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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cmaca 2024/11/2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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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리학(주자학)을 비판하기 위한 글들을 보게됩니다. 도교와 불교를 배척한 성리학이라 막부시대에 불교국가 된 일본이 유교나라도 아니면서, 성리학을 왜곡시켜서 꾸며낸 글들이 다시 횡행하여 안타깝습니다. 유교는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일자리를 주고, 환과고독같은 의지할 데 없는 처량한 사람들도 두루 살피며 수천년을 이어왔습니다. 부국강병은 국력에 맞게 하면됩니다. 성급하게 백성의 고혈을 짜서, 국가가 부강해지고 군사력을 키우기 이전에, 백성들의 경제력이 향상되면, 당연히 세금부과에 대한 저항도 줄어들고, 순탄한 세수증대로, 국력에 맞는 부국강병이 실현될것입니다. 부국강병에 대한 성리학의 관학파 입장은 교과서적으로 이렇습니다. 성리학의 정착 조선 건국의 사상적 기반으로 성리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신진 사대부 사이에서 입장 차이가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학파는 대내외적 모순을 극복하고 왕조 교체에 따른 문물제도의 정비와 부국 강병을 추진하였다. 대표적 인물로는 정도전·권근 등이 있었고 성리학 이외의 다른 사상도 포용하였으며, 주례를 국가 통치 이념화하였다. 반면에 사학파는 정몽주·길재의 학풍을 계승하며 성종 때 본격적으로 진출하였다. 교화에 의한 통치를 강조했고, 성리학적 명분론을 중시 하였으며 공신과 외척의 비리와 횡포를 비판하였다. 이들은 성리학적 이념과 제도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출처:성리학의 정착 및 성리학의 융성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12. 15., 한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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