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을 사용해서 풀어보자. 선거결과 보수가 승리했을 때 보수만의 힘으로 승리했다면 진정한 보수의 승리이다. 또는 진보가 승리했을 때 진보만의 힘으로 승리했다면 이 또한 진정한 진보의 승리일 것이다. 하지만 최대 변수는 중도이다. 중도가 어느 쪽을 지지 했느냐에 따라 진정한 승리에 대한 해석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에서 중도주의의 파이는 커지고 있고, 커졌다고 본다. 선거의 승패는 전적으로 보수나 진보의 손에 들린 게 아니라 중도의 손에 들려 있다. 중도가 어느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선거의 승패가 달라지게 되어있다.
총선의 진행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정치현장에 나가 있는 김기홍 정치전문 기자는 “20년만의 동시 총·대선국면에서 ‘중도’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형국이다. ‘중도’ 향배가 목전의 19대 4·11총선은 물론 오는 12월 18대 대선마저 가를 공산이 커진 탓이다. 기성정치권에 대한 피로감과 동반된 민의의 ‘바꿔 열풍’은 대세로 제어기제가 부재상황인 가운데 중도가 태풍의 핵으로 부상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는 “선거는 통상 ‘바람-구도-인물’ 등이 승패구도를 가르는 변수인 가운데 금번 경우 ‘혼전’ 그 자체다. 물론 아직 공식선거전 진입전이다. 거기다 바람·구도마저 애매해진 가운데 ‘공천-인물’ 측면에서 야권 대비 여권이 다소 높은 점수를 득하면서 섣부른 승패예단을 불허케 하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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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그간 신문을 발행함에 있어 중도주의를 지향해왔다. 필자는 지난 2011년 신년사에서 “역사 속에서 중도주의가 얼마나 귀한 상위적 가치인가를 떠올려 보았다. 프랑스 종교전쟁(1562-1598년)을 뒤돌아본다. 역사 속의 그 아픔을 떠올려 본다. 당시 신-구교 간의 대결로인해 한 달여 사이에 1만여명에 달하는 신교도가 학살되었다. 위그노의 대학살(1572년 8월)이 그것이다. 이 사건 이후, 세계적으로 중도주의의 중요성이 각인됐다”라는 글을 쓴바 있다. 또한 “우리에겐 수 백만명이 희생된 6.25(1950-1953년)라는 전쟁이 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전쟁의 양상을 띠었던 이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우리 민족이 희생되었는가? 극단적인 이념의 폐해가 무엇인지를 웅변해주고 있다”고, 이어갔다.
신문의 중도노선에 대해서는 “신문을 취재-편집하는 과정에서 중도주의를 신봉하겠다는 것은, 중도주의가 상생(相生)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꼭 필요한 상위의 가치라고 믿기 때문이다. 중도주의는 타협과 공생의 영역을 확장해주는 명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도는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무게의 중심이자, 대평원의 중심이다. 침묵하는 중도, 그 중심이 커질 때 좌우, 즉 진보와 보수의 폐해가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극우 극좌에 대한 호칭에서 우리사회는 언제부턴가 “꼴통보수-좌빨”로 불러 왔다. 꼴통보수와 좌빨은 점적 더 낡은 가치로 전락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극우익 노선을 전폭지지 실천하는 꼴통보수와 북한식 노선을 찬양-동조하는 좌빨이 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는 지나간 셈이다“라고, 피력했었다.
어느 사이엔가, 보수와 진보에 끼여 샌드위치적 위치에 머물러 있던 중도는 이제 큰 세력이 됐다. 중도는 진수와 진보처럼 떠들지 않는다. 아주 조용하다. 그러면서도 국가가 가야할 방향이 어딘가를 직시하고 힘을 실어준다. moonilsuk@korea.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