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세상에서'를 통해, 20세기 현대사의 어두운 과거인 스탈린의 공포 정치, 유대인 학살과 더불어 인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대사라고 할 수가 있다.
사망자만 2천만 명이 넘었고, 발트 3국인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의 경우 소비에트의 인종청소로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잃었다. 하지만 1990년 소련이 붕괴하고 세 나라가 독립국가로 지도상에 다시 등장하기 전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이러한 역사는 침묵에 싸여 있었다.
루타 서페티스는 스탈린이 발트 3국에서 인종청소를 단행하기 직전 고국을 탈출한 할아버지의 실화를 접하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자료 조사차 리투아니아를 찾은 서페티스는 살아남은 친척들을 만나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으면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은 물론 여전히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입을 열기를 주저하는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되찾아주고 싶다는 열망을 품었고, 2011년 '회색 세상에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열다섯 살 소녀의 눈을 통해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을 담담하고 서정적인 필치로 그려낸 이 책은 전 세계 40개국에 판권이 팔리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미국 어린이책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 협회가 수여하는 ‘골든 카이트 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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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목숨의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1941년 리투아니아. 리나는 뭉크의 그림을 좋아하고 이성에 눈뜨기 시작한 열다섯 살 소녀다. 일 년 전 소비에트 군대가 국경을 넘어 진격해와 리투아니아는 소비에트에 합병되었다. 어느 날 리나는 엄마, 남동생과 함께 영문도 모르고 소비에트 비밀경찰에게 끌려간다. ‘도둑들과 매춘들’이라고 쓰인 열차에 강제로 태워진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길고 험난한 여정에 오른다. 앞날에 대한 불안과 사망자가 속출하는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그들이 당도한 곳은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 굴라크였다.
사람들은 NKVD(KBG의 전신)의 감시와 학대, 강제노동, 굶주림이 만연한 수용소 생활에 내던져졌지만 그곳엔 다른 것도 있었다. 바로 기차 여행에서부터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끈끈한 연대였다. 비록 하루아침에 인간 이하의 ‘쓰레기 인생’으로 전락했지만 사람들은 서로를 아끼고 유머와 즐거움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이름마저 잃어버린 그들에게 한 줄기 햇살은 올 것인가?
한편 따로 끌려간 아버지가 크라스노야르스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을 접한 리나는 손수건이나 나뭇조각에 마치 장식인 양 암호를 써넣어 소식을 전하려 한다. 무작정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다보면 언젠가는 아버지에게 가 닿으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서 말이다.
장차 화가가 되길 꿈꾸었던 리나는 수용소에서의 시간을 그림으로 남겨 진실을 알리고 억울한 사람들의 명예를 지키기로 맹세한다. 이해할 수 없는 폭력에 분노가 치밀어오를수록 그림을 그리는 리나의 손은 분주해진다. 비슷한 또래인 안드리우스와의 사이에 애틋한 감정이 싹터가던 무렵 봄이 찾아오고 일부 사람들이 선별되어 또다시 열차에 태워진다. 첫 여정 때보다 한층 쇠약해진 사람들이 도착한 곳은 북극이었다.
작품 속에서 그려지듯이 리투아니아는 소비에트와 나치 독일 사이에 끼어 꼼짝 못하고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서페티스의 친척들은 리나처럼 추방되거나 교도소에 보내져 십 년에서 십오 년의 긴 세월을 시베리아에서 견뎌야 했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살아서 고국에 돌아와도 비극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들이 맞닥뜨린 것은 소비에트에게 집은 물론이고 심지어 이름까지 빼앗긴 잔인한 현실이었다.
그들은 죄인 취급을 받으며 KGB의 감시 속에 정해진 지역에서만 거주해야 했고, 자신들이 겪었던 일을 입 밖에 꺼낸다는 건 곧바로 감옥에 가거나 다시 시베리아로 추방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결과, 그들이 감내했던 공포는 세상에서 묻힌 채 수백만 명이 공유하는 끔찍한 비밀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내면화된 공포는 소련이 해체된 지 이십 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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