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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 이후 그를 만났다. 그는 일본 일간현대 특파기자로서 진도 앞바다 세월호 사건을 당하여, 일본 언론인 20여명과 입국하여 참상을 전하는데 분주한 일상을 꾸리고 있다.
그는 혼슈 사세보 대마도에서 일본 자위대가 출발하면 두세 시간 내에 진도에 도달할 지근거리라고 주장한다. 한국인의 피해의식 ‘왜놈은 무조건 안 돼!’라는 감정적이고 저주하는 듯한 일제의 과거 만행 때문에, 일본의 스마트하고 강력한 구난시스템 팀의 파견 파견제의를 한국정부가 일언지하에 묵살한 것이 통탄스럽다고 했다.
일본은 해양국가라서 한국 보다 더 많은 해양사고가 나는데 즉각 조치 신속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 시킨다고 한다. 두 시간이면 진도에 올 수 있는 안전시스템을 갖고 있는 일본이 이번 사고에 투입됐더라면 많은 인명과 시신 수습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우리 입장으로선 일본은 가깝고도 먼 이웃이다.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비추어 20대의 순수와 열정을 토로하는 다치카와 기자를 바라보면서, 술잔 속에 비친 우리의 애증을 반추해본다. 선린우호 보다는 증오와 분노가 훨씬 더 몇배 강하다. 그런데, 그 원수의 나라가 생산한, 조지루쉬 밥통 도요다 렉서스 니산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일본을 시도 때도 없이 욕해댄다. 언어도단이요 이중적 국민의식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가에 대해서 반성해야할 부분이 있다.
“내일 또 목포 진도로 내려가 시신수습 현장을 취재해야 해야 한다”면서 작은 소주잔 식당만남은 짧게 끝이 났다. 자기는 아베도 싫고, 천박한 가계사(家繼史)를 가진 일본 정치인들에 대해서 아무런 미련이나 기대가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쿠데타 군부독재세력이 저지른 잔인한 제 동포 살육전시전에서 홀로 전시시위를 하는 한국의 민권운동 기자들을 물심양면으로 돕기도 했다. 난 개인적으로 일본은 후지산 대폭발로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천형의 땅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왜정의 폭압을 겪지 않고서도 학습되고 전이된 자연스런 역사성에 대한 내림의 혈맥의 가르침이다. 독립투사는 조국을 위해서 멸사보국을 했어도 가남과 암살을 피하지 못했다. 오히려 친일파들이 산업화의 역군으로 신분세탁하여 사회의 온갖 비리와 탐욕으로 커르텔을 형성했다. 급기야는 세월호의 어린 원혼과 환갑 여행 어른들을 화물과 비교되어 짐짝 보다도 못한 운임으로 계산되었다. 보름이 넘도록 아직 70여구의 시신이 차겁고 어두운 바다 밑바닥에 계시는 대한민국의 비참하고 무능력함에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알고 보면 아직도 이 땅엔, 아베의 주구들이 아직도 호화롭게 설치며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군으로 행세하고 있다. 물론 위안부 문제와 독도를 물고 늘어지는 군국주의화되어 가는 일본인들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이젠 그 분노와 저주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다치카와 대기자를 만나면서 그 분노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다. 인식과 공감을 천만번 했더라고 생의 한가운데서 다치카와 기자처럼 목숨 걸고 구원(舊怨)이 있는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도 미워하지 않고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도 드물다. 남의 나라에 와서 스파이로 마타도어 당하고, 형무소에 심신 영혼이 찢기운 다치카와 기자같은 정신의 소유자는 드물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도운 것은 역사적인 대의미가 있다.
다치카와 기자는, 이토 히로부미 토요토마 히데요사 도조 히데키 야마모토 이소로꾸 같은 사람들은 문(文)이 없는 천출(賤出)이라고 말 했다. 아베의 국치에 대해서 많은 일본인들이 반대하고, 저열한 정치가로 평가를 하면서 속내를 감추고 있다고도 했다. 내년이면 한일 국교수립 60년이 되는데 최선을 다해 한일관계에 대해서 일 년간 준비를 해서 주장과 이해를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필자는 치바 시즈오카 오사카 나가노 등지에서 젊은 날 학비를 벌려고 막일을 했었다. 8천 엔 일당인데, 나는 1만 엔 즉 2만 엔을 더 받았다. 한 일본인은 어나 날 저녁에 내 함바에 딸린 방에 찾아와 “고노 조센징 이라나이 관계나이 카헤루!” 라고 비난을 퍼부어대기도 했다. 나는 돌부처처럼 참고 또 참았다. 2천 엔, 즉 일당 2만원을 더 받으려 최선을 다했다. 일본인들도 인정했다.
렉서스 타고 햄버거 뜯어먹고 콜라 마시며 샹송 들으며 드라이빙하는 시대다. 더 이상 우린 자폐와 자학의 역사로 스스로를 묶는 단순함의 애국 쇄국의 국수주의를 벗어나야 된다.
엊그제 오바마가 일본을 방문하여 센카쿠는 일본 땅이라고 손들어줬다. 필리핀 수빅만으로 항공모함을 보내 영구 주둔지로 삼는다고 사인했다. 제주 강정항은 이미 미군의 항공모함 해군 군사기지로 사용키로 한미 간 암묵적 동의를 했다. 백 명의 적군보다도 다치카와 기자같은 분을 친한파로 대접하는 것이 더 낫다.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경제적 자유주의와 군사적 신냉전시대에 우리가 살길이 무엇인지 전략적 판단과 대처방식이 필요하다.
한일 간 역사인식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다치카와 기자를 보면서, 언론인으로서 정의와 진실이 무엇인지 새삼 깨달았다, 신사참배를 틈틈이 강행하고 독도를 빌미로 재침하려는 아베의 군국주의 망령이 춤추는 한가운데서, 작은 식당의 소주잔에 비친 맑고 투명한 노 기자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세월호의 국가적인 애도와 한가운데서 다치카와 대기자는 일본의 20여명의 기자들의 통역사 겸 취재관찰을 하고 있다.
어디로 갈거나? 무얼 타야 안심되나? 어젠 지하철 기차마저 충돌하여 서민대중의 발길을 무겁고 두렵게 만들었다. 바다와 땅에서 경천지동의 사건이 나날을 잇는 가운데 우린 어디로 가야 하는가?
끼리끼리 은밀히 작당하여 해먹다가 세월호 침몰참사, 전철추돌 사고가 생기는 것이다. 이젠 전 국민적인 측면에서 비판과 견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바다에서 땅에서, 국민들 애간장 졸여 죽이는 정부와 관료와 자본 마피아들의 횡포에 국민들은 터지기 직전이다. 공직자와 전문직의 환골탈태도 중요하지만, 우선 안전시스템을 매일매일 점검해가며 시민전문가를 참여시킨 국가재난방지 대그룹을 만들어야 한다.
군함도 아니고, 잘 훈련된 구난선이 일본에서 진도까지 가는데 두 시간이면 족하다고 말했다. 다치카와 대기자, 고맙다. 일본을 욕할 수는 있지만 그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일본인으로서 20달러를 민청학련 간부였던 유인태-이철에게 라면이라도 사먹으라는 선심이 국가전복 간첩으로 몰려 20년의 형을 언도한, 한국의 정치판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형형하게 빛나는 기자의 눈빛을 바라보며, 그가 지나온 인생역정이 한결같이 가시밭길이었을지라도 승리의 찬란한 인간의 길이었다고 믿는다.
다시 목포로 진도로 떠나는 일본인 기자, 그러한 언론인이 일본에 열 명만 있었다면 작금의 한일관계는 사과와 반성으로 과거사를 정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울러 한일 간은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로서 선린우호 관계를 유지발전을 기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다치카와 대기자님! 일본은 우리에게 적국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지만, 다치카와 대기자님을 옥살이 시킨 한국을 아직도 한결같이 사랑하듯이, 우리도 그런 날이 생기길 기원해봅니다. samsohun@hanmail.net
*필자/삼소헌 이래권. 작가.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