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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젊은 학생들은 한국의 대학으로 유학 가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있고, 한국과 관계된 사업을 유지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들을 너무 너무 좋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먼저 베트남을 향해 ‘형제의 국가’라고 표현하기에는 쑥스럽지만, 그들이 먼저 한국을 ‘형제의 국가’라고 불러 준 것에 너무나 고맙고, 때로는 너무나 미안하기까지 한 마음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으로 시집 온 베트남신부들이 문화적 차이로 한국에서 불행한 일을 당했다는 소식이 종종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과 분노를 속으로 삭이며 애써 한국과 한국인들을 용서하려는 자존심강한 베트남사람들을 보면, 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자신들과 이유 없는 전쟁을 치른 한국에 대해서, 가슴 속으로는 아파할지라도 겉으로는 용서해주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베트남인들은 자존심이 강하기로는 어느 누구도 어떤 국가도 따라가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비록 체구는 적고 왜소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위대하다. 국가 간 전쟁이나 분쟁이 일어나면 이스라엘의 국민들 못지않게 흔들림 없이 단결하여 적에게 대항하는 용기를 비롯해, 목숨을 던져서 나라를 구하겠다는 충성심과 자존심은 글로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베트남이 월남전이후 무비자를 허용한 국가는 러시아, 일본, 한국뿐이다. 현재 미국이 전후보상으로 베트남에 많은 물질적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베트남은 여전히 미국에 무비자를 허용하지 않는 당당함을 보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월남전 때 베트남을 지원한 중국에게도 여러 가지 이유로 무비자를 허용하지 않는 단호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게만은 무비자를 허용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들과 세계적 대학인 호찌민에 있는 국제대학에 유학 온 한국인 학생들에게 베트남 정부는 분에 넘치는 특혜와 지원을 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베트남에 진출한 몇몇 한국기업들이 실패하고 철수한 것은 베트남 정부의 간섭이나 횡포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기업의 실수로 인해 실패한 경우이다.
작년 베트남을 찾은 국가별 통계를 보면 한국이 1위이며, 베트남에 제일 많은 투자를 한 나라도 일본을 제치고 한국이다. 일 년 내내 인천에서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 좌석은 만원사례이고 항공권은 미주노선과 비슷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요즘 순박하고 따뜻한 베트남 사람들이 뿔이 났다. 오토바이를 타고 마스크를 쓴 채 몽둥이를 든 험악한 모습으로 중국 공장이나 기업체에 난입하여 기물을 부수고 중국인들을 공격하고 있다. 이를 이기지 못하고 중국인들은 보따리를 싸들고 주변 캄보디아나 본국으로 도망가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주변에 있는 한국 기업들도 50여 곳이 베트남사람들의 습격으로 기물이 파손되고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원인은 베트남 국경에서 중국의 석유시추가 베트남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라는데, 사실 이는 베트남에서 돈을 벌어 자국으로만 가져가기 바쁜 중국인들에 대해 평소 베트남인들이 가진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현지에서 얻은 이익을 현지를 위해서 나누고 베풀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이 없는 중국인들이 이번 사태로 인해 큰 깨달음을 얻어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기업체들도 소수 나마 피해를 보았지만 이는 베트남 사람들이 중국인과 한국인을 식별하는 것이 어려워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한국 총영사관에서는 사고방지책으로 한국기업들은 빨리 태극기를 계양하라는 전통을 보냈고, 지금은 한국기업체들의 피해가 태극기덕분에 원만하게 해결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성난 사람들에게 태극기가 습격을 멈추게 하는 안정제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태극기가 대단한 마력을 지닌 부적쯤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분노한 베트남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안정제 역할을 한 것은 일찍이 베트남에 진출하여 ‘한국’이라는 국가의 이미지를 높이고 한국인의 성실함을 보여준 태광실업의 박연차 회장의 숨은 공로라고 봐야한다.
20년 전 박연차 회장은 허허벌판 베트남 동나이성에 직원 3만 명의 ‘태광비나’와 목바이지역에 직원 2만 명의 대단위 공장을 세우고 주변에 학교, 병원, 유치원을 지었고, 더불어 집 없는 직원들에게 무료로 집을 지어주는 자선행사를 꾸준히 함으로서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은 대단한 독지가였다.
정치적 박해로 4년여 간의 회장공백기에도 박연차 회장의 능력과 인품을 인정한 베트남정부는 기업이 잘되도록 적극적인 후원을 했고,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온 박연차 회장은 100억이라는 엄청난 거액을 베트남 청소년들을 위한 기술대학을 세우는데 아낌없이 기부했다. 만약 중국인 기업인 중에서 한국인 박연차 같은 사람이 하나만 있었다면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박연차 회장이 베트남에 돌아오던 날, 쯔엉떤상 베트남 공산당 주석은 베트남 정부를 대표하여 사심 없이 만찬을 베풀며 박연차 회장을 환대해주었고 마음이 아름다운 베트남 사람들은 박연차 회장의 통 큰 기부, 아름다운 인정에 여전히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 박연차 회장은 베트남이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한국은 박연차 회장에게 아픔을 주었지만 베트남은 그에게 일할 수 있는 희망과 기회를 준 것이다.
이번 중국과 베트남의 충돌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이 1992년 LA폭동을 기억하고 있다. LA의 흑인들이 분풀이로 한국인과 한국 가게·공장들을 닥치는 대로 부수고 인명을 살상한 유혈 폭동이다. 이번 베트남 사건이 22년전 LA폭동과 같은 대참사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박연차 회장 덕분이다. 20년 동안 베트남에 경제적·복지적 지원을 해온 박연차 회장에게 교민들은 감사를 보내고 있다.sogum114@naver.com
*필자/김수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