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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희 증인 "고은 성추행? 있었다면 발칵 뒤집혔을 것"

고은 성추행 못 봤다 VS 비호하는 것…민사 소송 공방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 기사입력 2018/11/08 [00:33]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재판장 이상윤)는 11월7일 오후 고은 시인이 박진성씨와 최영미 시인, 언론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10억 7,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의 세 번째 재판에서 증인으로  K대학원 책임연구원이자 시인인 이가희(57)씨의 증언을 들었다.

 

이가희씨는 “당시 뒤풀이 현장에 참석했었다.”며, “그러한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면 발칵 뒤집혔을 것"이라며 피고인 박진성 시인의 주장을 부인했다.  (고은 사진, 홍일선 작가 제공)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이씨는 “당시 뒤풀이 현장에 참석했었다”면서 “그러한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면 발칵 뒤집혔을 것"이라며 피고인 박진성 시인의 주장을 부인했다.

 

사건의 발단은 박진성 시인이 올해 3월 자신의 블로그에 “2008년 4월 C대학교에서 주최하는 고은 시인 초청 강연회 뒤풀이에 참석했다가 고은 시인이 한 여성을 성추행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쓴 글이 모 언론사에 기사화되면서 촉발되었다.

 

이가희 증인은 법정에서 '박진성 시인이 글에서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못 봤다. 있었다면 못 볼 수가 없었다“고 단호히 대답했다.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 증인은 “고은 시인의 초기 시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했다. 문단의 대선배이시기도 하고, 작품을 읽으면서 문학적으로 굉장히 좋아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고은 시인과 자신의 딸에 대해 덕담을 나눈 기억도 뚜렷하다"면서 ”(당시 고은 선생은)제 딸이 하바드 대학에 입학한 것을 좋아했다. 고은 선생님이 미국 하바드 대학 옌칭 연구교수 시절 인기가 많았다고 얘기해서 기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가희 증인은 박진성 시인이 글에서 당시 현장에 3명의 20대 여성이 있었다고 적은 것과 관련해 "그런 충격적인 것을 봤다면 누구 하나 눈감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소문도 다 났을 것이며, 그 후 아무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박씨가 쓴 글에는 고씨가 바지 지퍼를 열고 3분 동안 자신의 성기를 꺼냈다고 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3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며,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기억을 하지 못 할리 없다. 목격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 증인은 “무엇보다 채권채무관계로 사이가 틀어졌던 이 모교수가 뒤풀이 자리에 와 있어서 당시를 기억할 수밖에 없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가희 씨는 박진성 시인이 블로그에 그런 글을 쓴 이유에 대해서는 "박진성 시인 자신이 성폭행범으로 몰려 너무나 억울해했는데 자신이 무혐의를 받은 것이 조명이 안되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내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고 추측발언을 했다. 

 

2008년 고은 시인이 강연회 뒤풀이 장소에서 성추행한 적이 있다는 박진성 시인의 주장과 관련해 재판부는 박씨 측 대리인에게 뒤풀이 당시 고씨에게 성추행을 당한 20대 피해자 3명이 누구인지 등에 대한 인적사항을 석명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지난달 12일 박진성씨를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박씨는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이날 재판장에 불출석하고 박씨측 증인들 또한 불출석했다.

 

박진성 측 대리인은 박 씨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내보이며 이씨에게 "고은 시인의 명성을 이용해 본인의 영향력을 높이고자 고은 시인을 여러 자리에 초빙했는데, 고은 시인의 추문으로 본인이 난처해지자 뒤풀이 장소에 가지 않았음에도 비호하는 진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씨는 단호하게 "최영미 시인의 미투 주장은 전혀 모른다.“며, ”아닙니다"고 잘라 말했다.

 

최영미 시인 측 대리인도 “이가희 증인이 최영미 시인의 서울시 성평등 대상 수상 반대에 서명한 것이 맞냐”는 질의에 이가희 증인은(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박진성 시인이 마치 최영미 시인 사건을 (현장에서)증명이라도 하듯 없었던 일을 가지고 글을 실어 확신을 주는데, 그것으로 상을 받는다 해서 반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고은 시인의 성추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은 있지만 믿지는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마치 남성은 남성을 지지하고, 여성은 당연히 여성을 지지해야 한다는 뉘앙스의 질문을 부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 증인은 “고은 시인의 초기 시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했다. 문단의 대선배이시기도 하고, 작품을 읽으면서 문학적으로 굉장히 좋아했다."며, 뒤풀이 자리에서 고은 시인과 자신의 딸에 대해 덕담을 나눈 기억도 뚜렷하다며, ”(당시 고은 선생은)제 딸이 하바드 대학에 입학한 것을 좋아했다. 고은 선생님이 미국 하바드 대학 옌칭 연구교수 시절 인기가 많았다고 얘기해서 기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이날 최영미 시인 측은 "기왕에 당사자 지위에 있는 최영미 시인이 신문하겠다고 하는데 고은 시인이 나와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증언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냐"며 소송 원고 본인에 대한 신문을 허가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고은 시인 측은 "국제적 망신을 당할 대로 당한 상태이다. 고은 시인은(이 자체를)생각하기도 싫어한다. 여러 번 원고 의사를 확인했지만 나올 의사가 전혀 없다. (이와 같은 주장은)오히려 원고입장을 가중시키고 거꾸로 가해하는 측면이 있다“며 "만약 (대질신문을 계속 요구하면) 원고로서는 소 취하 가능성도 있고, (최. 박시인 등을)형사 고소할 생각도 있다"라고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의 대질신문 여부는 좀 더 검토한 후 결정하기로 하고, 다음 변론 기일은 원고측 한복희씨, 피고측 최영미씨에 대한 증인 신문을 내년 1월 9일 오후 2시 30분에 하기로 하고 재판을 종결했다.

 

재판을 방청한 이승철 시인(60)은 “고은 시인의 생애와 작품이 평생동안 얻은 가치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진실이 아닌 풍문(소문)만으로 고은문학을 폐기한다는 것은 한국문학에 대한 모욕이자, 굴욕이 아닐 수 없다.“며 ”최영미 시인의 가당찮은 폭로 이후 고은문학은 한국사회와 문단에 일거에 퇴출되었다. 고은 시가 성취한 미학이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이 믿을 수 없는, 여론재판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현실이 과연 온당한가.“라고 말했다. 

 

자영업자인 오세준(50)씨 또한 “자기 신분상승을 위해 백년만에 나올까 말까할 문학계의 거두인 고은 시인을 여론재판으로 매장시키는 것은 너무 한 것 같다”며, 그런 측면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기 정치를 하기위해 고은선생의 만인보를 서울시청에 설치할 때는 언제고, 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여론재판의 광풍에 휘둘려 하루아침에 철수시키더니, 이번에는 최영미 시인에게 성평등 대상을 안긴 것은 줄타기의 명수라며, 달 때는 삼키고 쓸 때는 뱉어내는 냄비근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hpf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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