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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유학자 간재(艮齋) 전우(田愚) 선생의 '초상화(사진)'가 부안군에 기증됐다.
전북 부안군은 "지난 9일 부산에 거주하는 전씨와 그 어머니인 정씨에게 집안대대로 물려받은 '간재 초상화'를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이 초상화는 어진 화가로 알려진 채용신 화가의 1911作으로 판단되며 간재 전우 선생의 70歲像상이다.
특히,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학술가치가 높은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전씨는 "간재 전우 선생의 후손으로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초상화를 어머니 결정으로 기증하게 됐다"며 "부안은 간재 전우 선생이 수많은 제자들을 키운 간재 선생 유지(道 기념물 제23호) 등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선생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는 기탁 배경을 표명했다.
이번 기증식은 전씨와 어머니의 요청에 따라 부안군청 3층 군수실에서 간소하게 이뤄졌다.
권익현 부안군수는 "문화유산의 아름다운 공유를 몸소 실천한 숭고한 뜻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잘 보존하겠다"며 "기증받은 초상화는 학술연구를 통해 문화재로 지정하는 등 새롭게 건축될 부안역사문화관 및 간재 선생 유지에 전시해 관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약속한 뒤 기증패를 전달했다.
한편, 간재(艮齋 = 1841-1922) 전우(田愚) 선생은 전북 전주 출생으로 조선말 거유였던 신응조의 권유로 아산의 임헌회를 직접 찾아가 사제의 의를 맺었으며 1882년(고종 19) 선공감감역 ・ 강원도도사 ・ 1894년 사헌부장령 ・ 이듬해에는 순흥부사 중추원찬의에 제수됐으나 이를 거절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소를 올려 '을사조약에 서명한 대신들을 죽여야한다'고 주장했으며 1910년 한일합병 이후 비분을 참지 못하고 제자들과 상의해 '마침내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간다'는 공자의 뜻에 따라 해도로 들어갔다.
간재 전우 선생은 1908년 부안군 북왕등도에 구인암을 세우고 학생 등을 가르치다가 1909년 신시도로 옮겨 안양서실과 완고당을 세웠다.
1912년 다시 계화도에 정착해 계양서원과 간재정사를 짓고 1913년 이주했으며 1934년 계양사를 짓고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고 있다.
부안군은 조선말기 유학자 간재 전우 선생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매년 계양서원에서 향사 제례를 봉행하고 있다.
이 향사 제례는 간재 전우 선생 선양사업회가 주관하고 있다.
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 전북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