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나는 한 번 써내려 가면 끝이다 다시 한번 읽기는 한다. 그러나 내 글을 교정하는 적도, 다듬는 적도 없다. 너무 그러므로 내 칼럼에는 이따금 오자가 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독자 분들에게 미안하다. 근래, 뉴욕 타임스가 박근혜 대통령을 아베처럼 작은 사람으로 동격화하는 사설을 게재한 것에 대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그렇게 작은 그릇이 아니다’라는 칼럼을 영어로 썼는데, 그 영어 글도 한 번 죽- 내려쓰고 만 것이다. 교정하고 다듬고 그러지 않는다. 나는 일단 마친 글에 대해서 시간을 쓰는데 대하여 엄청 거부감이 있다. 글을 마치자 마자 그 글을 쓰는 것에 대하여 흥미를 전혀 잃는다. 일종의 고문처럼 느껴진다. 그러므로 한 번 다시 읽어보고 토씨 고치면 즉시 발송이다. 교정하고 다듬고 그래야 한다면 나는 아주 예전에 칼럼을 쓰는 것을 그만 두었을 것이다. 나에게 쉬운 일이므로 지속한다.
이틀 정도 아팠다고 했는데, 아프게 되는 이유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자면, 우선, 인간생체의 진화는 수십만 년 단위로 조금씩 바뀌므로, 우리 몸은 십만 년 전과 동일하다. 그런데 인간들은 지난 수천 년 간 무지무지하게 생활환경을 바꾸었다. 흙과 나무로 둘러싸여 살던 환경으로부터, 고층건물의 시멘트와 온갖 화학성분의 인테리어 재료에 둘러싸여 하루를 지낸다.
그리고, 십만 년 전에는 맛있는 것이 없었다. 맛있는 것이라야 포도 딸기 사과 뭐 그런 신선한 과일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수천 년 간 음식재료를 가지고 오도발광을 하게 되었다. 지지고 볶고, 짜고 매운 것들을 섞고, 썩히고, 조미료를 넣고…
게다가 부패방지를 위하여 온갖 화학물질들을 섞고… 이는 특히 식품문화가 발달하고 상용화에 앞선 미국 및 서구에서 심하다. 바로 해서 그날 먹는 식의 한국음식이 이 면에서 무한대로 건강에 좋다. 소시지를 자주 먹으면 암 유발 확률이 엄청 높아진다는 것은 미국에서 발표된 사실이다. 미국에서도 배운 사람들은 소시지 같은 것 안 먹는다. 한국에서는 미국 것이라면 무조건 근사한 것으로 치부하고 애들부터 마구 먹는데, 한심해서 말도 안 나온다. 햄버거, 피자 등등, 모두 미국에서는 ‘쓰레기 음식(Junk Food)’이라고 불린다. 모두가 사용하는 정식 영어표현이다.
게다가 콜라니 사이더니 온갖 인공 음료수들도 10만 년 전에는 없던 것들이다. 그러므로, 병이 안 나려면 한 가지 수칙만 지키면 된다: “내 앞에 있는 이 음식이 십만 년 전에도 있었음직한 음식인가?” 그렇다면 먹고, 아니면 물리어야 한다. 그러면 95% 이상의 병이 물러난다.
다만, 그렇게 살 수 없다면 그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10년 전 상술한 이야기를 늘어놓자, “야, 아무 것이나 맛있는 것 막 먹고 일찍 죽은 것이 났겠다!”하며 나를 면박을 주던 한 지인은 그 후 온갖 지병으로 시달리고 있다. 곧 죽을 병도 아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거의 지옥과 같은 나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두 가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건강한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 이 분류는 돈 많은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분류보다 더욱 중대한 것이다. 심신이 건강하면 가난도 그다지 겁이 안 난다. 가난하다고 반드시 불행한 것도 아니고, 노력하면 물리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프면, 아무 것도 소용 없다.
“이 사람은 도대체 제목 따로, 이야기 따로… 언제 본론에 들어가는 거야?” 하실 독자 분들이 있을 것이므로 횡설수설은 그 정도 하고 제목을 다시 상기하자면 ‘박근혜 대통령과 교포어머니의 행복방법론’ 부제: ‘국민과 자식의 행복을 최우선 시하는 대통령과 어머니의 이야기’ 오케바리!
우선 미디어펜이 25일자에 올린 기사를 일부 인용하자면:
제목: 박근혜대통령 저주한 임순혜, 해촉 무효 소송에 비난 봇물
"참으로 낯이 두껍다. 철면피가 아닌 바에야 어떻게 해촉 무효소송을 낼 수가 있나?"
박근혜대통령이 비행기에서 추락사하기를 바란다는 식의 저주를 퍼부었던 임순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보도교양 특위 위원이 방통심의위의 해촉 결정을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임 특위위원은 박대통령이 인도와 스위스를 국빈 방문하는 기간에 "경축, 비행기 추락사 바뀐애(박근혜 대통령 비하한 말) 즉사"라는 저주의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 이를 퍼나를 것을 선동했다. 방통심의위는 임씨가 국가원수를 모독하고, 기관의 품위를 크게 손상한데다, 현재 석사학위 논문의 표절시비까지 휘말려있는 점을 감안해서 해촉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더욱 가관인 것은 방통심의위의 야당추천 인사들이 임씨를 편들고, 이번 해촉에 대해 위원들의 표현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용 끝)
"경축, 비행기 추락사 바뀐애(박근혜 대통령 비하한 말) 즉사"라… 미안한 이야기지만, 참으로 한민족스럽다. 한민족의 한 불행한 특징은 그런 식의 마구잡이 개싸움이다.
민주주의는 서구의 발명품이며, 그 것이 정상으로 작동하려면 최소한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 최소한의 조건이라 함은 ‘The rule of engagement’ (싸움의 규칙)이다.
서구인들의 싸움은 근본적으로 권투이다. 적어도 임순혜처럼 배운 사람 사이에서는 그러하다. 즉, 극히 제한적인 규칙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일 대 일의 싸움이다. 한국에서처럼 떼거지들이 우- 나서서 같이 싸워주는 것은 규칙 위반이다. 둘째, 어느 경우에도 개싸움은 불가이다. 이는 정치 싸움에서도 그렇고 개인적 싸움에서도 그렇다. 개인적 싸움에서, 상호 서서 주먹으로 싸우며, 상대방이 쓰러지면 거리를 두고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쓰러지면 달려가서 개싸움 식으로 하는 것은 절대 불가이다. 일어나지 않거나 못하면 싸움의 승패는 끝난 것이다. 그러면 원칙적으로 악수를 하고 헤어진다. 이를 ‘신사도’라고 부른다. 사회와 정치 모든 분야에서의 다툼은 이러한 룰 하에 이루어진다. 그 것이 서구 식 민주주의를 받쳐주는 근간이다.
"경축, 비행기 추락사 바뀐애(박근혜 대통령 비하한 말) 즉사"라는 트위터가 범람하는 그 동안에, 박근혜 대통령은 오금에서 똑 소리가 날 정도로 나라를 위하여 뛰고 있었다. 애국심도 애국심이지만, 하여간 건강과 스태미나는 알아주어야 한다. 인조인간도 아니고 어떻게 그 많은 일정들과 연설들을 소화할 수 있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쨌든, 그 동안 임순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고 모욕하고 저주하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나 같으면 성질이 나서도 그렇게 열심히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지 않을 것이다. 방방 뛴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20년 전쯤, 재미교포 천주교 성당에서 주최하는 행사가 있었다. 부모님들과 자식들 간의 이해소통을 위해 교외 수련장에서 개최된 모임이었다. 연단에 선 20세 정도의 한 교포 2세는 멀쩡한 눈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는데, 나중에는 엉엉 울면서 이야기를 하였고, 참석한 신자들도 같이 울었다. 그 것은 교포사회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특수한 처지의 이야기였다.
나와 나의 이공계 박사 한인 동료들은 미국에서도 영어가 되기 때문에 자식들과의 소통문제가 있지 않았다. 자식과 충돌이 있거나, 훈육의 필요가 있을 때에는 한국말로 하면 자식들이 못 알아 듣는다. 어렵고 추상적인 용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고로 영어로 가르치고 타이르고 야단친다.
말이라는 것은 참으로 불공평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아무리 상대가 IQ가 150이고 박사일지라도, 언어에 서툴러 바보처럼 더듬거리면 바보처럼 보인다. 자랑 같지만 내가 미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 유리했던 점은, 말을 요리하는 데 백인들보다 오히려 더 능숙했다. 마찬가지로, 집에서도, 영어로 글을 쓴다면 나는 애들보다 더 유식하게 쓸 수가 있다고 자부하였고 애들도 어느 정도 인정했다.
그러므로, 그날 성당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재미교포들 중 나 같은 박사들보다는 그냥 장사하고 그러는 교포 분들이 훨씬 더 많다. 특히 그들은 한인촌을 이루어 한 지역에서 장사들을 하고 그러므로, 영어를 거의 못하고 안 해도 살아갈 수 있었다. 특히 LA 같은 데서는 운전면허시험도 한글로 치고 한인파출소도 있으니, 영어 한 마디 못해도 생존할 수 있는 정도이다.
반면, 이민 갈 때 데리고 가고 이민 가서 낳아 키운 아이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미국문화권에서 살게 된다. 소수인종으로, 성장기의 아픔과 사춘기의 방황을 겪으면서, 부모와 대화를 못하는 것이다. 속내를 제대로 논리적으로 털어놓으려면 영어로 해야 하는데, 부모님들이 거의 못 알아 듣는 것이다. 소통이 되어도 부모와 자식 간에 마찰이 많은 그 성장 기간 동안에, 남의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면서 부모와 언어가 소통이 되지 않는 그 사정은 나 자신 모르고 있었다. 나는 50이 넘기 전에는 일반교포들과 섞인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청년이 울면서 영어로 한 이야기의 요지는 이랬다: “말은 안 통하고, 속은 상하고, 그래서 엄마만 보면 신경질만 내고 심지어 욕을 하고 그랬습니다. 어머니는 그러한 저의 학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일종의 죄의식이지요. 자식 말도 못 알아듣는 처지를 자신의 실책으로 여기고, 제가 마구 대할수록 어머니는 더욱 희생적으로 저에게 하셨습니다. 사달라는 것은 빚을 내서라도 다 사주셨습니다. 저는 그래서 고등학교 때 스포츠카를 몰고 다녔습니다. 그 월부 납입금을 내시느라고 어머님은 제대로 잠도 충분히 못 주무시고,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더욱 횡포스럽게 어머니를 대했습니다. 이제 철이 나서 되돌아보니, 저는 악마였습니다. 그러한 저를 어떻게 감내하시었는지, 저는 감이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천사이시고 저는 악마였습니다.”
모성애는 태산과 같이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우주의 근원은 모성애이다.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오금에서 똑 소리가 나도록 인도와 스위스에서 뛰고 있는 동안 "경축, 비행기 추락사 바뀐애(박근혜 대통령 비하한 말) 즉사"라는 저주를 퍼부었던 임순혜와 그의 많은 동지들, 낯 설은 땅에서 궂은 일 가리지 않고 밤잠 줄여가면서 일을 하던 그 교포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학대하던 그 청년. 다행이 그 청년은 20이 넘어 철이 들고, 우리 앞에서 엉엉 울면서 참회를 하였다. 임순혜가 언제가 그렇게 엉엉 울면서 참회할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sheem_sk@naver.com
*필자/심상근. 미 버클리대 박사.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