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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구두 신은 아가씨의 루이뷔통과 딱새

딱새는 전문가요, 루이뷔통은 아마추어의 허영에서 빛난다!

이래권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4/03/05 [14:58]
삼일절 날이었다. 종로 5가 보도에 춘삼월의 꽃샘추위에도 봄은 느리게 찾아오고 있었다. 길 건너 가로수 은행나무를 구청사다리차가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여름의 폭염을 머리에 이고 시민들에게 한조각 그늘을 제공하며 꿈적 않고 고행할 은행나무는 일주문 사천왕 같기도 했고, 스포츠머리로 삭발당한 모양새는 흡사 수갑 찬 조폭 초년생 같기도 했다.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세운상가 터엔 새건물이 들어서 있고, 건너편의 종묘공원은 노숙자와 시간을 때우는 노인들로 가득했고, 어쩌다 내기장기판에서 훈수 두다 서로 멱살을 잡고 고성 난타전을 하는 술 취한 노인들도 언 듯 보였다. 길바닥엔 국수-200원 막걸리-1000원이라고 낡은 골판지에 쓰고 영업하는 인상 좋게 늙은 60대 초반의 아주머니는 분주히 몸을 움직이며 손님들 눈치를 보며 ‘그만 마시시라!’ 훈계 및 술값받기 진상처리를 미리 예고하기도 했다. 그 옆엔 아예 보도에 은박지를 깔고 낡은 나침반과 추억의 물건들과 돋보기 천자문 등등의 물건 디스플레이가  뒤숭숭한 모양이지만, 등산에 필요할지도 모를 발목 긴 등산화도 ‘단돈-10000원’ 이란 가격표를 비스듬하게 등 뒤에 달고 있어, 흡사 작은 만물상 같기도 했다. 오후 다섯 시를 넘긴 오후였다. 노인들이 만나고 대화하고 때론 싸움판을 벌이는 계절이 막 시작되는 서울의 심장부 노인들의 쉼터 종묘공원 풍경이었다.
▲ 이래권 작가     ©김상문 기자

을씨년스럽고 왁자지껄한 종로공원에도 어김없이 초저녁 어스름이 몰려왔고, 노인들도 서로 손을 흔들며 헤어지는 파장 때쯤이었다. 동대문 쪽에서 우아하고 세련된 회색의 승용차가 느리게 보도 쪽으로 오다가 고원을 살짝 지나 스르르 정차를 했다. 차의 마빡엔  부드러운 곡선형의 L자를 달고 있었다. LEXUS 일제 고급 세단이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투피스 정장에 스타킹으로 치장한 20대 후반의 여인 둘이 허벅지를 사선으로 기울이며 내렸다. 운전석에서 머리를 무스로 단정하게 한 핸섬한 남자가 잠간 차문을 열고 내리더니, 건너편 뒷문으로 내린 두 아가씨를 향해 잘가란 듯이 손을 흔들고 서서히 가다가 쌩하고 달려 나갔다. 두 아가씨는 천천히 보도 위로 올라 몇 걸음 걷더니 오른편 부축을 받던 아가씨가 털썩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무료한 종로길 초저녁에 진풍경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더니 어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흘깃거리며 미소를 보내기도 했고, 젊은 남자들은 스타킹 사이로 보일락 말락 하는 은밀한 곳을 음흉한 눈으로 스캔하며 발걸음을 멈추는 이도 있었다. 황당한 시선에 부추겨 일으켜 세우는 친구는 “보긴 뭘봐요!”라며 버럭 소릴 질러댔고, 옆으로 자빠졌다 일어선 아가씨는 “아이, 재수 없어!  이래서 국산은 안 되는 거야!” 라며 뜻 모를 말을 지껄이며 보도 앞쪽에 작은 기념조형물처럼 서 있는 박스로 절뚝거리며 하이힐 걸음을 옮겼다. 구두수선-뒷굽갈이-물광택 전문이라고 글씨를 옆면에 두르고 있는 길거리 구두수선 박스였다. 예전에야 각자 다를 모습으로 다양하게 점포들이 있었지만, 오세훈 시장께서 서울디자인 한답시고 찰리채플린의 초콜릿공장에서 나오는 형태 규격통일의 가판대를 만들어놔서, 신경 쓰지 않으면 구두수선 박스인지, T-MONEY 충선소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형태 단일화에 용도를 모르게 하는 실패한 디자인 박스였다. 그래서 상임들은 자구책으로 앞면 옆면에 이것저것 팔고 고친다는 손님 유인 메뉴들을 잔득 붙여놓게 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아가씨는 작은 구두수선소의 문을 열고 머리를 숙이며 들어갔다. 공주행세하다가는 또다시 머리를 부딪친다면 설상가상의 재수 없는 하루가 될 것이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 문은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치는 화두이자 인간의 허세를 꺾는, 대스승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구두수선소 안은 밖에서 보기 보단 두 사람이 앉을 의자가 구비되어 있고, 온갖 부자재들이 선반 위에서 제 위치에 놓여져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 아가씨가 오른쪽 구두를 벗자마자 짜증석인 푸념을 했다. “아이 재수 없어. 난 몰라~” “예에?” 50대 중반쯤으로 반 대머리의 구두수선공 주인이 황당한 눈으로 아가씨 둘을 번갈아 쳐다보며 반문했다. “아저씨 보고 한말이 아녜요. 이거나 얼른 고쳐 주세요. 얼마에요?” 수선공은 닳아빠진 구두 징이며 바깥쪽으로 길다랗게 뜯기고 벌어진 틈을 살피더니, 보자~ 양쪽 징 갈고 밑바닥 본드로 때우자면~ 으음, ‘2만5천원입니다. 삼십분쯤 걸리겠습니다. 저야 찾아주셔서 좋지만 웬만하면 구두를 사시는 게 나을 듯 한데요?’ “뭐라구요? 이 게 얼마짜린 줄이나 알고 말씀 하시는 거예요? 이 거 남자친구가 해외출장갔다가 사온 페라가모예요. 아저씨 페라가모나 알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여기 쓰여 있잖아요? 페라가모 구두 하이힐 70OXFORDRIBES. 50십 만원짜리.....?” “ 내 눈은 못 속입니다. 속으셨군요. 아가씨가 아무리 주장하셔도 짝퉁은 짝퉁입니다. 이태원  동대문에서 10만원이면 천 켤레도 살 수 있는 짝퉁입니다~고칠 겁니까? 새로 사 신으실 겁니까?” “이잉........!” 두 아가씨는 동시에 서로를 황당한 침묵의 눈으로 쳐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잠깐 어색한 침묵을 깨고 보도에 자빠졌던 아가씨는 다시 수선공에게 짝퉁을 선고받고 멘붕으로 정신이 나갔다가 가까스로 헛기침을 하며 빨간 입술을 들썩였다. “고쳐주세요. 그리고 아저씨, 남이야 명품을 신든 짝퉁을 신던 무슨 상관이예요? 아저씨 역할은 우리 발바닥으로 먹고 사시는 분 아녜요? 다음부터는 그냥 손님 신발을 고쳐 주시면 돼요, 알겠어요?” “예예, 손님 죄송합니다.

심심하시면 여기 갈아 신은 슬리퍼를 신으시고 한 삼십분 정도 근처 산책이라도 하고 오세요. 그 안에 깨끗하게 고쳐놓겠습니다. “대머리 수선공은 넉살좋은 프로의 미소를 날리며 너희들 공격에 끄떡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피차 쪽팔림과 어색함을 고려한 제의였다. 두 아가씨는 서로 눈짓으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가로저었다. ‘그냥 고쳐주세요.’ 무안함을 털어내려는 듯 짧고 차갑게 말을 던진 아가씨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호텔 스파게티에 와인까지 대접해준 서로 간보기 애인한테서 배신과 기만의 강펀치를 종로 수선공의 입을 통하여 전해들은 게 분했다.

구두수선공은 두 아가씨가 쌍둥이 가방을 무릎 위에 아기처럼 보듬고 있는 모습을 천천히 씨익 웃으며 쳐다봤다. 그리고는 갈라진 구두를 솔로 털어내며 본드통을 열었다. 보도에 자빠졌던 아가씨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눈을 부라리며, “이건 진품이예요. 이 친구랑 가방 계를 들어 작년겨울에 매장에 직접 가서 산, LOUISVUITTON(USED) 루이비통 시스타나PM 토드백 129336 이란 명품이에요. 기분 나쁘게 왜 자꾸 쳐다보세요?”

“어차피 저는 구두만 전공이라 가방은 잘 모릅니다. 기분 상하셨다면 사과드리죠.”

“예, 그만 좀 해라. 기분 풀어!” 다른 아가씨가 씩씩거리는 친구를 달래며 어색한 분위기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는 찡긋 눈짓을 보냈다. 사실 가방도 이태원 지하에서 산 짝퉁이었기 때문이다.

품질감별 전문가가 보기 전에는 페라가모 루이뷔통이 분명했다. 길거리 노점 30년 수선공에게는 구두 짝퉁이면 루이뷔통 가방이란 걸 미루어 알 수 있었다.

“대학교 2학년생이세요?” 수선공이 물었다. 그제야 두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다. “ 우리가 그렇게 보이세요? 사학년인데…….”

사실 스물아홉 살 동창생이었다. 편입 휴학 어학연수 대학원 등록하고 또 휴학……. 이른바 스펙을 쌓다보니 취직연령기를 놓치고,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시집이나 가려고 결심하고 화장에 피부관리에 명품치장으로 남자를 꼬시려던 된장녀 친구였다. 머리는 부족해도 예쁘면 된다는 식의 남자들의 사고방식이 만들어 낸 짝퉁범람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범죄는 아니지만, 백화점 진열대에 고가로 전시된 비교우외로 서열화 차등화시키는, 인간의 상품화 시대가 각자의 진실을 왜곡과 치장으로 덮으려는 자본주의 퇴락시대에 사회적 가치추구가 땅에 떨어진 결과로 인한 현상이다. 발버둥치는 생의 욕구가 이제 입사연령을 훌쩍 넘긴 두 친구였다. 행색으로 봐서는 강남의 부촌이나 준 재벌가의 딸들로 흠잡을 데 없는 비주얼 어드밴티지를 가진 엘리트의 여성들이었다.
 
“다 됐습니다. 한번 신어 보시죠?” 구두 수선공은 이마의 땀을 팔꿈치로 훔치며 신발을 들이 밀었다. 얼굴엔 구두약도 묻어 있어, 덩치가 말랐었더라면, 흡사 탈모 중 오랑우탄 행색이었지만, 통통한 얼굴과 불룩 튀어나온 배로 봐서는 인심 좋은 동네 슈퍼마켓 주인 같기도 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드르륵 문이 열렸다. 비쩍 마르고 어딘가 좀 부족하지만 착하게 생긴 20대 후반의 찍새(구두를 관공서나 대형건물에서 물어오는 휘하직원)가 대여섯 켤레의 구두를 비좁은 바닥에 내려놓았다. 종묘에서 구걸하던 청년을 고용하여 먹여주고 재워주고 월급 주는 길거리 캐스팅한 직원이었다. 이른바 새누리당에서 힘들어 하는 고용창출을 종로 구두수선공이 쉽게 해결한 셈이었다. 경기가 안 좋아 동업도 폐하고 찍새도 주리는 판에 그래도 이 수선공은 기술과 친절을 손님들에게 인정받아 오히려 호황이었다. 피맛골 거리를 부수고 대형건물을 올린 자본가들로부터의 착취가 아닌 수혜자 기득권 유지로 비교적 안정된 중산층의 수선공이었다.

“여기요, 2만5천원.......”

비좁은 박스가 찍새의 등장으로 더욱 비좁아졌다. 두 아가씨는 쫒기 듯이 대충 구두를 신고 박스를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옆에 붙어있는 포장마차로 가서 오뎅통 앞에 두 친구가 섰다. 춘삼원의 초저녁 거리는 스산했다.

“얘 오늘 나 망치 맞았다. 미국유학 펀드매니저 사기꾼에게 당하고, 원숭이 같은 구두수선공에게 쪽팔리고…….재수 옴 붙은 날이네.” “그러지 말고 기분풀어 이것아. 언니는 산전수전 다 겪어봤어. 넌 집이라도 괜찮지. 난 돌대가리 고딩들 과외하며, 누나하며 들러붙는 통에 떼어내느라 이중으로 힘들어. 기분도 꿀꿀한데 압구정 그 나이트 가자. 언니가 한턱 쏠게. 아줌마 국물 더 마셔도 돼요?” 벌서 세 컵째 먹으라는 오뎅은 누에처럼 먹으며, 아끼라는 국물은 하마처럼 먹어대는 두 진상여들에게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속으로 끄응 하며 빨리 나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구두를 수선한 아가씨도 천천히 열심히 국물을 축내고 있었다.

“엄마가 시집이나 가라고 하는데 다 아저씨들 아니면 마마보이들이야. 난 체질상 그런 사람하고는 못살아. 이번 짝퉁남자는 수신거부로 돌려 놔야겠다. 난 왜 남자 복이 없는 거야. 돈 많으면 대머리 마마보이요, 필이 꽂히는 남자들은 다 짝퉁들이니……. 그래, 고다! 강남으로! 나 오백 원짜리 잔돈 하나 있는데, 너 혹시 오백 원짜리 있니? 더치페이하게!” 한 친구는 가방 안을 뒤적거리며 백 원짜리 다섯 개를 찾아내어 친구에게 건넸다.

“오케이, 렛츠 고!” 천원으로 오뎅국물과 함께 20여분을 수다 떨다, 둘은 합창하듯 전철역으로 향했다.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혼잣말을 하면서 아가씨 뒤를 향해 굵은 소금을 뿌렸다. 구두 수선공도 얼핏얼핏 자신을 무시하는 듯 한 말들을 엿들었다. 30년 구두를 닦으면서 간간이 진상을 만났지만 이번 진상들은 고급 혼마구로 족들이라 선 듯 훈계를 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영어로 쓰인 두꺼운 책으로 무장한 두 아가씨를 상대하기엔 밀릴 것 같아 분을 삭이고 있었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투사가 되어~ 꽃 피고 눈 내리 어언 삼십년~
 
시청의 단속에 투사 아닌 투사로서 길거리 생존투쟁에서 살아남은 그였다. 초등학교 졸이 전부인 그에게 이 노랬가사 투쟁가를 익히는데 십년이 걸렸다. 눈감고도 구두를 닦으며 행인의 구둣발만 보고 살아온 그에게는 이제 대학생 둘 자녀가 고개였다. 세상의, 특히 시청과 정부의 노점상 단속에 체인을 온몸에 묶고 집단생존권 투쟁으로 지켜낸, 화려하고 크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끄럽거나 창피하지도 않는 한 평 박스 살이 내 청춘 흘러가고, 또 그 자리에서 장렬히 스러져가야 한다고 스스로가 굳게 맹세한 종로5가 길바닥이었다. 두 아가씨가 가고 난 허공엔 문득 이상한 말들이 귓가를 맴돌았다.
 
“더치페이! 렛츠고 강남!”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구두수선공은 두 남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집을 사서 빚을 갚고 있는 처지에 두 자녀 등록금대고 생활하기엔 버거웠다.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아들을 식당 찬모하는 마누라가 달래고 있었다. 군대 보내자. 2년이다. 그러면 딸 대학이 끝나고, 제대한 아들이 돌아오면 여윳돈도 마련할 것 같고…….
 
북한 미사일이다. 미국 핵항모다. 왠지 불안하다. 괜히 군대 억지로 보냈다가 전쟁 나서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죽으면...? 안 돼! 집을 팔고 전세로 가더라도 아들 공부를 시켜야지. 퇴근길 전철 안에서 유난히 빛나는 대머리에다 열체질이라 모자도 쓰지 않는 것이 남들의 웃음과 이목을 집중시키는 50대 중년 가장이다. 한때는 가발이나 모발이식도 고려했지만, 한순간에 자신의 대머리는 자식의 장래다! 라고 생각하며 남들의 시선을 묵살하고 가장 낮은 자세로 남들에게 웃음을 주는 인생살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짐했다.
 
페라가모 하이 힐. 루이뷔통 가방! 더치페이, 렛츠고 강남!
 
퇴근길 전철 안에서 이리저리 밀리며 구두수선공은 두 남매를 향해 발길을 서둘렀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고, 남들이 무시해도 땅바닥의 구두만 생각하고 살자! 사실 그에게는 30년으로 가정생활비와 자녀 학자금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그 인생의 파고를 타며 그는 땅바닥의 구두와 하이힐을 쳐다보며, 언젠가는 저 신발들을 내 손으로 닦고 말리라는 의욕뿐이었다. 때론 똥밟은 구두들도 닦았다. 두 아가씨에게 무시당한 일진이 더럽다고 생각도 했지만, 그것이 내 운명의 한 마디라고 자위하며 헛헛한 가슴으로 도시변두리로 향하고 있었다. samsohun@hanmail.net
 
*필자/삼소헌 이래권.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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