대양(大洋)을 이룰 수가 있지만, 물(水)이 빈약하면 10리(里)도 못가서 적에 비유되는 흙(土)에게 흡수되어 먹히고 사라지게 되는 이치와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물(水)의 흐름은 물(水)의 생명이고 본능이지만 물(水)의 멈춤은 물(水)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나 생명체의 정신력은 두뇌에서 발생하는 머리의 능력이 아니고 물(水)에서 발생하는 전력(電力)인 것이고 수력(水力)인 것이다.
따라서 정신력과 지구력은 물(水)의 질량에 정비례한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고난 사주원국이 <천재(天才)이지만 수약(水弱)하고 수허(水虛)한 사주일 경우에는 큰 뜻을 품어도 이루지 못할 미완성>의 인생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수(水)의 확실한 보강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머리 좋고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되는 경우를 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한편 수토(水土)의 관계는 상대가 허즉동지(虛則同志)이고 상대가 왕즉적군(旺則敵軍)이라 비유할 수 있다. 예컨대 물(水)이 흙(土)을 만나면 흐름을 멈추고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에 중앙토(中央土)는 물(水)의 무덤(墓)이다. 이는 흙(土)이 물(水)을 집어삼키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항상 물(水)이 흙(土)에게 먹히는 것만은 아니다.
다시 말해 물(水)이 뭉쳐서 강을 이루면 거꾸로 흙(土)을 휩쓸고 무너뜨리며 주름을 잡게 된다. 그리고 흐르는 물을 막아서 가두면 거대한 호수가 되고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마침내 넘쳐서 무서운 홍수를 이루는데 홍수는 대지를 물바다로 만들어서 휩쓸게도 된다.
그러나 물(水)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역시 흙(土)이다. 그래서 토(土)와 수(水)는 서로가 상대방이 두려워 견제하면서 힘을 기르고 대비를 한다. 이렇게 토(土)와 수(水)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면서도 항상 대립과 상극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이다.
그렇지만 늘 선수(先手)를 먼저 치는 침략자는 북방수이다. 그래서 토(土)는 수(水)를 이용할 뿐 수(水)와 짝이 되거나 공존할 수는 없는 사이인 것이다. 즉 토(土)가 커지면 수(水)를 집어 삼키고, 수(水)가 커지면 토(土)를 휩쓸어 무너뜨린다.
이렇게 토(土)와 수(水)는 서로가 늘 다정한척 하지만 서로가 비대해지고 강대해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두려워하는 사이인 것이다. 토(土)는 태산처럼 우뚝 서서 움직임이 없지만 수(水)는 땅을 기는 밤도둑처럼 침투의 야욕을 쉼 없이 추구하는 성정을 갖는다.
따라서 토(土)와 수(水)는 同志(동지)이면서도 적군(敵軍)인데 적과 동지는 이해가 같으면 동지이고 이해가 상반되면 적인 정치논리와 동일한 것이다. 즉 토(土)와 수(水)의 관계에서 적과 동지의 판단기준은 사상(思想)이 아니고 비즈니스의 이해(利害)관계의 개념이다. nbh1010@naver.com
□글/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원장)/자연사상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