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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위기, 자연에서 답 찾아야할 때다"

"이제 지구라는 생명체는 인간들로 말미암아 중병을 앓고 있다"

이정래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08/12/02 [13:04]
전 세계는 깊은 시름에 빠져있다. 온난화, 오존층 파괴, 오염 문제, 자연 재난, 자원 고갈 등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인류가 매년 수 천 조원을 쏟아 부어도 질병은 갈수록 인간을 더욱 괴롭히고 있으며 인간은 스스로를 수차례 멸종시키고도 남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무기 경쟁은 그칠 줄 모르고 범죄는 더욱 흉포화 되고 자살은 계속 늘어나고 경제는 파탄 나고 가정은 붕괴되고 있다. 
 
▲ 이정래  칼럼니스트
그러면 왜 이러한 상황을 맞아야하는 가이다. 인간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으며 엉뚱한데서 답을 구하고 있다. 답은 너무도 명확하다. 인간이 지극히 반자연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확히 진화의 소산이다. 골격은 물론 손톱, 발톱, 몸에 난 털 하나에 이르기 까지 모두가 진화의 흔적이 역력하다. 즉 자연에서 왔다는 것이다. 인간만이 갖고 있다는 정신세계 역시 진화의 소산인 뇌의 작용에 의해서이며 그러하기에 뇌에 이상이 오면 만물의 영장다움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동물들의 정신세계가 어떠한 차원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인간의 반자연적 시각으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
 
지구는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이다.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하기 전, 지구는 그야말로 쓰레기 하나 없는 완벽한 자연,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지구라는 생명체는 인간들로 말미암아 중병을 앓고 있다. 
 
생명의 역사는 장엄한 시나리오에 의해 진행되었다. 130억 년 이상의 실로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긴 세월에 걸쳐 현재의 살아 숨 쉬는 지구를 탄생시켰다.  50억 년 이상 식지 않고 타오르는 적당한 크기의 태양이 그러하며 그 태양과의 환상적인 거리를 갖는 완벽한 크기의 지구,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크기로 지구와 충돌해서 만들어진 달, 물을 만들기 위한 수많은 소행성들의 충돌, 지구에 활력을 불어넣은 적당히 큰 행성들의 대충돌 등,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사건들이 때를 맞추어 일어났다. 각 사건 하나하나가 확률적으로 보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이다. 지구가 지금보다 태양에 조금만 가까웠거나 멀었어도 지금의 지구는 존재하기 힘들다. 지구에 조금만 더 큰 행성이 충돌했어도, 달이 지금보다 다른 크기였거나 다른 위치에 있었어도 현재의 지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과학자는 지구에 생명체가 출현할 확률이 고물 야적장에 태풍이 불어 보잉 747 비행기가 우연히 조립될 확률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한 생명의 역사의 정점에 인간이 있다. 그런데 그 인간이 스스로 자연에서 오지 않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뿌리 깊은 정서이다. 인간의 첫 조상은 동물이기를 거부하려는 처절한 욕망이 있었다. 완전한 직립을 이룩함으로 자연의 한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 천만 종의 생명체는 모두가 완벽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자연의 한계 내에서 팽팽한 자연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인간의 직계 조상이며 인간과 유전자가 98% 같은 침팬지를 보면 자연의 한계를 위험스레 넘나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직립을 시험하고 도구를 사용한 것이다. 침팬지는 돌과 나무토막을 이용해 견과류를 깨 알맹이를 빼먹는다. 그런데 결코 돌이나 나무토막으로 남을 해치지는 않는다. 그들의 지적 능력으로 보아 충분히 가능한데도 그러하다. 이는 자연이란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시사하고 있으며 자연의 한계치를 말하고 있다.
 
많은 동물들은 스스로의 무기를 개발을 위해 진화의 과정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그리하여 이빨, 발톱, 뿔 등의 무기를 개발하고 독을 품으며 레이더 장비, 화학무기, 열추적 장치, 내비게이션 시스템 등 기상천외의 장비를 몸 안에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외의 도구는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어느 특이한 침팬지가 적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나무토막을 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자연의 한계를 넘어선 동물이 탄생했다. 바로 인간이다.

그 후 인간은 그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자연을 지배하고 동물적인 스스로의 형상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 뿌리 깊은 사고가 바로 인류의 근원적 문제이다. 
 
스스로의 근원을 부정하는 인간이기에 자연적 사고를 결코 할 수 없다. 현재 지구는 인간들로 말미암아 말기암에 걸려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 곳곳을 파헤쳐 석유와 광물을 꺼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숲을 파괴하고 강과 바다의 모든 생물을 다 잡아 먹고 수많은 동식물을 멸종시키고 있다. 진화의 정점에 서있는 인간이 지극히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인간은 정확히 깨달아야 한다. 자연에서 왔으며 그 자체가 축복이라는 사실을. 인간이 자연에서 왔기에 자연이 파괴되면 당연히 병이 생기는 것이다. 그동안 인간은 자연을 잘 못 이해하고 있었다. 자연은 머리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란색은 무엇을 뜻하고 빨간색은 무슨 의미인가를 외우는 식으로는 결코 자연을 알 수 없다. 이미 교육된 반자연적 시각으로 산과 바다를 바라본다고 자연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이해하려면 자연에서 온 스스로의 몸부터 느껴보아야 한다. 몸을 통해 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자연의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반자연적이다. 숨 쉬는 것, 걷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생각하는 것 모두가 그러하다.
 
걷는 것조차 엉터리 걸음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의 최고의 정점에 척추동물이 있고 그 꼭대기에 인간이 있다. 모든 척추동물은 척추로 진행을 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연 최고의 걸작인 척추는 전혀 이용치 않고 다리로만 걷는 우스운 걸음을 걷고 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지극히 반자연적인 로봇 걸음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관점에서 이는 있을 수 없다. 척추의 자연적 기능을 해주지 않음으로 인간의 척추는 병들어 있다. 대부분의 질병이 척추에서 온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걸음조차 엉망인 반자연적 인간은 반자연적 사고를 할 수밖에 없으며 그 당연한 결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돈은 자연을 파괴해야 나온다는 사실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남보다 많은 부를 누리는 것은 그만큼 자연을 많이 파괴하고 얻어 낸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더 이상 파괴할 자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다. 각국의 경제 석학들이 그 해법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그 해법들이 하나같이 반자연적이다. 단지 눈앞에 닥친 현 상황만을 모면하려하고 있다. 자동차 생산을 줄여서는 안 되며 도로와 철도를 더욱 많이 내고 대형 건물을 더욱 많이 짓고 생산과 소비를 촉진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전 인류가 자동차와 집을 소유하면 경제가 안정이 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인류가 그동안 저지른 반자연적 만행에 뼈저린 반성을 하고 크게 각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경제 논리를 앞세워 다시금 한치 앞만 바라보는 미봉책을 내놓는다면 전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공멸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인류가 행복의 기준을 바꾸지 않는 한 지구의 미래는 단호히 없다. 현 인류가 벌이고 있는 자원사치는 가장 큰 죄악임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의 자원사치로 발생한 지구의 온난화는 결코 해결될 수 없으며 수십만 년 간 지속되리라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있다. 그런데 그 해결 방안을 지구 밖에 거대한 수많은 풍선을 띄워 태양을 가리면 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또한 과학자들이다. 인간의 모든 질병 역시 인간이 스스로 자연스럽지 못하기에 발생한다. 그럼에도 이 시각 과학자들은 생명의 근원인 유전자를 조작하고 있다. 분명 상상조차 못할 해괴한 질병이 인간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그때 또 신약을 개발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 인간은 근본의 문제에서 실마리를 찾아야만 한다. 인간의 과도한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사고를 통해 가능해진다. 인간 외의 모든 동물은 자연스러운 사고를 한다. 그렇다고 동물처럼 살라는 것이 아니다. 인간다움에 동물적 자연스러움을 더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만물의 영장다움일 것이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자연을 버림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이미 그 한계에 와 있다.
 
나를 탄생시킨 자연에 늘 감사하고 살아있는 자체가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 호흡을 통해 자연과 생을 같이 하고 그 자체로 자연의 상징인 척추를 이용해 자연스러운 걸음을 걸으며 자연에서 온 나의 몸을 통해 자연스러움을 알아갈 때 비로소 자연스러운 사고가 가능해지는 것으로 지구의 미래 역시 자연스럽게 열리게 되는 것이다. aomtech@hanmail.net
 
*필자소개/ 강동구청 앞에서 치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치과 의사. 내추럴 워킹의 창안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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