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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는 꿈속에서도 초심망각해선 안돼

수행자가 되어 악업(惡業)만 지어 하산하는 사람들

이법철 스님 | 기사입력 2008/09/17 [15:37]
나는 가끔씩 출가위승(出家爲僧)하려 한다면서 길을 묻는 젊은 처녀총각을 만나 대화할 때가 있다. 또 출가 입산하여 소정의 행자생활을 마치고, 사미계(沙彌戒)를 받은 승려와, 마악 비구계(比丘戒)를 받은 젊은 남녀 승려들을 만나면, 그들에게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 때마다 나는 언제나 “초심(初心)을 망각하지 말라”는 대답을 해줄 뿐이다. 어느 승려이던 처음 승려가 될 때의 각오, 즉 초심이 있기 마련이다. 초심이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변해도, 금강과 같이 변하지 않는다면, 각(覺), 불각(不覺)은 논외로 치더라도 비구승으로 산사에서 열반종을 맞이할 수가 있다고 확언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초심을 잃은 승려들의 이야기를 교훈적이면서 통석의 마음으로 회고한다.

나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승려생활 40년이 넘은 종사(宗師)급의 승려이다. 나의 이제부터 이야기는 허위날조가 아닌 절실한 체험담이다. 1960년대 중반을 갓 넘어 나는 출가본사인 전북 고창 선운사를 떠나 대장경(大藏經) 공부를 위해 합천 해인사를 찾았다. 그 무렵 나는 세 명의 승려를 해후(邂逅)했다.
 
▲이법철   스님
 한 명은 당시 해인사 총무인 h스님이었다. 그는 40대 중반이었고, 호걸풍의 승려로서 당시 해인사 주재 정보과 형사와 친해서 정보과 형사의 권총을 빌려 자신이 소지하며, 우리들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다른 한 명은 초짜의 승려로서 나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는 경상도 출신으로서 훤칠한 키에 부리부리한 눈, 미남승려였다. 그는 해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j큰스님의 상좌였다. 그의 법명은 예의상 밝히지 않고, s스님으로 호칭한다. 나머지 한 명은 해인사 산내암자인 h암의 비구니다. 그녀는 170cm쯤 되는 키에 파르라니 삭발한 머리이지만, 절세미인같은 미모였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6-27세 쯤으로 기억한다. 그녀의 법명도 밝히지 말자. e스님으로 호칭한다.
 
e비구니스님의 미모는 해인사 산내 암자 뿐이 아닌 관광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e비구니스님의 얼굴을 보고 싶고, 말을 걸기 위해 해인사 학인들은 물론 관광객까지도 기회를 엿볼 지경이었다. 1학년 초짜인 나역시 소문을 듣고 확인하기 위해 점심공양이 끝난 직후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e비구니스님이 살고 있는 h암자를 찾았다. 철철철 넘쳐나는 h암자의 수각(水閣)에 바가지가 놓여있어 내 스스로 물을 떠먹으면 될 것을 괜스리 큰소리로 주인을 찾았다. 그러면, 절세미인 같은 e비구니스님이 방문을 열고 만면에 은은히 미소를 머금고 나타났다. 천녀유혼(천女幽魂)에 나오는 왕조현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미인이었다. 그녀는 은은히 웃으면서 나에게 정중에게 물었다.
 
“웬일이신가요?”나는 내심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무뚝하게 이렇게 말했다.
“물좀 주쇼.”

그녀는 내속을 환히 들어다보면서도 바가지가 아닌 성의 있게 쟁반위의 그릇에 물을 담아 건네주었다. 물을 마시는 내게 그녀는 은은히 웃으며 목례를 하고 사라진다. 솔찍이 나는 두 번이나 물을 얻어먹었다. 세 번째는 양심의 소리가 나를 후려쳐서 못갔다. 나뿐이 아니었다. 승속을 막론하고 물을 핑계하여 그녀를 불러내어 말을 걸어보려 시도했으나 언제나 그녀는 물만 내주고는 은은히 웃으며 자기 방으로 사라져버렸다. 승속의 수작을 뻔히 알면서 그녀는 절대로 짜증을 내는 얼굴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미모를 보면서, 전생에 공덕을 많이 쌓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중국의 어람관음(魚籃觀音)같은 미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s스님은 강원공부를 포기했다. 선원에 가서 참선공부도 하지 않았다. 해인사 밑 사하촌(寺下村)인 신부락에 출입이 잦았다. 신부락은 여관과 식당과 술집과 다방이 있는 유흥가였다. 당시만 해도 신부락에는 한복 입은 술집 접대부 아가씨들이 수십명이 거리에 나앉아 오가는 관광객들을 향해 호객을 했다. 장난기 있는 아가씨들은 오가는 승려들에게도 수작을 걸었다. 불러놓고는 술잔을 집어 입에 털어넣는 행위를 해보이며 “원효대사처럼 곡차 한 잔 어때요?”승려의 얼굴이 벌개지면 아가씨들은 와그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당시 어느 승려는 밤중에 술집을 찾았다. 한복 입은 아가씨들이 칙사(勅使) 대접하듯이 했다. 그 승려는 술 고기를 몽땅 먹고 연방 트림을 하면서 자리에서 빈손으로 일어났다. 아가씨가 손바닥을 승려의 코앞에 드리밀었다. 술값을 달라는 소식이다. 돌연 그 승려는 아가씨에게 화를 내어 이렇게 크게 꾸짖었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성현의 말씀을 잊었는가!”

어둠속에 사라지는 그 승려를 보고, 술값도 없고 팁도 없어 분해하는 아가씨를 주인 노파는 달래면서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저 정도 뱃장이면 분명 조계종 총무원장감이다.”

s스님에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해인사의 관운(官運)이 왔다. 새로이 임명된 해인사주지스님이 그를 해인사 재정을 총괄하는 재무로 임명한 것이다.
 
해인사는 총림(叢林)이다. 불교종합수도원이라는 뜻이다. 총림이라는 용어는 중국불교에서 따온 것이다. 총림의 최고수장은 방장(方丈)스님이다. 해인사 주지는 방장스님이 지명하여 대중에 선포하면 주지가 된다. 당시 해인사 방장은 이성철 큰스님이다. 이성철방장이 지명한 새로운 해인사주지는 일생을 참선공부로 일관하는 훌륭한 선승이었다. 그는 해인사주지가 되었지만, 사무에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었다. 오직 면벽참선하여 대각(大覺)을 희구할 뿐이었다. 주지스님은 s스님을 재무로 발탁하고, 아예 주지 직인(職印)을 맡기며 이렇게 말했다.“난 자네를 믿네. 청정한 공심(公心)을 갖고 해인사 살림을 잘해주기 바라네.”
 
그는 참선만 하는 선승이어서 역대 해인사 재무의 10%가운데 6%가 공금 횡령하여 환속한다는 통계를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복있는 승려는 있기 마련이다. 복 있는 승려는 강원이나 선원에 있어도 첫째, 은사스님이 용돈을 두둑히 주던지, 둘째, 여신도들이 학비와 용돈을 보시해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복이 없는 나는 은사의 학비를 기대할 수 없고, 여신도는 전무하여 보시를 받을 수가 없었다. 공부하는 책의 대다수는 선배에게 절하며 애걸복걸하여 책을 빌려 공부하였고, 나마지 책값은 탁발을 하여 간신히 충당하는 형편이었다. 또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매 끼니 소금절인 김치와 서홉 밥으로는 허기가 지고 힘이 없어 말이 목안에 맴돌 지경이었다. 별 수 없이 자급자족을 한답시고 한밤중에 해인사 담을 남몰래 월장(越牆)하여, 해인사 밑 비구니스님의 암자인 삼선암, 약수암, 금선암 등의 밭에서 비구니스님이 애써 씨 뿌려 가꾼, 감자 등을 닥치는 대로 수입을 잡아먹어 삼켰다. 그것은 몹쓸 자급자족이어서 오래지 않아 부처님께 참회하고 중단했다. 나는 애써 허기를 참으며 부지런히 경문을 읽을 뿐이었다. 이러한 내 모습을 본 s스님은 한심하다는 듯 노골적으로 비웃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신부락을 들락가리던 s스님이 마침내 대형사고를 쳤다. 주지직인을 가지고 해인사를 잘 모르는 제재소 사장에게 해인사 산인 가야산 전체의 소나무를 팔아먹는 계약을 체결해버린 것이다. 독자 여러분이 해인사를 찾으면 해인사 입구에서부터 소나무군(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암괴석 사이에 울울창창한 소나무는 전국 어느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경치의 장관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소나무 전체를, s스님이 해인사 주지스님이 면벽하면서 맡긴 주지직인을 찍어 매각해 버린 것이다. 제재소 사장은 s스님이 현직 해인사 재무가 확실하고, 주지로부터 위임을 받았다는 주지직인이 선명하게 찍힌 위임장과 주지직인을 확인하고서 계약체결 후 수억의 돈 가방을 s스님에게 건네주고 말았다.
 
돈 가방을 받은 s스님은 해인사에서 하룻밤 사이에 홀연히 사라졌다. 그러나 신부락 s스님의 단골다방의 마담 입을 통해 s스님은 그 다방에 일하는 20대 초반의 미모의 아가씨와 함께 떠났다는 소식이 마을을 거쳐 해인사까지 메아리쳤다.
 
s스님의 사건은 금방 드러났다. 해인사 소나무를 벌채하기 위해서 몰려온 제재소 사장과 인부들에 의해 사건의 전모는 해인사 승려들 모두에게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훌륭한 선승인 주지스님은 책임을 지고 사직했다. 새로운 주지가 사태수습에 나섰다. 해인사 역사상 재무가 가야산 전체의 소나무를 불법 매각한 사건은 전무후무할 사건일 것이다. s스님은 그 후 돈 가방과 아가씨와 함께 자녀를 낳고 행복한 대단원의 막을 내렸을까? 인과응보는 행복하게 해주지를 않았다. 어느 날, s스님은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후회가 가득한 참회문이었다.
 
<전략, ―“김양에게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여생을 행복하게 살자고 말했지. 그녀는 돈 가방을 보기 전에는 미심쩍어 하드구먼. 그녀는 직접 눈으로 돈 가방을 확인한 후에는 승낙했다네.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고 수없이 말했지..., -각설하고, 해인사가 다시 나를 받아줄까? 나는 이제 해인사로 돌아갈 수도 없는 수배자 신세가 되었네. 후회해본들 무엇하겠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과응보가 아니겠나? 가난기가 줄줄 흐르면서 책만 보는 자네를 무척 비웃었지. 이제 자네가 부러워 죽겠네. 한 번 뿐인 인생,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인과에 떨어졌네.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나는 책임을 지기 위해 저 세상으로 가려네. 제발 나를 용서해주게….”>

s스님과 마지막으로 만난 대구시에 사는 모 승려의 후일담(後日談)이다. s스님은 여관방에서 다방레지 김양과 백년해로를 약속했다. 기뻐하는 그에게 김양은 술을 몽땅 주었다. 그가 술을 진탕 마시고 재미를 보고나니 녹초가 되어 골아 떨어졌다. 그가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을 떠보니 돈 가방도 그녀도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속은 것을 알고 김양에게 돈 가방을 찾으려 미친듯이 헤맸다. 그러나 그녀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절망했다. 그는 대구시 수성구에 있는 수성관광호텔 앞 수성 연못에 투신 자살 했다. 그의 죽었을 때의 모습은 양심의 발로인가, 승복이 아닌 작업복을 걸친 알머리였다.

그 이전, h암자의 절세 미인같은 e비구니스님이 홀연히 사라졌다. 실종되었을까? 어느 속인이 납치를 해버렸을까? 어람관음(魚籃觀音)처럼 승천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어느 놈이 개인적으로?… 나쁜 놈 같으니 대중이 바라보게 그냥 두지 혼자 독차지 하려고 음모를 꾸몄구먼. 나외에 다수의 승려들이 아쉬움 속에 투덜거리며 e비구니의 사라짐을 통석해 했다. 그 사건은 h암자의 원주(院主)인 노비구니의 입에서 전모가 밝혀졌다. e비구니는 납치, 실종, 승천한 것이 아니었다. e비구니를 h암자에서 사라지게 한 주범은 앞서 언급한 해인사 총무를 지낸 호걸풍의 승려로 밝혀졌다. 호걸풍의 승려가 해인사에서 남몰래 부정으로 공금횡령를 해서 한밑천 챙겨 e비구니의 손을 잡고 함께 환속했다는 것이었다. e비구니스님은 여생을 행복한 대단원의 막을 내렸을까?
 
세월이 강물처럼 흐르고 난 뒤 어느 승려가 눈으로 그녀를 확인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호걸풍의 환속 자는 절세 미인같은 그녀의 자궁 깊이 자녀를 심어놓고는 암(癌)으로 일찍이 황천으로 떠나갔다는 것이다. 어람관음(魚籃觀音)같은 그녀는 황천으로 간 늙은 남편이 병으로 돈을 탕진했기에 생계를 위해 서울의 변두리 다방에서 마담으로 활약하더라는 것이다. 그녀는 얼굴에 화장품으로 도배를 하듯이 하고 남자들 옆에 앉아 남자 팔을 끼고서 콧소리를 내며 차한잔을 더 팔려고 화냥기를 잔뜩 부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마치 새끼를 가진 굶주린 암캐가 새끼에게 줄 젖을 만들기 위해서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정신없이 쩝쩝 삼켜대듯이,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매소부(賣笑婦)도 사양치 않을 신세로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제행무상이요, 또 하나 청춘극장(靑春劇場)의 서글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앞서 세 명의 승려들이 초심을 망각하지 않고, 올바른 수행자로서 깨달음을 얻어 광제중생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통석한 일이 아닌가? 왜, 그들은 인생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일까?

나는 불문에 들어오려고 원력을 세우는 남녀들과, 이제 시작하는 초짜의 사미, 사미니, 초짜의 비구, 비구니에게 선배로서 간절하게 이렇게 훈계한다.
 
“수행자가 되었으면 꿈속에서도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초심을 잃고, 스스로 지은 인과의 고통에 떨어지지 않는 인생을 살기 바란다."

몽환(夢幻)과 같은 세상에 진실한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돈을 떠난 진실한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가문과 학벌, 미추(美醜)를 초월한 진실한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몽환속에 불변하는 진실한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스스로 자살하여 유음(幽陰)의 세계로 떠난 장국영이 남긴 노래처럼 몽환속의 진실한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오래전 남한강 강가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응시하며, 몽환과 같은 속세에 진실한 사랑이 있다는 것에 회의적인 생각을 했다.
 
원각경(圓覺經)에 부처님은 이 세상 일체가 환(幻)이라고 했다. 환인줄 알면 깨달은 것(知幻卽覺)이라 했다. 속세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수행자는 환상에 속아 초심을 망각해서는 절대 아니될 것이다. bubch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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