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작은 전문건설업체 j건설을 운영하고 있는 박 아무개 사장은 지난 8개월 가까이 가슴 저미고 잠 못 이루는 통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박 사장을 잠 못 이루게 하는 사연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해 9월 박 사장은 아파트를 담보로 우리은행에 대출을 신청했는데, 박 사장의 통장으로 들어와야 할 대출금은 우리은행에서 임의로 지정한 어느 법무사의 계좌를 거쳐 다른 사람의 계좌로 입금되었다.
박 사장 입장에서는 신청한 대출금이 나오지 않았으니 대출금 신청을 그냥 없던 일로 하면 그만일 수 있겠지만 우리은행은 그 대출금을 상환해야 할 책임이 박 사장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사연일까? 사건의 전말을 짚어보았다.
우리은행, 대출 신청인들에 대출금 일부
입금해주면서 '합의각서' 받아 사건무마
사건의 시작은 2004년 12월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j건설은 서울 양천구에 있는 m종합건설과 하도급계약을 체결하는데 계약 내용은 계약금 11억원에 'k연립 재건축 정비사업 신축공사'의 토공사 및 가시설 공사를 시공하는 것이었다.
공사대금은 신축되는 h아파트의 32평형 4개 세대(각 2억5천여만원 상당)를 현물로, 나머지 금액은 현금으로 받기로 했으며, j건설은 2005년 4월에 현장을 인도했다.
2005년 6월16일 j건설은 m종합건설과 구체적인 공사대금 지급방식에 대한 약정서를 작성했고, 약정에 따라 그 해 6월 신한은행에서 4억6천2백만원의 중도금 대출을 받아 사용한다.
2006년 8월말 m종합건설이 부도가 나고 대표이사가 잠적한다. 박 사장은 부랴부랴 m종건을 찾아갔고, 당시 현장소장으로 고 사장을 대신해 업무를 보고 있던 김 아무개 차장에게서 앞에서 언급했던 아파트 4개 세대에 대해 중도금 완불 영수증을 받는다.
9월 초중순 김 차장은 12개 하도급 업체·업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아파트 준공이 다 됐다며 "우리은행에서 한 세대당 1억5천만원씩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아서 뽑아줄 테니 모두들 신청하라"고 말한다.
하도급업체들은 우리은행에서 나왔다는 이 아무개 대리의 안내에 따라 관련 대출신청 서류를 작성해 제출한다. 이렇게 당시 아파트를 공사대금에 대한 현물로 받았던 12개 하도급 업체들이 우리은행 이 아무개 대리를 통해 신청한 대출금은 모두 합쳐 총 68억6천2백만원.
대출금…나왔지만 안 들어왔다?
10월12일 우리은행에서 신청했던 대출금이 나왔지만 대출신청자들의 통장에는 돈이 한 푼도 안 들어온다. 68억여원의 대출금은 우리은행이 지정한 이 아무개 법무사 개인계좌로 입금되었고, 그 돈을 이 법무사가 모두 처리한 것이다.
아파트 시행사인 'k연립재건축조합'(이하 조합)이 기존 대출금 상환에 쓰겠다며 은행에 '확인서'를 보냈고, 이 확인서에 따라 우리은행은 이 요청대로 대출금을 집행하도록 법무사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시공사 부도 후 조합은 나머지 공사를 진행하면서 조합원 등의 명의로 신한은행 신용대출 2억6천. 신한은행 조합원 신용대출 12억, 신한은행 토지 근저당 설정 16억, 대원상호신용저축 13억 등 총 45억여원의 빚을 졌는데 대출금으로 이 빚을 갚았다는 말이다.
일련의 입출금 업무를 처리한 이 아무개 법무사는 우리은행이 대출모집위탁전문회사인 g사와 인력파견 계약을 체결하면서 어느 법무법인을 통해 소개받은 사람. 이 사실을 확인하는 와중에 당초 자신을 우리은행 직원이라면서 대출신청서류를 받아간 직원도 우리은행 정직원이 아닌 g사 파견 직원으로 밝혀진다.
대출신청서류 중간에는 '위임장' 양식 하나가 끼워져 있었는데, '대출금액을 위임장에 적힌 계좌로 입금해달라'는 내용으로, '이에 따르는 법적 책임이 발생하는 경우 위임자가 일체의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금융기관에서 각종 신청서류를 받을 때처럼 모집인은 신청서류 각 페이지에 형광펜으로 동그라미를 쳐 놓은 부분을 채워 넣으면 된다고 했고, 박 사장 등 30여명의 대출신청자들은 아무 의심 없이 위임장을 포함한 대출신청 서류를 채워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의 대출신청 서류를 넘겨받아 위임장에서 비어있던 입금은행과 예금주명, 계좌번호란에 이 아무개 법무사의 이름 등을 적어 넣은 사람은 우리은행 000지점의 오 아무개 부지점장이었다.
검찰 수사과정에 벌어진 대질심문에서 오 부지점장은 대출심사 과정에서 대출신청인들 모두에게 관련 사실을 유선으로 통지했다고 강변했지만 박 사장이 그 기간 통화내역에서 단 한 건이라도 우리은행과 통화사실이 나오면 인정하겠다고 말하자 "박 사장님에게는 통지를 못한 것 같다"고 한발 물러섰다고 한다.
모래알처럼 사라진 대출금
황당한 상황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총 대출금 68억원중 조합이 빚잔치를 한 45억원을 제외하고 남은 23억원이 이후 20여일 사이에 대출신청자들의 눈앞에서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빠져나가듯이 야금야금 사라진 것이다.
대출금이 확정 입금되기 하루 전인 10월11일 윤 아무개 조합장은 우리은행측에 신한은행 등의 대출금 45억여원을 직접 상환해줄 것과 함께 나머지 직접 대출후 잔금 23억원을 조합 계좌로 넣어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정작 23억원중 10억원 만이 조합 계좌로 입금이 되는데, m종합건설 대표이사의 직무를 대행했던 김 아무개 차장은 검찰조사에서 23억원 전액이 윤 아무개에게 입금되는 것을 막은 것은 바로 자신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대출금이 나온 날 신한은행 아무개 지점장 일행이 현장사무소로 찾아왔는데, 확인서에 나타나지 않은 대출금 13억여원이 추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윤 조합장이 그것을 우선적으로 변제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는 이유였다.
김 차장은 "대출금 입금을 일단 중단시키기 위해 이 대리에게 전화했더니 지점에서 대출금 송금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며, "1회 송금한도가 1억원이어서 송금이 오래 걸렸고 그나마 10억원만 송금된 상태에서, 송금을 중단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 조합장은 확인서에 적힌 대로 송금 처리가 되었다면 대출금 상환을 자신이 모두 알아서 해결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이렇게 복잡하게 커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은행, 주도적 사건무마
통장에 남은 13억원중 4억원이 아파트 등기 관련 비용으로 지출되고, 9억2천5백72만3천5백원이 남은 상태에서 박 사장 등 일부 대출신청인들은 10월24일자로 이 아무개 법무사에게 대출금 지급 요청에 대한 내용증명을 발송한다.
박 사장 등이 내용증명을 보낸 이날 우리은행 000지점의 박 아무개 지점장과 대출업무를 처리한 오 아무개 부지점장 그리고 g사의 백 아무개 대표와 이 아무개 대리 등은 대출금을 떼인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사건무마를 시도한다.
사건무마를 위해 돌아다닌 우리은행 관계자들이 박 사장 측과는 합의점을 찾는데 실패했지만 일부 피해자들과의 협상에서는 성과를 거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10월25일 8명, 30일 1명 등 총 9명에게 합의금 조로 대출금 일부씩(총 7억5천7백72만원)을 나눠주면서 소위 '합의 각서'라는 것을 받아낸 것이다.
이와 관련 박 사장은 "대출 모집인이 요구하는 대로 위임장을 써준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들이 위임장에다가 마음대로 법무사 이름 쓰고 금액 쓰고 계좌 쓰고 해서 돈을 다른 데로 다 보내 버린 거는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k연립재건축조합의 윤 조합장도 은행측이 각서를 받으러 돌아다닌 것 자체가 스스로 은행측의 잘못을 인정한 셈이라고 주장한다.
윤 조합장은 "000지점이 조합의 확인서를 무시하고 대출금 일부를 대출자 10여명에게 지급하면서 그들로부터 나머지 대출금을 포기한다는 문서를 받은 것은 대출금을 전혀 받지 못한 대출자들의 대출금을 직접 책임지겠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조합장은 "이는 다시 말해 포기문서를 쓰지 않은 모든 대출자들의 대출금에 대해서는 000지점이 책임이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은행이 재건축조합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1분만에 끝난 1차 공판
우리은행 등 대출 책임자 전원 무혐의·불기소?
지난 6월 28일 11시 서울남부지방법원 304호 법정에서는 형사7단독 재판부에 의해 이번 사건에 대한 1차 공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 피고인으로 참석한 사람은 m종건 고 아무개 사장과 김 아무개 차장 그리고 k연립재건축조합 윤 아무개 조합장 등 3명.
이 사건에서 아파트 공사와 관련된 피의자들만 기소가 되고 우리은행과 대출모집위탁대행업체 g사 관계자들 그리고 대출금 처리를 담당한 이 아무개 법무사 등 대출관련부분에 대해서는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것이다.
대출 피해자들은 그동안 m종건측이 윤 조합장 및 우리은행 000지점 오 아무개 부지점장 등과 공모해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고 주장해왔지만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인해 대출 부문과 관련한 시시비비는 당분간 가릴 수 없을 전망이다.
특히 오 부지점장은 검찰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대출신청인들에게 유선으로 관련 사실을 모두 통지했다고 주장했다가 j건설 박 사장의 완강한 부인에 부딪쳐 진술을 정정한 바 있고, 대출사고가 발생한 직후 우리은행 및 g사 관계자들이 피해자들에게 합의각서를 받으러 다니는 등 적극적인 사건은폐 시도를 했다는 사실도 취재 과정에서 확인됐다.
불기소처분통지서를 입수해서 확인해 봐야하겠지만 이러한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모두 인정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검찰의 불기소처분 자체에 대해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한편 이날 재판은 피고인들을 변호할 변호인이 출석하지 않은 관계로 출석확인만 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피고인 윤 조합장과 이 사건의 피해자인 대출신청인들이 우리은행의 잘못에 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앞으로 사건 진행이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또한 대법원에서 제공하는 사건진행내역에 따르면 윤 조합장과 고 사장, 김 차장 등이 한 사람의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나타나 취재 과정에서 나타났던 이들 사이의 입장 차이가 어떻게 조정될지도 관심사다.
무조건 쉬쉬하는 우리은행
또 하나의 작은 승리? 집회금지가처분 일부인용
계획 했던 집회 자체는 가능… 7월에 봅시다
이 사건과 관련해 우리은행은 지난 6월 4일 또 하나의 작은 승리를 거뒀다.
우리은행 대출피해자모임이 서울 명동에 있는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 벌이려고 준비하던 집회에 대해 제기한 '업무방해금지 및 인격권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일부' 인용결정을 받은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 재판부는 대출피해자들이 "시위에 이르게 된 동기에 참작할 바 없는 것은 아니나 '별지 1 목록' 기재와 같은 행위는 신청인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로써 피신청인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정당한 권리행사의 범위를 넘어 그 방법과 태양이 사회적 상당성을 결여한 것"이라며 우리은행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였다.
재판부가 금지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대출신청인들이 시위를 함에 있어 해당 건물에 진입하거나 건물 내에서 농성을 하는 행위
△은행 임직원들의 해당 건물 출입을 저지하는 행위
△각 건물의 외벽으로부터 100m 범위 내에서 시위 또는 농성을 함에 있어 "우리은행 대출피해자에게 경매가 웬 말이냐", "대출피해자 죽어간다! 우리은행 각성하라"는 내용이나 표현을 확성기나 음향증폭장치를 사용하여 방송하거나 고성의 구호로 제창하거나 유인물에 기재햐여 배포하거나 피켓, 벽보 또는 현수막에 기재하여 개시하는 행위
대출신청인들은 관할 경찰서에서 우리은행측이 제기한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준비했던 시위를 포기했지만, 기자가 결정문과 집회 신고서를 대조해본 결과 대출신청인들이 당초 준비했던 수준의 집회를 가지는 데는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대출신청인들은 7월중에 서울중앙지법에서 내려준 결정문에 위배되지 않는 수준에서 우리은행 본점 앞 시위를 하려고 다시 준비중에 있다.
2007/06/29 ⓒ브레이크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