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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상황에서 은행과 재벌 대기업들 간 물고 물리는 전쟁이 시작됐다.
은행들은 금호, 두산, c& 등 중견그룹들의 유동성 지원 요청에도 불구하고 bis비율을 이유로 이를 거절한 상태. 이에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유동성 지원을 강요했지만 은행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 바람에 기업들의 원성을 샀다.
그런데 지난 10월과 11월 재벌 기업들이 은행들을 상대로 회심의 한 방을 날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사실 은행권의 외환 관리자들은 지난 10월과 11월 수출 중심의 일부 대기업들의 외환 일수 관리로 인해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서 이미 보도한 이야기라 편하게 말할 수 있겠다”면서 이 같은 이야기를 토로했다.
은행 외환 담당자, 피 말리는 하루하루
지난 6월 금융 전문가들은 “3분기 말 가용 외화보유액은 170억 달러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놨었다. 그런데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은행들의 수신고 중 외환보유고는 지난 하반기 이후 바닥을 일부 드러낼 정도로 위태한 상황의 연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주요 시중은행들의 외환 담당 부서는 외국계 투자자, 국내 수출기업, 대규모 전주들 사이를 하루종일 뛰어다니며 외환 유동성 확보를 위해 피 말리는 영업을 계속했다.
외환 담당자들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달러 결제금액이 보유액을 초과하는 날이 많아 타 금융기관들로부터 초단기 자금을 끌어 쓰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월 콜 시장의 자금중계가 이전에 비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 금융권, "국내 대표기업들의 사채업자식 악질 이자놀이에 하루하루 피말라…b사 자금담당자, 은행 마감시간 앞두고 다음날 예치 조건으로 이자경쟁 부추겨" |
은행권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달러를 포함한 은행권의 자금 담당자들은 충분한 외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수출 중심의 대기업들에 달러화 예치를 적극 권유했고 전화를 받은 대기업의 자금담당자들은 당연히 수출 등으로 벌어들인 자금을 은행에 고스란히 예치했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수순. 하지만 은행은 외화를 예치한 일부 대기업들에 의해 또 다른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a사와 b사를 포함해 중견기업 c사 등 일부 회사들의 자금 담당자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매일 다른 은행에 예치시키는 행태를 반복했다. 이 때문에 당시 주요 시중은행들 사이에서는 재벌 대기업들의 수출대금을 대상으로 이자경쟁이 불붙었다는 것. 은행업계에 따르면 당시 수출대금의 하루 이자가 최대 8%까지 치솟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는 은행업계의 현저한 부담일 수밖에 없는 상황.
d은행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특히 b사를 비롯한 담당자들은 은행 마감시간 직전에 금리를 더 주는 곳으로 수출대금을 예치하겠다는 통보를 하며 은행 간 이자경쟁을 부추겼다는 것.
하지만 외환 결제액이 없어서 콜 시장을 통해 초단기 자금을 유통하고 있던 10월의 상황에서 대기업들의 수출대금은 치명적 유혹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대기업의 수출대금이 한 번 빠져 나갈 때마다 자사의 외화 예금 중 20~30%가 만기를 맞는 등 자금압박에 시달렸다는 게 한 금융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당시 대기업의 행태가 무리한 고금리를 요구하기 위한 비도덕적 행위였지만 달러가 급한 은행의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의 심정으로 이자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기승을 부린 이 같은 행태는 사실 올해 하반기부터 계속돼 왔다.
하지만 언론, 금융감독당국, 정치권, 학계 등 어느 곳도 이 같은 사정에 대해 눈치 채지 못했었다. 은행들이 이 같은 상황을 철저히 함구했기 때문.
e은행의 한 관계자는 “개인적으로는 언론이나 감독당국에 억울한 점을 알린 후 시정을 요구하고 싶었지만 대외 신인도를 감안하면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기업에 의한 어려움을 발표하면 국민들로부터 ‘외환 보유고가 바닥을 보일 정도로 은행 사정이 극도로 어렵더라’라는 인식이 퍼질 수 있고 이는 예수금의 인출사태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견디다 못한 일부 은행들은 급기야 지난달 말 시중은행 자금부장단 회의를 통해 기획재정부에 이 같은 사실을 정식으로 보고하면서 공론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정부는 시중은행들의 이 같은 애로사항 건의와 관련 “검토하고 있다”고 짤막하게 답변했다.
이자수익 극대화는 자금담당자의 임무
하루짜리 외화 예금금리의 비정상적인 상승은 은행의 출혈경쟁이 원인이다.
평균 하루짜리 외화 예금금리는 평균 0.5% 정도 수준이다. 이를 c사의 수출대금 1조5655억원을 중심으로 환산해 보면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 예치 시 이자수익은 78억200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올해 4분기 들어 은행들의 외환 사정이 악화된 이후에는 은행 간 이자경쟁을 통해 626억1000만~1252억4000만원의 이자수익을 하루 만에 거둬들이고 있었던 것.
이는 코스닥 중견 기업의 월 매출과 비견되는 수익이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이득이 너무 크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 상황.
이와 관련 은행 관계자들로부터 지목된 a사의 한 관계자는 “자금담당부서가 알아서 한 일이라 알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윤”이라며 “생산부서가 좋은 제품을 만들고 영업부서가 자사 상품을 전 세계에 내다 파는 것으로 이윤을 창출한다면 자금담당자가 기업 이윤을 위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b사 관계자는 “수출입을 통해 취득한 외화는 예전부터 여러 은행에 바꿔가며 관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며 “은행들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마당에 갑자기 부도덕한 기업으로 모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 재계, "기업의 유동성 지원 요청에 귀 막은 은행들이 도덕성 운운할 자격 없어…10월 중 수출 대기업 하루 최대 이자수익 1000억원대" |
재계, “은행이 도덕성 요구 자격 없어”
이 같은 입장은 재계 전체의 정서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업들은 매출 등에서 예전에 비해 특별히 많은 신장세를 보였지만 환율파동 등으로 오히려 손실만 커진 상황”이라며 “예전과 같으면 남의 약점을 잡아 이득을 취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그 같은 점을 고려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a, b, c기업의 이자놀이 논란과 관련 “은행업계가 문제 삼을 자격이 있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은행들은 이미 키코를 통해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부당이득을 올렸고 bis비율을 맞추기 위한 명분을 내세워 c&, 금호, 두산 등의 유동성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며 “자신들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최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으면서 일부 대기업들이 은행을 대상으로 취하는 이득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은 공평하지 못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경제 환경이 악화되는 시기에 회생 가능한 유망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것이 은행의 임무임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자신의 생존과 수익창출만을 위해 이 같은 임무를 외면하고 있다”며 “사실 (대기업 a, b, c사의) 도덕성을 문제 삼을 수는 있지만 은행이 먼저 도의를 저버린 이상 기업들만 문제 삼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새사연 “은행, 한국경제 볼모로 잡아”
이 같은 재계의 주장은 재벌과 일정부분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진보진영 시민단체의 지지를 받고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하 새사연)은 지난 11일 ‘은행에 발목 잡힌 한국경제, 한국경제가 살 것인가 은행이 살 것인가’라는 주제의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의 한국경제는 은행이 한국경제를 질식시키는 모양새”라고 주장했다.
새사연은 현재의 한국경제 위기 상황을 “국내 시중은행들은 bis비율을 맞추겠다고 추가대출을 회피하는 것은 물론 기존 대출마저 회수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특히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하고자 은행채 발행을 확대하면서 은행채 금리마저 7퍼센트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은행채조차 채권시장에서 소화가 안 되니 카드채나 기타 회사채는 말할 것도 없다”며 “은행의 이 같은 행태로 인해 기업들의 줄도산 위험성은 물론 우리 국민들의 일자리는 점점 더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 / 박현군 기자 human0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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