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용 화백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흡사 마블코믹스 류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말끔히 씻고 감독은 전작 <황산벌><왕의 남자> 심플한 색감과 세련된 영상미를 통해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 영화팬들에게 통할 수 있는 장르가 '사극'이라는 영화철학이 고스란히 스크린에서 배어 나오는 듯하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신명나게 마당극을 펼치는 듯한 검 대결씬에 도입된 스톱모션 기법도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이나 얼마 전 개봉한 <1724 기방난동사건>보다 세련되게 연출돼 영화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극중 용인관아에서 이몽학(차승원 분)을 찾아 들어선 황정학(황정민 분)이 일대일로 검을 주고받는 대결씬. 청각에 의지해 바람 소리와 허공을 가르는 칼의 궤적을 찾아 칼집과 검을 휘두르는 맹인검객 황정학과 훤칠한 신장에 흰 도포자락을 가르며 날이 선 검무를 추는 듯 상대에 맞서는 이몽학의 대결은 흡사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과 장생의 마당극을 연상시킨다.
이 뿐 만이 아니다. 대나무 숲에서 스승 황정학이 견자(백성현 분)와 검을 겨루는 장면도 백미이다. 블랙코미디 개성있는 캐릭터에 어울리는 정학의 칼은 성장통을 겪는 견자의 검에 못미치면서 앞선 대결씬과 함께 해학이 깃든 마당극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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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 내내 견자에게 약을 올리는 스승 정학이 대나무 솦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자 견자가 돌멩이와 요강을 던지는 장면은 이준익이 액션 활극의 단점인 팽팽한 긴장감을 늦추고 쉬어가는 여유를 제공할 때 자주 사용하는 설정으로 영화팬들에게 잔잔한 웃음을 선사하면서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조선시대 선조 재위 시절을 배경으로 모순의 시대를 사는 민초들의 꿈을 그린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만화 캐릭터처럼 당쟁과 외침으로 인해 피폐해진 민생을 외면한 채 목숨 부지에 바쁜 임금과 사리사욕을 챙기는 관료들을 비약해 설정하고 이에 대비해 썩어빠진 세상을 뒤엎겠다고 정여립 아래 모인 '대동계'의 두 고수 이몽학과 황정학이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삶의 진한 페이소스를 담아 슬프게 그려낸다.
특히, 극중 주인공들에게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 '적과의 동침' 등 전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상황이 경쾌하게 진전돼 결말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관객들에게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 감독은 스타감독 반열에 오르는데 '캐릭터의 마술사'로도 유명한데 이 영화에서도 모순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 뚜렷이 대비되는 캐릭터들을 구축했다. 맹인검객 이몽학은 철부지 견자를 무사로 성장시키는 사부로서, 세상을 볼수 없지만 멀쩡한 눈을 가지고도 민생을 위반하는 임금 등 기성 정치권을 보지 않으며, 정상인들이 볼 수 없는 것들까지 보는 혜안을 지닌 인물로 죽음의 구덩이로 뛰어드는 동지를 막는 의의 인물이다.
황정민은 지난해 출연작 <그림자 살인>에서 엉뚱한 사설탐정으로 분한 데 이어 이번 영화에서 '허허실실'의 맹인검객으로 개성있는 제스추어와 다양한 표정연기로 원작 만화의 황정학을 뛰어넘는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 가운데 회색 구름을 벗어난 희망찬 달에 가장 근접한다.
또한 서자 출신으로 대동계에 가담해 황정학과 같이 '다른 세상'을 꿈꿨던 이몽학의 캐릭터는 자신의 애첩 백지(한지혜 분)를 저버릴만큼 승부욕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자비를 허락하지 않는 칼날과 함께 그의 이름처럼 훤칠한 키에 흰색 도포자락은 '군계일학'처럼 외로운 처지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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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원은 지난해 출연작 <눈에는 눈>과 올해 개봉된 영화 <시크릿>, 그리고 이번 영화까지 극중 캐릭터에서 콧수염을 강조해 냉철하고 차가운 면모를 강조하고 있다. 극중 이몽학이 권력을 향한 욕망은 칠흑처럼 어두운 밤 기방에 들러 자신에게 거침없이 키스를 퍼붓는 백지를 외면하고 떠날 것을 권하면서 두드러진다. 그는 과연 끝까지 그녀를 외면할까.
또 다른 캐릭터 견자(백성현 분)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로 연출됐다. 조선 최고 사대부 집안으로부터 이몽학의 칼날에 하루 아침에 몰락한 한대감(송영창 분)의 서자로 복수를 꿈꾸며 정학과 동행하는 견자는 극중 정학의 말처럼 몽학과 달리 꿈이 없지만 두 고수들을 만나면서 점차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눈을 뜬다.
이 영화는 비록 시대극이지만, 백성을 외면한 채 정치인들이 당쟁에 열중하고 있던 16세기 조선과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지내는 것을 행복으로 헛된 욕망없이 사는 견자와 같은 사람도 있고 권력을 향해 해바라기하는 몽학같은 인물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의가 충만한 정학과 같은 인물도 있으니 말이다.
영화는 권력가들을 조소하면서도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민초들의 선택, 엇갈린 운명 속에 불어닥치는 삶의 희비극을 진한 페이소스에 담아 역사를 조명하고 슬픔과 감동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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