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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여거사(八餘居士)를 아시나요?

김덕권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4/01/13 [07:57]
팔여거사(八餘居士)라는 분을 아시는지요? 여덟 가지를 넉넉하게 즐기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중종 때 서른 네 살의 김정국(金正國:1485~1541)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기묘사화로 수많은 선비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였죠. 김정국도 그때 동부승지의 자리에서 쫓겨나 낙향하여 ‘은휴정(恩休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지내면서 스스로 '팔여거사(八餘居士)' 라 불렀다는 사람입니다.
▲ 김덕권  시인  ©브레이크뉴스

팔여(八餘)란 여덟 가지가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나라에서 주는 녹봉도 끊겨 어렵게 지내는 그가 ‘팔여’ 라고 호(號)를 지은 뜻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팔여’의 뜻을 물어 오자 김정국은 지긋이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하게 먹고/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편안하게 자고/ 맑은 샘물을 넉넉하게 마시고/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하게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하게 맡고 지낸다네./ 여기에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에 ‘팔여’ 라 했네”

 
김정국의 말을 듣고 친구는 ‘팔부족(八不足)’으로 화답했습니다.

 
“세상에는 자네와 반대로 사는 사람도 있더군./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어도 부족하고/ 휘황한 난간에 비단 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고/ 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기생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고 여기면서 살더군./ 여기에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도 부족하다고 여기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걱정하더군”

 
 
어떻습니까? 멋진 화답이지요?「과재자침기주(過載者沈其舟), 욕승자살기생(慾勝者殺其生)」‘지나치게 많이 실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욕심이 지나치면 생명을 해친다.’고 했습니다. 어디까지가 적정선인지 만족을 모르는 끝없는 인간의 욕심을 나타낸 말입니다. 어느 날 태산을 유람하던 공자(孔子)는 사슴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새끼로 만든 띠를 졸라매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는 노인을 보았습니다.

 
“선생께서 즐거워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나의 즐거움은 많소. 하늘이 만물을 낼 때에 모든 것들 중에 사람을 가장 귀한 존재로 내었는데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이것이 바로 첫째가는 즐거움이요, 또 사람이 태어나면서 빛나는 해와 달도 보지 못하고 강보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되기도 하는데 나는 이미 90세나 되니 그 또한 내 즐거움이요, 가난하게 사는 것은 도를 닦는 이에게 당연히 있는 일이며 죽음이란 산 사람에게 있어서 당연한 종말이오. 그러니 이제 나는 당연히 있는 일에 처하여 살다가 제명에 죽게 되니 내가 무엇을 근심하겠소?” “참으로 좋은 말씀입니다. 선생은 스스로 마음을 너그럽게 가질 수 있는 분이십니다.”

 
 
‘포식(飽食)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다’ ‘만족하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도인(道人)의 마음과 생활에는 만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범부(凡夫)나 중생(衆生)은 만족함이 없죠. 아무리 호의호식(好衣好食)을 하고 재물을 쌓아 놓아도 마음에 만족함이 없습니다. 늘 무엇인가 부족한 듯한 결핍증에 시달리죠. 참 만족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참 만족은 오직 욕심과 탐욕을 비우는데 있는 것 아닌가요?

 
어느 나라에 남편감을 파는 백화점이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이 백화점에 가면 마음대로 남편감을 골라 살 수 있습니다. 그 대신 규정이 하나 있죠. 이미 거쳐 왔던 층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미혼의 두 여성이 꿈에 그리던 남편을 사려고 백화점을 찾았습니다. 1층에는 직업이 있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괜찮군! 1층이 이 정도면 한층 더 올라가 볼 필요가 있겠어.” 2층에는 돈을 잘 벌고, 아이들도 좋아하며, 아주 잘 생긴 남자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흠, 아주 좋아. 더 올라가자.” 3층에는 돈 잘 벌고, 아이를 좋아하고, 아주 잘 생겼고, 집안일도 잘 도와주는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우와! 여기서 멈출 수 없어.” 4층에는 돈 잘 벌고, 아이 좋아하고, 잘 생겼고, 집안일 도와주고, 아주 로맨틱한 남자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맙소사! 4층이 이 정도면 5층은 상상을 초월하겠지.” 그러나 5층으로 올라가자 5층의 안내문은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5층은 비어 있음. 만족을 모르는 당신, 출구는 왼편에 있으니 계단을 따라 쏜살같이 내려가기 바람.’이라고 쓰여 있네요.
 
세상에 어떤 사람이 제일 귀인(貴人)일까요? 욕심 없는 사람이 최고의 귀인입니다. 마음에 욕심을 여의였기에 오히려 세상만물이 모두가 나의 소유가 되는 것이죠. 이런 사람을 일러 우리는 수도인(修道人)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수도 인이 구하는 바는 마음을 알아서 마음의 자유를 얻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사의 원리를 알아서 생사를 초월하자는 것이죠. 또한 죄 복(罪福)의 이치를 알아서 죄 복을 임의(任意)로 하자는 것입니다.
 
이 수도 인이 구하는 세 가지를 얻는다는 것은 바로 용이 여의주(如意珠)를 얻는 것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이 귀하디 귀한 여의주를 얻는 사람이 세속의 재색명리(財色名利)가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마음을 허공처럼 비워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여의보주입니다. 마음을 허공 같이 비우고 보면 윤회(輪回)의 승강(昇降)조차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빈 마음을 근본하면 항상 진급(進級)이 되고 강 급(降級)은 막을 수 있는 것이죠. 또한 그 뿐만 아니라 빈 마음을 바탕 하여 상(相)을 떠나면 언제나 진리의 은혜를 입어 천하를 오가(吾家)의 소유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대인(大人)이 됩시다. 허공은 비어 있으므로 일체만물을 소유합니다. 대인이 되려면 마음을 허공처럼 비워야 합니다. 언제나 자신을 다스리되 빈 마음으로 써 하고, 가정을 다스리되 빈 마음으로 하며, 사회나 국가를 다스릴 때도 빈 마음으로 하면 매사에 상이 없어지고 원근(遠近)이 없어지며 증애(憎愛)가 끊어져 ‘팔여거사’ 같은 대인이 되는 것이 아닌지요! duksan4037@daum.net
 
*필자/김덕권.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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