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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여고생 실종' 자작극 전말

순진하고도 대담한 이중생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김은미 기자 | 기사입력 2010/02/16 [12:56]
지난 1월5일 오후 3시 20분쯤 경주여고 2학년인 김은비양은 학교를 나간 뒤 실종됐다.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김양은 이날 보충수업을 마치고 담임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장학금 관련 서류를 전달하기 위해 보육원에 다녀오겠다고 알린 뒤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책가방과 교과서, 참고서, 필기도구, pmp 등 평소 즐겨 사용하던 소지품을 교실과 기숙사에 두고 온 점으로 미루어 그녀가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궁에 빠진 수사

의문의 실종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김양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다.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전화조차 걸려오지 않아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지는 듯했다. 경주경찰서는 사건의 긴박함을 감안하여 실종된 지 2주 만에 수사인원을 3명에서 8명으로 늘리는 등 광역수사대와 여성청소년계 직원을 추가로 투입해 실종전담반을 꾸렸다.

김양의 사진과 인적사항이 담긴 전단지를 경주 일대와 전국경찰서에 배포하면서 수사가 활기를 띠기도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목격자 제보는 거의 없었다. 단순 가출로 보는 견해 또한 없지 않았지만 그녀가 비평준화 명문 고등학교에서 중상위권 성적을 낸 모범생이라는 점과 이제껏 말썽 한번 크게 부린 적 없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 많아 가출로 단정짓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당초 고아로 알려진 김양은 2006년 3월 경주 보육원인 ‘성애원’에 입소한 이후 경주에는 아무런 연고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기에 수사는 더욱 답보상태였다. 그녀의 소재를 파악해줄 주변인을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경주경찰서와 소속된 보육원, 해당 학교에서는 그녀의 딱한 처지를 감안해서 더욱 열성적으로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단순가출이나 혈육을 찾아갔다는 추측도 배제할 수 없었지만 끔찍한 범죄에 연루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가능성이 끊임없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의문점도 발견되었다. 학교 주변 cctv에는 교복을 입은 채 흰색 쇼핑백을 든 김양이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데 버스에 탄 흔적은 없다는 것이다.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갔다면 30m 전방에 있는 상가의 cctv에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휴대전화 위치추적결과 또한 의문투성이였다. 그녀의 휴대전화는 실종 다음 날인 6일 오전 5시 43분께 잠깐 켰다가 끈 사실이 확인되었는데 놀랍게도 위치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였던 것이다.

경주 구정동 보육원에 다녀오겠다고 학교를 나간 소녀가 경기도 용인에서 소재가 확인되자 불길한 추측이 더욱 난무했다. 경주경찰서는 경기 용인을 비롯해 수원, 분당 경찰과 공조 수사에 나섰으며 경주역과 용인 시외버스터미널 cctv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 무렵 한 가지 단서가 새로 발견되기도 했다. 주변 친구들의 증언에 따라 기숙사를 수색해본 결과가 뜻밖이었던 것이다. 당초 김양이 보육원에 전달할 서류만 챙겨 학교를 나선 줄만 알았던 경찰은 성경과 속옷, 하의와 상의 각 두 벌, 평소 즐기던 악기인 플루트까지 챙겨 나간 사실을 확인했던 것이다.

김은비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온 3년

답보상태에 빠진 사건에 반전이 찾아온 것은 지난 2월2일 그녀가 실종된 지 근 한 달 만이었다. 김양의 외삼촌을 자청한 한 남성이 용인경찰서에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남성은 실종 뉴스를 보았다면서 “김은비는 경기도 수원의 어머니 집에 있다”며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유일한 연고지로 알려졌던 성애원 보육원과 경주여고를 떠난 뒤 원래의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지 가출이나 납치당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녀는 고아가 아니었다. 당초 그녀의 행방을 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사람들은 가장 먼저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곧이어 그녀가 지난 3여년간 경주에 살면서 자신의 신분을 감쪽같이 속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과 허탈감을 느껴야만 했다.

과거 김양은 경주 시외터미널 근처 구정동에 위치한 보육원에 편지 한 장을 들고 혈혈단신 찾아왔다. ‘친엄마가 쓴 편지’라고 쓰인 한 통의 편지에는 “제가 19살 때 낳은 ○○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며 대신 키워달라는 청탁이 담겨 있었다.
 
당시 친엄마가 썼다는 편지에는 그녀가 ‘1992년생이고, 이름이 은비이며 학교를 다녀본 경험이 없다’는 것만 밝혔을 뿐 호적조차 없는 상태였다. “엄마가 경주버스터미널까지 함께 와 이 편지를 이곳에 전해주라고 하고 갔다”는 말도 전했다. 어머니와 서울 수색동에 살았으며 학교에는 다닌 적 없다고도 밝혔다.

복지시설에서 사는 동안 그녀는 굉장히 많은 일들을 단숨에 해치웠다. 2006년 9월 기아발견으로 자신이 호주인 호적을 취득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검정시험을 불과 일 년 만에 통과했다. 2008년에는 지역의 명문 경주여고에 입학, 기숙사 생활을 했으며 전교 13등을 하는 등 성적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경주여고 관계자에 의하면 “여학생의 경우 작은 일에도 상처 입을 수 있기에 보육원에서 지내며 검정고시를 거쳐 입학했다고 해서 학교 측에서 세심하게 배려해왔다”고도 전했다

그러나 외삼촌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결과 1989년생(올해 만 18세)으로 알려진 김양은 원래 1989년생(올해 만 21세) 성인이고 진짜 성은 이씨로 밝혀졌다. 최근까지 경주여고에서 고등학교 2학년(만 18세) 행세를 했지만 실제로는 이미 지난 2006년 3월까지 경기도 용인의 자택에서 고등학교 2학년을 다니다가 가출한 상태였다.
 
경주 구정동의 복지시설에 찾아와 친어머니가 썼다는 편지를 전하며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적 없다고 전한 사실,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사실 등도 모두 허위로 밝혀졌다. 만 스무 살을 훌쩍 넘긴 상태에서 이중호적을 가지고 고등학교에 다닌 이아무개의 자작극에 모두들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아무개는 그동안 김은비라는 가면을 쓰고 가족과 멀리 떨어진 타 지역에서 비밀스러운 소녀로 지냈던 것이다.

경찰은 그녀가 2006년 가출했을 당시 이미 용인경찰서에 실종 신고된 상태였으며 지난 1월7일, 그러니까 경주여고를 떠난 지 이틀 만에 실종신고가 해제된 점도 추가로 밝혀냈다.

2006년부터 이아무개를 돌봐왔던 경주지역 복지시설은 상당한 충격에 휩싸였다. 실종 이후 서울·경기일대에서 그녀를 찾는 일에 매달려 왔던 이 복지시설 원장은 김양 소재가 확인된 이후 줄곧 서울에 머무르다가 4일 경주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인 줄 알고 호적까지 만들어주며 정성껏 보살폈던 성애원 원순이(48) 원장은 “(자작극이라고) 알려진 것이 사실이 맞다”며 “(이아무개의) 부모님을 만나봤고 이아무개는 현재 좋은 부모님과 잘 있다”고 말했다.

이아무개 왜 이중생활 해야만 했나

지난 4일 경주경찰서는 “이 아무개가 안전하게 가족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수사를 종결했다”고 밝혔다. 당초 그녀가 거짓말로 이중호적을 취득한 문제에 대한 처벌여부가 관심을 모았지만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해 수사계획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현행법상 이중호적, 즉 이중가족관계등록부는 위법이지만 이아무개의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폐지된 호적법 대신 제정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무적자인 고아의 경우 담당 보육시설의 장이 취적신청을 할 수 있지만, 두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인물이 동일인으로 확인되면 경찰측의 통지를 받아 관할지방법원에 의뢰, 중복된 가족관계등록부를 말소하게 된다. 그러나 이아무개의 경우 2006년 새로운 호적 취득 당시 당국에 지문이 남겨져 있지 않은 미성년자였으므로 기존 호적이 발견되지 못한 것이다.

관련자 처벌 없이 수사는 종결되었지만 여러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지난달 5일 이아무개가 경주에서 자취를 감춘 뒤 주변 교사들과 학생들의 진술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그녀의 담임교사는 “얼마나 신빙성 있는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1학년 때 몇몇 학생들과 함께 서울대 견학을 갔을 당시 ‘아버지가 의사인데 의료사고로 자신이 경주에 오게 됐다’는 얘기를 했다고 들었다”고 털어놓았으며 “어머니와 연락했다는 얘기도 있어 실종 후 어머니가 와서 찾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했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이아무개에게 남겨 있는 의문점이란 경주에서 지내는 동안 가족과 연락을 취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물론 그녀가 여러 차례 거짓말을 해온 점을 감안한다면 어느 진술도 쉽게 믿을 수 없지만 경주여고를 나선 당일 곧장 용인의 자택으로 향한 점은 평소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면 어려우리라는 예상이다.
 
게다가 아직 버스정류장 인근 cctv에서 이아무개의 뒤를 따르는 낯선 여자가 발견된 점 또한 설명되지 못했다. 혹시라도 어머니가 경주로 내려와 그녀를 데려간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지만 경찰관계자는 “5일 대중교통을 이용해 혼자 용인에 간 것으로 보인다”며 “사전에 어머니와 연락을 취한 것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면서 또한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김양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조사했으나 대부분 친구로 별다른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의문점은 또 하나 있다. 용인경찰서에 이아무개의 소재를 확인해준 사람이 직계가족이 아니라 외삼촌이었다는 점이다. 그녀의 가족사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보육원에서는 아버지의 존재를 완전히 감추더니 주변 친구들에게는 의사인 아버지의 의료사고 때문에 가족 모두가 궁지에 몰렸다고 털어놓았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녀가 용인에서 가출한 이유를 아버지와 연관 지어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녀의 이중생활에 대한 미스터리가 모두 풀리는 것은 아니다. 경찰조사에서 이아무개의 어머니는 평소 학업에 대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행동이었다고 해명했다. 실제 그녀가 경주 보육원에서 입소한 뒤 이중호적을 활용해 학교를 다니며 정규교과과정을 충실히 따랐을 뿐 큰 말썽을 피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부모님 없는 외롭고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한 모범생으로서 여타 학생들의 귀감이 되어왔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어머니의 해명은 타당해 보인다. 명문대에 진학해야 한다는 그녀 내면의 목소리가 클수록 이상을 따라주지 못하는 현실은 감당하기 벅찼을 것이다. 가출했던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라면 대학진학에 대한 포부와 두려움이 그 어느 때보다 짙었음이 분명하다.
 
그 무렵엔 누구나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진다면 좋았을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고등학교 입학 때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식의 판타지가 작동했고 그 도피처로 경주를 택했을 수 있다. 그러나 경주에서 새로운 호적을 취득하고 본래와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았던 이아무개가 그 생활에 만족했는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친인척 관계가 전무한 타지에서 자기 정체성을 숨긴 채 철저한 외부인으로 살아온 점은 나름대로 그 생활에 대한 의지가 있어서라 추측할 수 있지만 졸업도 하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경주를 떠난 점은 우발적이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사건이 종결된 현재까지 경찰은 이아무개의 신변을 최우선으로 삼다 보니 해결되지 않은 의문점들에 대해서는 함구한 상태이다. 경찰 관계자는 “고등학생은 아니지만 이제 막 이십대가 되어 미성년자나 다를 바 없는 시기”라며 “언론 보도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여론이 나빠져 이아무개에 대해 사소한 것이라도 말하기가 무척 조심스럽다”고 대답을 회피했다.

거센 비난 여론…사생활 침해 우려

한 달여간 소동을 벌였던 실종사건이 그녀의 자작극으로 결론나자 그녀가 다녔던 경주여고와 복지시설 성애원의 게시판에는 보도를 접한 네티즌들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드라마 같은 일 때문에 네티즌도 속고 경찰도 속고 보육원도 속고 학교도 속고” 혹은 그녀의 이중생활로 인해 “경주의 사회복지 예산과 sbs를 비롯한 수많은 방송사의 전파, 경찰력이 낭비되었다며 누군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한 네티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전적으로 이아무개의 탓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학교와 성애원측에 인사도 없이 떠난 점은 안타깝지만 그로인해 책임을 전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성애원측 관계는 “무사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라며 “얼굴이 많이 알려져 혹시라도 곤란한 지경에 처할까봐 걱정이다”라고 밝혔다.

성애원측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아무개의 자작극으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본 쪽은 본인일 것이다. 실종자 수사로 인해 그녀의 사진과 인적사항 등이 다수 공개된 상태라 적지 않은 사생활 침해 또한 우려된다. 그녀 본인과 부모님은 이 사건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은 상태이다. 만 21살이지만 아직 고등학교 3학년 정규과정을 마치지 않은 상태이고 대학진학도 해야 하는 만큼 이번 사태의 충격에서 해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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