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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의 형태 또한 구성된 볼륨과 제작에 사용된 재료, 기법과 문양으로 나눌 수 있다. 옹기문화 계승에 땀을 흘리는 대한민국의 명장 98-23호 황충길 명장과의 이날 만남은, 두 사람에게는 내일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태어난 날로부터 하늘의 거대한 정신이 우리의 궤도를 조정하여 이곳에서 만나게 해준 느낌마저 든다.
옹기는 내게 추억이다. 유년시절 시골집이 떠오른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고향 시골의 향수는 잊기 어렵다. 볏짚으로 지붕을 이고, 집 뜰 뒤 안쪽 장독대가 있던 언덕 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손수 키우셨던 대나무와 오동나무는 어려서의 기억을 새롭게 했다. 그때의 기억으로는 대나무 숲의 바람소리와 장독대에 떨어진 대나무 잎, 그리고 겨울이 되면 솜털 같은 하얀 눈이 내려 김치와 동치미를 꺼내 먹기 위해 장독대에 쌓여 있던 눈을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치웠던 기억들을 잊을 수가 없다.
봄날 아침이면 뒤뜰 오동나무 보랏빛 꽃향기가 코를 찌르고 간혹 넓적한 오동잎사귀 하나와 보랏빛 꽃잎이 떨어져 장독대 위를 덮고 있던 모습은 마치 그림과 같은 수채화로 기억된다. 여름이면 더위를 피하기 위해 대나무 숲 안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하던 형제들과 친구들이 하나가 되어 고구마, 감자, 옥수수를 먹고 뛰놀기도 하고, 장독대에 떨어지는 대나무 잎과 바람소리를 들으며 여름방학 숙제를 하곤 하였다. 그리고 비가 오면 어머니가 들판에 나가시면서 열어 놓았던 간장, 된장, 고추장이 담긴 항아리을 덮었던 생각이 나고, 뒤 장독대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메주 담그시던 추억, 부엌 한켠에 작은 신주단지 물을 담아 놓으시고 아침저녁 까칠까칠한 두 손 모아 소원 비시던 모습이 되살아난다.
시골마을 한가운데 있는 우물가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항아리에 물을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다니던 모습도 아련하고. 아직 끝나지 않는 별 여행처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그때의 고통과 기쁨이 지금도 내 안에서 아름답게 꾸었던 꿈과 소망을 소생케 한다.
특히 우리 민족의 생활 용기로서 전통적 소요기인 옹기에 여인네들은 적어도 일 년에 두 번은 큰 행사를 치렀다. 그 하나가 겨울에 메주를 띄워서 봄철 장류를 담그는 일이고, 두 번째는 늦가을에 김장김치를 담그는 일이다. 우리네 음식의 기본인 간장과 된장인 장류와조미료의 역할을 하는 고추장속에는 장독대라는 특수한 가정 시설 안에서 우리의 고유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8월의 무더운 여름 날, 휴가를 반납하고 전통옹기에 푹 빠져 찾은 곳은 옹기 명장 집이다. 오전 방문이었는데도 벌써부터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 여럿 구경하고 있었고, 잠시 후 애호가들과 함께 담소가 시작되었다. 전시장은 손수 작업한 옹기로 가득하다. 큰 항아리에서부터 다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옹기명장 황충길은 황희정승의 19대손이다. 조선초기의 가장 어질고 슬기로운 재상 이었던 청백리 방촌 황희정승(1363-1452)은 세종대왕 때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고려 말 개성에서 태어나 어린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서 은거하였으나 태조의 요청으로 신하가 되었다. 바른 정치와 탁월한 능력, 국량이 큰 인품과 청빈함을 지닌 분이다. 그의 후손인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난과 배고픔으로 굴곡이 많았던 시절을 몸소 체험하면서 아버지로부터 기술을 익혔고,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이어 17살 때 옹기작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3대째 걸쳐 160년간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옹기의 장인이 되고자 노력하게 된 계기는 국무총리 상을 받으면서부터이며 생각에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황 명장은 옹기를 만드는데 있어서 두 가지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철학이란 우선 선택과 통제가 가능해야 하고 인생의 여행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옹기를 만드는 장인철학을 가지고 즐겁게 여행하는 옹기철학자라고나 할까? 그 하나의 철학이 한국 전통옹기문화를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현실을 뛰어넘어 미래에 세계화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옹기 만드는 작업은 능력의 유한성으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옹기 문화를 동시에 소통 시키는 일이다. 두 번째 신념은 현재나 미래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옹기장으로서의 삶을 마감하겠다는 의지이다. 칸트가 말하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지평인 ‘초월적 자리’라고나 할까? 인류의 진화사를 새로 쓴 리키 가문처럼 대(代)를 이어 아들 진영이가 오늘도 4대째를 이어가고 있다. solkwahak@hanmail.net
*필자/김재광. 문화전문 라이터. 문화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