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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풍류(風流)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

<풍류기행>고운 최치원의 유적지를 찾아서

윤진평 자유행복학교 교장 | 기사입력 2013/08/13 [09:55]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한 자유행복학교 풍류기행이 벌써 1년 2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풍류기행을 진행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우선 좋은 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으니 첫번째 기쁨이요, 그런 분들과 함께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길 수 있었으니 두번쩨 기쁨이다. 매월 한번 떠나는 풍류기행이 이제는 내 삶의 전부가 된 느낌이다. 풍류기행 떠나기 전에는 회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심하며, 풍류기행을 마치고 나면 이번 기행에 행여 소홀함이 없었는지 반성하고 다음 풍류기행을 다시 준비하는 일로 하루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그동안 자유행복학교 풍류기행이 찾은 풍류가인은 김삿갓을 비롯해 이규보, 허균과 허난설헌, 맹사성, 황희, 이이, 이지함, 정약용, 임제, 온달과 평강공주, 이황, 최치원 등 10여명이 넘는다. 앞으로 12월까지 윤선도, 정철, 김정희, 조식, 김시습 등을 차례로 찾을 예정이다. 아무튼 자유행복학교가 설립되면서 내 인생이 달라졌으며 풍류기행을 통해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자유와 행복을 흠뻑 느끼며 살고 있다.
▲ 최치원     ©브레이크뉴스

6월 풍류기행 테마는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이다. 알고 보면 우리 풍류기행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바로 최치원 선생이다. 왜냐하면 역사상 풍류(風流)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분이 최치원 선생이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풍류라는 말은 신라시대 최치원이 화랑 난랑을 위해 쓴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 중에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 한다(國有玄妙之道曰風流)” 는 글에서 시작되었다. 

최치원이 말하는 풍류도는 신라의 화랑도를 가리킨다. 달리 풍월도(風月道)라고도 하는 화랑도는 신라 진흥왕 때에 비로소 제도로 정착되었지만, 그 기원은 고대의 전통 신앙과 사상으로 이어진다. <삼국사기>에는 화랑도에 대해 “무리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혹은 서로 도의(道義)를 연마하고 혹은 서로 가락을 즐기면서 산수를 찾아다니며 즐겼는데 멀어서 못간 곳이 없다. 이로 인하여 그 사람의 옳고 그름을 알게 되고 그 중에서 좋은 사람을 가려 뽑아 이를 조정에 추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최치원은 이처럼 고유 신앙과 사상에 바탕을 두면서 유교ㆍ불교ㆍ도교 등 외래 사상의 가르침을 융합하고 있는 풍류도를 ‘현묘한 도(玄妙之道)’라고 칭하며, 포용과 조화의 특성을 지닌 한국 사상의 고유한 전통으로 강조하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풍류가 이처럼 종교적 성격이 강했지만, 조선시대로 오면서 종교적 색채가 점차 사라지고 자연과 친화하면서 시문(詩文)과 청담(淸談)을 즐기는 운치있고 우아한 생활을 의미하게 되었으니 오늘날 우리가 찾아 가는 풍류기행도 옛 선비들의 이런 멋스러운 생활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조 높은 옛 선비들의 유적지를 찾아 그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후학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풍류를 즐겼던 것처럼 우리도 바쁜 일생생활에서 잠시 떠나 미더운 분들과 자연속에서 하루를 속되지 않으면서 운치있게 보내는 것이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풍류기행 버스는 당산역과 양재역을 출발했으며, 고속도로를 타고 곧장 함양으로 달렸다. 버스가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초암이 오늘의 일정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점심식사 전에 상림을 산책한 후 오후에는 함양에 있는 멋진 정자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일정 소개를 마치고 지설님과 영소님이 준비한 샌드위치와 두유를 회원들에게 골고루나눠 주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느라 식사를 제대로 못한 우리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샌드위치를 먹고 나니 이번에는 오늘 처음 참가한 다섯분의 소개가 이어졌다. 소개를 듣고 있노라니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자유행복학교에서 앞으로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특히 오늘 오신 분중에 함양이 고향인 김승진님이 함양의 멋과 맛에 대해 상세히 소개를 했다. 이런 저런 정다운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에 우리의 버스는 함양읍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본격적인 상림 산책에 앞서 잠시 최치원 선생의 삶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치원(崔致遠, 857 ~ ?)은 9세기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字)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또는 해부(海夫)이다. 중국 당 나라에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신라로 돌아온 뒤에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정치개혁을 추진하였다. 유교(儒敎)ㆍ불교(佛敎)ㆍ도교(道敎)에 모두 이해가 깊었고, 유ㆍ불ㆍ선 통합 사상을 제시하였다. 수많은 시문(詩文)을 남겨 한문학의 발달에도 기여하였다. 주요 저서로《계원필경(桂苑筆耕)》,《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이 있다. 고려 현종(顯宗)때인 1023년에 내사령(內史令)으로 추증되었으며, 문묘(文廟)에 배향, ‘문창후(文昌侯)’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버스가 상림 주차장에 주차한 후 우리는 녹음이 우거진 상림 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이곳 함양이 고향인 김승진님이 앞장을 서서 길을 안내했다. 상림은 2만여 종의 식물들이 어우러져 있는 숲이다. 숲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원시의 모습이 아니라 무려 1,100년 전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우리 역사 최초의 인공림이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장소 중 유일하게 낙엽활엽수 군락지로 신라 말 최치원이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함양을 흐르는 하천의 범람과 주민들의 수해를 막기 위한 둑을 쌓고 물길을 돌려 나무를 심었다. 상림(上林)과 하림(下林)으로 나뉘었던 숲 중에서 하림은 오랜 세월 속에 사라지고 지금은 상림만 남아 있다.

상림공원은 최치원 선생과 관련된 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금호미 한 자루로 나무를 다 심었다는 것과 상림에는 뱀, 개미, 지네 등의 미물들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전에 의하면 효성이 지극했던 최치원은 어느 날 저녁 어머니로부터 상림에서 뱀을 만나 매우 놀랐다는 얘기를 듣고 상림으로 달려가 “이후 모든 미물들은 상림에 들어오지 마라!” 하고 외치니 그 후 상림에는 뱀, 개미 등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다소 주술적이고 황당한 이야기지만 함양사람들은 지금도 상림에는 뱀과 개미 등이 없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개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날아다니는 하루살이만이 가끔 얼굴에 와 달라 붙는다.

현재 상림에는 함화루, 사운정 등 아름다운 정자와 만세기념비, 척화비, 역대군수 현감선정비석과 역사인물공원, 이은리 석불 등 다양한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상림 숲속 길을 접어든지 얼마 안 되어 함화루(咸化樓)가 멋진 자태를 뽐내며 우리 앞을 막아선다. 함화루는 경남유형문화재 제258호로 조선시대 함양군의 읍성 남문이었던 것을 1932년 지금의 위치에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본래의 명칭은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는 뜻으로 망악루(望岳樓)라 하였으나 이곳으로 옮져 지으면서 함화루로 고쳤다고 한다. 

사운정(思雲亭)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 얹힌 단촐한 모습인데 1906년에 박정규와 김득창 등 함양 지역 유림들이 최치원을 추모하며 사모하는 뜻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모현정(慕賢亭)이라 했다가 나중에 사운정(思雲亭)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상림 깊숙한 숲속에 자리하고 있어 시원하면서도 운치가 있었다. 우리는 사운정에 올라 시원한 숲속 공기를 들이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사운정을 지나 좀 더 걸어 올라가니 역사인물공원이 나온다. 역사인물공원에는 지난 천년 동안 함양을 대표하는 인물상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신라말의 대학자인 최치원, 조선 성리학의 대가 정여창, 실학의 대가 박지원, 조선 말 의병대장 문태서 등 10명의 인물상이 더위에도 꿋꿋하게 서서 우리를 맞는다. 백천 선생이 연암 박지원의 얼굴상이 실제보다 덜 통통하게 만들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함양에 이런 유명한 분들이 살았다고 하니 함양이 선비의 고장인 것만은 확실하다. 다시 숲길을 따라 북쪽으로 더 올라가니 이번에는 물레방앗간이 나온다.

물레방앗간은 지금 같은 정미소가 없던 시절, 흐르는 물을 이용해 물레방아를 돌려 곡식을 찧던 방앗간으로 우리 할머니들의 땀과 한숨이 배여 있는 곳이다. 그런 노동의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물레방아 하면 언제나 정겨운 시골 풍경이 그려진다. 또한 물레방아는 산골 처녀 총각의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다. 낮에 동네 총각으로부터 사전 신호를 받은 처녀는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다, 아니 부모님이 잠들기를 기다리다 몰래 물레방앗간으로 간다. 깜깜한 방앗간 구석에서 미리 와있던 총각이 조용히 암호를 외치면 처녀는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방앗간 안으로 들어선다.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잠시 하면서 멍하니 서있다 보니 일행들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상림 북쪽 끝에 있는 물레방앗간에서 발걸음을 돌려 처음 시작했던 주차장 방향으로 다시 걸어 내려갔다. 내려갈 때는 상림 동쪽 길을 따라 걸으니 왼쪽으로는 온통 연꽃단지로 꾸며져 있다. 초록 상림과 조화를 이룬 연꽃단지는 2만 여평의 부지에 열대수련원, 수생식물원, 백련지, 홍련지 등 300여종의 연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6월 초라 아직 연꽃이 피지 않았지만 2주 정도 지나면 하나둘씩 피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연꽃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오다 보니 갑자기 들판이 모두 빨갛게 물든 곳이 보였다. 바로 양귀비꽃 단지였다. 마약 성분이 있어 한때 양귀비 재배가 불가능했지만 요즘에는 관상용 양귀비가 보급되어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양귀비꽃을 배경으로 여기저기서 카메라를 눌러댄다. 상림 숲길과 연밭, 그리고 양귀비꽃을 감상하며 행복한 산책을 하다 보니 벌써 12시 30분이 지났다. 점심 예약을 해 놓은 상태라 서둘러 예약된 음식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점심은 오곡밥과 나물이 나오는 한정식집에서 했다. 시원한 함양 막걸리를 곁들인 식사는 정말 꿀맛이었다. 여기저기서 추가 주문이 이어진다. 오곡밥과 반찬은 무한 리필이다. 한껏 배를 채운 우리는 다시 오후 일정인 함양 정자 탐방에 나섰다. 차를 타고 20여분 서울 방향으로 올라가니 함양군 서하면에 있는 화림동 계곡이 나왔다.

덕유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화림동 계곡에는 예로부터 명소마다 멋진 8정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함양을 선비와 정자의 고장이라고 부르며, 지금도 시인묵객들이 자주 찾는다. 지금은 8정자 중에서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만 남아있다. 8정자중 규모가 가장 컸던 농월정은 몇년전 화재로 소실된 후 아직 복구하지 않은 상태이다.

우리는 동호정(東湖亭)에서 하차한 후 선비문화탐방로를 따라 거연정까지 걷기로 했다. 먼저 동호정을 바라보니 참으로 귀가 찰 정도였다. “야! 정말 멋지다!”라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동호정은 소나무에 둘러싸인 2층 누각으로 굵은 나무를 그대로 사용한 듯한 기둥과 커다란 통나무의 한 면을 각을 파 자연스럽게 만든 계단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정자 아래 엄청나게 넓은 하얀 반석이 압권이었는데, 반석에 앉아 동호정을 바라보니 시(詩)가 절로 나올 것만 같았다. 동호정을 떠나는 아쉬움에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선비탐방로를 접어들자 여기저기에 핀 야생화가 저마다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오른편으로는 남계천 녹수(綠水)가 굽이굽이 흐르고 있고 왼편으로는 청산(靑山)이 말없이 버티고 서있는데 그 사이 오솔길로 자유행복학교 풍류객들이 웃음꽃을 피우며 자유와 행복을 찾아 걷고 있다. 참으로 여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유유자적(悠悠自適) 그 자체다. 

2km 정도 걸어가니 숲 사이로 힐끗힐끗 뭔가 보였다. 바로 화림동 정자의 백미로 알려져 있는 거연정(居然亭)이다. ‘자연에 내가 居하고 내게 자연이 居한다’는 의미다. 거연정에 앉아 있으면 누구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를 것만 같다. 거연정 조금 아래에는 군자처럼 단정한 모습의 군자정(君子亭)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군자정에서 가까운 삼강정(三綱亭)에 올라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풍류체험을 하기로 했다. 삼강정에 올라 빙 둘러앉은 후 초암의 진행에 따라 먼저 삼행시 및 애송시 발표시간을 가졌다. 먼저 지설님이 자청하고 나선다.


“최 : 최고의 풍류카페 자유행복학교가 최근 들어
치 : 치솟는 급인기에 회원가입을
원 : 원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하네요. 참 반가운 일이죠? <지설>


풍 : 풍악을 울려라
류 : 유수같은 인생인데
도 : 도반들과 만났으니 아니놀고 어쩌리 <인봉>


풍 : 풍류객 자유행복학교 학생들
류 : 유유상종하며 유유자적하는 풍류도에
도 : 도취되어 도무지 늙을 줄을 모르네. <백천>“

나와 백천 선생, 그리고 처음 참석하신 석정 오진환님, 주장환님, 김승진님, 또한 카메리 담당 교수 은봉 선생이 연이어 삼행시와 애송시를 정자 분위기 맞춰 한수씩 읊는다. 삼행시 발표를 마치고 남강 선생의 단전호흡 실습이 이어졌다. 지난번 단양 풍류기행 때 선보였던 석문호흡법을 남강 선생의 지도에 따라 각자 따라해 본다. 시원한 정자에 편안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신을 집중한 후 명상에 잠긴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다 내안에 있다는 것을 느끼며 긴 호흡을 해본다. 10여분 동안의 석문호흡이 끝나자 이번에는 오늘 처음 오신 삐에로님이 기타를 들고 앉는다. 우리는 삐에로님의 기타 연주에 맞춰 다함께 노래를 불렀다. 지금까지 풍류기행에서 기타를 연주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소 노래를 좋아하는 영소님이 신나게 따라 부른다. 삐에로님 공연이 끝나자 이대수님이 분위기 있는 목소리로 기타를 연주하니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다. 분위기가 고조되지 이번에는 김승진님이 중저음 음색으로 ‘오! 솔레미오’를 멋들어지게 부르니 풍류가 절정에 이른다. 마지막 초암의 단소 연주를 끝으로 오늘의 풍류체험이 끝났다. 널찍한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이를 안주삼아 막걸리 몇 잔을 들이키니 만사가 구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가 서산에 기울 무렵, 우리는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버스안에서 우리는 못다한 이야기를 계속 했다. 오늘 처음 참석한 회원과 기존 회원 모두가 돌아가며 본인 소개 및 오늘 풍류기행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했다. 어떤 회원은 흥에 겨워 자발적으로 노래를 한곡조 뽑는다. 모든 분들의 얼굴에 피곤보다는 행복한 미소가 넘쳐흐른다. 특히 오늘 처음 참가한 다섯분들의 표정이 너무도 밝아 내 마음도 흐뭇하고 즐겁다. 

최치원 선생이 만년에 합천 가야산의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는데, 908년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를 쓸 때까지는 생존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즉 52세 까지는 살아있었다는 증거다. 일설에는 95세까지 살았다거나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지만 확실한 기록이나 증거는 없다. 그러나 고운 선생의 생몰연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으며 어떻게 살았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의 삶과 사상은 일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던 ‘현묘지도(玄妙之道)’, 즉 풍류가 우리 자유행복학교 풍류기행을 통해 다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최치원 풍류기행은 나에게 ‘풍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뜻 깊은 기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simchoam@hanmail.net

*필자/윤진평. 자유행복학교 교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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