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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만 명의 긴 추모행렬은 집단 최면일까

“긴 추모행렬은 고 김수환 추기경을 21세기 聖人으로 만들었다“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09/02/21 [08:37]
서울 명동성당에 마련됐던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를 방문, 추모했던 이들이 무려 4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 긴 행렬을 보고 세계인이 놀랬다. 대한민국인의 이 같은 집단성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한 종교와 그 종교의 최고 정신적 지도자가 만들어놓은 고급 집단최면에 걸려 아직도 못 빠져 나오는 것일까?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쿠데타 또는 쿠데타형 정부로 이어지는 후진 정치 시대때 대한민국인들은 거리에서 돌을 던지며 투쟁, 이 나라가 시위의 나라로 알려질 정도였다. 1980년 5.18 광주화 항쟁은 군부의 무혈 진압으로 인해 민중이 사상당함으로써 붉은 피가 길거리에 흥건하기도 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이명박 정권으로 접어들면서 정치 체제가 민주화 됐다. 이런 시대에도 여전히 수십만명이 거리에 모여 집단으로 의사를 표출해 왔다.

2000년 월드컵 당시 수많은 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기뻐서 날뛰었다. 2002년 대선 당시 미군 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효순이 미선이 사건에 항의하기 위한 촛불집회 때도 수십만 인파가 거리를 메웠다.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했다. 2008년 이명박 정권에 항의하기 위한 촛불집회 때도 수 십만 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밤의 어둠을 밝혔다. 집단이 청와대로 쳐들어갈지도 모르는 위기도 경험했다. 2월16일 선종한 고 김수환 추기경의 명동성당 빈소에 조문하기 위해 무려 40만 명이 줄을 섰다. 명동의 길거리와 명동성당이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이런, 한 순간에 거대 인간집단을 형성하는 유형을 분석해보면 갖가지이다. 스포츠 결과를 축하하기 위한 축제로서의 집단 만들기도 있었고, 정의에 따른 울분을 토해내기 위한 분노의 집단 만들기도 있었다. 또한 다수결 이후의 또 다른 정치 목소리가 담긴 정치집단 형성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추앙하는 인물에 대한 집단숭배 성격의 긴 행렬도 있었다.
 

▲ 서울 명동성당에서 진행된 김수환 추기경의 운구가 성당을 나서고 있다.     ©평화방송
▲ 서울 명동성당에서 진행된 김수환 추기경의 운구가 성당을 나서고 있다.     ©평화방송
▲ 고 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에 입장하지 못한 가톨릭 신자들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위해 서울 명동 성당 밖에서 도열했다.     ©평화방송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를 조문하기 위한 40만 명의 길고 긴 조문행렬은 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를 교황장으로 승격시키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미 그 순간, 고 김수환 추기경은 21세기 대한민국이 낳은 성인(聖人)으로 재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짧은 순간에 불특정 다수의 수많은 이들이 거리에 모이는 집단형성은 어떤 면에서 집단 최면의 일종일 수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종교적 덕화력은 숭배의 대상이지만, 그를 숭배토록 만든 불합리했던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체제에도 분명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40만 명이라는 조문행렬로 한 인물을 추앙하는 것은 김수환 추기경 한명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본다. 오늘, 이후 시대에 그런 인물이 대한민국에서 나오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사회-문화적 선진국형 체제에서는 그런 인물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40만 명의 긴 추모행렬은 집단 최면일까? 아니다.
▲ 고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 그와 같은 숭고한 한 인물을 가졌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영광이다. 그를 가짐으로서 대한민국의 천주교는 짧은 시간에 크게 부흥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폭압과 억제, 분단이라는 정치 체제 면에서는 대한민국의 수치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 종교와 한 인물의 덕화력에 모든 것을 기대하고 숭배하는 것은 집단최면의 일종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대한민국사람들의 집단을 만들어내는 정신은 어디서 나올까? 평화를 사랑하는 고운 심성에 기초하고 있다고 본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 금방 폭력시위로 변질할 것 같은 위태함이 있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평화적이었다. 평화의 촛불, 추모의 행렬이었다.

대한민국 사람의 피 속에는 유목민의 피가 아닌 농업정착민의 피가 면면이 흘러왔다. 우리 선조들은 부락 공동체를 만들어 그 속에서 평화적으로 살아왔다. 자연과 더불어 농사를 짓는 협업생활을 수 천년 간 해왔다. 이 속에 평화를 사랑하고, 서로 협력하고, 마을조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평화의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게 추앙받던 김수환 추기경, 그는 이미 땅에 묻혔고, 살아 있는 우리들만 하늘 아래 남았다. 사는 게 무언지를 묵상해야만할 우리만 덩그러니 남았다. moonilsu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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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양산인 2009/02/21 [16:46] 수정 | 삭제
  • 본래 성인은 소리 없이 왔다가 가는 법이다. 그러나 하늘이 오악탁세를 청정국토로 만들어 주기위하여 성인을 내는 법인데 어찌 소리가 없을 쏜가.
    우리 시대는 참으로 수많은 성인들이 지나 갔다. 불과 100년동안에 천년을 능가할 수의 성인이 지나갔다. 그들 중에 참으로 조용히 가신 분도 많았다. 그 분들 덕분에 우리는 부국강병을 이룩했다. 한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꽃 피워 낸 것이다. 실로 이는 단군의 해원 때문에 이루어진 사실이다.
    김추기경의 가신 모습을 보면서 그는 천주교인 이전에 이 민족 한의 전도사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시는 마지막도 조선의 것이 진하게 배인 명전 즉 김수한 추기경 스테파노 지구'를 바라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하신 업적은 먼 훗날에도 큰 복으로 돌아 올 것이다. 환부역조를 다스릴 대역사가 시작되게 하였다. 긴 세월이 가면 종교는 문화속에 스며 드는 법, 불교가 그랬듯이 천주교도 한국화 하여야 한다. 그 길을 여신 김추기경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환보역조하는 기독교 무리도 눈을 조속히 뜨기를 바란다. 인간은 죽어 혼과 백으로 남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혼과 백골로 분리 된다는 말이다. 음과 양으로 남는다는 말이다. 성경의 원리로는 아담의 몸이 흙과 성령의 힘으로 일으킨 기운으로 나뉘는 것이요. 우리 동이 역사로 보면 여와가 만든 황토인과 여와가 불어 넣은 기운으로 나뉜다는 말이다. 그 세계는 성인이 다 한길로 말씀 하셨으니 이점을 묵상하고 김수환 추기경의 가신길을 기도할 지니라. 옴암감람함캄사바훔
    남양산인은 뜨거운 마음으로 김수환 추기경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그리고 그를 추모하는 행열이 최면이 아니오 하늘이 내신 성인의 빛을 받고자하는 자발 행동임을 주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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