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김형욱 사체, 양계장 분쇄기로 갈아버려“

김경재 저서 '혁명과 우상' 제5권이 기술한 김형욱의 최후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09/09/28 [06:49]
국정원 “김형욱의 사체를 낙엽으로 덮어 버렸다”고 발표
김경재 저서 “양계장 분쇄기에 머리부터 넣어 갈아버려”

 
민주주의의 나라라고 자랑하는 이명박 정권 시대에 김형욱 전 중앙정부보장(1925-1979)의 회고록이 베스트셀러로 팔리기 시작했다. 김경재 전 의원(이하 존칭 생략)이 쓴 “혁명과 우상(전 5권. 인물과 사상사 간)”이 최근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는 것은 그가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진행시켰던 박정희와의 투쟁, 그리고 공권력에 의한 실종과 관련된 부분 때문이다.
 
저자인 김경재는 “200자 원고지 7000매에 달하는 이 글은 박정희 정권 시대를 알 수 있는 정치적 고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 5권은 박정희 시대 마지막 20일을 기록하고 있다. 즉 박정희 퇴진을 외치면서 그를 공격했던 김형욱은 살해와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살해정국의 내막이 담겨 있는 것. 저자 김경재는 김형욱이 박정희 정권의 공권력이 파견한 암살자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사체는 프랑스 사골 양계장의 분쇄기에 의해 처리돼 닭 모이로 없어졌다는 것이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김형욱이 프랑스에서 중정요원에 의해 살해됐다고 발표했다. 공권력에 의한 살해나 살해 장소가 프랑스라는 결론은 같지만 사체의 처리 부분에서는 판이하게 다르다. 국정원은 김형욱의 사체를 낙엽으로 덮어 버렸다고 발표했으나 김경재의 저서는 암살자에 의해 살해된 이후 양계장 분쇄기로 갈아 없앴다고 기술되고 있다. 이의 내막을 들여다본다.
 
▲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어떤 인물이가? 후일(2005년),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정원(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은 그에 대해 “1963년 7월 이래 중정부장으로 재직하던 중 1969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선 개헌의 1등 공신인 자신을 전격 해임하고 1973년 3월 유정회 국회의원 명단에서도 제외하자, 1973년 4월 미국으로 망명한다. 김형욱은 1977년 6월 <뉴욕타임즈> 기자회견 및 미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강력 비난한데 이어, 박정희 정부의 치부를 고발하는 회고록 출간을 추진한다. 박정희 정부는 1977년 6월 민병권 무임소장관을 대통령 특사로 미국에 파견하여 김형욱을 설득·회유하는 한편, 국무총리 주재 김형욱 대책회의를 3차례 개최한데 이어 김형욱을 실질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1977년 12월 '외국정부에 대하여 도피처 또는 보호를 요청한 자'와 '외국에서 귀국하지 아니하는 자로서 죄상이 현저히 중한 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반국가행위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형욱이 회고록 출간을 계속 추진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회유와 협박을 시도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김형욱은 1979년 10월1일 단신으로 프랑스 파리에 도착, 10월7일 저녁 파리 시내 카지노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이후 실종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김형욱이 실종된 이후 그의 실종에 대해서는 “국제범죄조직 또는 정치적 보복에 의한 프랑스 현지 살해, 국내 압송·살해 등 각종 의혹들이 유포”되어 왔다. 그러나 결론은 중앙정보부 요원에 의해 프랑스에서 살해됐다는 게 국정원을 조사결과(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였다. 배후에는 당시 박정희 정부와 그 예하에 있는 중정이 이를 주도하거나 개입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어 왔다.
 
국정원이 발표한 사망 내용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는 지난 2005년 5월 26일 국정원에서 김형욱실종사건 조사의 발표를 했다. 다음은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발표한 김형욱 살해과정, 살해결행 및 사체처리 부분이다.
 
**▲김형욱 살해기회 포착=1979년 10월 7일 오후 늦게 신현진은 이상열 공사로부터 급히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이상열 공사집에 도착하자, 이상열 공사가“김형욱으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전화가 왔는데 돈이 없다고 거절하려다가 오히려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돈이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 줄 수 있다고 하여 만나기로 하였다”며, “2시간 뒤 샹젤리제 거리로 김형욱이 나오기로 했는데 지금이 좋은 기회다. 오늘 처치해야 하니 이만수와 일꾼들을 불러라”라고 지시했다.
 
신현진은 인근 공중전화 이용, 제3국인 친구 2명과 이만수에게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리도 극장’앞으로 급히 나오도록 연락한 후 . 이상열 공사를 조수석에 태운 채 자신이 이상열 공사관용차(푸조 604)를 직접 운전하여 ‘리도 극장’앞에서 제3국인 친구 2명과 이만수를 접촉, 동인들에게 김형욱 살해 계획을 설명하였으며. 이만수에게는 미화10만불이 든 가방을 갖고 개선문 근처의‘콩코드 라파예트’호텔 바에서 대기하도록 지시했다.
 
신현진은 이만수를 먼저 보낸후. 조수석에 이상열 공사, 뒷좌석에 제3국인 친구 2명을 태우고‘리도 극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김형욱과의 약속 장소로 운전해 가던 중 . 차내에서 이상열 공사로부터 미리 받아 지니고 있던 소음 권총 1정과 독침 가운데 권총만을 뒷좌석에 타고 있던 제3국인 친구에게 제공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김형욱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이상열 공사가 차에서 내려 김형욱에게 인사를 하면서“운전하는 사람은 제가 아끼는 중정연수생이고, 뒷좌석의 두사람은 제가 소개 시켜 드리겠다고 한 전주들입니다”라고 설명한 후 “이 분들과 어디 가까운 카페로 가서 이야기를 나눠보시죠. 저는 저녁 약속이 있어 그냥 가보겠습니다”라면서 김형욱을 승용차 조수석에 앉게 하고, 자신은 현장을 이탈했다.
 
▲김형욱 살해결행 및 사체처리=신현진이 이상열 공사차량에 김형욱을 태운 시각은 어느 정도 날이 저물어 전조등을 켰을 때이며. 신현진이 운전하는 승용차가 제3국인 친구들이 지시하는 대로 개선문 앞 로터리를 우측으로 돌아 시 외곽 순환도로로 향하던 중 . 김형욱 뒷좌석에 앉아 있던 제3국인 친구가 갑자기 김형욱의 머리 뒷부분을 주먹으로 수차례 가격, 실신케 했다. 이어 승용차는 파리 시내를 이탈, 교외로 이동하였으며, 길가에 가로등이 켜져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 인적이 드물고 작은 숲이 내리막 방향으로 이어진 장소에 도착하여. 제3국인 친구 2명이 차에서 내려 조수석에 실신해 있는 김형욱을 양쪽에서 팔을 끼고 끌어내려 도로 우측 숲속으로 끌고 내려간 후 약 30분쯤 지나 돌아왔으며. 제3국인 친구 2명은 신현진이 u턴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에 탑승하여 김형욱이 입고 있던 바바리 코트에 여권·지갑·시계 등의 소지품을 싸서, 벨트로 묶어 건네주면서. 도로에서 약 50m 떨어진 지점에서 김형욱의 머리에 권총을 쏘아 죽였으며, 시체는 땅을 파지 않은 채 두껍게 쌓여있는 낙엽으로 덮어 버렸다고 보고했다.
 
당시 신현진은 제3국인들이 김형욱을 살해한 후 권총을 분실한 사실을 확인하였으나, 신속한 현장 이탈을 위해 권총 회수를 포기하였으며, 사체도 계속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이었기 때문에 낙엽들에 의해 두껍게 덮여질 것이라고 생각. 살해당시 총성은 들리지 않았으나(소음권총), 제3국인들은 권총 실탄 7발을 모두 쐈다고 언급하였으며, 신현진은 이들에게 불어로“잘 했어” 라고 격려하고 이만수가 기다리고 있던 장소로 이동. 이만수로부터 미화 10만불이 든 가방을 받아 제3국인 친구 2명에게 전달하면서, “내일 중으로 프랑스를 떠나라”고 지시했다.**
 
박정희를 비판한 김형욱
 
이상이 국가 공권력 차원에서 조사한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왜 김형욱은 박정희 정권의 국가 공권력에 차원에서 살해되어야할 정도의 인물이었을까? 그는1979년 10월초, 실종 될 때까지 박정희의 퇴진을 요구했었다.

김형욱은 1977년 7월15일 “국민과 역사 앞에 참회합니다” 제하의 내외 국민에게 드리는 특별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을 보면 그의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박정희가 이 성명을 보았다면 치를 떨었을 것이다. 그 성명 가운데는 “그렇다면 누가 과연 배신자이며 민족반역자입니까? 국민은 기본권을 유린하고 독재를 자행하는 자야말로 우리 국민과 역사에 대한 배신자입니다. 명색 국가 원수가 남은나라 관리에게 뇌물을 주는 공작을 진두지휘하여 한국은 위신을 땅에 떨어지게 한 것이야말로 도도한 한국사적 정통성에 보아 민족반역자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박정희는 선량한 국민을 향해서 단 한 번도 너그러운 지도자로서 따뜻한 미소 한번 지어본 일이 없으며 정치적 라이벌들을 없애버리는 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영구집권과 독재를 위해서는 세계사에서 웃음거리밖에 안 되고 있는 유신헌법이라는 것을 만드는데 주저치 않았습니다. 그는 부하들의 직언과 충언에는 귀를 막고 항명이라는 이름으로 제거해버리는 것을 능사로 삼았으며 지성인과 대학생의 비판을 고문과 탱크로 짓밟아 버리는 반지성적 행위를 자행한 우리 국민의 배신자요 민족반역자인 박정희를 하루라도 빨리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여 우리의 국권을 회복하고 우리 민족의 긍지를 되찾아야 되겠습니다”라는, 박정희를 호되게 비판한 내용이 담겨 있다.
 
김경재 저서 속의 김형욱 최후
 
▲ 혁명과 우상의 저자 김경재  전의원   ©브레이크뉴스
최근 시중에서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는 김경재의 저서 '혁명과 우상' 5권에는 김형욱의 최후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내용과 판이하게 다른 내용이다. 김경재는 자신의 저서에서 암살자가 누구인지? 암살의 명령을 내린 최고 정점이 누구인지? 암살자를 파견한 최종 책임자를 지명하지는 않았다. 암살자 파견장면의 묘사를 보자.
 
“조용박은 김승이라는 이름의 여권과 충분한 여비를 들고 1979년 9월 중순 도쿄 하네다 공항을 출발, 다음날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 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프로페셔널들은 목표물에 대한 타격을 가할 준비만 갖춘 채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중간 안내자의 안내만 받으면 되며 그들을 안내하는 안내원들이 해외에 파견된 중앙정보부 요원인지 아니면 하다못해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요원인지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단절의 원칙이었다. 그들은 다만 암호에 의해 접선하고 접선된 사람을 철저히 믿고 혹 공작이 탄로나 반대파에 의해 저지될 경우 왜를 묻지 않고 조용히 죽으면 된다는 사생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에겐 공포심이 없었다. ('혁명과 우상' 5권, 83-84쪽)”
'혁명과 우상'의 저자 김경재는 이 책을 쓰기 전에 암살자를 만났다고 한다. 암살자가 암살을 지령한 최고 책임자를 불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갈이 기술하고 있다.
 
○…“천보산 조용박은 드디어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을 떠나 있던 지난 두어달의 세월이 꿈같이 느껴졌다. 공작원 생활 10여년 간 수많은 사선을 넘었지만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상부에 보고하는 의식만이 남았다. 상부의 실체는 조용박은 눈에 흙이 들어와도 밝힐 수 없었다. 다만 그 상부가 대통령 박정희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공작원은 네 가지 원칙을 가져야 한다고 조용박은 믿고 있었다. 차단의 원칙, 비조직의 원칙, 비흔적의 원칙, 그리고 애국심의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항상 외톨이 였다. 때로는 공작수행을 위한 동료가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었다. 일본은 애도시대를 풍미하던 사무라이들도 항상 혼자 움직였다. 궁극적으로 혼자 책임지는 것이다. 그는 그런 사생관을 가지고 있었다.('혁명과 우상' 5권, 231쪽)”
 
그렇다면 김형욱은 과연 어떻게 살해되었을까?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보고서는 “제3국인 친구 2명이 차에서 내려 조수석에 실신해 있는 김형욱을 양쪽에서 팔을 끼고 끌어내려 도로 우측 숲속으로 끌고 내려간 후 약 30분쯤 지나 돌아왔으며. 제3국인 친구 2명은 신현진이 u턴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에 탑승하여 김형욱이 입고 있던 바바리 코트에 여권·지갑·시계 등의 소지품을 싸서, 벨트로 묶어 건네주면서. 도로에서 약 50m 떨어진 지점에서 김형욱의 머리에 권총을 쏘아 죽였으며, 시체는 땅을 파지 않은 채 두껍게 쌓여있는 낙엽으로 덮어 버렸다고 보고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김경재는 저서 '혁명과 우상' 5권에서 암살자의 진술을 다루고 있다. 암살자가 김형욱의 살해과정을 상부에 보고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내하는 요원들은 잘 협조하던가?”
“네 훌륭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어땠어?”
“모사드측이 워낙 비밀공작과 납치에 경험이 많아서 전혀 어려움 없이 공작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모사드와 우리와는 업무 협조관계가 있었지. 그 사람들, 나치 전과자들을 전 세계로부터 잡아오느라고 노하우가 고개 발달 되었을 게야.”
“그렇습니다. 하이파의 벨기에 앤트위프, 그리고 파리 침투 및 퇴각까지 완벽하게 협조해 주었습니다. 하기야 우리 요원들을 거저먹은 셈이에요.”
“그렇겠구면. 그러나 파리 현지 공작은 우리 요원들의 도움 없이는 안되는 거 아니었어?”
“그렇습니다.“
“자, 그러면 김형욱 처리문제를 자세히 설명해 보도록.”
“차 안에서 목뼈를 부러뜨렸을 때 사실상 그 자는 정신을 잃었죠. 낮 시간에 보아둔 양계장에 가서 헤머밀(분쇄기)에 전기를 넣어 돌게 하고 머리부터 거꾸로 집어넣어버렸습니다.”
“그 기계가 그토록 강렬했나?”
“그럼요. 돼지 뼈나 대가리 등도 손쉽게 갈아서 닭 모이를 만드는 기계니까요.”
“카아, 어떻게 해서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나?”
“세련된 공원은 한 목표에 열중하면 길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얼마 전 일본잡지를 보았더니 이탈리아 마피아나 유럽의 갱들이 반대자를 처치하는 방법으로 프랑스의 닭 사료기계인 헤머밀을 이용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착상을 얻었죠.” ('혁명과 우상' 5권,231-232쪽)
 
구천에 떠돌 김형욱 원혼
 
김경재의 저서에 나오는 김형욱의 살해가 완료된 이후의 묘사 부분은 다음과 같다.
○…“그야말로 프로구면.”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김형욱은 확실히 없어진 거지?”
“물론입니다. 그렇게 보고해 주십시오.”
“알았소. 조동지의 임무완수를 축하하오. 편히 휴식하도록.” ('혁명과 우상' 5권, 232쪽)>
김형욱의 최후에 관해,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발표가 맞는지, 김경재 저서 속의 내용이 맞는지? 암살자는 편히 휴식할지 모르나, 김형욱의 원혼은 아직도 구천에 떠돌고 있을 것 같다. moonilsuk@korea.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 바보냐 2012/12/18 [16:40] 수정 | 삭제
  • 국내문제인데...돈으로 미국의원까지 매수를 하려고 했냐~ 그리고 김형욱이 일개 개인이라고 하는데...알고나 하는 소리냐.. 박정희가 직접 중앙정보부부장을 시켜줬는데... 그것도 3선까지 김형욱이 도우면서 쓰레기처럼 쓰다가 버리니깐~ 김형욱이 열받아서 박정희의 비리를 폭로하려고 미국 워싱턴까지 간거야 아니야. 미국가니깐~~폭로하면 죽인다고까지 협박했는데도 폭로하니깐.. 열받아서 죽인거잖아. 그런데 사람이 저렇게 잔이한게 죽어가는게 박정희 측근들은 배신하면 저렇게 당한다는거... 참 무섭다..
  • 하하하 2012/09/19 [10:45] 수정 | 삭제
  • 박대통령은 반만년 역사 속에 가장 훌륭하셨던 분이고
  • 평범한 시민 2009/09/29 [09:41] 수정 | 삭제
  • 잘 모르겠으나 박대통령은 반만년 역사 속에 가장 훌륭하셨던 분이고 김형욱은 일개 개인에 지나지 않던 인물입니다. 어떻게 1:1로 평가할 수 있는지... 국내문제를 해외까지 끌고가 나라망신을 시키는 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능지처참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김형욱 사체 처리과정을 보고하는 내용이 담긴 테잎이라도 발견된 것인지? 김경재씨가 쓴 소설이 진실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됩니다. 테이프를 공개하시는 것이 타당하겠지요.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