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던 어느 날 구두쇠 할아버지가 죽었습니다. 그가 죽고 나니까 이상하게도 구두를 수선하는 할아버지가 더 이상 구제(救濟)를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구두 수선하는 할아버지가 구제한 것은 전부 구두쇠 할아버지가 뒤에서 준 돈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세상에 음덕(陰德)을 베푼 것이죠. 보시를 하고도 내가 베풀었거니 하는 상이 없는 것을 우리는 ‘무상(無相의 공덕’이라고도 하고 ‘음덕’이라고 합니다. 마치 과수나무에 거름을 주고 흙을 덮어주는 것 같은 것이죠. 이렇게 든든한 기운이 오래가는 것이 바로 최상의 공덕인 것입니다.
지난겨울에도 우리는 어김없이 구세군(救世軍)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천만다행하게도 이름 없는 천사들의 거액 보시와 시민들의 십시일반 보시로 아마 목표액은 초과달성을 한 모양입니다. 그 때의 일입니다.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거리에 모든 것을 깨우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입니다.
30여 년간 매년 겨울이면 거리에 나서서 모금활동을 벌여온 손명식 서기관은 그날도 혼신의 힘을 다해 종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때라 거리엔 선물꾸러미를 든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죠. 그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손명식 서기관은 생각을 했습니다. ‘선물을 고르는 순간만큼은 틀림없이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했으리라. 그 마음을 일 년 365일 동안 계속 가지고 있는 다면...’
잠시 생각에 젖어 종을 울리지 않고 있는 터에 목탁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주(施主)를 받고 있는 노스님의 목탁소리였죠. 모금 활동을 위해 나온 노스님 역시 아침부터 열심히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서서히 하루해가 지고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손명식 서기관은 가방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종과 메가폰을 가방에 넣고 그날의 모금액을 어림해보았죠. 그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루하루 모금액이 줄어가고 있었던 것이네요.
무거운 마음으로 마저 짐을 챙기려는데 저쪽에서 돌아갈 채비를 하는 노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종교가 달라 하루 종일 종소리와 목탁소리가 불협화음을 이뤘지만 같은 이유로 하루 종일 자리를 지켰던 노스님에게서 왠지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손명식 서기관은 노스님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죠. 그때 노스님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손명식 서기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잠깐 기다리게나. 이것도 거기다 넣음세.” 노스님은 하루 종일 떨면서 모금한 돈을 모두 자선냄비에 넣는 것입니다. 종소리도 목탁소리도 멈춘 거리에서 손 서기관을 비롯한 구세군들은 노스님에게 아무 말 없이 목례를 올렸습니다. 노스님도 가볍게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더니 장삼자락을 휘날리며 찬 겨울바람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우리 연예계 스타들도 남모르게 자선을 하시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영원한 오빠 조용필의 자선’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왕(歌王) 조용필(1950. 3. 21~)은 중·고등학교 시절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그가 인기가수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76년 2번째 앨범의 삽입곡인〈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인기를 얻고부터입니다. 1982년 이후 일본 가요계 진출에 성공함으로써 1980년대 한국 가수들의 일본 진출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국내 가수로는 처음으로 소련과 중국 등 공산권 국가에서 공연을 하며 가왕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자선(慈善)이 무엇인지 찾아보았습니다. ‘남을 불쌍히 여겨 은혜를 베풀고 도와줌.’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렇게 자선사업을 하는 조용필씨의 숨은 선행은 의외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가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몹시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2003년에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면서 아내가 남긴 유산 24억 원을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해 모두 내놨습니다.
2010년 6월에는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소아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러브 인 러브(Love in Love)’라는 공연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그 수익금 전액을 신촌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에 모두 기부했죠. 그 금액이 소아암 어린이를 500여명이나 치료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하니 어림짐작으로 대략 약 25억 원에 이르는 큰 금액이라고 합니다.
조용필의 소속사인 YPC프로덕션이 최대 주주인 조용필에게 현금배당을 하지 않는 이유도 감동적입니다. 회사에서 나오는 적지 않은 배당금은 전액 사회에 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용한 나눔을 하면서도 그는 아직 전셋집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을 떠나면 가져갈 것이 하나도 없는데, 굳이 집을 사고 땅을 넓힐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입니다. 아마 그래서 그는 온 국민에게 마음으로 사랑 받는 사람이 아닐 런지요!
정말 조용필은 이 시대에 드물게 보는 연예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재시(財施)보다 더 훌륭한 보시가 있습니다. 금강경(金剛經)에 나오는 4구절로 된 게송(偈頌)하나라도 수지 독송하고 남을 위해서 설해준다면 그 공덕은 훨씬 수승(殊勝)하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재물로 보시한 공덕은 복덕(福德)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법(法)으로 보시한 공덕은 해탈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력이 없어 재물로 보시는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설하신 ‘사구 게(四句揭)’는 받들어 독송할 수 있고 널리 알릴 수 있는 능력은 있지 않을 런지요! 법보시(法布施)야 말로 보시 중의 으뜸이고 공덕 중에 최고일 것입니다. duksan4037@daum.net
*필자/김덕권. 시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