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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의 풍수 지리적인 기운과 기도명당

[노병한의 명당산책 시리즈55]:관악산주봉 연주대=영주대(靈珠臺)

노병한 풍수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2/07/13 [10:44]
대한민국 수도서울의 한강북쪽에는 조산(祖山)이자 주산(主山)격으로 삼각산(북한산)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의 한강남쪽에는 안산(案山)이자 조산(朝山)격으로 서로 마주하는 관악산이 자리한다. 이런 서울의 관악산은 경기오악(京畿五嶽)의 하나다.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松嶽山,488m), 가평의 화악산(華嶽山,1468m), 포천의 운악산(雲嶽山,935m), 파주의 감악산(甘嶽山,675m), 과천의 관악산(冠嶽山,631m)을 경기의 오악이라 불렀다.

▲ 노병한     ©브레이크뉴스
이들 산 이름에서 악(嶽)자는 원래 ‘큰 산’이나 ‘위엄이 있는 산’이란 뜻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바위산’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한남정맥의 중추를 이루는 경기도 안성군 칠장산(七長山)에서 달기봉과 광교산 등을 거쳐 북서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이 서울 한강남쪽에 이르러 마지막 힘을 다해 불꽃처럼 솟구친 산이 바로 관악산이다. 관악산은 동봉의 연주봉(戀主峯), 서봉의 삼성산, 북봉의 장군봉과 호암산 등을 아우르고 있는 산이다.

서울의 남쪽경계를 이루고 있고 관악산의 줄기는 과천시의 청계산을 거쳐 수원시의 광교산까지 도달해 이른다. 관악산은 마주 보고 있는 청계산에 비해 골이 얕고 바위가 많다 하여 남성(男性)산으로 불리우며 백호산(白虎山)에 해당된다. 청계산은 관악산보다 비록 11m정도가 낮지만 골이 깊다 하여 여성(女性)산으로 상징되고 풍수로는 청룡산(靑龍山)에 해당한다.

관악산의 북서쪽의 북사면에는 서울대학교, 정동쪽의 정동사면에는 사당과 서초구, 동남쪽의 동남사면엔 정부과천청사, 남쪽으로 안양유원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관악산은 전형적인 화성(火星)의 형상을 지닌 산이다.

관악산의 주봉(主峰)은 연주대(戀主臺)이고, 산정의 영주대(靈珠臺)는 세조(世祖)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산중에는 관악사지(冠岳寺址), 연주암(戀主庵), 자왕암(慈王庵), 불성사(佛成寺), 삼막사(三幕寺), 관음사(觀音寺) 등의 산사(山寺)와 과천향교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삼막사는 원효와 의상 등의 고승들이 수도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연주봉의 산 정상에는 기상청의 기상레이더 시설이 있는 곳이다. 산세는 험한 편이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도심에서 가까워 각종 소원을 비는 기도(祈禱)객들과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참으로 영험한 산이다.

삼각산과 관악산은 산 전체가 꽃 같은 돌들이 불이 타오르는 듯한 형국이어서 화산(火山)으로 통한다. 그래서 이 두 산은 불(火)의 기운이 강하다고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조선조 초기에 한양천도(漢陽遷都)가 결정된 후 궁궐터를 잡을 때 현 궁궐터가 관악산의 화성(火星)이 문제라 하여 반대도 많았으나, 궁궐과 관악산의 사이에 한강이 가로질러 있고, 이를 보완하여 광화문 앞에 두개의 해태상을 배치하여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는 풍수적인 처방으로 반대의견을 물리치고 현재의 경복궁이라는 궁궐이 세워졌다.

연주대(戀主臺)는 왕위(王位)를 셋째 동생 충녕대군(세종)에게 양보한 태종의 첫째아들 양녕대군과 둘째아들 효령대군이 이곳에 머물면서 동생이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을 편안케 하고, 성군이 되도록 빌면서 ‘임금(主)을 생각(戀)’하며 지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는 긍정적인 유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 왕위(王位)를 자의 반 또는 타의 반으로 셋째동생인 충녕에게 양보한 양녕대군이 이곳에 머물면서 늘 ‘임금(主)자리를 빼앗긴 것을 원통하게 생각(戀)’하면서 지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는 부정적인 유래도 있기도 하다.

연주암은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관악산 연주봉 남쪽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관악산의 최고봉인 연주봉(629m)절벽 위에 연주대가 자리하고 있고, 그곳에서 남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지점에 연주암이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며 나한도량(羅漢道場)으로서 알려져 있다.

연주암은 677년(문무왕17)에 의상(義湘:652~702)이 창건한 절이다. 의상은 관악산 연주봉 절벽 위에 의상대를 세우고 그 아래 골짜기에 절을 짓고 관악사(冠岳寺)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 이후부터 고려 말까지는 거의 폐사되다시피 하다가 1392년(태조1) 태조 이성계가 의상대와 관악사를 중수하고는 조선왕조의 번창을 기원하는 200일기도를 하였다.

연주대는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권유로 의상대 자리에 석축을 쌓고 30㎡ 정도의 대를 구축하여 그 위에다 암자를 지은 것이다. 1411년(태종11), 동생인 충녕에게 보위를 양보하고 전국을 떠돌던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관악사를 현위치로 옮기고 연주대의 이름을 따서 연주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위치를 바꾼 이유는 관악사의 원래 위치에서는 왕궁이 바로 내려다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nbh1010@naver.com

□글/노병한/자연사상칼럼니스트․한국미래예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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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경희대에서 행정학석사학위, 단국대에서 행정학박사학위, 러시아극동연구소에서 명예정치학박사학위 수위함. 서울시공무원교육원, 서일대, 명지대, 경기대, 대불대, 단국대, 전남대, 숙명여대 등에서 초빙교수역임, 동방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박사과정의 주임교수역임, 건설기계안전기술원장, 경주관광개발공사와 고속도로관리공단 상임감사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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