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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고산 사람이나 옛날 선비들 세심정(洗心亭)과 혼동한다. ‘만죽정’과 ‘세심정’이 다르다는 우천(牛泉) 이약수(李若水:1486〜1531) ‘춘제세심정(椿題洗心亭)’ 시가《우천유고집》에 있다. 이약수는 광주이씨 고산 입향조 이성(李誠:1517년생) 아버지이다. 이약수는 1531년에 죽었고 서익은 11년 후인 1542년에 낳았으니 이약수가 둘러보고 시를 읊은 ‘세심정’과 서익이 지었다는 ‘만죽정’은 각각 다른 건물임이 확실하다.
시제에서 ‘춘(椿)’은 오래 되었다는 뜻이다. 춘수(椿壽)라는 말이 있다. 목산 이기경(李基敬:1713〜1787)의 세심정기(洗心亭記)가《목산고(木山藁)》430면에 있다. ‘옛 정자 세심정 있었는데 언제 없어진지 모르고, 근세에 쌍청헌 작은 집이 있었으니 이 역시 사라져 오직 터만 남았다(舊有亭 名曰洗心亭 而不知廢於何時 近歲有建小軒 扁以 雙淸者 未幾又毁 獨其址存焉)’ 쌍청(계)헌 자리가 곧 세심정 터라는 것이다.
추정되는 자리와 기둥 구멍이 있으니 그 고증 어렵지 않다. 나온 김에 덧붙일 말은 수십 년 전 망북대가 없어져 아쉬운데 마침 작년 군에서 구명산 꼭대기에 정자를 세웠다. 구금회를 축구한 결과 군수 만난 ‘망북대(望北臺)현판 달기’ 허락을 받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구군이 전해 왔다. 옛날 우암 글씨로 할 것이냐 신인 작품으로 할 게냐 이는 오로지 극창 직손들의 뜻에 달려 있다. 구금회는 한 건 해낸 귀한 일꾼이다. esc2691@naver.com
*필자/이승철. 국사편찬위 사료(史料) 조사위원.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