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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 버린 뮤지컬 배우의 꿈

권유리 기자 | 기사입력 2010/03/22 [13:29]
우리 민족은 옛적부터 인심 좋기로 유명했다. 지나가는 불쌍한 사람을 결코 그냥 보내지 않는 것은 물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 요즘 아이티나 칠레, 터키 등에 수많은 구호품을 보내고 자진해서 봉사를 위해 현장으로 떠나는 이들을 보면서 새삼 우리 민족이 아름다운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끔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철면피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남에게 도움을 받고서도 ‘고맙다’는 말보다도 ‘보따리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봉이 김선달 같은 유형들이 아직도 있다.

도와준 남자 혀 자른 여자

지난 3월8일 새벽 광진구에서 이 같은 사건이 벌어져 가슴을 아프게 했다. 고교생인 김아무개(16)는 술 취한 조아무개(44·여)를 부축해 주다 봉변을 당했다. “집까지 좀 데려다 달라”던 조아무개는 자신의 집 앞에 이르자 김아무개를 사내로 느꼈다.

갑자기 키스를 해달라며 조르다가 이를 거절하고 돌아서는 김아무개를 때리고 당황해하는 김아무개에게 달려들어 강제로 키스를 시도했다. 여기까지만 했으면 ‘성추행’으로만 끝날 일이었다.

반항하는 김아무개가 못마땅했는지, 아니면 자신을 거부하는 김아무개에 여자로서의 수치심을 느꼈는지 갑자기 사고를 쳤다. 다름 아니라 김아무개의 혀를 강제로 물어 끊은 것.

김아무개는 서둘러 잘린 혀에 대한 접합수술을 시도했지만 1차 결과는 실패였다. 수술을 시도한 의료진은 “잘린 혀의 조직이 괴사해 접합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 남학생의 인생을 망가뜨린 사건은 우연찮게 시작됐다.

광진구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조아무개. 그녀는 지난 8일 자신의 가게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술이 한 잔 들어가면 기분은 더 들뜨고, 용감해지는 모양이다. 또 이성에 대한 탐구도 새롭게 시작되기도 한다.

조아무개가 그랬다. 최근 들어 부쩍 손님이 줄자 기분이라도 내자며 부른 친구들과 논 것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 이상 손님도 없고, 술도 취하고 일찌감치 가게 문을 닫는다고 한 시간이 아직 한밤중인 오전 3시가 지났다.

조아무개가 가게 문을 나서자 그녀의 눈에는 아직 귀가하지 않고 친구들과 걷고 있는 김아무개 일행 7명을 발견했다.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어린 친구들이 아직도 길거리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자 그러한 청소년들의 행동이 못마땅하게 생각됐다.

그런 생각이 들자 조아무개는 김아무개 일행에게 다가가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집에 빨리 들어가라는 훈계였지만 김아무개 일행에게는 그런 조아무개가 쉽게 이해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 김아무개 일행은 어머니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다른 청소년들 같으면 조아무개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아무개 일행은 요즘 애들과는 다른 부류였다. 조아무개가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것을 보고 김아무개는 “술에 취하셨으니 집에 가시라”면서 “힘드시면 모셔다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아무개는 “집이 이 근처니 좀 부축해 달라”고 요청해 김아무개는 친구들과 헤어진 뒤 그녀를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조아무개는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돌아서는 김아무개를 붙들어 세웠다.

그리고는 “우리 키스하자”며 고교생에게 키스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아무개는 과감하게 그녀의 키스를 뿌리치고 돌아섰다. 혈기 넘치는 고교생이 여성이 요구하는 키스를 뿌리치고 돌아서는 일은 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김아무개의 키스거절은 실패로 돌아갔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조아무개가 돌아서는 김아무개의 얼굴에 강력한 펀치를 날렸기 때문. 순간 당황한 김아무개를 조아무개는 낚아채듯 끌어당겨 강제로 입맞춤을 시도했다.

어린 남학생은 밀어내고 나이 먹은 여자는 끌어당기는 진풍경이 광진구의 새벽하늘 아래서 연출되고 있었던 것.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조아무개는 ‘미성년자 성폭행’이나 ‘미성년자 성희롱’ 죄목으로 감옥행이 틀림없다.

그러나 강제로 키스를 하던 조아무개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갑자기 김아무개의 혀를 물어 끊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김아무개 역시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했다. 키스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순간의 일이었기 때문. 김아무개가 조아무개를 밀치다 생겨난 일인지 조아무개가 고의적으로 물어 끊은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에서 조아무개는 “김아무개 일행에게 집에 돌아가라고 훈계한 것은 기억나지만 그 후의 일은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조아무개는 현재 폭력전과 5범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날아간 뮤지컬 배우의 꿈

그러나 문제는 점점 더 꼬여만 가고 있다. 김아무개는 공포에 질려 당시 혀를 잘린 상태에서 그대로 조아무개를 피해 달아났다. 잘린 혀를 챙기지 못한 상태에서 함께 있던 친구에게 “그 여자가 강제로 키스를 하다 내 혀를 잘랐어. 도와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게 전부였다.

놀란 친구가 서둘러 김아무개를 챙기고 경찰에 연락을 했지만 이미 시간은 상당히 흐른 뒤였다. 현장에서 발견한 김아무개의 잘린 혀는 이미 조직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의사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조직이 죽어버린 혀는 제자리를 찾기에는 불가능하게 됐다. 의료진은 “엉덩이나 기타 피부조직을 이용해 혀 재생수술을 시도하겠지만 원래의 혀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비극은 이때부터였다. 잘린 혀만 제대로 접합이 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접합 수술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김아무개의 인생은 크게 달라지게 됐다. 무려 전체 혀의 3분의 2인 5cm 정도가 잘린 김아무개의 혀는 제대로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혀가 없어 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더욱 사건을 복잡하게 만든 것은 김아무개가 꿈꾸던 일이 이제 좌절되게 되었다는 데 있다. 김아무개는 평소 노래와 연기를 잘해 앞으로 뮤지컬 배우를 꿈꾸고 있었던 것. 주변에서도 촉망받는 뮤지컬 인재였다며 크게 기대를 했었다고 한다.

수사를 진행한 경찰관계자는 “주변에서 뮤지컬 배우로 대성할 것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고 들었다”면서 “조아무개의 폭행으로 인해 한 청년의 인생이 망가진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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