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동연 작가. ©브레이크뉴스 |
소설 삼별초의 등장 인물
-김통정: 몽골의 고려지배에 항거한 삼별초의 장수. 백제의 유민 양수척 출신으로, 제주 붉은 오름에서 여몽 연합군에 맞서 마지막까지 싸운다.
- 혜성: 궁녀와 유력 귀족 사이에 태어나 어릴 때 백련사로 보내져 비구니가 된다. 환속해 달래라는 이름으로 삼별초에서 활동한다. 김통정의 연인.
- 배중손: 진도 출신의 삼별초 지도자. 원종의 개경환도 어명을 거부하고 강화도에서 진도로 도읍을 옮겨 조 고려 건국을 주도한다.
- 자운선 :양수척 출신으로 김통정의 어머니.
-승화후 온 :고려 제 8대 황제 현종의 후손. 삼별초의 추대로 조고려의 황제에 오른다.
-최충헌 : 이의민에 이은 고려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 이의민을 제거하고 60년 최씨 집권의 막을 올린다. 김통정의 어머니 자운선을 첩으로 들인다.
-김윤성 : 말을 잘 다루어 이의민의 가노가 되었다가 최충헌 밑으로 들어가 집사 노릇을 한다. 같은 천민 출신인 자운선을 보살핀다.
-최우 : 최충헌의 아들. 최씨 정권의 사병이자 삼별초의 모태인 야별초를 만든다.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하기 직전에 최이로 개명한다.
-최항 : 개경 기생 서련방과 최우 사이에 태어나 승려로 지내다가 아버지의 권력을 이어받는다. 초명은 만전.
-최의 : 최씨 무신정권의 마지막 집권자. 최항의 아들.
김준 : 최충헌의 가노 김윤성의 아들. 김통정을 중용했으며, 최씨 정권을 쓰러뜨리고 집권한다. 군권을 제외한 인사권, 재정권 등을 고종에게 돌려준다.
-임연 : 양 아버지인 김준을 배신하고 무신 정권 최고 자리에 오른다.
- -임유무 : 임연의 아들. 원종의 밀명을 받은 송분의 구왕단에게 제거됨으로써 고려 무신정권의 마지막 권력자가 된다.
간다, 못 간다.
“비겁한놈.”
“나쁜 자식. 저런 놈이 왕이라니.”
강화도 섬 전체가 웅성거렸다. 마을마다 나 붙은 방문(榜文)에 적힌 왕명 때문이었다.
“모두 개경으로 환도하라.”
이미 달포 전부터 몽골에 간 원종(元宗)을 두고 해괴한 소문이 떠돈 터였다. 고려왕 원종이쿠빌라이칸(忽必烈汗)앞에 엎드려 몽골 황녀를 며느리 삼게 해 달라고 간청했을 뿐 아니라, 몽골군을 증원해 강화도까지 점령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소문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모두 사실로 드러났고, 결국 환도 명령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차라리 왕이 없는 게 나아. 저런 놈을 먹여 살린다고 공물을 낸 우리가 어리석지.”
방문 앞에서 수군거리던 사람들의 눈빛이 하나같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그날 밤, 방문은 누군가에 의해 모조리 찢겨 나갔다. 어촌 농촌할 것 없었다. 거리마다 찢겨나간 방문 쪼가리가 바람에 어지러이 날렸다.
다음 날 아침, 강화도 궁궐 앞에 겨우 붙어 있던 방문마저도 삼별초(三別抄)가 쭉 찢어 공중에 날려 보냈다. 관리들은 그것을 보고도 아무 말 못하고 서성이기만 했다. 고려가 몽골에 맞서 강화도를 강도(江都)로 삼고 천도한지 38년째 되던 1270년 5월 어느날 일이었다.
그날 서풍이 강하게 불었다. 조각조각 찢긴 방문 수 백장은 강도에 휘 날렸고, 해협 건너 문수 산성에는 말 꼬리를 나타 낸 아홉 개 검은 줄을 그린 하얀 천의 몽골군 깃발이 펄럭였다. 저 깃발을 들고 중앙아시아를 넘어서 아시아와 동 유럽은 물론 러시아까지 짓밟은 칭기즈칸(成吉思汗),이 아니던가. 그렇게 서방을 마음껏 휩쓸었건만, 동방의 소국 고려가 항거한다며 강화도로 들어가다니….
몽골군은 처음에 가소롭게 여기며 침략했다. 하지만 강화 해협 앞에서 멈춰서야 했다. 수전에 강한 고려군을 도무지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후 몽골 수군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통진향교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문수산 정상에 올라 깃발을 흔드는 것뿐이었다.
그러다가 몇 번 통진 나루 건너 강화도 기습을 시도했지만, 그럴 때마다 배중손(裵仲孫)의 고려수군에게 혼쭐이 났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몽골군은 38년간 내륙을 여섯 차례나 휘젓고 다녔다.
고려 황실이 섬에서 육지로 나오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런 환도 압박에도 불구하고 고종 때잠시 환도하려 했던 것 이외에는 고려가 줄기차게 몽골에 맞섰다.
“적이 항복하면 고스란히 놓아 두어라. 만일 반항하면 씨를 말려라.”
이것이 칭기즈칸의 전쟁원칙이었다.
바로 이 원칙하에 바그다드에는 ‘십만 해골탑’이 쌓였고, 중앙아시아 최강 제국 서하(西夏)는 아예 역사에서 종적을 감추어야 했다. 당연히 고려도 예외가 아니었다. 몽골군은 바그다드보다, 아니 서하보다 더 지독하게 고려를 괴롭혔다. 가는 곳마다 초토화 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어떤 나라든 몽골에 굴복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완전히 달랐다. 누르면 누를수록 더욱 반발했다.그중 승려이거나 천민등 하층민일수록 더 질겼다.
이들의 자발적인 유격전에 수시로 당하던 몽골 병사들은 금강야차의 뒷덜미를 잡는 도깨비라며 혀를 내둘렀다. 용인 처인성에서 몽골 사령관 살리타이(撒禮塔)명줄을 놓았고, 충주성 등 곳곳에서도 몽골군이 참패했다.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몽골군이 인두겁을 쓴 야수처럼 내륙을 할퀴고 다녔지만, 거기에 굴할 고려인이 아니었다. 본래 귀족과 지방 수령들에게 가렴주구를 당해와 그런지도 몰 랐다. 아무리 몽골군이 짓밟아도 북풍한설에 솟아나는 죽순처럼 끈질기게 버텼다.
단지 강화도로 피신한 귀족들은 예외였다.
그들은 바람 따라 흔들리는 갈대였다. 정세에 따라 항몽과 친몽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정쟁을 일삼았다. 그러면서 변함없이 백성들을 착취했다. 몽골군이 쳐들어 오면 전국에 파발마를 보내 백성들을 닦달했다.
“산성에 들어 가 싸워라.”
“섬으로 들어가 버텨라.”
나라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이 버텨 주어야 수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고양이 쥐 생각하듯 했다. 그래도 귀족들의 한가지 업적이라면 부처의 가호로 국난을 극복하자며 팔만 대장경 제작을 주도한 것이다.
사실 강화도 천도 이전의 고려는 백성과 귀족으로 나뉘지 않고 거족적으로 항몽했다. 천도를 앞두고도 개경 고수파와 강화 천도파로 나뉘기는 했지만, 어느 쪽이 항몽에 유리한 지를 두고 벌인 다툼이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몽골이 출륙환도를 요구한 1247년 무렵부터 귀족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조정일각에 친몽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고종말기에 이르러 무인은 정권유지,황실은 정권회수 목적으로 반몽과 친몽으로 갈렸다.
양측 모두 내 세우는 명분은 거창했다.
항몽쪽은 고려가 오랑캐의 속국이 될 수 없다는 것, 친몽 쪽은 사직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 그러나 속내는 패권 다툼이었다. 백성들은 달랐다.
고려 문장가 이규보(李奎報)가 노래했듯 ‘고구려 동명성왕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강해, 죽으면 죽었지 북방 오랑캐에게 굽힐 수 없었다. 백성들은 무신 정권이 비록 정권욕으로 항몽하더라도 잘 버텨주기 바랐다.
그러나 최우(崔瑀) 사후 무신정권 내부에 권력 다툼이 심해졌고, 급기야 1258년 김준金俊과 임연(林衍)이 대몽 강경노선을 고수하던 최씨 무신정권을 쓰러 뜨렸다. 왕실은 이를 기회로 야금야금 권력 회수를 추구하더니 고종(高宗)의 아들 원종이 강화를 조건으로 몽골 조정에 입조했다. 그해 고종이 사망했고, 몽골 사대주의자로 변신한 원종이 즉위했다.
영특한 원종은 임연을 시켜 김준을 제거했다. 이로써 친몽파가 확실하게 항몽파 위에 섰다. 그후 원종은 노골적으로 개경 환도를 추진했다.
궁지에 몰린 항몽파는 원종을 폐위시켰지만 기울어진 대세를 어쩌지 못했다. 세계 대 제국몽골의 후원을 받는 원종을 복위시켜야 했다. 복위 후 몽골에 갔던 원종은 귀국해 강도에 들어오지 않고 개경에 머물더니 출륙환도까지 명했다.
그러잖아도 원종이 몽골로 떠나 뒤숭숭하던 때였다. 출륙을 명하는 방문까지 곳곳에 나붙자 강화도는 그만 혼란의 도가니로 변해 갔다. 기다렸다는 듯 고관대작들부터 나루터로 달려갔다. 창후리 포구, 월곶진, 초지진 나루터를 비롯해 해변마다 인산인해였다.
배가 턱없이 부족한 터라 사람들은 사공이 부르는 대로 뱃삯을 지불해야 했다. 벌써 성내곳곳에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떠나려는 자와 남아야 한다는 자들로 섬은 아비규환이었다.
방문이 붙은 바로 그날 밤, 삼별초 장군들이 모였다.
평생을 몽골과 싸워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며 환도 거부는 물론 개경으로 가려는 자들을 닥치는 대로 처단하기로 했다.
마침 개경에 가지 못한 환관 균태(均泰)가 찾아와 장군들을 꾸짖었다.
“대체 무엇들 하는 게요? 이건 역적모의요!”
배중손이 핏발 선 눈으로 균태를 째려보았다.
“저 놈을 당장 끌고 나가 처형하라!”
균태가 김통정(金通精)에 멱살을 잡힌 채 끌려 나가 외쳤다.
“김장군, 이건 반역이오!”
“아니. 회복이다.”
“무슨 회복이란 말입니까?”
“도(道)로 돌아가는 회복이다. 자기 욕망대로 유위(有爲)하는 자들을 제거하고 무위(無爲)로 회복하려는 것이다.”
김통정이 힘껏 휘두르는 칼에 균태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잠시 후 균태가 정신을 차려 보니 환관 모자만 두 쪽이 나 있었다.
“왜 나를 살려 두는 것이오?”
“가라. 너도 살기 위해 환관 짓거리를 했을 뿐, 네 잘못이 뭐 그리 크겠느냐.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본래의 너답게 당당하게 살거라.”
균태는 마치 황제를 대하듯 김통정에게 굽실거렸다. 균태는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날부터 삼별초가 나루터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쉴새 없이 밀려드는 인파에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바다 위에서 뭍으로 가는 배들을 막아서야 했다.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바다를 건너는 배도 많았거니와, 삼별초가 배를 정지시키고 올라타면 사람들이 우르르 바다로 뛰어 내렸다. 헤엄쳐서라도 건너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익사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이런 실랑이가 며칠 벌어지더니 차차 조용해 졌다.
기어이 가겠다는 자는 대부분 떠났고, 자포자기한 자들, 이래도 저래도 좋은 자들, 항몽하려는 자들만 남았다.
그제야 강화도에 남은 자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깨달았다.
이제 강화도는 더 이상 도성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평범한 섬도 아니었다. 세상과 단절된 곳이면서, 세상이 집어 삼키려는 곳이 바로 강화도였다.
한때의 강도는 그 누구도 도와 줄 수 없는 무원고립의 섬이 되어 버렸다. 남은 자들은 갑자기 부닥뜨린 절박한 현실 앞에, 너무 절박해 절박하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불타고 남은 잿더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무심한 벚꽃만 바람 따라 춤을 추었다. 뒤늦게 쥐죽은 듯한 침묵의 의미를 깨닫고 바다를 건너려는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전 재산을 뱃삯으로 선납하고 어둑할 때 인적 없는 곳에서 배에 올랐다. 물론 삼별초에게 발각되면 끝장이었다. [계속]<이 글은 소설 삼별초(창해 발간, 이동연 저)의 내용이며,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연재하는 것입니다.>dyl101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