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의 '업보'와 '자업자득' 인과응보' '사필귀정' 등은 일맥상통한다. 성경의 창세기 9장 6절도 '남을 피 흘리게 하는 자, 자신도 피 흘리게 되리라'며 직시하고 있다. 시대, 공간을 초월해 사람 사는 순리와 세상이치를 견인하는 테마다. '뿌린 데로 거두리라'란 얘기가 설득력을 갖는 배경이기도 하다.
위 단상을 별로 의심해 본적이 없다. 단순 위안차원이 아닌 실제 겪고 봐 왔다. 그런데 가끔씩 회의가 인다. 가슴 한 칸에서 의구심이 커진다. 언제부턴가 이 사회가 정의롭거나 공정치 않단 생각이 팽배해진 탓이다. 힘(?)있거나, 약빠른 얌체족들이 늘 실리를 챙기고 득세한다. 얌체족 중 '머니게임'엔 심지어 가족조차 아랑곳 않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또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부끄러운 단상에 대부분이 고개 끄덕이며 묵시적 동조를 보탠다. 대체 어디서, 뭐부터 잘못됐을까. 앞서 전제를 하나 단다. 사람도 나름이듯 지도층도 나름이다.
작금에도 '정치자금법 날치기-장자연 리스트'가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군 채 날선 비판여론을 견인중이다. 공통점은 주연배우들이 국회의원 등 한결같게 모두 힘(?)좀깨나 쓴다는 소위 사회지도층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또 하나는 이들이 이익-침묵의 묘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점이다. 이들의 '후안무치'가 하도 어이없어 사실 논하기 조차 민망하다. 뭣보다 자라나는 후세대들에게 미칠 여파가 심히 우려된다. 일부 기성세대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에서 대체 뭘 보고 배우라 할까. 일류대 나와 좋은 자리 차지하면 그리 살아도 된다는 게 혹여 묵시적 통념으로 자리 잡을까 걱정된다.
지난해 한나라당주도 2011예산안 통과는 물론 국회가 툭하면 '날치기'를 연출한다. 재미 붙였나, 이젠 아예 '맛'들인 형국이다. 여당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야당역시 여당과 날선 정쟁을 벌이다가도 공통이익엔 '투쟁 칼'을 선뜻 내리는 어이상실이 눈앞에서 현실화 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제 밥그릇-제 사람 챙기기' 등 자신들 공동이익엔 여야구분 없이 의기투합해 앞장선다. 후안무치, 뻔뻔함도 이정도면 가히 금메달감이다. 그런데 대체 부끄럼이 없다.
여야가 정자법개정안은 속전속결로 처리한 반면 스스로의 이익·권한을 제약하는 법안은 처리 않고 방치하는 게 반증한다. 득 되는 법안엔 군사작전 마냥 신속한 반면 자신들 권리제한 법안은 논의조차 않은 채 장기 계류시키는 양태다. 때문에 의도적 '고사(枯死)'지적마저 팽배하다. 일례로 지난해 4월 한나라당 강명순 의원이 발의한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은 국회의원 친인척을 보좌직원으로 임명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혈세 먹는 사안이나 국회운영위 논의대상에서 근 1년 간 배제되고 있다.
지난해 5월 한나라당 정의화(한나라당) 의원 등이 발의한 해외 외유성 출장을 일정수준 제한하는 '국회외교활동 지원법안'도 마찬가지다. 원구성에 참여치 않거나, 범죄를 저질러 의정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국회의원들의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규정하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역시 18대 국회 들어 4차례나 발의됐으나 번번이 무시당하고 있다.
또 지난해 9월 민노당 이정희 의원이 발의한 '헌정회법 개정안' 역시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논의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08년 11월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이 발의했던 국회의원의 국회 집회일 출석을 의무화하고, 새마을금고 등에 대한 겸직을 금지한 '국회법 개정안'도 묵살되고 있는 대표적 법안으로 꼽힌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게 손해되는 일엔 잘 나서지 않는 단적인 사례들이다. 문제는 이들 법안들이 이대로 방치될 경우 이번 18대 국회가 끝날 즈음엔 모두 폐기될 운명에 처한 것이다.
일상에서 가끔의 일회성 포장 격 '페르소나 가면' 정도면 그래도 최소 인정은 된다. 그런데 가끔 도둑고양이마냥 은근슬쩍 넘기려다 일터지면 항시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한다. 도무지 진정성이 없어 봐주려 해도 불가하다. 사안의 경중을 떠나 굳이 비교하고 싶진 않으나 장자연 리스트에 '악마들'로 거명된 31명은 모자람이 없는 아니 더한 무리들이다. 조소와 분노를 사긴 양쪽 모두 마찬가지다.
한 힘없는 무명 여성연예인이 스스로 목숨마저 끊으면서 까지 '사후 복수'를 부탁할 정도면 가히 짐작된다. 그 깊은 '한'이 새삼 전이돼 가슴 떨릴 정도다. 그들에게 가진 기득권은 탐욕, 사욕 채우기 수단일 뿐이다. 거기다 '법'위에서 까지 놀려 한다. 경찰 등 규명주체들이 2년 전은 물론 지금도 멈칫거리는 뉘앙스를 풍기는 탓이다. 새삼 이 시점에 '장자연 리스트'가 불거진 배경에 일말의 의구심도 드나 31리스트는 분명 공개돼 일벌백계가 이뤄져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재차 '공정-정의'를 훼손하는 심각한 법정서 혼란이 난무할 것이다.
양태는 일견 다르나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사치스러운 요원한 테마인 듯하다. 소명과 봉사의식은 뒷전인 채 늘 정반대의 이율배반을 표출한다. 오히려 한껏 이기를 앞세운다. 지난 국회의원 평생연금 성격인 헌정회 지원법을 기습 처리한 게 단적인 일례다. 국회의원을 단 한 번이라도 하면 평생연금을 지급한다니. 더욱이 지급수준을 보면 국가유공자 이상이다. 국가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 연금수준과 버금갈 정도다. 잃은 국권 되찾기에 한 몸 받친 독립운동과 국회의원 활동이 어디 감히 비교대상인가. 어이없어 할 말을 잃게 한다. 특히 의원들 대부분이 기존 기득권층인데다 근무여건도 대중들 부러움을 살 정도로 사뭇 남다르다.
상식을 갖고 순리를 따르며 정의롭게 사는 이가 '바보'로 치부되는 기이한 사회가 어언 한국의 현주소가 됐다. 살면서 가까운 이는 물론 남에게 유형무형으로 피해를 줘선 안 된다. 모르면 모를까, 알고 그러면 치를 업보가 배가된다. 뉴스를 봐도 희망을 견인하는 테마는 전무하다. 가뜩이나 지속 치솟는 유가, 전세난 등 경제괴리에 국민들 삶이 핍박한 채 사뭇 예민하다. 짐을 덜어줘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이기·무기력증으로 괴리를 보태면서 동반된 날선 민심이 사뭇 예사롭지 않다.
최근 가까운 지인에게 사실 정치-나라도 별 희망이 보이지 않으나 일부 국민들 역시 일조한 채 마찬가지라 했다가 강한 반박을 샀다. 그는 아직 세상순리를 묵묵히 견인하며 보이지 않게 이 나라를 지탱하는 이들을 항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비록 일부라 하나 한국 미래가 그들에게 달려있기에 '정론직필-권력 감시'란 언론본연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며 강한 어조로 강조한 채 부탁해 왔다. 그런데 아무리 희망찬 발걸음을 옮기려 해도 가끔씩은 그냥 손놓고 싶은 게 솔직한 심경이다. 어떤 얘기를 던져도 그들(?)에겐 늘 '우이독경'같은 감이 짙은 탓이다.
이 나라가 언제부턴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마치 항로를 잃은 난파선 형국이다. 과연 누구, 무엇에 희망을 걸어야 할지 화두로 작용하면서 딜레마가 팽배해지는 시간들이다. 시간은 흘러 2012총선과 대선이 또 목전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내년 양대 선거가 한 반전의 계기가 될지 아니면 다시 지난 괴리의 연장선상이 될지 선택의 무게, 중압감만 새삼 더해지고 있다. 국민들이 이번엔 또 어떤 선택에 나설지. 각자의 소중한 한 표에 이 사회의 향후 미래가 걸렸다.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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