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국제정세 변화와 눈 앞에 다가온 남북통일

통일은 대한민국만의 일 아니며 국제사회 공동책임 시대추세

이명산 북한전문가 | 기사입력 2014/03/05 [08:00]
지금까지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핵문제 해결을 주안점으로 하고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문제 해결 그리고 남북통일을 목표로 접근했으나 북한만의 단독 접근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여 중국의 영향력을 지릿대로 사용하려 하였다. 그러나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로 미국의 전략은 획기적으로 변화하였다. (중국을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 하고 중국을 믿어온 미국이 이제야 새롭게 깨달았다).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미국의 국제전략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공부해야 한다.
 
1947년 3월 12일에 선포한 <트루먼 닥트린>(Truman Doctrine) 이전에는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는 국제주의 (Internationalism) 이었으며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로 세계를 이해할 때에 공산주의 국가들도 크게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실례로, 1945. 2. 12. <얄타> 회담에서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 <스탈린>에게 대일 선전포고를 권했으며, 1945. 12. 모스코 삼상회담에 미국이 참가했고, 1946-1947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미소 공동위원회를 열어 소련을 한반도 문제의 협의 파트너로 생각했던 것이다.
 
▲ 이명산  시인   ©브레이크뉴스
그러나 <트루먼>이 1945. 4. 12. 전임 대통령 <루스벨트>의 서거로 당시 부통령이었던 그가 전임자의 잔여임기를 채우기 위하여 대통령이 되고나서 그는 소련이 터키와 그리스를 침략하고 위성국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파악한 후 소련의 팽창주의를 경계하기 시작했고 세계 자유주의국가 보호정책을 위하여 1947. 3. 12.에 <Truman Doctrine>을 주창하게 된 것이다. 이 <Truman Doctrine>이 동서냉전의 본격적인 시발점이었다. 그때 이후로 미국은 봉쇄정책 (Containment Policy)으로 본격적인 반공외교를 시작 했다. 이 정책기조에서 미국은 공산화된 중국을 포기하고, 패전국인 일본을 재건하여 경제육성에 힘을 실어주었으며, 자유진영의 힘을 키우는데 정력을 다 했다. 1950. 6. 25. 북한이 남침하자, UN이 탄생 (1945) 한지 5년 밖에 안 되었는데 태어난 지 두 살밖에 안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UN군을 파송하는데 <Truman> 대통령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당선되고 (1952), 1953년부터 그는 한국동란으로 어려워진 국제정세를 쉽게 풀기 위하여 신 개입주의 (New Look Policy)를 내세우고 공산주의 국가들과도 제한적인 외교를 시도 하여 소위 냉전시대에 조심스러운 화해정책 (Detente)으로 세계를 리드 하였고 한동안 세계 여러 국가들로부터 미국의 우유부단한 외교정책이 비난을 받았다. 이와 같은 미국의 대외정책은 공산주의 국가들에 대한 견제를 유지하면서 유화정책을 병행하게 되는데 <Clinton> 대통령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 유화정책의 절정은 <지미 카터>(Jimmy Carter) 대통령 때이고 그는 미국역사에서 가장 무능한 외교대통령으로 간주된다. 그의 대표적인 실수는 알량한 <민주주의, 인권>등을 내세워 친미국가인 이란의 <Shah Pahlavi> 국왕을 축출하고 이란을 <호메이니>에게 내주어 지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극성을 부리며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1977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를 비난하면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려고 했으나 미국 국방성의 강력한 반발로 그 계획을 취소한 일이 있었다. 1994년 4월 북핵위기 때 <Clinton> 대통령이 북한을 선제공격하려고 만반준비를 하고 있을 때, <Jimmy Carter>가 나서서 김일성을 만나고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하였고 인기주의에 도취한 김영삼 대통령과 <Jimmy Carter>가 만류하여 <Clinton>이 작전개시 2 시간 전에 계획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그 <Jimmy Carter>가 후에 북한을 다시 방문하였을 때 우리는 모두 불안해하였다. 
 
1986년 10월11일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Reagan> 대통령과 <Gorbachev> 대통령간의 미소정상회담으로 미국이 20세기 최고의 외교승리를 거두는데 <Reagan> 대통령은 총 한방 쏘지 않고 공산주의 <골리앗> 소비에트 연방을 붕괴시키는데, 그는 웃으면서 미국의 SDI (Space Defense Initiative 우주방어 구상)를 선포하고 <Gorbachev>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내심으로 소비에트 연방 해체를 결심 하였다. 1991년에 <Gorbachev>는 <Perestroika, Glasnost, 개혁, 개방>을 주장하고 연방 15개 공화국이 모두 분리 독립하여 민주국가로 변신했으며 그중 많은 나라들이 지금 미국과 긴밀한 경제-군사 외교를 맺고 있다. 이 사건이 국제적으로는 동서냉전이 종식된 것으로 간주 되었다.
 
1994년 7월8일 -김일성의 사망으로 한반도 안보정세는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세계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에도 민주화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견을 했는데, 김정일은 김일성보다 더욱더 악랄하고 극악무도한 독재자로 나타났고 그의 무능과 아집으로 자국민의 300만이상이 아사했고 북한은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회생 불가능한 생지옥으로 변했다. 그는 1983. 10. 9. 아웅산 태러, 1987. 11. 29. AL-858기 폭파사건과 2010. 3. 26. 천안함 사건의 주범이었다. 그는 모순된 체제와 권력을 유지하려고 선군정치를 내세워 핵무기를 개발하고 유도탄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총력을 기우리면서 한반도와 지역안보와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었다. 북한은 세계 최빈국중의 하나이며 최악의 인권 말살국가 이지만 김정일 자신은 39호실에 수십억 달러의 비자금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상상을 초월한 초호화판 사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남한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이후에 안보감각이 둔화되기 시작했고 1980년대 이후로 친북좌파 반미세력이 우후죽순같이 일어났으며, 소비에트연방 붕괴로 동서냉전이 끝났다는 구실로 남한에서는 북한의 위협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경제부흥으로 이룩한 풍요와 자유를 남용하고 방종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서 친북좌파세력들은 끊임없이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세력을 확장했으며 1997년에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뽑고 민주화의 승리라고 엄청난 착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2002년에 임기를 끝내고 노무현이 그의 친북노선을 승계하여 우리나라의 국가안보를 거의 완전에 가깝게 파괴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한미동맹을 와해하기 위하여 전시작전통제권 인수와 한미연합사령부 해체를 추진한 것이며, 국내 친북반미세력 옹호육성,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적행위를 한 것이다.
 
2001년 9월11일에,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들이 뉴욕의 World Trade Center 두 건물을 공격함으로 미국은 안보정책과 외교정책을 새로운 각도로 전환했다. 냉전시대에는 소련을 주축으로 하는 공산주의와의 대결이었으나, 9/11사태 이후로는 테러와의 전쟁이다. <Bush>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할 때 <이락, 이란, 북한>을 국제사회와 미국의 주적으로 정의했고 그때 이후로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을 냉전시대의 공산국가로 보지 않고 테러불량국가로서 북핵문제 해결에 최대역점을 두고 있다. 이락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테러와의 전쟁이었으며 향후 모든 대북정책의 기준은 테러와의 전쟁방식이 될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세계적으로 문명파괴세력인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헤즈볼라, 하마스, 탈레반, 알카에다> 조직보다 더 강력한 테러조직을 갖고 있는 곳이 북한이며 <정찰총국>이 바로 그 것이다. 북한은 절대로 미국의 <Target> 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 사건 - (공교롭게도 이날은 우리의 건국국부이신 이승만 대통령의 생신이다.)  이 사건은 북한의 <정찰총국>이 저지른 만행이며,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중대한 사건이 되었다.  2001년 <9/11 사건> 보다도 1987년 <KAL기 폭파사건> 보다도 더 중대한 이유는 이것이 군사적 도발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더 중대한 이유는 북한의 만행이 분명한데도 중국이 세계평화의 편에 서지 않고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고 나선데 있었다. 이 사건 때문에 미국은 새로운 국제전략의 길을 가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직접적인 적대국이며 사실 중국은 미국의 첨예한 직접적대국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이 자기들을 적대국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실수를 범했다. 손자의 병법에 <적을 사로잡기 원하면 그가 탄 말을 쏴라>란 말이 있다. 이제 미국은 북한을 제압하기 위해서 중국을 옥죄일 수밖에 없다. 그 정책이 지금 눈에 보일정도로 가시화되고 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 미국은 국제전략의 우선순위가 전에 <NATO>에서 <중동>으로 이동한 것을 다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로 이전한 것을 공식 발표한 일이 있다. 이와 같은 변화 속에서 북한은 지금 철두철미한 미국의 감시를 받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조이기 위하여 두개의 무서운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첫째는 방대한 무력(군사력)의 우위 이며 미국이 중국 근해에서 무력시위를 하게 되면 중국의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어 있다. 미국이 태평양과 인도양에서 <SLOC -수로권/水路權>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남지나해에서 중국과 충돌하게 되는 경우, 중국은 <Gorbachev>처럼 쓴 웃음을 웃으면서 미국에게 순종해야 할 것이다. 지금 중국이 군사력을 키워 미국을 저항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나 망상에 가까운 국력낭비로 끝날 것이다.  또 다른 무기는 금융압박이다. 미국은 지금 중국이 이란과 북한에게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했다는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으며 이것을 이유로 중국에게 금융압박을 가하게 되면 중국의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등소평이 죽기 전에 남기고 간 유언에 <향후 100년 동안에는 절대로 미국과 대결하지 말라> 했는데 <후진타오>가 그의 유언을 무시하였다.
 
지금 북한 내부의 사정은 김정일이 죽고 (2011. 12. 17), 3대 세습으로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후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불확실하고 불안전한 상태에 놓여있다. 특히 39호실과 38호실 비자금관리를 위요한 갈등으로 2013년 12월 12일에 나이어린 김정은이 자기의 장자방인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후 북한은 <예측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가 되어 있고, 한국은 박근혜정부 출범 후 건국 이래 처음으로 <방어적 대북정책>에서 <공세적 대북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한결같이 북한의 종말을 예감하고 남한주도 남북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통일 후 북한지역 개발을 위한 투자계획 등, 그런 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가속도를 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Issue>는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하여 한미양국은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9>를 정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숙원이던 <통일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온 느낌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 때를 위하여 마음의 준비와 각오를 확실하게 다져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1년 동안에 나타난 대북정책은 분명히 통일준비를 위한 적극적인 자세이다. 박 대통령은 <통일 시대를 열자>고 공식선언 하였고 <통일 준비 위원회>를 신설 하겠다고 약속 하였다. 남북통일의 비용을 염려하여 통일의 당위성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통일은 대박이다 National unification is bonanza>라고 도전장을 제시했다. 이 새로운 정책 기조와 거의 같은 시기에 국제적으로 남북통일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한반도 통일이 5년 이내에 이루어지면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최적의 투자 대상국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통일후의 대한민국은 수년 이내에 영국과 프랑스를 제치고 G7 대국이 될 것이라고 장담 하였다. 세계적인 투자회사의 총수인 <짐 로저스>는 남북통일이 시작되면 자기의 전 재산을 북한지역 개발에 투자 하겠다고 약속 하였으며 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중국과 러시아에 <스타 기업>이 줄줄히 탄생할 것이라고 말 하였다. 뿐만 아니라 세계은행 총재 <김 용>도 통일이 되면 북한지역에 투자할 돈이 준비되어 있다고 발표 하였으며 북한개발이 시작되면 매년 6,000조원의 자원강국이 될 것이라고 예언 하였다. 통일연구원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향후 20년간의 통일비용은 약 3,600조원이 될 것이며, 통일 후의 국가수익은 약 6,800조원이 될 것이라고 계산 하였다. 통일 후의 경제 변화는 국방비 감축효과가 매년 300조원이고, 국민 가처분 소득이 매년 89조원 증가 할 것이며, 사회갈등 해소에서 오는 소득이 188조원이 추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관광공사의 발표에 의하면 북한지역 관광자원 개발에 4조원을 투자하면 매년 40조원의 돈을 벌게 된다고 전망하였다.
 
2014년 3월 3-4일에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제5차 Asian Leadership Conference (ALC)에서 토의된 주제는 <One Korea, New Asia>로서 <하나의 대한민국, 더 좋은 아시아>을 구축하기 위하여 국제사회가 어떻게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은 한반도 통일이 선결조건이란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제 남북통일은 대한민국만의 일이 아니며 국제사회가 공동책임을 느끼는 시대적 추세이며, 대한민국은 일류국가 건설을 위하여 통일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 (historical mandate)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이 시류를 어물쩍 하게 외면하면 아니 되며 비장한 각오로 도전해야 한다.
pswoodson@yahoo.com

*필자/이명산. 시인. 북한 전문가. 칼럼니스트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