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그와의 인연은 내 나이 스물 다섯살 되던 해 가을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던 어느날, 서울의 아담한 찻집에서 우리는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강원도 여자와 경기도 남자의 어색하고 쑥스러운 만남이었다. 내 일생에서 처음으로 맞선을 보았으니 얼마나 떨리고 긴장되었는지 모른다. 양가 어른들도 함께 하신 자리이니 바늘 방석이 따로 없었다. 입고 있던 바바리 깃만 만지작거리고, 고개는 자꾸만 테이블 속으로 들어가고, 어서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른들은 그런 짐작도 못하시는지 오랫동안 자리에 계셨다. 수줍기만 한데 양가 어른들은 결혼이라는 대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숙연한 분위기였다. 살짝 앞자리를 넘겨다 보니 그는 해맑은 얼굴에 키가 훤칠했다. 마른 체격에 순수한 모습이다. 그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우리의 소중한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참 순수했던 때였다. 첫 선을 볼 때의 일이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에 간직되어 있다.
그는 만날 때마다 점퍼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수수한 모습이었다. 잘 차려입은 옷차림보다 소박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또 점잖은 성격도 믿음직스럽고 편안했다. 그해 가을은 한 사람을 운명적으로 만난 인연으로 세상이 무척 풍요로운 가을이었다.
네번 째 만난 날, 벌써 계절은 겨울의 한가운데 와있었다. 그날은 함박눈이 소담스럽게 내렸다. 두사람은 눈을 맞으며 걸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피해 찻집에 들어갔다. 차를 마시며 몸을 녹이고 있는데, 그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갑자기 사랑한다며 청혼을 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순수하고 성실한 그가 이미 마음에 있었기에 청혼을 허락했다. 찻집에서 나올 때 그의 호주머니속에는 내 손이 꼭 쥐어져 있었다. 우리집에서도 결혼해도 좋을 만한 사람으로 그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다 .
그때의 순수했던 우리의 만남을 생각하면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미소가 번져온다. 중매로 만났지만 연애한 사람들처럼 한순간 마음에 쏙 들어왔던 인연이었다. 우리는 만난 지 4개월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눈에 콩깍지가 많이 씌었던 것 같다, 그때의 마음으로 살면 정말 행복하련만, 세월이 지나면서 순수한 사랑이 조금씩 퇴색되어가는 것 같다,
남편은 말이 없고 속이 깊은 사람이다. 세심하고 다정한 애정표현을 하지 않지만 바다처럼 깊고 바위처럼 믿음직한 사람이다. 남편은 나의 소녀처럼 순수한, 어찌 보면 철없는 아기같은 마음을 잘 받아준다. 무엇이든 배우고 하고 싶은 것도 하라며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다. 그래도 남편이 조금만 섬세하고 다정하면 좋으련만. 사업하느라 늘 지친 그를 이해하려고 한다. 사업하려면 심신이 얼마나 힘들까 해서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이해하는 편이다. 매사에 완벽하고 성실한 남편이어서 답답할 때가 많지만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믿는다.
결혼해서 우리 아이들을 얻은 것은 큰 행복이다. 두 남녀가 만나 한 가족이 된다는 것, 두 사람이 만나 다섯식구가 된 것이 진정 신비스럽다. 우리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작은 일로도 다투는 것을 몇 번 보지 못할 만큼 우애가 좋은 편이다. 남편이 아이들을 무척 예뻐하고 날 믿고 인정하기에, 힘든 것도 모르고 가정이 화목한 낙으로 살았다.
막내딸로 자라 친정 부모님에게서 사랑을 많이 받는 편이다. 정을 많이 주셨던 어머니가 처녀 때 돌아가신 후 외로움이 많아 아이들을 의지하고 살았다. 가정적인 난 아이들을 예뻐해서 정성을 쏟았다. 딸 둘에 아들 하나인데, 위로 누나들이 막내 동생을 보듬어주고 잘 챙겨준다.
누나들이 부족한 용돈을 모아 막내 동생 옷도 사준다. 엄마가 없으면 딸들이 아빠 식사도 잘 챙겨준다. 딸이 둘이니 집안이 밝고 화목하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누나들 틈에 자라서 여성적이고 여린 것 같아서 염려스럽다. 형이 없는 막내지만 수년 후 매형을 얻으면 형처럼 의지해서 좋을 것 같다,
한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 생물학적인 결과라고 하지만 경이롭고 신비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이 결혼으로 만나 한 가족을 만들어가는 것은 개인적 일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전세계적인 우주로 뻗어가기 위한 출발이 아닐까 싶다. 한 생명은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
남편과 운명적인 첫선으로 만나 설레던 가을로부터 이십 년의 가을이 지났다. 문득 곁에 있는 남편을 본다. 처음 만났을 때 느끼던 황홀한 사랑의 감정은 점점 사라져가지만 구르는 세월의 이끼속에서 믿음과 정이 생겨난다,
모든 일에 항상 시댁일이 우선인 그가 이해 안될 때가 많지만 장손의 의무를 다하려는 그를 어찌 탓하랴. 장손 며느리로 큰 일 치르느라 많이 힘겨워도 가정이 화목하고 남편과 아이들이 힘이 되었기에 견뎠다,
시골출신 장손으로 가부장적인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는 보수적인 남편이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러나 아내에게 무한한 자유를 누리게 해주고 아이들을 예뻐하고 가정에 충실한 속깊은 남편이기에 내심 접어주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흰머리가 늘어가는 남편이 무척 측은하다. 묵은 포도주가 무르익어가듯이 세월속에서 보듬어주며 인내하며 살아가리라. 그리고 남편을 처음 만나던 가을 그때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계속 사랑하리라 .
남편과의 첫선을 보고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제 이야기입니다.좀 쑥스러운 감이 있지만 잘 보아주세요 .
< 저 이미선의 프로필입니다.>
강릉 출생
| 숙명여자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한국 예총 < 예술세계 > 수필 등단 예술시대작가회 편집위원 숙명여자대학교 문인회 회원 수원시 문인협회 회원 경기문학인협회 사무차장 역임 설중매문학회 회원 (현) 사단법인 한국문학세상 사무부장(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