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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대결 처절고혼,역사속에 영면하시라!

14일, 故 황장엽 선생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10/10/14 [08:44]
세계적으로 발전한 선진 국가들의 근-현대 정치 흐름은 자유와 민주주의였다. 현대사는 전제주의나 권력이 혈육으로 세습되는 왕권국가가 망했음을 보여준 역사였다. 예외적으로 남한의 동족인 북한에서 3대 세습이 이뤄지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에 이어, 3세인 김정은에로의 권력세습이 눈 앞에서 전개되고 있다.
 
북한을 지금까지 이끌어온 이념-사상적인 기저는 주체사상이다. 이 사상은 남한으로 망명했던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에 의해서 공고하게 체계화됐다고 한다.
 
그는 남한으로 탈출한 이후에 다양한 국내외 활동을 통해 북한 실상을 알렸다. 북한 민주화의 필요성을 외쳤다. 개혁개방만이 북한의 살길이라고 천명했다. 그런가하면 북한 인권의 현실을 온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김일성 일가의 독재-세습 체제를 비판해왔다. 자신이 완성한 사상이 나빴다는 것을 온 세상에 증언한 것이다. 그런 그가 지난 10일 사망했다. 북한의 독재를 비판해온 그의 마지막 생애 한 자락은 칭송받을만한 부분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이런 생을 살아왔던,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호칭을 선생으로 한다.
 
▲ 고 황장엽 선생
국가보훈처는 고(故) 황장엽 선생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기로 했다고 13일 최종 발표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날 "황 선생의 국립현충원 안장 여부를 심의한 결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하는 등 국립묘지 설치-운영 법률에서 규정한 자격 요건을 갖춰 안장 대상자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14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황장엽 선생의 안장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황장엽의 국립현충원 안장에 대해 논란이 없지 않다. 그러한 지적에도 일리가 없지 않지만 탈북 이후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을 하면서 북한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고 북한의 인권개선, 개혁개방, 민족통일 등에 기여해온 공로가 그러한 과거의 과오를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어 훈장 추서 및 현충원 안장에 별 문제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아있는 숙제는 훈장추서나 현충원 안장에 대한 논란보다 공교롭게도 북한 노동당 창건 기념일에 분사한 황장엽 선생이 남긴 숙제를 우리들이 얼마나 계승하는지 여부이다.
 
황장엽 선생의 빈소를 찾은 유명인사도 많았다. 김황식 총리· 전두환 전 대통령, 정운찬 전 국무총리, 한승수 전 국무총리. 정원식 전 국무총리도 조문했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황 선생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늘 황 선생의 영결식은 오전 10시 서울 아산병원에서 있게 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명예장의위원장을 맡았다. 특이한 것은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이 약력보고를 한다는 것이다.

황장엽 선생은 탈북 이후 다양한 국내외 활동을 통해 북한 실상을 알리고 북한의 민주화와 개혁개방 그리고 인권향상을 위해 헌신해왔다. 독재체제 및 세습체제를 수시 비판하고 질타하여 북한의 3대 세습 체제에 걸림돌이 되어 북한이 암살지령을 내리기도 한 바 있다.
 
이같은 암살위협에도 불구하고 황장엽의 목숨을 건 호소는 중단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김정일 독재의 실체를 폭로하고 북한 핵 보유의 허구성, 그리고 무력 사용 없이 북한정권을 교체하고 북한 주민들을 구원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한 바 있다.
 
또한, 무엇보다 간과해서는 안될 점은 황장엽 선생이 북한 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 내부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비판의식을 잃지 않고 오히려 우리 사회 내부의 혼란과 갈등을 조장하는 종북 세력들에 대한 끊임없는 경고음을 발해왔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는 황장엽 선생의 타계로 인한 공백이 북한에는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시원한 일이지만, 우리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우리 사회 내부의 안이함과 분열, 혼란에 대해 경종을 알리던 등대가 사라진 셈이 되어 큰 손실이다.
 
내 눈 안에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티끌을 나무란다는 말이 있는데 물론 잘못된 것이고 시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외교부 장관 딸의 특채 논란에 대해서는 거세게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여 장관이 교체되고 그 동안 묵혀왔던 비리들이 줄줄이 밝혀져 우리 사회의 정의와 공정성이 다시 한번 바로잡힌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동안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도 없이 함구만 해왔다. 급기야 북한의 3대 세습 체제에 대해서는 내정간섭이니, 불편한 것이지만 그릇된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일부 정치인들과 언론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가 자행되는 현 한국 사회에서 황장엽 선생이 남기고 간 유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그의 탈북과 한국 망명을 다시 정리한다면, 탈북-망명은 정의를 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한국 생활은 외로웠을 것이다. 북한 사회에서 고위층에 있었던 이였기에 그 스스로 자본주의 국가인 남한사회가 생소했을 것이고, 친구나 친척이 없는 마당에 말이 통하는 사람이 많았겠는가?
 
황장엽은 유작시 '이별'에서 “벌써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이 세상 하직할 영이별 시간이라고”고 읊조렸다. 이어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가나/걸머지고 걸어온 보따리는 누구에게 맡기고 가나/정든 산천과 갈라진 겨레는 또 어떻게 하고”라고 회한했다.
 
훗날 민족이 하나 됐을 때 그의 행위를 정리한다면, 우좌 이념의 남북대결이 극에 달했을 때 이념 희생양 중의 한명 이었을 것이라고 평할지 모른다. 공산주의를 신봉했다가 이를 비판하고 자본주의로 전향했던 황장엽 선생, 민족대결 역사의 외로운 고혼(孤魂)이여! 편안하게 역사 속에 영면(永眠)하시라! moonilsu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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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생각 2010/10/14 [18:51] 수정 | 삭제
  • 북녘하늘에 자유와 평화, 민족의 염원인 조국의 평화 통일을 위해
    힘써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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