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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은 허망한 것, 한 조각 부운(浮雲)

북한 제2인자 장성택 숙청과 권력무상(權力無常)

김덕권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12/15 [13:38]
북한에서는 지금 피의 숙청이 한창 진행 중인 것 같습니다. 12월 9일 아침, 며칠 전부터 떠돌던 북한의 제 2인자 장성택을 숙청했다고 북한 중앙통신이 공식 보도를 하였습니다. 한 때는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권력자가 왜 숙청을 당했을까요? 장성택 숙청에 대한 ‘조선중앙통신 보도 전문’을 살펴보았습니다. 너무 길어 다 소개할 수는 없어 요약정리를 해 봅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가 12월 8일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진행되었다. 그런데 최근 당 안에 배겨있던 우연분자, 이색분자들이 주체혁명 위업계승의 중대한 력(역)사적 시기에 당의 유일적 령(영)도를 거세하려들면서 분파책동으로 자기 세력을 확장하고 감히 당에 도전해나서는 위험천만한 반당 반혁명적 종파사건이 발생하였다.
 
▲ 김덕권     ©브레이크뉴스

장성택 일당은 당의 통일단결을 좀먹고 당의 유일적 령(영)도 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저해하는 반당 반혁명적 종파행위를 감행하고 강성국가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투쟁에 막대한 해독을 끼치는 반국가적, 반인민적범죄행위를 저질렀다. 장성택은 앞에서는 당과 수령을 받드는척하고 뒤에 돌아앉아서는 동상이몽, 양봉음위하는 종파적 행위를 일삼았다. 이러한 행위는 적대세력들의 반공화국압살공세에 투항하여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인민민주주의독재기능을 마비시킬 것을 노린 반혁명적, 반인민적범죄행위이다.」
 
어떻습니까? 으스스하지요? 어제의 영웅이 오늘 반역자로 전락되어 그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인 것 같습니다. 하여간 내용이 아주 긴데 한 줄로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인 것 같네요. “장성택은 이단(異端)이다. 고로 처형한다.”는 논리인 것 같습니다. 정치권력이란 이렇게 허망한 것입니다. 한 조각 부운(浮雲)같은 것이죠. 더군다나 북한 같은 공산 독재국가에서는 비일비재(非一非再)한 일이니까요.
 
숙청을 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1) 혼란한 세상, 그릇된 일 따위를 엄하게 바로잡음. (2) 정치적으로 입장을 달리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을 추방하거나 없앰.」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장성택 숙청 사건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敎訓)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오르기는 어려우나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처럼 어렵고, 일을 망치는 것은 터럭을 태우는 것처럼 쉽다.(成立之難如登天 失墜之易如燎毛)」
 
이 말은 조선시대 이우(李瑀 : 1739∼1811)의『면암집(俛庵集)』<병인일기(丙寅日記)>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우는 조선 후기의 학자로 자는 치춘(穉春)이고, 호는 면암(俛庵)입니다. 성품이 과단성 있고 정의로워 1792년 영남유생 1만여 명이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해명하는 상소를 올릴 때 앞장섰다가 전라남도 강진(康津)의 고금도(古今島)로 유배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말은 이우가 유배지인 고금도에서 병인년(1806, 순조6)에 쓴 일기 3월 6일자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유배지에서 이우가 당나라 문장가 한유(韓愈)의「한영사탄금(韓穎師彈琴)」이라는 시를 읽다가 “더위잡고 오르려니 한 치도 오를 수가 없는데, 세력 잃어 한 번 떨어지면 천 길이 넘는구나.[躋攀分寸不可上 失勢一落千丈强]”라는 구절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옛사람이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처럼 어렵고, 일을 망치는 것은 터럭을 태우는 것처럼 쉽다’고 하더니 그 말이 참으로 맞는구나.”라고 탄식하였다는 내용의 글이지요.
 
평생 자신의 수양에 힘쓰고 정의로운 것만을 숭상해 왔다고 믿던 사람이, 그 올바른 정의를 주장하고 나섰다가 한순간 유배형에 처해졌을 때 느낄 수 있는 좌절과 비통과 탄식이 이 한 구절에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위의 말은 인생의 모든 단계에 적용되는 진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더라도 정상에 오르는 것은 몹시 어렵습니다. 그나마 정상 근처까지 도달했을지라도 어느 한 순간의 방심으로 천 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지요. 우리네 삶이란 항상 살얼음 밟듯이, 깊은 연못가에 서 있듯이, 늘 조심스러운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여리박빙(如履薄氷)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시경(詩經)》〈소아편(小雅篇)〉의 ‘소민(小旻)’이라는 시(詩)에 나오죠.
 
「감히 맨손으로 범을 잡지 못하고(不敢暴虎)/ 감히 걸어서 강을 건너지 못한다.(不敢憑河)/ 사람들은 그 하나는 알고 있지만(人知其一)/ 그 밖의 것은 전혀 알지 못하네(莫知其他)/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하기를(戰戰兢兢)/ 마치 깊은 연못에 임하듯 하고(如臨深淵)/ 살얼음을 밟고 가듯 하네(如履薄氷)」
 
그럼 어떻게 하면 이 여리박빙 하듯 세상을 살아 갈 수 있을까요? 모난 돌이 정(釘)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좀 못 난 척하고 뒤로 물러서 때를 기다리면 될 텐데 인간들이 너무 성급합니다. 그러다 장성택이 주군(主君)으로 섬겨야할 김정은의 역린(逆鱗)을 건드렸으니 숙청을 당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이 나라 정치도 마찬 가지입니다. 잠룡(潛龍)은 무정무동(無靜無動)해야 합니다. 시지불견(視之不見)하고 청지불문(聽之不聞)하죠. 그리고 공이불공(空而不空)하고 유이비유(有而非有)하는 것입니다.
 
즉, 행동이 고요함도 없고 움직임도 없습니다. 그리고 보아도 본 본 척하는 것이고 들어도 안 들리는 척하는 것입니다. 또한 비어도 꽉 찬 척하고, 있어도 없는 척 하는 것이죠. 그러고는 일체생령을 껴안을 만한 덕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름만 크고 실력이 없으면 후에 볼 일이 없습니다. 최후의 승리는 실력이 위입니다. 권력이란 참 무상한 것입니다. 무릇 크고자 하는 이는 조동(早動)하면 꺾이기 쉽습니다. 대업(大業)을 성취하려면 천명(天命)이 내릴 때 까지 기다리는 대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duksan4037@daum.net
 
*필자/김덕권.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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