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31일 오전 부산 수영구 남천성당에서 모친 고 강한옥 여사 운구를 따르며 눈물을 닦고 있다. 왼쪽은 김정숙 여사. ©뉴시스 |
공병우 박사는 지난 1995년 3월7일 사망했다. 필자는 공 박사와 잊지 못할 인연이 있었다. 공 박사는 3벌식 한글 타자기를 발명, 보급했던 한글과학화의 선구자였다. 공 박사는 1980년대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머물며 컴퓨터 한을 글자판을 연구하고 있었다. 필자는 당시 뉴욕 맨해튼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매주말 공병우 박사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메킨토시 컴퓨터로 한글 글자꼴을 창안해내기 위해서 였다. 오늘날 보편화된, 한글 글자꼴 연구의 첫 출발이었다. 공 박사와 그 제자들의 노고로 오늘날 한글 글자꼴이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게 됐고, 한글의 번성기를 맞이했다, 이처럼, 공 박사는 한글 과학화에 기여했던 선구자적 인물이었다.
그런데 공 박사는 허례허식을 매우 싫어했다. 모든 것을 아끼고 또 아꼈다. 두 겹으로 된 화장실용 화장지의 반쪽을 잘라 쓸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다. 사체(死體)는 의과대학생들의 해부용으로 사용토록 하라고 유언했다. 가족들은 그 분의 유언을 그대로 지켰다. 한참 후에야 그분이 사망했음을 알렸다. 장례식에 많은 사람들을 모이도로 하는 것 자체를 허례허식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허례허식을 실천한 분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인 강한옥 여사가 사망, 지난 10월31일 안장식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개인 페이스 북에 “어머님의 신앙에 따라 천주교 의식으로 가족과 친지끼리 장례를 치르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의 조의를 마음으로만 받는 것을 널리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청와대와 정부, 정치권에서도 조문을 오지 마시고 평소와 다름없이 국정을 살펴주실 것을 부탁드리겠습니다”고 알렸다.
문 대통령의 위치로 봐, 모친 장례식에 조문을 허락했다면 어찌 됐을까? 수많은 조문인파가 몰렸을 것으로 상상이 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저희 어머니가 소천하셨습니다. 다행히 편안한 얼굴로 마지막 떠나시는 모습을 저와 가족들이 지킬 수 있었습니다. 평생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셨고,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처럼 고생도 하셨지만 ‘그래도 행복했다’는 말을 남기셨습니다”고 전하면서 ”41년 전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신 후 오랜 세월 신앙 속에서 자식들만 바라보며 사셨는데, 제가 때때로 기쁨과 영광을 드렸을 진 몰라도 불효가 훨씬 많았습니다. 특히 제가 정치의 길로 들어선 후로는 평온하지 않은 정치의 한복판에 제가 서 있는 것을 보면서 마지막까지 가슴을 졸이셨을 것입니다. 마지막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당신이 믿으신 대로 하늘나라에서 아버지를 다시 만나 영원한 안식과 행복을 누리시길 기도할 뿐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청와대, 정부, 정치권 등에도 조문을 오지 말아달라고 요망했다. 단출한 장례식을 치른 것이다.
역대 정부는 그 동안 허례허식이 다분한 결혼식, 장례식 등에 대해 자제를 요망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돈이 많이 들어가는 호텔 결혼식, 많은 조문객을 받는 번잡한 장례식 등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이 사망했을 시, 장례식-안장식장에 일부러 조문을 하러 갔다가 참석을 못한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문재인 대통령 모친 장례식장에서 청와대 경호원들에 의해 쫓겨난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 모친의 사망과 관련, 가족끼리의 단출한 장례식-안장식은 우리 사회가 본받을 만하다. 사회 전반적으로, 널리 벤치마킹이 되었으면 한다.
가장, 조용한 장례식을 치르게 한 고 공병우 박사가 그립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