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2016년 '촛불혁명'의 비교

촛불혁명 목적에 '외세에 의해 고착된 민족분단의 극복'이 포함돼 있다면?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20/09/09 [17:59]

혁명(革命)이란, 그 어떤 혁명이든지 기존체제를 깨 부시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인류역사에는 수많은 혁명이 있어왔다. 유명한 혁명일수록 희생자 수가 많다는 게 특징이다. 자유 평등 우애를 기치로 내걸었던 프랑스 시민혁명(1789.7.14.-1794.7.28.)에서는 45만명 정도가 희생됐다. 혁명 기간,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우리나라 역사 이래 최대 규모였던 동학농민 혁명은 1894년에 일어났다. 100만명 정도가 이 혁명에 가담했고, 사망자는 10만명으로 추산됐다. 동학농민혁명의 목적은 봉건적 신분제 타파였다. 외세배격도 한 목적이었다. 이 혁명에서는 귀족이 타도 대상이었다.

 

그런데 민중이 주도하는 혁명이 일어났다고 해서 금방 혁명의 목적이 달성되는가? 결코 아니다. 군사용 살인무기인 총칼을 앞세운 군사혁명을 빼고는 그러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동학혁명의 리더였던, 동학농민군 대장인 전봉준 동상. ©브레이크뉴스

 

우리나라의 농민혁명인 동학혁명은 경우, 연구가 많이 진행돼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규모가 큰 민중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민중운동인 동학혁명은 올해로 126년째.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에 발생했다. 긴 기간이 흘렀다. 그러나 외세배격 등의 목적은 아직도 성취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동학혁명은 지금도 진행형일 수 있다.

 

▲녹두장군  전봉준(왼쪽에서 3번째)이 체포된 장면(1894년 12월). 동학농민혁명의 최선봉에 섰던 전봉준 녹두장군은 최후진술에서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내 피를 뿌려주는 것이 옳거늘, 어찌 남 몰래 죽이느냐라는 유언을 남겼었다.  ©브레이크뉴스

역사학자 이이화는 “동학농민운동(2012 간, 사파리 출판사)”이라는 책에서 동학농민운동의 실패-성공을 논했다. 그는 이 책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은 일시 또는 단순 가담자를 포함해 100만 명 이상, 사망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당시의 인구가 대체로 봉기 중심지역인 남도를 기준으로 1500만 명이 조금 넘는다(1910년의 경우 1742만 명 추정)고 볼 때 엄청난 숫자”라고 서술하면서 “농민군이 지향한 세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를 실패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한 혁명은 세계사를 통해 1시대 이루어지는 예가 없었다. 프랑스 혁명이 그 좋은 보기일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이상인 자유-평등-박애는 100여 년 이상 꾸준히 추구해 왔다. 비록 실현되지 못한 역사였으나 그들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시대정신은 우리의 유산일 것이다. 오늘날 양반 상놈이 있는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귀족의 특권을 인정하는 봉건적 신분제는 완전하게 사라졌다. 오늘날 소작료를 가혹하게 착취 하는 지주가 있는가? 대지주는 없어졌고, 따라서 소작관행도 사라졌다. 그래서 보면 농민군의 이상은 실현된 것”이라 평가했다. 그는 “시대정신이 우리의 유산”이라고 언급, 프랑스 시민혁명-동학 농민혁명도 진행형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최선봉에 섰던 전봉준 녹두장군은 최후진술(1895년)에서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내 피를 뿌려주는 것이 옳거늘, 어찌 남 몰래 죽이느냐라는 유언을 남겼었다.

 

▲ 제5차 범국민행동의 광화문 촛불집회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16-2017년 대한민국에서 진행됐던 일명 '촛불시위' 또는 '촛불혁명'은 어떤 혁명이었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이라는 정권 투쟁 운동을 가리켜 '촛불혁명'이라고 불러왔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촛불시위를 주도했다. 시위 참석자들이 촛불-횃불을 들고 참여, 언론이 촛불시위라고 명명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촛불혁명(촛불혁명(촛불革命)'이라고 언급했다. 시위는 2016년 10월26일 시작, 2017년 4월29일까지 지속됐다. 23차까지 토요 시위모임이 진행됐다. 주최측 집계로는 이 기간에 16.894.280명이 시위에 가담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촛불혁명이 성공한 결과 박근혜 정권이 탄핵되어 정권이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었다. 그 근저를 보면, 청와대 바깥인물들의 국정간섭이 탄핵의 빌미였으나 보수세력들의 국정농간을 타도하는 것이었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은 북한 금강산 관광중단, 개성공단 가동중단, 한반도 남북 간 전쟁위기감 고조 등의 노선을 걸었다. 이의 타파가 목적이었다. 당시 누적인원 16.894.280명이 참가한 대규모 촛불시위를 가리켜 '촛불혁명'이라고 칭한다면, 그 후속조치 면에서는 혁명적 상황이 전개되진 못했다.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들 다수는 문재인 정권 초기는 장밋빛 환상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국내외 정세는 '촛불혁명'으로 명명된 무혈혁명을 혁명답게 수용하지는 못했다. 프랑스 시민혁명-동학 농민혁명의 예(例)처럼, 수백년을 두고 그 혁명목적의 현실화를 위해 분발해야 할 시대정신이 요구된다. 분명코, 근년에 벌어졌던 '촛불혁명' 이후의 과정을 보면서 크게 실망하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임기 말이 가까이 다가오는 즈음에서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의 지지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촛불혁명의 목적에 '외세에 의해 고착된 민족분단의 극복' 등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 목적의 달성 시까지, 깨어 있어야만 할 것이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