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가장 먼저 조부 선영 찾아 추모식 주관하고 창업주 기려
장손 이재현 회장의 장남 선호씨, 별도로 진행한 추도식에서 祭主 역할
“도전하고, 또 도전하라!”던 ‘이병철 DNA’ 살려 새 역사 쓸 후손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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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의 28주기 추모식이 지난 11월19일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가장 먼저 도착해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석에 누운 아버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신해 조부의 28주기 추모식을 주관하며 창업주의 뜻을 기렸다.
삼성家 3남매 나란히 선영 참배
지난해에는 그룹 사장단의 추모 예정시간보다 2시간가량 이른 오전 8시 40분께 선영을 찾아 전반적인 상황을 살폈던 이 부회장은 11월19일 오전 9시 41분께 어머니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등 직계가족과 함께 선영을 찾았다.
이후 10시30분께는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 선영을 찾아 선대회장의 창업정신을 기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등 계열사 사장단 50여 명이 참석해 창업주의 28주기 추모 행사를 진행했다.
삼성그룹은 호암의 기일인 11월19일 매년 경기도 용인 선영에서 추모식을 열고 있다. 호암의 추모식은 지난 20여 년간 삼성·CJ·신세계·한솔 등 범 삼성가의 공동 행사로 치러졌지만 2012년 삼성그룹과 CJ그룹 간의 상속 분쟁이 불거진 이후 그룹별로 시간을 달리해 추모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CJ·한솔 등 범 삼성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 필동의 CJ인재원에서 추도식을 따로 진행했으며 선영에는 그룹사별로 각자 참여했다.
선영 참배와 별도로 이날 저녁 7시 진행된 호암의 기제사는 ‘장손’ 일가가 속해 있는 CJ그룹이 주도했다. 이날 추도식에서는 투병 중인 이재현 회장을 대신해 이 회장의 장남 선호 씨가 제주(祭主)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날 기제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참석하지 않았으며, CJ그룹에서는 이재현 회장의 장녀 이경후씨와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 대표 가족 등이 참석했다. 미국에서 치료 중인 이미경 부회장은 불참했다.
기제사에 앞서 이날 손경식 회장이 이재현 회장을 대신해 이채욱 CJ주식회사 대표 등 주요 경영진 40여 명을 이끌고 선영에 참배했다.
신세계그룹에서는 장재영 신세계백화점 대표, 이갑수 이마트 대표 등 사장단 4명만 이날 오후 선영에 참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호암의 외손자인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도 계열사 사장들과 함께 선영을 찾았다.
‘이병철 DNA’ 되살릴 주인공은 누구?
한편,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1910년 2월12일 경상남도 의령군 중교리라는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는 서당에서 공부도 하고 근대식 학교도 다녀 보았지만 공부에는 그다지 재주를 보이지 않았던 평범한 개구쟁이였다.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해서 대도시로 나아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다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대학교 공부도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을 실망시키기도 했고, 어떤 일을 해야 좋을지 몰라 한동안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방황 끝에 자신의 길을 찾았고,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상회를 설립하며 포기를 모르는 열정적인 기업가로 변신했다. 해방 정국의 혼란 속에 서울로 진출해 1948년 ‘삼성물산공사’를 세운다. 나라에 부족하고 꼭 필요한 물자만 찾아 공급한다는 이병철 창업주의 전략은 맞아떨어져 삼성물산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지만 6·25 전쟁과 함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 후 피난처였던 대구에서 자신이 믿고 맡긴 양조장 운영자들이 모은 3억원을 자본금으로 1952년 부산에서 ‘삼성물산주식회사’를 재창업한다. 전쟁 특수 효과로 자본금 3억원은 1년 사이에 60억원으로 20배나 불어났다.
무역업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을 때, 이병철 창업주는 회사 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생산공장 건설을 추진해 1953년 제일제당을 세웠다. 그리고 1956년 세운 제일모직이 성공하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가로 등장하게 된다.
이렇듯 제대로 된 생산 공장이 하나도 없던 시절 생산공장을 세워 산업을 일으켰고, 1969년 삼성전자 설립을 밀어붙여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으며 이어 신세계 백화점·호텔신라·삼성중공업 등을 일으켜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선도기업의 발판을 마련했다.
최근 재계 일각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병철 창업주와 같은 기업가 정신의 부활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삼성이 글로벌 경제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도전정신으로 충만한 이병철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
병상에 누워 있는 부친을 대신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생전에 “적극적으로 안 해서 생기는 일은 큰 실수이고, 적극적으로 해서 생기는 문제는 작은 실수이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라!”고 강조하던 ‘이병철 DNA’를 되살려 삼성그룹의 새 역사를 써내려 갈 수 있을지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gracelotus0@gmail.com
























